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도 발톱은 있다.

추락된 권위를 일으켜 세우는 법 (1)

by 안녕

이미 학교,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권력관계를 빠르게 파악하고 각자 살아갈 방법을 귀신같이 빠르게 찾아내는데 도가 튼 10대들은 어리숙하고, 미숙하며, 단호하지 못한 신규 선생님을 금세 간파해 자신들의 손바닥 위에 놓으려고 했다. 마음이 약했고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나는 아이들의 수를 훤히 알면서도 (사실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강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특히 아이들은 젊은 여 선생님이 '당황'하는 모습을 자지러지게 좋아했다. 야한 농담을 하거나, 이상한 드립을 치거나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수업의 빈틈이 조금이라도 보일라치면 온 갖가지 이야기를 끌고 들어와 사정없이 떠들어대다 '나'를 끌어들이곤 했다. 쌤은요? 쌤은 그런 적 없어요? 하며 천진난만하게 물으면 나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적잖이 당황해서 수업을 겨우겨우 이끌어가곤 했다. 아이들의 흐름에 말리는 통에 목표했던 학습지는 다 하지 못하고 교실을 나온 적도 많다. 그런데 사실 그런 짓궂은 질문, 수위가 높은 대화보다도 더 싫어했던 것이 따로 있었는데 그건 바로


교사로서의 내 실력을 테스트하는 듯한 질문들이었다. 선생님이라면 단박에 느낄 수 있는 뉘앙스로 물어보는 질문. 그러니까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학원에서 다 배워온 후에 하는 질문을 때면 밥맛이 뚝 떨어질 정도로 속상해졌다. 만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바로 해주지 못하고 시간을 끌었거나 내가 한 답이 답지의 그것과 다를 때면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떠나지 않을 정도로 우울해했다. 나는 왜 그 문제를 풀지 못했나, 국어교사로서의 자격이 있나, 아이들은 얼마나 나를 비웃을까, 하는 생각이 돌고 돌아 심장에 콕, 콕, 박혔다.


방과 후 텅 빈 교실에 가만히 앉아 문제를 다시 보고, 또 보고, 교과서 지문을 읽고, 또 읽으며 부끄러움을 온몸에 새기고 나서야 퇴근을 했다. 행정업무에 치여 그래, 담임 업무에 치여 그래, 그래서 더 공부할 수가 없는 거야, 여기 애들이 공부를 잘 못하잖아, 라며 동료들이 위로의 말을 건네도 그뿐. 상처받은 자존심은 회복될 줄 몰랐다. 교사로서의 권위가 떨어진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자존심 상할 일도 아니었다. 그저, 선생님도 잘 모르겠다, 이거 선생님도 한 번 고민해보고 같이 이야기해볼까?라고 하면 될 문제다. 간혹 가다 쌤은 왜 그런 것도 몰라요?라고 반박하면 도리어 선생님도 모든 걸 다 알진 못해, 애초에 인간이 무언가를 100% 알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잖아?라고 응수해주면 될 일인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실력 없음을 만천하에 내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끄러움은 어느새 마음속 응어리가 되어 꼭꼭 눌러 담아 놓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한 아이들을 향하고 말았다.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애들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얼마나 한심한 교사로 생각할까, 무식해 보이겠지, 또 모르는 질문을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등줄기로 훅훅 땀이 떨어졌으며 눈앞이 캄캄해 미리 필기해 놓은 교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판서는 개발새발인 데다 아이들을 쳐다보지 못하고 수업을 하기 일쑤였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꾸짖을까 두려웠다. 45분이란 시간이 그토록 긴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쌤은실력도 없으면서 왜 우리 앞에 서 있어요? 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쌤도 사실 하나도 모르죠? 그냥 자습서 읽어주는 거죠? 하는 목소리로 괴로워하는 나를 구해준 것은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뿐이었다.


전환이 필요했다. 불현듯 어떻게 합격한 시험인데, 내가 공부한 전공책이 얼마인데, 그래도 내가 1,2,3차 총점수가 꽤 상위권인데, 하는 치졸한 생각이 들자 숨겨두었던 발톱을 꺼내보여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사자의 발톱엔 미치지 못하지만 적어도 아기 고양이의 발톱 정도는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마침, 나는 '선생님'이었다. 교사가 가질 수 있는 막강한 권리이자 의무. '평가권'이 내게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나를 '테스트'한 것처럼 나 역시 그들을 '테스트'하면 됐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떠들고, 죽은 듯이 잠을 자던 아이들도 '수행평가'에 들어간다, 점수에 반영이 된다고 하면 집중하는 시늉을 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평가'는 꽤 큰 존재였다. 예능처럼 그저 즐겁게만 생활하던 학교가 갑자기 초리얼 다큐멘터리로 변하게 될 뿐 아니라 훗날 학년이 올라가면 점수에 따라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결정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 경력의 원로 교사가 지닌 카리스마는 애초에 없고, 아이들을 휘어잡는 언변도 없으며, 그렇다고 이 험난한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기준에 맞는 '미'를 지니지도 못한, 아니면 적어도 도미노 피자 쯤이야 턱턱 사줄 정도의 재력도 없었던 그저 평범한 국어교사인 나는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그릇된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정글 같은 학교에서 나보다 먼저 구르고 굴러 도가 튼 아이들이라는 걸 망각하고 이제 학교에서 일한 지 3개월도 안 되는 신규 교사로서의 어설픔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어마어마한 '복수'를 꿈꾸게 된다.


그 방법만이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자, 추락한 교권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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