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생활자의 소소한 팁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은 것들 열 한 가지

by 안녕

도시락 생활자로 산 지 4개월 차에 접어들고 있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어쩌면 가볍게 시작했던 일이 점점 진심이 되고 있다. 게다가 삶의 동력이 되어 지치고 힘든 일상에 적절한 자극도 주고 있다.

처음부터 잘했던 것은 아니다. 낯선 세계로 입문할 때의 막연함,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은 나 역시 있었다. 하지만 지난 3개월 동안 도시락을 싸면서 터득한 것은 의외로 '사소한 것'들이 도시락 생활의 '만족도'를 높여 준다는 것이다.

수십 년 경력은 아니지만, 몸소 부딪히며 느낀 소소한 팁 열 한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다만, 지극히 사소하고 주관적인 팁이라 혹여나 도움이 안 될 수 있음을 잊지 마시라.




1. 튜브형 고추장

매콤한 맛을 좋아한다. 캅사이신의 강렬함 말고 청양고추와 일반고추가 적당히 섞인 딱 좋은 매운맛. 집에서도 반찬이 느끼한 것 투성이일 때,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쓱쓱 비벼먹곤 했다. 구내식당에서는 비빔밥 메뉴가 나와야만 먹을 수 있는 고추장 비빔밥. 도시락 메뉴로 비빔밥을 싸기 시작하면서 튜브형 고추장도 하나 장만했다. 그리고 회사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그러면 느끼할 때, 혹은 매콤한 맛이 당길 때, 언제고 맛볼 수 있다. 세 개 들이 한 팩이 6,000원~7,000원 사이라 값이 싸진 않지만 나처럼 한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추천한다.


2. 아기 물약 통

정말 추천하는 아이템! 도시락을 싸다 보면 가끔 반찬통에 담을 수 없는 소스류를 싸갈 때가 있다. 케첩, 마요네즈, 참기름, 드레싱, 간장소스 등 다양한 소스를 담기엔 아기 물약 통 정도의 크기가 딱 좋다. 마침 네 살 배기 딸을 위해 작년에 잔뜩 구매해 둔 20 미리리터 약통이 200개나 있어서 처음 도시락을 싸갈 때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아기 키우는 집에는 꼭 하나씩 있으니 별도의 소스통을 사지 않고 이를 활용하면 좋다. 크기도 작아 부담 없다. 물론 다이소에 가면 충분히 예쁘고 실속 있는 소스통을 살 수 있기는 하지만 소스통의 작은 입구는 설거지하기가 어려워 나는 포기했다. 때문에 나는 주로 아기 물약 통에 소스를 넣고 사용한 후 버린다.


3. 방수 재질 에코백 및 보온(냉) 가방

처음엔 도시락 가방을 따로 만들지 않고 출근용 백에 넣어 다녔다. 그런데 점점 어깨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물건들이 섞여 정리가 되지 않아 산만했다. 그래서 집에 방치(?)되었던, 알라딘 굿즈로 받은 방수 에코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디자인이 예쁘지 않아 망설였는데 생각보다 실용적이라 이젠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이 되었다. 굳이 방수 재질이라고 언급한 이유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혹은 도시락통이 그 안에서 엎어지거나 했을 때, 천가방보다는 보다 깨끗하게 뒤처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에코백 안에서 도시락통이 흔들려 틀이 잡히지 않는 것 같아 그 안에 보온(냉) 가방을 하나 더 넣어 다닌다. (이 역시 인터넷 서점 굿즈로 받은 것)


4. 나만의 요리 선생님 찾기

요리 생 초보가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참고한 것은 요리 유튜브였다. '도시락, 직장인 도시락, 점심 도시락' 등의 검색어를 치면 나오는 수많은 유튜브 채널 중, 내 스타일로 요리를 하는 채널을 골라 2개 정도 고정으로 구독하며 메뉴를 구상했다. 유튜브 채널은 나의 요리 선생님, 요리 강좌와 다름없었는데, 고를 때 원칙은 딱 세 개였다. 첫째, 간단하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둘째, 평소에 자주 쓰는 식재료로 요리할 것, 셋째, 계량이 정확하게 나와 있을 것. 지금 구독하는 두 개의 채널은 위의 조건에 딱 맞는 채널이라 즐겨보고 있다.

또, 아주 자주 쓰는 요리책도 필수다. 참 신기한 게 요리책을 몇 권이고 샀지만 따라 하기 힘들어 포기했는데, 지금 쓰고 있는 책은 물기로 축축해질 때까지 잘 쓰고 있다. 밑반찬이 필요할 때, 주로 이 책을 참고해서 요리한다. 이 외에도 '만개의 레시피'나, '친정엄마의 레시피'(계량을 하지 않는 '손맛'이 관건인 게 치명적인 단점인)를 따라 하기도 한다.


5. 텀블러

구내식당엔 정수기가 없었다. 물을 많이 먹는 나로서는 최악. 도시락을 싸면서부터는 텀블러 사용도 꽤 익숙해져 자주 챙겨간다. 개인적으로 스타벅스 텀블러보다는 지금 쓰고 있는 제품이 좋다. 카와(qawha) 텀블러인데 16년도에 남편이 일본 여행 중 구매한 제품이다. 용량은 330 미리리터 정도로 크지 않으나 가볍고 무엇보다 음료의 냄새가 잘 베어나지 않는다. 또, 매우 튼튼한데 흠집이 나지 않아 나처럼 덜렁거리는 사람에게는 딱이다.


6. 수저통

사실 1~2달 정도는 도시락에 있는 기본 젓가락 + 아기 숟가락을 사용했다. 뭔가를 더 사고 싶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아기 숟가락은 국을 떠먹기엔 너무 불편했고, 도시락에 세트로 있던 젓가락은 조립형이라 각도도 안 맞고 이상했다. 참다 참다 다이소에서 수저통만 1,000원을 주고 샀는데,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걸어 다닐 때마다 쇳소리가 나는데 나도 불편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민폐인 것 같아 결국 수저통과 수저가 함께 들어있는 세트(대략 9,000원) 구매했다. 도시락 물품 중에서도 특히, 수저통을 살 때에는 고정지지대가 있는지 꼭 확인하는 게 좋다. 왜 리뷰에 '소리'가 나지 않아 좋다'는 말이 있는지를, 이제야 알았다. (물론, 이 역시 민감하지 않다면 굳이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 다이소에서 1,000원이면 성인용 수저통을 구매할 수 있다.)


6. 가끔은 친정엄마의 반찬이나 동네 반찬가게

7월부터 지금까지 95% 이상 스스로 만든 반찬으로만 도시락을 쌌다. 그런데 가끔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고, 세상만사가 다 귀찮은 날이 있는데 최근에 그런 '슬럼프'가 한 번 왔다. 그때 마침 친정에 가서 받아온 각종 반찬들을 도시락에 담아 가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또, 내가 절대 만들리 없는 반찬이 먹고 싶을 때 (가령 오이지무침이라든가, 도라지 무침이라든가)는 동네 반찬 가게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정도 누군가가 만들어준 반찬을 먹고 기력을 회복한 후, 다시 불 앞에서 서서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한다. 일종의 '충전'인 셈.


7. 보온 죽통

19년도에 언니가 조카들 키우면서 쓴 보온 이유식 통(혹은 보온 죽통이라고도 불린다)을 준 적이 있다. 애석하게도 우리 딸내미는 외출을 싫어해서 거의 사용하지 않아 주방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데, 최근에 바람이 제법 선선해지고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자 내가 쓰기 시작했다. 나는 국과 찌개가 꼭 있어야 밥을 먹는 편이라 죽통에 국이나 찌개를 데워 넣어 간다.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등을 담아 가 보았는데 생각보다 성능이 만족스럽다. 새벽 5시 30분에 끓여 담은 찌개가 12시까지 따뜻하게 유지되어 만족스러웠다. 국물 요리가 꼭 필요한데 보온도시락은 부담이 된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일반 플라스틱 도시락 + 보온 죽통의 구성을 추천한다.


8.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뭐든 되고! 괜찮고!

가장 중요한 건 마음가짐인 것 같다. 도시락을 싸기로 했으니 "완벽해야 해, 매일같이 싸야 해." 같은 마음은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 또 요리 유튜버가 예쁘게 싼 도시락을 비교하면서 스트레스받는 것도 좋지 않다. 본인 실력에 맞게 편하게 마음을 먹고 시작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도시락을 싸는 마음이 즐거워야 그 마음이 담겨 밥도 맛있게 담긴다. 정말 지치고 힘들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혹은 오늘만큼은 뭔가 다른 걸 먹고 싶을 때 나는 아예 도시락을 싸지 않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고르고 가방에 담는다. 나를 갉아먹어 가면서까지 하지 않는 것. 그저 흐르는 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


9. 동료에게 미리 양해 구하기

우리나라 반찬들은 이상하게도 냄새가 많이 나는 편이다. 나는 별 신경 쓰지 않지만, 사람에 따라서 반찬 냄새가 불쾌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동료가 있다면 양해를 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공간은 종종 사람들이 드나든다. 그곳에서 김치찌개나, 카레를 먹을 때에는 아무리 환기를 시켜도 냄새가 남아있기 마련. 혹시 불편할 수 있을까 싶어 자주 그곳을 드나드는 동료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분이 흔쾌히 괜찮다 해주어 편하게 먹고 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누구 하나 나에게 무어라 하지 않지만, 아주 가끔은 도시락 생활자들을 위한 휴게 공간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10. 컵라면, 컵밥 한 두 개 정도는 필요

일종의 비상식량이다.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은 없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만일'의 경우가 있기 마련이니,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컵라면, 컵밥을 몇 개 구비해두는 게 좋다. 어젯밤 힘들어서 도시락을 안 쌌는데, 아침에 그만 지하철을 놓쳐 지각을 해 편의점도 못 들른 데다, 직장 근처가 나처럼 허허벌판인 사람이라면- 꼭, 비상식량을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기쁨 중 하나가 '먹는' 즐거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11. 사진일기 남기기

매 시간 점심시간이 되면 난 밥을 먹기 전에 반드시 사진을 찍는다. SNS나 카톡 프로필 사진에 절대 올리진 않지만 가끔가다 남편이나 엄마에게 보내곤 한다. 처음에 한 두장 찍던 게 모이니 이제 꽤 많은 양의 도시락 사진이 쌓였다. 폴더에 모아 놓은 사진을 보니,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가 보여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마치 일기장처럼 도시락 일기를 남겨 보는 것. 누군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남기는 사진일기. 꽤 강한 동력이 된다.




이렇게 긴 글이 될 줄 몰랐다. 석 달이란 시간은 짧기도 하거니와, 말 그대로 소소한 팁이라 얼마나 나올까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을 때 네 가지 정도만 나와도 충분하다 싶었는데 쓰다 보니 열 한 가지가 나와 버렸다. 앞서 말했듯 지극히 사소한 팁이라, 이 중 몇 가지가 와닿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 몸소 부딪히고 겪으며 생각한 것이기에 단 한 가지라도 '그렇지! 맞아!'라며 공감할 수 있는 팁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더불어 수십 년 간 급식, 구내식당, 그리고 외식이 보편화된 시절을 살아온 내가 오래도록 도시락 생활자로 살 수 있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누군가도 한 번쯤은 도시락 생활자가 되어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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