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가 집순이를 낳았다.

by 안녕

"어린이집 안 가고 싶어?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보고 싶대~”

"...... (웃으며) 그건 잘 모르겠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된 7월 초부터 지금까지 장장 한 달 반 가량, 가정 보육 중. 집 밖을 나가기 싫어하는 집순이와 함께 '집'에서만 있는 '진짜 집콕 육아' 중이다.




휴가 기간 중, 한 번도 바람 쐬러 간 적 없다. 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갈 수가 없어서다. 방역지침을 떠나, 우리 집에 있는 집순이 2호가 '밖'에 나가는 것을 정말 극도로 싫어한다.


사실 나도 꽤 알아주는 집순이.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방학 때 집 밖을 나가지 않는 나를 보며 엄마가 "제발 좀 나가서 놀라"며 화를 내 도망치듯 간 곳도 20분 거리의 외할머니댁. 집을 떠나 '집'을 선택할 정도로 난 정말 제대로 된 '집순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두 달 가까이 집에서 놀고, 먹고, 자는 걸 반복하니 모든 게 지겨웠다. 잠시라도 바깥바람을 쐬면 좀 나을 것 같아 산책이라도 할라치면, 데구루루 구르거나 펑펑 우니 나가는 것 자체가 전쟁이다.


"밖은 덥잖아! 집에서 있을래."라든가, 기분 안 좋은 날엔 "으아아앙!!!! 아빠만 나가. 나는 엄마랑 집에 있을래"라든가 녀석이 하는 말들도 다양하다. 핵심은 '집 밖은 더우니, 난 나가기 싫다.'는 것.


그럴 만한 사건이 있기는 했다. 8월 초였을 것이다. 작열하는 태양이 37도, 38도까지 지구를 끓이고 있던 그즈음, 느지막이 일어난 녀석이 마침 심심해 보였다. 베란다 너머 슬쩍 보니, 해가 누그러져 선선한 느낌이 들어 얼른 꼬드겨 놀이터에 나간 적이 있다. 당시 배변 훈련 중이라 기저귀 대신 팬티를 입혀서.


그런데 구름 사이에 숨어있던 햇살이 내리쬐는 순간 잠깐의 선선함은 사라지고 뜨거운 공기가 놀이터를 감싼 것이다. 미끄럼틀은 너무 뜨거워 탈 수 없었으며, 겨우 그늘을 찾아 앉으니 녀석과 내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손풍기를 가져오긴 했으나 역부족.


그렇게 겨우겨우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며, 곳곳에 기어다디 던 개미를 찾으며 놀고 있는데… 그만 녀석이 바지에 쉬야를 해버린 것이다. 다행히 놀이터엔 아무도 없었지만, 나나 녀석이나 당황하긴 마찬가지. 괜찮다고, 엄마가 도와주겠다고 말하며 황급히 수건으로 바지를 가려주며 집으로 가는 길. 엉거주춤 걷던 녀석의 표정은 울적해 보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하고 난 후 녀석은 선전 포고하듯 말했다.


“밖에 안 나가. 집이 좋아.”


그리고 그날 이후, 한 번도 나간 적, 없다.




따지고 보면 생후 2-3개월 때부터도 나가는 걸 싫어했던 아이다. 출산 후 잠시 집 앞 단지라도 걷자 싶어 아기띠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순간 오열했고, 자동차를 타기만 하면 죽은 듯이 잠만 잤다. 그 시간을 견디는 것처럼. 어린이집도 단지 내에 있어 그나마 갔을 정도로 생활 반경을 벗어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아이.


이런 아이의 성향을 거슬러서 육아할 자신은 없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할 자신도, 함께 뛰어놀 체력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와 녀석의 성향이 잘 맞는다는 것. 나는 집순이 1호, 녀석은 2호. 집에서 노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하는 녀석에겐 몇 가지 장난감만 있으면 하루가, 아니 한 달이 행복하다.


가령, 공주 색칠놀이책 한 권만 있으면 한 시간은 거뜬히 보낸다. 디즈니 공주부터 시크릿 쥬쥬, 그리고 캐치 티니핑, 콩순이 색칠놀이 책을 건네면 “우와~ 예쁘다!”며 순식간에 몰입한다. 거기에 72색 프리즈마 색연필(태교용으로 산 것인데 육아용으로 쓴다…)을 건네면 제일 좋아하는 분홍색으로 신데렐라의 얼굴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칠한다. 대신 색연필 깎이 셔틀을 각오해야 한다.


퍼즐도 꽤 좋아한다. 시크릿 쥬쥬 88조각, 디즈니 공주 88조각을 나름 혼자 맞출 줄 안다. 역시 퍼즐도 집콕 육아를 슬기롭게 보내는 아이템이다. 다만 뜻대로 안돼 짜증 날 때 던지면 조각조각 흩어지는 참사를… 견뎌야 한다.


드레스와 토슈즈를 신고 발레리나 놀이하는 것은 최고의 액티비티. 콩순이 ‘요술 토슈즈’ 편에 나오는 ‘난 할 수 있어’란 노래에 맞춰 빙그르르 탁! 하고 아라베스크~ 하는 녀석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다 보면 역시 시간이 훅, 지나간다. 물론, 나도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어쨌거나 우리 둘은 집순이들이라 이런 놀이가 적성에 맞다. 노래를 들으며 소일거리를 하며 보내는 집에서의 시간들이 행복하다. 종일 집에 있어도 우울하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좋다. 딸도 표현이 서툴지만, 아마 나가 노는 것보다는 집에 있는 게 훨씬 좋을 것이다. 우리는 집순이니까.




문제는 '남편'이다. 타고난 외향성을 자랑하는 남편은, 어딜 가나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재미로 살았다. 이사를 가면 한참 동안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탐험하는 스타일. 놀 때도 마찬가지. A를 갖고 놀다가도 연상되는 B에 관심을 보이다가 급기야 Z까지 가버리는 그런 스타일.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도 매번 시키는 곳 말고 새로운 곳을 찾아 시켜보는 그런 스타일.


그런데 매일 같이 집에서(변하지 않는 환경), 색칠놀이, 퍼즐, 발레 놀이(변하지 않는 놀이)만 하려다 보니 지겨워 죽으려고 한다. 한두 번이야 하지만 휴직 후 종일 애를 보는 동안 매번 같은 놀이를 하려고 하니 미칠 노릇이다. 몇 번 새로운 놀이를 도전해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싫어. 재미없어."


처음엔 열정적으로 이곳저곳 나가려고 했던 남편이다. 스타필드가 생겼대, 근처에 맛있는 빵집이 있대, 집 근처 공원이 새단장을 했대, 라며 우리 둘을 꼬드겼지만 엉덩이 무거운 집순이 1,2호는 잘 움직이지 않았다. 거기에 코로나19까지 확산되니 이래저래 남편만 불리한 상황이다.


가장 사랑하는 딸과 성향이 극도로 다른 남편.

퇴근 후, 남편의 썩은(?) 얼굴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좋아하는 치맥 한 잔 함께 먹으며 토닥여주고, 하소연을 함께 나누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


그렇다. 집순이가 집순이를 낳아버렸다.

때문에 남편도 집돌이가 되어버렸다.




만약 우리에게 둘째가 태어난다면 둘째는 외향적이었으면 좋겠다. 아빠를 닮아 나가서 노는 것이 제일 좋은, 아이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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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는 데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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