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삶을 위한 작은 몸부림
오늘은 3-1호다. 오늘의 작업실은 다행히 냉방이 잘 되는 편이라 쾌적하고, 주변 소음이 크지 않아 이어폰을 끼면 적당히 차단되는 수준이라 작업하기에 힘들지 않다. 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유난히 마음에 든다. 시시각각 변하는 뷰를 보고 있으니 오늘만큼은 글이 써지지 않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다만, 와이파이가 불안정해서, 쓰던 글을 저장하지 않으면 '날아가'버린다는 게 큰 단점이긴 하다. 예전에 한 두어 번 그런 경험을 하곤 매일 같이 '저장' 버튼을 누르며 글을 쓴다. 아, 또 하나의 단점이 있다. 출출해도 뭔가를 먹으며 작업하긴 쉽지 않다.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
일상으로 복귀하자마자 기존의 작업실을 버리고 새 작업실을 얻었다. 기존의 작업실이 작은 방에 꾸린 나만의 '서재'였다면, 새로 얻은 작업실은 그에 비해 규모가 크다. 다만 개인 공간이 아닌 공용 공간이라는 것과 매일 같이 일정 금액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 다르다. 또, 한 곳에 있지 못하고 수시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것도 다른 것 중 하다. 가끔 소란을 피우는 사용자가 있지만, 동요하지 않고 잠시만 기다리면 된다. 수 분 후에 관리실에서 방송이 나오면 이내 잠잠해진다.
그렇다. 새 작업실은 바로, 지하철이다.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글이 쓰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쌓여가는데 아무리 시간을 내도 없었다. 일을 하면서는 도저히 짬이 나지 않았고, 집에 가면 그때부터 다시 '육아 출근'을 하는 터라 엄두가 안 났다.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나면 스위치 꺼지듯 잠들어 버리기 일쑤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니 약간의 우울감이 찾아왔다. 살아 있기에 살아지는 것 말고, '살아가는', '내 힘으로 이끄는' 삶을 살고 싶었다.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오전 7시부터 8시, 그리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그 시간을 쓰기 위해서 움직이는 지하철과 버스에서 아이패드를 열었다. 울렁거림을 참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엔 조금 힘들었다. 버스에서 글을 써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급정거, 급발진, 그리고 이따금 벌어지는 접촉 사고의 위험들을. 그 한가운데서 고도의 집중을 해야 하는 '글'을 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또, 지하철은 어떠한가. 갖은 소음이 난무하고, 2~3분에 한 번씩 다양한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리며, 가끔은 다양한 냄새들이 뒤섞여 집중을 방해한다. 또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내 글을 볼까 신경 쓰며 한 글자 한 글자 타이핑을 하는 것은, 소심한 나에겐 큰 미션이었다. 그러니 그 안에서 글 쓰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나 같은 성격의 소유자에겐 생각보다 꽤나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벌써 6개월째,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여태껏 발행한 글 중 상당수는 이렇게 매일 지하철,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쓴 글인데, 어떤 글들은 (어떤 경로 일지 모르지만) 조회수가 높게 나오기도 했고, '라이킷'도 많이 받았다. 또 다른 글들은 솔직히 집에서 편하게 앉아 쓴 것 보다도 더 잘 쓴 것도 있다. 특히 이렇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쓴 글이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는 괜히 더 기분이 좋았다. 인정받는 느낌.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는 느낌. 라이킷 하나에 그날 하루의 피로도 사라지는 느낌.
사실, 이렇게까지 꾸준히 글을 쓴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대학시절 잠시 했던 학생기자 활동 때 빼고는 늘 블로그를 만들어 놓고 몇 번 쓰다 만 게 전부. 그런데 왜 난 6개월 동안 계속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나를 끌어당기는 힘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먼저, 나의 작업실은 각 잡고 마련한, 원두커피 향이 짙게 풍기는 우아한 작업실이 아니다. 오히려 소란스럽고, 복잡하다. 온전히 나를 위한 글쓰기 공간이 주는 안정감은 분명히 있지만 그렇기게 갖게 되는 '부담감'도 있다. 만약 내게 제대로 된 작업실이 있었다면 스스로를 압박하며 도리어 글쓰기를 두려워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내가 애용하는 '작업실'은 언제든 사라지고, 언제든 생겨나는 곳이라 더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다.
또,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게 되니, 늘 '글감'을 생각하고 글쓰기를 실천할 수 있다. 예전엔 글을 쓰기 위해서 메모지를 꺼내고, 펜을 꺼내고 적어 내려갔다. 하지만 이젠 지하철 안에서, 버스 안에서 가만히 음악을 듣다 마음을 움직이는 생각이 나면 바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아주 짧은 문장이라도, 때로는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 내려 간 글귀라도 일단 적는다. 그렇게 적어 놓은 것들이 쌓이면, 마치 먹을 것이 가득한 냉장고처럼 마음이 든든하다. 쌓인 글감을 둘러보다 보면 언젠간 완성하게 되니 글쓰기 완성률도 비교적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짜릿한 '마감'이 있다. 사실 혼자 글을 쓰다 보면 한 없이 늘어지게 된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뭐.' 하는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루게 되는 게 사람 마음. 그런데 내 '작업실'에선 그럴 수 없다. 앞으로 환승역까지 20분이 남았다는 것을 알고 쓰니 타이핑을 멈출 수 없다. 원래 모든 일은 '마감' 직전에 잘 풀리지 않나. 글쓰기도 똑같다. 마감이 있어야 그 덕에 스스로를 재촉하며 글을 마무리할 수 있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 그 시간을 놓치면 '나' 대신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내가 갈아탈 다음 지하철 노선은 '지옥철'이라는 현실을 인식하면 자연스럽게 글이 써진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6개월 덕분에 나의 우울감은 사라졌으며, 작은 목표도 생겼다. 또, 하루 중 '아이' 아닌 '나'를 위해 사는 시간을 확보하기 삶의 만족도도 조금은 올라갔다. 하루를 빼곡하게 채워 산다는 느낌은 때때로 버거울 때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만족스럽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곱씹어 보면 장점보다도 단점이 많다. 어두운 조명에 눈이 침침해지기도 하며, 거북목은 더 견고하게 굳어가고, 멀미는 늘 달고 산다. 하지만, 그래도 난 멈추지 못한다. 이미 이 '맛'을 봐 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쓴 글이 '발행' 되었을 때의 짜릿함을 알기 때문에. '나'로 있을 수 있는 그 시간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지금도 글을 쓴다.
지하철에서.
그리고 버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