1일은 돌아온다.

by 안녕

서른이 넘고부터 해가 가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나는 마흔을 바라보고 있다.


거기에 육아가 더해지니 시간의 흐름이 느껴질 새조차 없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이 지나가는 '정신없음' 속에서 도대체 나를 위한 것이라곤 한 번도 제대로 하질 못하니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다. 살고 있지만 그냥 되는대로 흘러가는 기분.


그제도 마찬가지였다. 눈 깜빡할 사이에 어느덧 저녁 8시. 그리고 무심결에 폰을 보니 벌써 7월 31일이다. 뭐 한 것도 없는데 세월은 벌써 7월의 끝자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나는 얼마나 성장했나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 그 사이에 딸은 얼마나 성장했나 돌아보면, 그렇다. 녀석은 한 뼘이 아니라 두어 뼘 정도는 더 성장했다.


아쉽다. 뼛속까지 좋은 엄마는 아니라 아이의 성장보다도 나의 발전이 중하다. 31일이 지나가는 7월 동안 나는 제대로 한 것이 없음에 슬퍼졌다. 이 마음을 담아 글이라도 쓰고 싶었는데 애 재우다 자버리는 엄마의 숙명을 거스를 수 없어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뜨니 8월 1일.


1일... 1일...

숫자를 보는데 이상하게 설렜다. 평소 같으면 지나쳤을 것인데 이상하게도 계속 눈에 들어왔다.

'오늘 1일이구나. 뭐라도 계획을 세워볼까...' 생각하자, 며칠 간 우울했던 마음도, 아팠던 머리도 오늘만큼은 괜찮아질 것 같다. 잊고 있던 열정 같은 게 솟아나는 느낌. '오늘은 첫 날이니까 괜찮아. 다시 계획해봐!'라고 토닥이는 느낌.


에너지가 솟았다. 그래, 오늘은 1일이니까. 첫날이니까. 시작이니까. 뭐라도 계획해보자 생각하곤 설거지하면서, 빨래하면서, 그리고 청소하면서 생각했던 글감들을 '작가의 서랍'에 차곡 차곡 넣어두었다. 8월이 가기 전에 '브런치북'도 완성해보자 마음 먹으면서. 그러다보니 신이 났다. 평소 읽고 싶었던 소설도 읽자, 그리고 좋아하는 그림도 그려보자, 적다보니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매일같이 흘러가는 날짜에 굳이 의미를 부여해야하나 싶었는데, 작은 의미라도 부여하니 도리어 마음에 힘이 생겼다.


1이란 숫자는 괜히 마음을 움직인다. 이성적으로 따지면 2일이나 14일이나, 31일이나 다 같은 날이지만 1이 주는 특별함이 있다.

14일까지는 "내일 해도 괜찮아. 어차피 다들 한 번씩은 미루잖아?"라며 안일하게 생각했던 마음을, "31일까지는 "에라이, 안 해! 그냥 살아!"라고 내려 놓던 마음을 움직이는 힘, 그리고 다시금 한 달의 목표를 세울 수 있게 도와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한 번 결심하게 하는 것. 1일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사실 난 걱정과 불안이 많은 사람이다. 아직 8월이네가 아니라 벌써 8월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예전같으면 2021년도 절반 이상이 지나갔다고, 한 게 없는데 시간은 흘러가고 나이는 먹는다고 생각하며 우울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그렇게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애 다 키우고서야 뭘 할 수 있지. 애 키우면서는 못해."라고 짐짓 어른스럽게 말하고 무언가를 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려고 한다. 달력을 보며 흘러가는 시간을 멍하게 바라보면서 "사는게 다 그렇지"라고 염세적으로 빠지지도 않으려고 한다. "1일, 14일, 31일.. 그런거 다 챙기면서 사는 거 다 상술에 속아나는 거야. 애처럼 그런 걸 챙겨"라고 스스로를 꾸짖지 않으려고도 할 것이다.


대신, 조금은 유치하게 생각할 것이다. 1이 주는 힘을 믿으며, 2021년에 아직 꽤 남은 1일을 기다리며 하루를 알차게 살아보자고 다독일 것이다.

만약에 8월의 계획을 다 지키지 못하면? 괜찮다. 나에게는 아직 4번의 1일이 남아있으니까. 그 때 다시 해보면 된다. 그러면 된다.

시간의 끝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1일은 내게 기회를 줄테니까. 31일이 주는 절망을 털어낼 수 있는 힘을 줄 테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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