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북 응모 그 후.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하얀 모니터 화면에 민트색 커서가 깜빡, 깜빡일 때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다. 분명 브런치 앱을 켜기 전까지는 머릿속에 가득했던 생각들이 일순간에 삭제되어 버린 것만 같다. 지난 10월 중순 마지막 에세이를 올리고, 브런치 북을 만들고 난 후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가도록 에세이는 한 편도 적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인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 이 순간이 된 것이다.
그동안 아예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이상하게 상대적으로 쉽게 쓸 수 있다고 믿는, 내 맘대로 만들어 낸 '시'는 꾸준히 적고 있었다. 짧은 생각들, 육아의 순간을 기록한 것들 따위를 적으며 그래도 '글을 쓰고 있노라'라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그럼, 나는 조금씩 매일매일 쓰고 있는 걸. 글 쓰기는 꾸준함이 생명이라잖아, 나는 이렇게 꾸준히 하고 있는 걸. 하고.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한창 열정적으로 글을 썼다. 도시락을 싸며 느낀 소소한 감정을 담아 한 편 한 편, 내 마음을 녹인 글을 열심히 써댔다. 새벽에 일어나거나, 출근 시간을, 혹은 졸려 죽겠는 퇴근 시간을 쪼개서 글을 썼고, 그렇게 열몇 편의 글을 완성 후 브런치 북까지 출간했다. 동시에 진행하던 본업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생했는지 모른다. 사진의 '사'도 모르는 내가 어찌어찌 표지까지 만들어서(?) 책을 냈으니 내게는 꽤 큰 장기 프로젝트였던 셈.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후부터 찾아왔다.
무사히 브런치 북 공모전에 응모한 후, 무심결에 응모작품들을 둘러본 적이 있다. 한 편, 두 편.... 끝없이 내려가는 스크롤바 속 수많은 작품을 보니, 처음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책을 내는구나, 하며 대단하다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응모작을 보면 볼수록, 마음 한편이 쓸쓸해졌다. 글을 참 잘 쓴다, 제목을 참 잘 짓는다, 내용이 참 신선하다며 하나씩 넘겨 보다 보니 갑자기 이렇게 수많은 작품들 속에 과연 내 글이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전업 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장이 엄청 좋아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깨달음을 주는 것도 아니며, 주제가 혹은 소재가 참신해서 보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더더욱 아닌 내 글이, 과연 읽히기는 할까?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 후로 며칠 동안 글을 쓰는 게 어쩐지 자신이 없어졌다. 본업에만 충실하며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왜 굳이 수고롭게 글을 쓰려고 하고, 보여주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자, 긴 호흡의 글은 쓸 수가 없어졌다. 어쩜 저 사람은 이렇게 글을 잘 쓸까, 비유도 찰떡이고 제목도 멋들어지다! 하며 감탄을 하다 보니 내 글은 어쩐지 깊이도 없고, 감동도 없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자꾸 글 쓰기를 피하고 싶었다. 아직 주제가 분명치 않아,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소재가 별로야, 하며 글을 쓰지 않을 구실을 만들어 내며 한 달 가까이를 보내고 말았다.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어떻냐면, 사실 이 글도 이러다가 정말 두 달도 넘게 에세이 한 편 안 쓸 것 같아, 오늘 출근길에 부러 써보는 것이다. 이 글을 여기까지 끌어 오는 데도 몇 번이고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고 있다.. 머릿속에 중구난방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겨우겨우 달래고 잡아 입력해 보는 것이다. 이것이 말이 되지 않는가, 되는가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적어보고 지우고, 적어보고 지우고... 그렇게 30분 넘게 하고 있는 중.
안다. 이 상황을 이겨내려면 결국 내 마음을 내가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결국엔 마음에 달렸다는 것을. 그런데 지금 내 마음은 타이핑 하나, 하나가 두렵고 망설이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일단 기다리기로 한다. 나오지 않는 글을 억지로 뽑아내지 않고, 머릿속과 손가락에게 괜한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네가 하기로 한 것 하나 제대로 못하냐?'며 꾸짖지 않고 일단은 기다려보기로 한다. 마음은 강물과 같아서 커다란 돌에 막혀있을 때는 제대로 흐르지 못하다가도, 한 번 막힌 곳을 풀어주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흘러가 버리니까.
그러니까, 일단은, 지금은, 글쓰기 싫은 이 마음을 알아주기로 한다.
언젠가는 커서가 깜빡일 틈도 없이 술술 쓰고 싶은 마음이 찾아올 것을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