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없는 하루가 이토록 행복할 수 있다니
아이를 낳고 한 순간도 편하게 혼자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적당히 했어도 됐고, 친정 엄마 찬스를, 시어머니 찬스를 썼어도 됐던 것인데 그 시절의 나는 너무도 고지식했고, 엄격했다. 신생아가 태어난 후 100일 동안은 아무도 집에 들이지 않았으며, 주말에도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외출조차 하지 않았다. 집순이인 성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추운 겨울에 이제 겨우 3~4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나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아파서 병원에 데려가는 것도, 그래서 며칠을 꼬박 밤을 새워 지켜봐야 하는 것도 모두, 싫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아이와만 함께하게 됐다. 눈을 뜨고 일어나서부터 잠이 들 때까지 항상 옆에 아이를 끼고 살았다. 화장실 가고 씻는 시간 빼고는, 아니 어떤 때는 씻는 도중에도 문을 열어 엄마의 안위를 확인해줘야 했으니, 우리 모녀는 단 한순간도 온전히 떨어져 본 적이 없다고 해야 맞다.
한 번은 만성 우울감, 위경련, 두통이 심해져 도저히 혼자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적이 있었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연고 없는 타지로 이사와 맘 카페에서 친구를 사귀려 해도 쉽지 않고, 그놈의 어린이집은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할 현실이 답답해 친정엄마에게 울면서 전화를 했던 날. 당장에 짐을 꾸려 내려가자며 내 손목을 잡아 끈 친정 엄마의 옆엔 손녀가 방싯방싯 웃고 있었다. 결국 도망치듯이 친정에 갔을 때에도 내 곁엔 6개월을 갓 넘긴 딸이 함께였다.
그래서일까. 이상하게 딸은 어딜 가든지 간에 나만 찾았다. 친정에서도 시댁에서도 딸은 나에게만 매달려 있었다. 외할아버지와 친할아버지는 무섭다는 이유로 보기만 하면 울고,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익숙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때에는 남편마저도 거부했으니, 할 말 다 한 셈이다.
네가 예민하게 키워서 그래, 그러니까 사람 손을 많이 타야 네가 덜 힘들다고 했지, 그거 봐라, 이게 뭐니, 라며 타박하는 친정 엄마의 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사실이긴 했다. 예민한 엄마가 키운 예민한 딸은 잠도 쉽게 들지 않았으며 먹는 것도, 노는 것도 모두 까다로운 아이로 자라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자유가 생겼다. 우연한 계기로 '휴가'가 생긴 것이다. 마침 아이는 어린이집을 거부 없이 잘 다니고 있었던 터라, '엄마'의 '휴일'에도 어린이집을 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4년 만에 처음 얻은 자유. 아이와 함께 하는 자유가 아니라 아이가 없는 자유!
아이가 없는 동안의 시간을 상상하기만 해도 웃음이 났다.
마침 몇 년 동안 육아의 최전선에서 낮이고 밤이고 고생한 남편도 기대하는 눈치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만에 얻은 시간인가.
더 이상 뽀로로와 핑크퐁, 콩순이, 그리고 엘사의 '렛 잇고(아니 다 잊어)를 듣지 않아도 되고, 계란찜과 김만 달라는 아이와 실랑이하지 않아도 되는, 기를 쓰고 낮잠을 안 자겠다는 아이와, 기를 쓰고 재우겠다는 내가 없어도 되는, 그런 '해방의 날'!
그런 날이 다가온다니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우리 부부의 마음은 설레고, 들뜨고, 행복했다.
혹시나 엄마가 회사를 나가지 않으면, 저도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은 괜한 걱정이었다. 최대한 아이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뽀뽀로 깨우니 기분과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엄마, 밥 먹고는 어린이집 가는 거죠?"라고 묻기까지 하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럼~ 어린이집 가야지. 엄마는 오늘 회사를 늦게 가서~"라며 굳이 추가로 설명을 하며 조마조마하게 등원 준비를 했다. 좋아하는 김밥을 뚝딱 싸주고, 예쁜 옷을 입히고, 귀여운 호랑이 운동화를 신기니 기분이 더 좋아진 아이는 어린이집 문 앞에서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씩씩하게 인사를 하곤 교실로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집에 들어오니 안에는 적막과 고요, 그리고 차분히 가라앉은 공기가 가득했다.
마루 위 매트에는 불과 몇 분 전에 흘리고 간 아이의 흔적들이 군데군데 남아있었지만, 뽀로로 인형과 말라 붙은 밥풀이, 그리고 읽다가 만 책들이 널브러져 있었지만 그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나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으며 짜증이 나지도 않았다. 아이가 빠진 이 공간에 오롯이 나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그 자체로 이미 행복했다. 아니, 행복하다는 말은 너무 상투적이다.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첫 번째 자유. 그냥 그 자체로 온전히 나일 수 있는 시간 속에 내가 있었다.
사실 처음에 이 휴가를 계획할 땐 뭔가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오랜만에 데이트를 할까, 서점에 가서 요새 나온 책을 보는 것도 좋지, 아니면 원두향 가득한 카페에서 라테 한 잔을 뽑고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는 것도 좋겠어, 단골 빵집은 10시면 크루아상이 나오니 그것도 하나 사고 말이야.라고.
하지만 막상 그날이 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등원하고 난 후, 텅 빈 집을 쓸데없는 부산함을 채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집 밖으론 아예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등원 후 잠시 들른 마트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사 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정말 집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꼼짝도 하기 싫었다. 그냥 침대 위에 누워 좋아하는 웹툰 좀 보다가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그러다가 다시 자고만 싶었다. 마치 공기 중 부유하는 한 톨의 먼지처럼 나도 그 공간에서 그렇게 유영하고만 싶었다.
내 마음을 꿰뚫어 본 남편과 함께 모든 계획을 조정했다. 나가는 일은 모두 취소하고 집에서 편하게 쉬는 것으로. 평소 같이 하고 싶던 게임을 한 판 하고, 미루고 미루다 못 본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보고, 먹고 싶던 피자를 먹고 쉬는 것으로.
게임은 기대보다 재밌었고, 영화는 기대보다 별로였다. 라볶이와 피자는 많이 달아 먹는 내내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래도 좋았다. 하지 마, 안돼, 앉아서 먹어야지, 기다려, 잠시만, 엄마 밥 먹잖아, 라는 말 대신에 영화 속 주인공의 삶에 대해, 게임기의 조작법에 대해, 오늘 고른 레토르트 음식의 맛에 대한 이야기로 넘쳐나는 일상의 말을 온전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또 기뻤다. 곁에 아이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니. 밥을 먹을 때 내 등 뒤에 매달려 장난을 치는 사람이 없으면 이토록 편하게 천천히 먹을 수 있다니. 새삼스럽게 사소한 것들에 행복을 느끼게 됐다.
자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졸릴 때가 아니라 '내'가 졸릴 때 잘 수 있는 상황이 미치도록 좋았다. 그동안 내 수면욕의 중심엔 '아이'가 있었다. 할 일이 많은데도 잠을 청해야 하는 상황은 은근히 곤욕스러웠다. 반대로 너무 졸린데 아이를 돌봐야 하기에 잠을 참아야 하는 상황도 괴로웠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내가 졸려서, 내가 자고 싶어서 잘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내 수면욕의 중심에 다시 '내'가 찾아왔다. 밀려드는 잠을 굳이 이기지 않고, 아니, 반기며 침대에 누웠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벌써 4시. 하원 30분 전이자 휴가가 끝나기 30분 전이었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을 돌아봤다. 솔직히 말해서 10개의 미션 중에 고작 2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하루였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마음 한편에 부담감이라든가, 짐이라든가, 불안함 같은 것은 전혀 남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평온했다. 그리고 그다음에 뭘 하고 싶은지가 하나둘씩 떠오르곤 했다.
그랬다. 오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한 것이라고.
타고난 기질과 성격 반, 주어진 상황 반이 합쳐져 늘 일에 쫓기는 일상을 살아왔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일처리를 했고, 새벽 5시부터 잠드는 깊은 밤 11시까지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해왔다. 그게 일이든, 글쓰기든, 요리든, 하다 못해 아이와의 놀이든. 그러다 보니 머릿속은 늘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무언가'는 아이 어린이집 생활이었다가, 친정 엄마의 건강이었다가, 밀린 회사일이었다가, 처리하지 못한 민원이었다가, 못다 한 빨랫감이었다가 했다. 감당하기 힘든 다양한 생각들이 작은 공간을 메우고 메웠다. 잠시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는 듯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하나가 밀려 들어왔다. 분명 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해치우는' 것에 더 가까웠다. 때문에 몸은 꾸준히 아파왔고, 의욕은 바닥이 났으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다시 잠들 시간을 기다리며 하루를 버텼다.
그런데 그날의 나는 달랐다.
10시부터 4시까지, 한나절 남짓의 시간 동안 어떤 것도 애써서 하지 않아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직장인으로서의 무언가를 잠시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아이와 적당한 거리두기를 해야 건강한 마음으로 서로를 맞이할 수 있음을, 해야 할 일로 가득 찬 체크리스트를 싹 다 지우고, 잠시 나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 쉴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야 나를 둘러싼 현실 속에서 내가 나로서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야 해치우는 삶이 아니라 '살고 싶은' 삶을 산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비워야 채워진다, 채운 자리는 비울 줄 알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내 삶도 사랑하고 지킬 줄 아는, 심리적 거리두기를 하는 엄마로, 새롭게 살아보고 싶어졌다.
분명, 짧은 휴가였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