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싱크대 뒤편엔 텃밭이 있다.

by 안녕

우리 딸은 유난히 쌀을 좋아한다. 쌀통에 손을 넣으면 시원하다, 부드럽다, 따위의 말을 하며 즐거워한다. 아마 손가락 마디마디를 휘감는 쌀의 촉감이 신기해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하지만 모든 엄마가 그러하듯이 쌀을 좋아하는 것과, 쌀로 놀이를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쌀로 촉감놀이를 하는 순간, 처리해야 할 것들이 두 배, 아니 1,000배는 더 생긴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알고 싶지 않았던, 겪고 싶지 않았던 수많은 경험을 토대로 쌀 촉감놀이를 싫어해 왔다. 딸이 보면 자꾸 조를까 봐 쌀통도 아예 다용도실 깊숙한 곳에 넣고 보여주지 않을 정도로.


밥을 안치려고 쌀을 씻을 때마다 달려와 "나도 나도!"를 외친 녀석에게 매몰차게 "안돼!"라고 말하며 돌아서는 마음이 편친 않았지만, "돼!"라고 한 후의 뒷감당이 자신이 없어, 늘 그렇게 거절을 하고, 하고, 해왔다. 물론 딸은 또 제안을 하고, 하고, 해왔지만.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그날은 유난히 더운, 그러니까 폭염이라는 단어로는 절대로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의 더위가 지속되던, 그런 때였다. 마침 베란다에 내놓은 현미쌀이 상해 있었다. 습하고, 뜨거운 열기에 그만 맛이 가버린 것. 아직 뜯지 않은 20킬로짜리 백미까지 상할까 싶어, 쌀통을 새로 산 후, 집 안으로 쌀을 들여놓자 예상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쌀통을 보던 딸은 내 눈치를 슬슬 보다가 말을 걸었다.

"나도 쌀 만지고 싶다."

"쌀 가지고 놀면 안 돼요?"

저도 쌀을 갖고 놀다가 몇 번이고 혼난 기억이 있어 목소리가 끝으로 갈수록 작아지고 있는 듯했다.

나는 부러 큰소리로,

"안돼. 쌀은 장난감이 아니야. 그리고 말했지? 가지고 놀면 엉망 되잖아."라며 칼같이 잘라냈다.

그 정도면 이젠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다시는 안 물어볼 법도 한데, 속 좋은 우리 딸은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내게 슬쩍 물어보기 시작했다.


"엄마, 나도 쌀 만지며 놀고 싶어요.”


내 기분이 좋아 보였는지, 아니면 내가 실제로 기분이 좋았는지 모르겠다.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동했다. 순식간에 그동안 올곧게 고수해왔던, '안된다'는 마음이 바뀌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 쌀 가지고 노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까짓 거 엉망이 되면 같이 치우지 뭐.'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왜 그랬을까. 순간, '그래,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 대신 쌀알이 흐르면 그만 하라고 하지 뭐.'라는 생각이 스쳤고, 나는 그만 "그래? 그럼, 오늘만 놀아!"라고 허락을 해버렸다.


대신, 엄마가 옆에 같이 있다가 만약에 쌀알이 하나라도 바닥에 흐르면 놀이는 그만할 거라고 엄포를 놓고서 나와 딸의 아슬아슬한 놀이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알겠어요! 엄마, 네! 엄마 하며, 너무다 신난 녀석은 손뼉을 치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계량컵을 들더니 재잘재잘 말을 시작했다.


"자, 잠깐만! 이제 씨앗을 심어야 할 시간이야"

신이 나서 계량컵으로 쌀을 펐다가, 다시 쌀통에 붓는다. 그리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쌀을 모으면서, 살짝살짝 톡톡 두드려준다. 마치 아니 밭을 일구는 농부처럼.

그러더니 내게 "이제, 씨앗이 잘 자랄 수 있게 해야 해요."라며, 그 위에 다시 쌀을 부으며 기도하는 시늉을 한다. 아마 물 대신 쌀을 부었으리라.. 그리고는 잘 자랐는지 봐야 한다며, 쌀을 헤집더니 나를 보며 말한다.

"엄마! 씨앗이 자라났어요!" 그러더니, 제 아빠를 불러서 내 옆에 앉히곤 당당하게 말하는 폼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엄마! 아빠. 난 이제 농부예요! 농부!"

그 모습을 보는데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가, 울컥했다가, 미안했다가 한다. 그리곤 괜히 한 번 딸을 으스러지게 안아주고 말았다.


잠깐 동안 함께 놀이하면서 나는 바닥에 흘린 쌀알에만 집중했다. 어디 한 번 잘 노나 보자, 한 개만 흘려도 놀이는 멈출 거야, 너는 한 번도 제대로 정리한 적 없잖아, 하는 마음으로 곁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진짜 '쌀'로 하고 싶었던 놀이가 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저 지저분해지지 않는 것, 귀찮아지지 않는 것만 생각했다. 그런데 녀석은 쌀을 만지며 몸으로 느끼며, 제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쌀은 부드러워, 시원해, 그리고 재밌어,라고 생각하며 흙 같다고, 모래 같다고 생각하며 그 안에 상상의 씨앗을 심고, 무럭무럭 자라게 물을 주고, 마음껏 사랑해 준 것이다.


고작 쌀 한 톨 줍는 것이 귀찮아, 네 살의 마음을 몰라봤다.

까짓 거 같이 정리하면 되는데, 그게 번거로워, 녀석의 마음을 애써 외면했다.


그날 이후 싱크대 뒤편에 작은 텃밭이 하나 생겼다.




엄마가 된 지 4년째.

어찌 된 게 4년 동안 난 매일같이,

아이와 노는 것이 지루했다.

아이 앞에 놓인 티브이와 내 손에 있는 스마트폰의 세상이 훨씬 흥미로웠다. 아이가 커갈수록 나는 아이의 눈 대신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사이 딸은, 내가 감히 생각도 못할 저만의 이야기를 품으며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딸이 심은 쌀통 속 씨앗은 녀석의 사랑으로 쑥쑥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딸이 자라는데 나의 사랑을 충분히 부어 주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는 답밖에 나오지 않아 속상하다.


어쩔 수 없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면

앞으로라도 잘해보는 수밖에.


아이의 텃밭 옆에 조그만 텃밭을 하나 더 일구며 나도 씨앗을 키우겠다. 딸이라는 작고도 큰, 우주 같은 씨앗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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