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의 유혹

다양한 사례를 접하면 범할 수 있는 오류

by 안녕

이렇게 매일매일 살다가는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다 싶은 순간에, 방학이 찾아왔다. 하루 종일 좀비처럼 누워있는 아이들의 태도에 상처받고, 부당한 업무에 소심하게 분개하고, 맛없는 급식 메뉴에 좌절하던 하루들이 쌓인 지 4개월 즈음. 모두가 부러워 마지않는 달콤한 방학이 찾아온 것이다. 방학식을 하는 순간까지, 아이들에게 "곧장 집으로 가서 푹 쉬라"고 말하며 안전귀가를 재촉한 후 아이들이 모두 교실을 빠져나가는 그 순간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던 방학이. 성큼 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텅 빈 교실은 어쩐지 허전했다. 공간을 가득 채우던 아이들 소리가 순식간에 빠져버린 그곳은 어쩐지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듯 보였다. 그새 바닥에 떨어져 누군가에게 짓밟힌 가정 통신문, 조각나 구석으로 쫓겨난 지우개, 그리고 사물함 뒤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실내화 따위를 정리하다 보니 슬슬 실감이 났다. 방학이다. 모두가 기다리는. 너무나 짧고도, 너무나 긴, 방학!


조금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마치 학창 시절 때처럼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낭비하고 나서는 개학을 일주일 앞두고서야 억지로 기어 나와 밀린 과제를 하는 삶은 멈추고 싶어 졌다.(실제로 첫 발령 후 첫여름 방학은 목표도 없이 시간만 보내고 복귀하곤 했던 것 같다.) 지금처럼 여유 있을 때가 아니라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속 깊숙한 곳에 묵직한 덩어리로 뭉쳐버린 나 스스로의 과제를 해결해야만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방학 첫날. 아니 첫 주. 으레 늦잠도 자고, 브런치도 먹고,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와 지친 몸뚱이를 쉬게 해 주어도 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재촉에 서울 한복판에 제일 크다는 서점에 도착했다. 이마엔 미처 닦지 못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등줄기엔 제법 무거운 땀방울이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국어 수업, 교수법, 글쓰기 수업, 시 수업, 토론 수업, 학생중심 수업 등.


생각보다 엄청난 양의 책들이 넘쳐났다. 화려한 저자들, 다양한 교수법들. 펼쳐보는 순간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했던 수업은 너무 비루하고 부족해 보일만큼 반짝반짝 빛나는 수업 사례가 가득했다. 한 장, 두 장. 한 권, 두 권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거다. 내가 찾던 비법이! 이 책들만 제대로 읽고 적용할 수만 있다면 수업만 시작하면 잠들고야 마는 나의 '고객님'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렴 그도 그럴 것이 책의 저자들은 하나같이 나보다 경력이 많거나, 경험이 많거나, 실력이 좋았으니까. 혁신학교에 근무하거나, 다양한 토론 수업이나 글쓰기 수업에 대한 사례가 풍부했으니까. 책 속에 담긴 그들의 열정에 감복했다. 역시, 책에는 답이 있구나, 책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괜스레 뿌듯했다. 그리고 그들의 수업 방법을 훔치고 싶었다. 뻔 한 월급임에도 30만 원 가까이를 책에 투자했다. 책장에 쌓인 책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밑줄을 그어가며 메모를 해가며 읽으면서 머릿속에 저장하며 믿었다. 나는, 그들의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고. 나도 2학기엔 저 사람들처럼 끝내주는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때 나는 몰랐다.

내가 훔치려고 했던 수업 방법의 핵심은 '방법'이 아니라 '세월'이었음을.

'경험'이 사라진 '비법'은 내게 오답이 될 수 있음을.






이전 03화껍데기는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