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세 알, 대파 송송, 참기름 살짝, 그리고 맛소금 톡톡
“넌 왜 내 반찬은 안 먹어?”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함께 도시락을 먹으면 반찬도 나눠 먹어야 하는 게 소위 말하는 ‘우정’인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지독한 편식쟁이였기 때문이다.
아무거나 잘 먹는 언니와 다르게 나는 편식이 심했다. 비위가 약해 집에서 담근 김치도 푹 익으면 먹지 못했다. 온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일요일 아침엔 언제나 반찬을 매의 눈으로 스캔하곤 했다. ‘오늘은 저 반찬이랑 먹어야겠다!’ 결심하고 그 반찬만으로만 밥 한 공기를 다 먹어치웠다. 그런 나를 아빠는 혼내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했지만 억지로 먹은 김치를 씹지도 않고 넘기거나, 남몰래 뱉은 것은 모르셨을 것이다.
그 시절, 내가 먹을 게 없다고 반찬 투정을 부리면 엄마는 냉장고에서 계란 몇 알을 꺼냈다. 툭툭 탁~ 하고 깨진 계란껍질 소리. 그리고 출렁이던 계란들이 쫑쫑 썬 대파와 만나서 어우러지며 프라이팬에 '치익' 하고 내려앉을 때 고소한 기름 냄새와 함께 내 뱃속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까칠해졌던 마음도 스스륵 풀어졌다.
계란말이. 내가 제일 좋아했던 엄마의 도시락 반찬이다.
유난히 계란 부침 특유의 기름 냄새를 좋아한 나는 도시락 반찬에서 계란말이를 발견하면 참 좋았다. 요새 블로그나 SNS, 요리책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계란말이가 아니라 정말 ‘기본’에 충실한 계란말이. 계란, 참기름, 맛소금, 그리고 대파, 가끔 통깨가 들어간 그 계란말이는 다른 아이들 앞에 보여주기도 썩 괜찮은 반찬이었고 맛도 있었다. 짭쪼롬하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계란말이만 있으면 도시락 밥을 뚝딱 해치워 갔으니 엄마 입장에서도 만족스러운 반찬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계란말이를 꼭 도시락 반찬통 한 칸에 가득 담아주었다. 좋아하는 음식 많이 먹고 건강해지라고.
그 딸은 건강하게 커서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기를 낳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보니 편식하는 나는 엄마에게 얼마나 힘든 존재였나 새삼스레 깨닫는다. 우리 아기도 먹는 것만 먹고 새로운 것은 잘 시도하지 않는다. 한우 안심을 사다 구워주어도 퉤퉤 뱉고, 크로켓, 돈가스, 잡채, 찜닭, 닭고기 완자 등등 정말 다양한 유아식을 도전했지만 제대로 먹지 않았다. 아기가 먹질 않으니 스트레스가 쌓였다. 매일 같이 버리는 음식이 먹는 음식보다 많아지자 어느 순간 자포자기 심정이 됐다. 그러다 문득 엄마의 계란말이가 생각이 났다.
집에 있는 계란으로 엄마 흉내를 내본다.
계란 세 알, 그리고 대파 송송, 참기름 살짝, 맛소금 톡톡.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남편이 사둔 계란말이 전용팬으로 직행한다. 쉬워 보이는 반찬을 예쁘게 만드는 것이 가장 고도의 기술. 계란말이는 불 조절을 잘못하면 다 타버리고 만다. 노릇노릇한 게 아니라 누릇누릇해서 보기에도 별로이고 실제로도 맛이 없다.
약불로 프라이팬을 살짝 달군 후에 슬며시 계란물을 부어 뒤집개로 조심조심 뒤집어본다. 약간 탔다. 하지만 괜찮다. 다시 계란물로 덮을 거니까. 치이익- 계란물을 부은 후, 한 번 뒤집는다. 아차차- 너무 빨리 뒤집었다! 당황한 내 뒤집개가 애써 잡은 모양을 망가뜨리고 있다. 휴. 예쁜 모양은 포기하자. 음식은 모양이 아니라 '맛'이다!
이런 과정을 여러번 반복하면서 문득 계란말이를 잘 하는 사람은 '요리의 고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는 요리의 고수다. 평생 한 번 불평 안하고 이걸 뚝딱, 만들어내셨으니. 물론 엄마는 그 걸 수십 년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내가 즉흥적으로 만든 계란말이는 음… 반쯤 성공이다. 적당히 누릇한 빛깔에 약간 심심한 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기에게 슬쩍 건네주니 처음엔 찡그리던 얼굴이 이내 밝아진다. 포크로 토막내어 밥과 함께 냠냠 먹는다. 성공이다. 한 달 넘게 반찬으로 속 썩이던 시간들이 끝난 것 같다! 너도 계란말이 좋아하는구나. 나처럼! 당분간은 계란말이다! 야호!
지난 8월 휴가에 맞춰 우리 딸과 함께 방문한 친정에서 엄마는 내 딸을 위해, 그러니까 엄마의 세 번째 손주를 위해 계란말이를 다시 만들어주었다. 어릴적 보던 그 계란말이. 엄마 손에서 뚝딱 나온 계란말이는 볼수록 정겨웠다. 역시나 내 딸은 할머니의 계란말이를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어머나~ 이 녀석 봐라. 진짜 잘 먹네!”
흐뭇해하는 엄마를 보며 괜히 뜨끔한다.
‘엄마. 이것만 잘먹는거야. 나랑 똑같애.’ 사실을 말해줄까 하다 할머니의 손주 사랑이 끝날까 그만두었다.
언제 어디서나 '맛집'을 탐방하는 먹방이 끊이지 않는 시대. 아침에 계란말이 하나 말아보면서 진짜 맛집은 집에 있단 생각을 다시 한 번 한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내게 그런 것처럼 나 역시 내 딸에게 '맛집'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평소에 육아를 담당하는 남편이 자주해주는 계란찜 대신, 오늘은 엄마가 생각나는 계란말이를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