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된 권위를 일으켜 세우는 법 (2)
얕잡아 보이지 않기 위해 좀 더 꼼꼼하고 깐깐해지기로 했다. 백 퍼센트 성공하진 못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에겐 전략이 먹혔다. 예전부터 누가 언제 무엇을 입고 왔는지까지 기억하곤 했던 특유의 기억력은 예의 없게 대하거나 나를 무시하는 아이들을 세세한 부분까지 공격(?)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능력이었다. 특히 평가를 할 때에는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 꼼꼼하게 찾아보곤 했다. 나누어준 학습지의 빈칸을 제대로 채워 두었는지, 필요 없는 낙서 따위가 있지 않은지, 글씨체는 바른 지, 생각하면서 쓴 것인지, 아니면 검사를 한다고 하여 짝꿍의 학습지를 빌려 대충 적은 것은 아닌지 등을 육감을 이용하여 점검했다. 대체로 덤벙거리는 중학생들은 언제나 나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곤 했다.
수행평가도 마찬가지였다. "쌤! 왜 제 점수가 이래요?"라고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빨간펜으로 빼곡하게 체크된 시험지를 보여주면 아이들은 늘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곤 했다. 그러면 나는 친절하고도 독하게 말했다.
"일단, 글의 형식이 갖춰지지 않았지? 게다가 뒷받침 근거가 탄탄해야 하는데 너는 근거 없이 네 생각만 썼어. 마지막으로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엉망이고. 또..." 하면, 아이들은 중간 정도 듣다가 멋쩍은 웃음을 날리며 뒷걸음질을 치며 돌아갔다. 간혹 가다가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점까지 찾아 그 앞에서 감점을 할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몸을 배배 꼬며 쌤~을 연발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넘어간 적은 없었다.
TV에서 떠들어대는 것보다 순하고 착했던 당시의 중학생들은 나의 방식에 익숙해져 갔다. 저 쌤은 꼼꼼해, 저 쌤은 그냥 넘어가지 않아라는 인식이 서서히 굳어질 무렵,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말았다. 마침 시험이 끝났을 때였고 진도도 다 나가서 할 일이 마땅치 않을 때였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한껏 늘어질 준비가 돼 있던 때,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에이~ 좀 봐줘요~"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때. 그날 나는 <세 얼간이>라는 영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생각할 거리가 많을 거야"라며 짐짓 엄격한 표정으로 한 마디 덧붙이면서. 아이들은 순식간에 집중했다. 그들이 울면 같이 울고, 그들이 웃으며 춤추면 같이 웃고. 인도의 교육열이 우리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그들은 3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 타임 동안 라주였다가, 란차였다가, 파르한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그렇게까지 몰입해서 보는 아이들을 본 적 없을 정도로 녀석들은 꽤나 진지하게 영화를 감상했다. 보여준 내가 다 기쁠 정도로.
문제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까지 모두 끝난 후 나의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입시 스트레스를 받을 중3 아이들이 영화의 여운을 한껏 느끼고 있을 그 순간을 내가 무참히 깨버린 것이다. 누렇게 인쇄된 감상문 종이를 나누어 주며 지금 그 느낌을 감상문으로 기록해 보는 게 좋겠다고 덧붙이자 아이들은 야유했다. 우, 우, 우. 하는 소리가 귓가에 꽂혔지만 웃으며 넘어가려고 했다. 원래 아이들은 글쓰기를 싫어하므로. 그러니까 그런 반응은 이미 인이 박힌 것이므로. 그런데 우, 우, 우, 하는 야유 소리에 그만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소리가 콕, 박히고 말았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들리는 '아, 씨.' 아마도 그 뒤엣말은 속으로 삼켰을, 아주 분명하고도 또렷한 소리. 순간 당황했다. 내가 놀라 두리번거리자 녀석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유주. 평소 얼마나 얌전한 아이였는지 모른다. 항상 수업 시간에 먼저 와서 자리에 앉았으며(당시 근무했던 학교는 교과교실제를 운영해서 내가 교실에 있고, 아이들은 내 수업교실로 직접 찾아왔다) 수업 시간에도 늘 성실하게 필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의식의 흐름대로 가르쳤던 수많은 수업 장면에서도 유주는 언제나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순한 표정, 성실한 태도, 그리고 적당히 높은 성적은 그 아이의 이미지를 잘 만들어 주었다. 어딜 가도 잘할 아이. 그래서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아이. 그래서일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아이의 표정과 이름이 기억난다. 담임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만나는 교과 선생님일 뿐이었지만 신규였던 나에겐 꽤 큰 힘이 되어 주었던 유주의 입에서 처음으로 "싫다"는 말 역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있을 정도다.
평소에 말썽을 부리는 아이가 하는 '싫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100배는 당황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이미 다른 아이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주어진 몫의 감상문을 한 글자씩 채워가고 있었다. 다시 말을 주워 담기엔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상태. 게다가 녀석의 말을 존중해주어 감상문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왠지 지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그렇게 해버리면 이 시간이 끝나고 나가면서 다른 애들이 이렇게 말할 것만 같았다. 야야, 너 그거 알아? 국어쌤이 다른 애들한텐 아무 말도 못 하면서 유주가 뭐라 하니까 그냥 넘어간 거 있지? 정말 어이없지 않냐?라고.
뒤틀린 생각, 그리고 불안한 마음은 좋지 않은 결과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성실히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잊은 지 오래. 내 앞엔 오로지 유주만이 있었다. 글쓰기를 거부한 아이. 그래서 내가 얼른 '설득'해야 하는 아이.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만 가득한 교실에서 난, 유주를 조용히 불렀다. 설득하면 넘어올 거야, 그래 유주는 그런 아이니까, 충분히 이해할 거야, 라며 약간은 자만한 마음을 담아 단호하지만 분명한 말투로, 내 지시가 옳다는 강한 뉘앙스를 살려 감상문을 써야만 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네가 느낀 감동을 기록하지 않으면 휘발될 것이라고. 그런데 고개를 끄덕이며 감상문을 쓸 것만 같았던 유주는 고개를 들어 나에게 왜 굳이 감상문을 써야 하느냐고 물었다. 약간은 화가 난 나는 쓰지 않아야 할 이유는 또 뭐냐, 영화를 봤지만 지금은 엄연히 국어 시간이라며 따지듯 말했고, 한참을 말없이 듣던 유주는 이런 주제의 영화를 보고 난 후까지 감상문을 써야 하는 게 짜증이 난다고, 짜증이 나 죽겠다고 답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 후 유주가 감상문을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유주의 마지막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유주는 '이런 주제'의 영화라고 했다. 이런 주제의 영화를 보고도 꼭 감상문 따위를 써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런 주제의 영화는 무엇이며, 감상문 따위는 무엇인가, 하고 당시엔 녀석에게 꽤나 화가 났던 것 같다. 어디 감히, 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선생님이 다 생각이 있어서 시킨 일을 왜 따지고 드니, 하는 마음도 올라왔다. 다행히 유주는 그 날 이후 뚜렷한 반항 없이 평소대로 행동했다. 열심히 수업을 들었으며 잘 따라와 주었다. 나 역시 시간에 쫓기며 하루하루 버티느라 그 날을 금세 잊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어떤 작품을 감상한 후에는 꼭 작성해야 하는 게 감상문이라도 생각했다. 투박하더라도 아이들이 직접 쓴 감상문을 읽으면 그들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이어서 꽤나 좋아했던 과제였던 것이다. 분명 꼭 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이 그 녀석의 한 마디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든 "왜 해야 하지?"라는 질문은 해본 적 없었다. 그저 해야 하는 거니까, 하라고 했으니까, 학교에선 응당 그래야 하니까, 국어 수업에서 글쓰기가 빠지면 안 되니까,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모든 과제를 부여했던 것이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생각에 금이 가자 혼란스러워졌다. 감상문을 꼭 써야 하는가? 어떤 작품을 읽고 정말 감동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행동으로 바로 옮기지 않을까? 왜 기록을 해야 하지? 그 기록을 평가하는 나는 평가자로서 신뢰가 가는 사람인가? 결국 아이들의 생각을 훔쳐보고 싶어서 괴로운 글쓰기를 자꾸 '평가'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급기야 나름의 '발톱'이었던 '깐깐함'까지도 의심하게 만들었다. 꼼꼼하고 깐깐하게 가르치고 평가한다는 이유로 알맹이는 보지 않고 그저 껍데기에만 집착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원미동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판서할 때, 반에서 속을 썩이는 아이와 상담할 때, 퇴근 전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 불을 끌 때 문득문득 떠올랐다.
어쩌면 난, 아이들의 글에서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요소만을 찾아 바라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평가받기 두려운 마음을 이겨내고 꾹꾹 눌러쓴 논설문에서는 그저 형식만을,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을 읽고 난 후 써낸 감상문에서는 글씨체가 얼마나 정돈되어 있는지만을 집중했던 것만 같았다. 얼마나 많이 맞춤법을 틀렸는지, 띄어쓰기는 얼마나 못했는지만 찾다가 정작 삐뚤빼뚤한 글씨 속에 담긴 아이 한 명 한 명의 노력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스쳐간 아이들의 글 속엔 사실 단 하나의 '이야기'도 없었음을 깨닫자,
미치도록 슬퍼지기 시작했다.
표지 사진 출처 : 네이버 <세 얼간이> 포스터 / 2011.8.18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