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난 많은 일을 정리해봅니다.
어쩌다 생긴 오븐을 예열 중이다. 아주 오랜만에 시금치도 있고, 당근도, 버섯도, 양파도 있는 김에 시금치 프리타타를 해볼 생각이기 때문이다. 20년도 초반에 유난히 잘 먹던 딸내미를 위해 매일 같이 하던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먹질 않아 근 2년 동안 해 본 적이 없는 음식. 건강한 모든 것을 다 때려 넣은지라 먹으면서도 양심의 가책 한 번 느끼지 않는, 그런 음식. 시금치 프리타타.
사실 여느 일요일 아침처럼 식빵에 잼을 발라 커피랑 먹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오늘은 뭔가 새로운 것을 먹고 싶었다. 평소에 힘들다는 이유로 주말 아침에 대충 먹인 것이 미안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아무 이유 없이 오븐을 써보고 싶기도 했다. 3년 전엔 오븐이 없어 프라이팬으로 한 요리였지만 지금은 오븐이 있으니 제대로 된 프리타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
게다가 시금치 프리타타는 생각보다 만들기가 무척 쉬워서 나 같은 어린이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요리가 아닌가. 적당한 크기로 썬 당근, 양파, 버섯을 볶다가 마지막에 시금치 넣고 볶아 준비한 재료에 알맞게 간을 한 계란물을 오븐용 그릇에 부어 두면 끝. 180도에 10분 정도 예열한 오븐에 그릇을 넣고 200도로 20분 정도 구워내면 완성인, 그런 쉬운 요리!
이런저런 재료를 듬뿍 넣은 그릇을 오븐에 넣는다. 기다리는 20분 동안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자 싶어 오랜만에 글을 써보려고 한다. 20분이란 시간을 오롯이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아이가 좋아하는 지우, 서준이, 그리고 제빠의 놀이 영상을 틀어주고 주방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도시락을 그만두겠다는 글을 올리고도 2주 정도가 지난 듯싶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짧은 글로 담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중에 가장 큰 변화는, 우리 집도 결국 피하지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방문이다. 여느 다른 사람들의 글처럼 '그것'은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갑작스럽게 찾아와 끈질기게 우리를 흔들어 놓았다.
단단히 준비한 줄 알았던 나는 생각보다 허점이 가득한 엄마였고, 그런 엄마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다행스럽게 아이는 생각보다 짧게 아프고 증상이 사라졌다. 나는 꾸준히, 오래 아팠다. 격리 기간이 끝난 지금도 냄새를 맡지 못하고 맛을 느끼지 못한다. 목 안과 코 뒤에는 계속 콧물이 꿀렁꿀렁 넘어 다닌다. 가끔 툭 튀어나오는 기침은 쉬이 멈추지 않는다.
아프니까 자꾸만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일에 미쳐 살던 워커홀릭 맘인 내가 사실 제일 중요한 건 '가족의 건강'이 아니었나 싶어 지자 모든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내 잘못으로 걸린 것이 아니라 생각하다 보니 억울해지기도 하고, 괜한 반발심도 들었다. 그래도 너무 아파서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전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는 건 다행인 점이다.
잠을 더 잘 수 없을 정도로 잤다. 몇 년 간 자지 못했던 잠을 몰아서 자는 듯이, 곰이 겨울잠에 빠지는 듯이, 그렇게 계속 잠만 잤다. 자다 일어나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었지만 몸은 그런 마음을 거부하고 계속 이불속으로만 파고들었다. 옆에 딸이 나를 깨워야지만 일어나는 그런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조금씩 일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100% 회복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더 이상 멈출 수 없기에 다시, 삶 속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띵- 오븐에서 알람이 울렸다. 20분이 지났다. 온전한 20분은 애초에 얻지 못했다. 패드로 그림을 그려본 딸이 곁으로 와 내 작업을 수시로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했다. 뿌듯하다. 때때로 뿌듯함이란 아주 사소한 일을 완성했을 때 더 크게 와닿는 것 같다.
일주일 간 복잡했던 머릿속을 20분 만에 다 정리하진 못했지만 이 정도 만이라도 정리하니 어느 정도는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마침 완성된 프리타타도 먹기 좋게 익고, 모양도 예쁘다, 맛도 생각보다 괜찮다. 20분 동안 완성된 프리타타처럼 내 일상도 조금씩 모양을 잡아갔으면 좋겠다. 20분이 너무 짧다고 하면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라도 그렇게 예전처럼 다시 평안해졌으면 한다.
프리타타를 먹어본다.
맛이 좋다.
소소한 성공이다. 느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