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g의 사명감으로부터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사람은 아니었다. 어쩌면 '학교'라는 공간의 '교사'란 직업군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가졌던 사람이라고 봐야 옳다. 어린 시절 만난 선생님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에게 은행 심부름을 시키거나, 교사용 지도서에 있는 학습 내용을 칠판 한가득 쓰게 시키거나, 혹은 본인들이 확인해야 할 아이들의 성적 따위를 확인하게끔 했었으니까. 그러다가도 시험 시간에 이상한 답을 적어 제출하면 반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바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미움보다는 과도한 예쁨을 받는 바람에 피곤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나는,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교무실 특유의 분위기를 싫어했다. 정신없고, 늘 산만한 곳. 누구 한 명만 들어가면 너나 할 것 없이 불러대며 심부름을 시키거나 말을 얹어 이야기를 만드는 곳인 교무실이 난, 참 불편했다. 그들의 일방적인 사랑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적응해야만 하는 내게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다행스럽게도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차곡차곡 떨어지는(?) 성적 덕에 교무실에 불려 갈 일이 줄어 더 이상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지만.
순전히 언니의 뜻으로 취득하게 된 교원자격증을 받으면서도 뿌듯함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교사로서 사명감 따위는 절대 없으며 그저 성실하게 공부를 열심히 한 대가로 얻은 '자격증'이 내게는 너무나도 숨기고 싶은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공부할 때 얼마나 수차례 다짐했던가. 난 작가가 될 사람이야, 난, 방송국에서 일할 사람이야, 절대로, 절대로 학교에선 일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없을 거야,라고 얼마나 깊숙이, 그리고 오래 새겼던가. 그런 내가 교사가 되어 아이들 앞에서 무언가를 아는 척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엔 모름지기 '공무원'보다는 '꿈'을 찾아 지도밖으로 행군하는 것이 청춘의 바람직한 모습으로 비치던 때 아니던가. 아무리 수도 없이 돌려봐도 그저 회색빛인 학교는 결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선생님이 되었다.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아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임용고시 공부에 그만 합격하고 만 것이었다. 학원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쳐 본 적 없었다. 소위 말하는 10대를 동네에서 만나면? 무서워서 도망치거나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기 일쑤고, '국어'는 내가 글 쓰고 읽는 게 즐겁지 가르치는 덴 전혀 흥미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정장을 입고 교육청의 신규교사 임명식에 참석하여 임명장을 받고 있었으며, 발 뒤꿈치가 까진 줄도 모르고 열심히 걸어간 길의 끝엔 앞으로 5년 간 근무하게 될 변두리의 작은 중학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선생님이 가르칠 반, 그리고 사용할 교실입니다."
20년을 훌쩍 보내고 다시 돌아온 학교는 변한 것이 없었다. 나의 첫 발령지이자 누군가의 추억이 깃들 중학교는 어쩐지 허름해 보였으며 한 없이 작아 보였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간 교실 한편엔 어지러이 놓여있는 의자와 책상. 그리고 미처 챙겨가지 못한 이전 학년의 어떤 반 누군가의 연필 따위가 널브러져 있었다. 2월 말,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교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흩어지는 먼지 냄새를 맡으며 한참을 가만히 있었던 것 같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그것은 지난날 치기 어린 20대 초반의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이었다가, 20대 후반의 내가 합격 확인을 한 후 흘린 뜨거운 눈물이었다가 다시 흐릿해지곤 했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 데 섞여 먼지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욱한 안개가 걷히듯 조금씩 분명 해지는 듯했다.
나는 사실 대학 졸업 후 오랜 백수 생활을 거친 덕에 '직업'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는 것과 임용고시를 보기 위해 노량진에 있는 학원을 통학하면서 나는 어느새 '교사'가 꼭 되고 싶은 '임고생'의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는 것과 당시 정말 어렵게 생활하던 나를 위해 둘째 이모가 매달 부쳐준 15만 원의 가치와 생각하지도 못한 사이에 내 안에 '1g' 정도의 사명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다. 나는 선생님이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던.
교생 실습 중 특유의 문화에 숨 막히게 답답함을 느꼈던.
그곳을 이제 막 시작하는 선생님으로서 오게 된 것이다.
앞에 있는 책상을 한 번 스윽- 하고 훑으니 회색빛의 먼지가 손가락 마디마디에 묻어났다. 그 빛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내가 만날 아이들에겐 회색빛보다 조금은 더 다채로운 색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살짝 피어올랐다. 엄마가 준비해준 파란 손걸레를 빨러 화장실로 향했다. 불편한 정장 구두는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바지를 입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처음 쓰는 손걸레에 물을 흠뻑 적시곤 꼭 짜 들고 교실로 향했다. 그 사이 아주 작은 1g의 사명감도 조금씩, 조금씩 자라는 것 같았다.
* 어쩌면 현실과 상상 사이의 어떤 지점일 것 같기도 합니다. 재미로 가볍게 봐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