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말이 트이지 않은 25개월 아가와 초보 엄마의 대화
몇 달 전의 일이다. 그날 낮잠을 재울 때 노래를 불러줬다. 비스듬히 기댄 내 몸 위에 엎드린 딸을 재우기 위해 불러준 노래는 바로 <사랑해>. (어릴 적 우리 엄마는 집안일을 하면서 노래를 곧잘 흥얼거리곤 했는데 가장 자주 불렀던 노래 중 하나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로 시작하는 노래.)
등을 두드려주면서 중간 중간 딸의 이름을 넣어주면서 불러주고 있는데 갑자기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콧물을 삼킨 것이겠지라며 계속 불러주다가 이제는 눕혀 재워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이제 엄마랑 누워서 같이 잘까?"라고 이야기하니 "네"라고 대답하곤 고개를 든 딸의 얼굴엔 눈가에서 주르륵 흘러내린 눈물자국이 보였다. 놀랐다! 오우! 왜!? 갑자기!?
"왜 울었어?"
내가 묻자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의 딸은 양 손의 검지손가락을 세운 후, 눈가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시늉을 했다. 미간을 찡그리면서. 2년 동안 터득한 통역능력에 의하면 슬펐다는 거다. 그래서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는 것. 뭐가 슬펐을까? 잠이 들락말락하던 우리 딸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슬펐던 것은 무엇일까?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당황한 내 머릿속에 순간 번뜩 생각이 스쳤다.
"이 노래가 슬펐어? 이 노래 부르니까 엄마가 떠나갈 것 같았어?"
그랬더니 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노래를 들으니 엄마가 떠나갈 것 같았다고. 그래서 슬펐다는 거다. 이 노래는 다시 안 불렀으면 한다는 표현을 내게 해왔다. 아, 우리 딸은 나와 함께 누워 이 노래를 들으면서 무언가 마음이 움직였구나. 그 움직임이 눈물이 되어 흘렀고. 아직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걸 눈물로 표현한 거구나. 내가 그 마음을 읽어준 것이고. 그 생각이 드니 나까지 눈물이 나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지만 나와 내 딸이 나눈, 교감의 순간.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이제 막 25개월을 지나고 있는 내 딸과 나의 대화다.
우리 딸은 말이 느리다. 25개월이지만 아직 문장을 말하지 못한다. 단어도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는 것이 2~3개 뿐이고 나머지는 흉내만 낼 뿐이다. 보통 빠르면 돌이 지나서도 문장으로 말하는 애들이 있다는데 느려도 너무 느린 것 같았다. 걱정이 많았다. 다른 집 아기들은 문장을 말한다는데 겁이 났다. 그럴때마다 방송을 보면 불안한 마음이 더 커져만 갔다. 특히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예능에 나오는 우리 딸과 동갑인 한 아기는 이미 엄청난 말을 해내고 있는 걸 보니, '맘마', '응가', '네' 정도만 겨우 말 하는 우리 딸은 너무 느린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그 프로그램은 보지 않고, 사실 지금도 보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이 한 번 들자 겉잡을 수 없이 퍼져만 갔다. '우리가 너무 많이 영상을 보여줘서 느린 것이 아닐까.', 때문에 '아기가 부모에게서 배울 수 있는 말을 배우지 못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표현을 말로 담아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많이 들었다. 좀 더 큰 아기를 키우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조금 더 기다려보라.'고, '아이마다 발달 속도가 제각각이니 분명 언젠가 말이 확 트일거야.'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런 말이 100%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많은 육아책에서 아기의 언어발달에 대해 다룰 때 36개월까지는 표현력보다 이해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개월수가 다 되도록 실제 내 아이가 말이 느리면 불안해지는 게 당연하다.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주양육자가 느끼는 불안은 상상초월이다. 나 역시 워킹맘으로서 '내가 일을 해서 그런가?', '내가 더 놀아줘야했는데, 내가 더 그림책을 읽어줘야했는데.' 등의 생각을 하며 자책을 하게 됐다. 돌 이후부터 쭉 아이를 전담해서 키운 주양육자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특히 24개월 이전까진 절대로 영상 노출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는 너무 일찍 뽀로로를 보여줘서 말이 느린 것 같다며 속상해하곤 했다.
그런 걱정이 앞서면 엄마(아빠)의 과한 욕심이 불안감과 함께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기를 앞에 두고 스마트폰으로 "아기가 말이 느려요" 따위의 검색을 한다. 그러면 제일 먼저 뜨는 한 카페의 댓글.
'그래서 저는 우리 아기에게 그림책을 늘 읽어줬어요. 주변에 책을 많이 두고 자연스럽게 접하게 했지요.'
책! 그래! 우리 집에도 책이 있지? 엄마(아빠)는 책에 시선이 간다. 그런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뛰어놀고 싶은 아기를 갑자기 책장으로 데리고 가선 "책을 읽자"며 이해하기 힘든 책을 골라 억지로 읽어준다. 순한 성향의 아기는 참고 잘 들어주겠지만 까다로운 성향의 아기는 이내 몸을 뒤로 젖히며 거부할 것이다. 그럼 엄마(아빠)는 더 불안해진다. '왜 우리 아기는 책 읽기를 싫어하지?' 그리고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이 간다. 다시 검색한다. "책 읽기를 거부하는 아기"라고. 아기는 그런 엄마(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방치된 것이다.
나 역시 무수히 많이 겪어온 이 과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해보니 역시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을 지키는 일. 바로 아이에 대한 부모의 믿음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아이와 충분히 놀아주고 교감하고 있다면 다소 느린 것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그 때까지 아이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며 놀이를 해주면 그 어떤 장난감이나 그림책보다도 훨씬 좋은 시간을 아이에게 줄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있어야 다양한 정보가 나를 짓누르는 세상에서 나도, 아이도, 남편도 힘들지 않게 세상을 살 수 있다.
언젠가 쪽쪽이(공갈 젖꼭지)를 끊지 못할까봐 불안해하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야. 아직까지 쪽쪽이 물고 있는 어른 없지? 괜찮아. 시간 가면 다 떼게 되있어. 엄마가 초조해하지마. 잘 될거야."
그로부터 몇 개월, 우리 아기는 일주일 만에 쪽쪽이를 뗐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딸은 언젠가 말을 누구보다 잘 할 날이 올 것이다. 그 때까지 나는 불안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렇게 충분한데, 충분히 서로 사랑함을 알고 있는데 단지 말이 느리다고 조바심내지 않으려고 한다. 다시 한 번 크게 숨 쉬고 내 앞에 있는 내 아기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아기가 내게 받았던 감정들을 '말'로 표현해줄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단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를 뿐. 조금 늦을 뿐.
이렇게 엄마(아빠)가 마음을 열고 아기와 함께 갈 수 있게끔 속도를 늦추면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공식적인 의사소통이 아니어도 비언어적인 표현으로 충분히 대화를 할 수 있다. 손짓, 발짓, 눈빛 속에서 많은 메시지를 표현하는 아기에게 집중하면 순간 순간 아기가 하는 말을 다 들을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검색창을 끄고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앞의 아기를 보자. 그리고 느껴보자. 아기가 하는 말을, 하고 싶은 말을.
그 날, 우리 딸이 내게 보여준 눈물은 "엄마. 엄마가 그 노래를 부르니까 나는 슬펐어요."라는 말이었다.
오늘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아기가 당신에게 건넨 말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