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해도 괜찮아

엄마는 아직도 발표가 두려운 걸.

by 안녕

안녕! 나의 사랑하는 딸.

잘 자고 있니? 내일 아침부터 놀이터에 가자고 단단히 약속을 받은 후에야 겨우 잠에 빠진 네 옆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엄마는 일어나 못다 한 설거지에 빨래를 마무리하고 이렇게 탁자에 앉았어. 사실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거든? 여태까지와 다르게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 형식으로 쓴다니까 훨씬 마음이 편해진 데다가 엄마가 또 한 편지 쓰거든. 10년 동안 편지를 써준 제자만 못해도 100명이 넘을 텐데 그때마다 나름대로 진솔한 편지를 적어 감동을 여럿 준 적이 있단 말이지. ^^ 그래서일까, 왠지 모르게 이 글을 쓰는 게 무척이나 기대가 됐어.


그런데 기대하면 그만큼 따라주지 않는 게 또 아이러니한 현실인건지 요 며칠 도통 시간이 나질 않더라고. 네가 늦게 자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찍 재울 때엔 그만 엄마까지 자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어느 순간부터 불가! 그렇다 보니 이제야, 며칠 지나서 묵은 이야기를 꺼내본다. 임시 저장이라도 해 두어 다행이다 싶어. 이제는 하고픈 말이 생각날 때 망설이지 않고 저장, 저장! 일단 저장해 두려고.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 기억나?

유치원 가기 직전 양치를 하던 네가 갑자기

“엄마, 엄마 나 주말에 있었던 일 발표하는 거~ 차이나 타운 가서 아이스크림 먹고 짜장면 먹었다고 말하는 거 못하겠어.”

라고 말하며 그때부터 엉엉 울기 시작한 거. 평소와 달라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일단 유치원에 지각할까 싶어 서둘러 너를 달랬는데 유치원까지 걸어가는 그 15분 동안 너는 울먹이며, 때로는 투정 섞인 말도 뱉어 내며 온몸으로 불편함을 표현했지. ”못하겠어, 두려워, 부끄러워, 몰라 “라며 눈물을 삼키는 널 보고 어떻게 해 주어야 할까 엄청 고민했어.


처음엔 정말 ‘방법’을 몰라서 우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 줬어. “일단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관찰해 봐.”라든가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만 말해 봐.”라든가, “발표하기 전에 심호흡을 10번만 해 봐.”같은 말들로 말이지. 그런데 네 손을 잡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네가 방법을 모르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 너는 담임 선생님께 발표 잘하는 편이라고 곧잘 연락이 오곤 했었거든. 그러니까 너는 어쩌면 ‘불안’했던 게 아닐까 싶더라고. 그저 네 마음, 부끄럽고 불편하고 두려운 네 마음을 조금 달래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야. (참 다행이지?! ^^;) 그래서 그때부터는 걸어가는 내내 다른 화제로 돌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괜찮다고 발표는 원래 어렵고 힘든 거라고, 네 마음을 들어주고 달래주려고 했던 것 같아. 네게 얼마나 전달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


마침 담임 선생님께 보내는 수첩에는 최근에 네가 마음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발표’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마침 메모를 해 두긴 했거든. 두려움, 불안함, 그런 걸까? 네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으니 그저 짐작만 할 뿐이지. 눈물을 겨우 훔치고 유치원으로 들어가는 네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 아까 네게 했던 말이 적절했을까? 들어가기 전에 한 번 꼭 안아 줄 걸 그랬나? 하고 말이야. 하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돌이킬 순 없잖아. 그저 그 순간에 옳은 선택이었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어쨌거나 하원할 때까지 전화 한 통화 없는 것을 보면,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 속 네가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지내고 있음에 감사할 밖에. ^^


그런데 말이야. 엄마가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하나 해줄까? 바로 어릴 적 엄마의 이야기.

엄만 말이야. 어릴 때 다른 사람들의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 죽기보다 싫었어. 원래도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집중받는 것이 정말 싫었거든. 혹시 틀리면 어떡하나, 그래서 친구들이 비웃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거든. 그래서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발표를 하는 상황이 되면 늘 고개를 숙이거나 다른 곳으로 시선을 피하곤 했어. “발표할 사람~? “이라는 선생님의 말이 들리면 속으로 기도했지. ‘제발.... 제발.... 제발...!’


그 기도는 언제나 반 정도는 맞고, 반 정도는 틀렸는데 어쩔 수 없이 발표를 하게 되는 상황이 오긴 오더라고. 한 번은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대표로 발표를 하러 가야 했는데 그때는 정말 어디 아파서 학교를 안 나가고 싶을 정도로 피하고 싶더라고. 거짓으로 연기를 할 순 없으니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 아니면 학교에 불이 났으면 좋겠다...? 같은 위험한 생각도 했던 것 같아. 그만큼 발표가 싫었어. 늘 피하고 싶은, 두려운 대상이었지. 무튼, 시간이 지날수록 발표할 일은 더 많이 생기더라고. 피하려고 해도 피해지지도 않고 말이야.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 불안한 건, 연습이 부족해서일 수 있겠다. 그러면 여러 가지 상황에 꾸준히 대비하여 연습을 하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그래서 그때부터 엄청 열심히 연습을 했어. 오글거리더라도 거울을 보며 연습했고 녹음기를 켜 가며 수없이 말을 해봤어. 내가 준비한 자료를 자동으로 술술 말할 때까지 말이야. 그러다 보니 실제 발표를 할 때에는 생각보다 두렵지 않더라고.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나올 때는 당황하긴 했지만 대부분 연습한 범위를 넘지는 않았거든. 그리고 수십 번씩 연습한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생겨서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더라고.


아, 그리고 그런 것도 연습했었어.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고 무서울 때에는 사람 대신에 교실의 다른 부분을 응시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아니면 나를 절대적으로 지지해 주는 친구를 자주 쳐다봤어. 그 친구의 따스한 시선이 긴장된 마음을 많이 풀어주었거든. 이 방법은 엄마가 지금도 쓰는 방법이야. 수업하면서 뭔가 막히거나 힘들 때 수업을 열심히 들어주거나 엄마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는 학생을 쳐다볼 때가 있어. 그러면 금세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실수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이었어. 엄마는 (차차 알아가겠지만) 굉장히 완벽주의자거든. 다른 사람의 실수엔 무척이나 관대한데 엄마 스스로의 실수는 엄격한 편이야. 그래서 늘 스스로를 들들 볶지. (그래서 늘 위가 아파...) 그러다 보니 발표 같은 것도 실수를 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어. 그런데 살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이란 게 원래 완벽할 수 없고 누구나 실수를 하며 산다는 것을 알겠더라고. 실수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거라는 것도 알겠더라고. 생각해 봐. 처음 해 보는 것을 어찌 잘할 수 있겠어. 오랜만에 해보는 것을 어찌 완벽히 알 수 있겠어. 안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더라. 실수해도 괜찮아, 대신에 다음번에 비슷한 실수를 하지 말자, 이렇게 마음먹으니 훨씬 편하게 준비가 되더라고. 그 후부터는 발표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조금은 더 (아니 사실은 많이) 편해졌어. 물론 아직도 새 학기에 새롭게 만난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에는 무척 떨리고 긴장되긴 하지만.


그래서 엄마는 네 마음을 너무 잘 알아. 피하고 싶은 마음, 두려운 마음, 실수할까 걱정되는 마음들 말이야.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휘몰아칠 때 그 마음이 어떻게 조절이 잘 안 되어서 자꾸만 네 마음속을 흔들어 대는 것도 잘 알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거든. 엄마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감정 또한 지나갈 거라는 것.

그리고 네가 느끼는 발표에 대한 불안은

누구나 다 겪은 것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누구나 다 겪는 만큼 누구나 다 극복할 수도 있다는 것.


그 말을 해 주고 싶었어.

참, 엄마도 웃기다. 여섯 살짜리에게 무슨 이런 이야기까지 하나 싶기도 하네. 하지만! 이 편지는 훗날 네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 보여줄 거니까. (책으로 엮어서 예쁘게) 그때도 네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하. 엄마가 원래 이래. 이렇게 늘 매사 진지하게 의미를 찾아서 아빠가 놀려. ^^;


그러니까 연아.

앞으로도 그런 마음이 느껴질 때면, 그런 감정이 너를 압도해서 눈물이 쏟아질 때면 언제든 엄마에게 말해줘.

그러면 엄마는 네 마음을, 네 감정을 충분히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할게.

들어줄 일은 들어주고 알려줄 일은 알려줄게.

그 과정에서 엄마의 옛이야기가 필요하다면 부끄러워 않고 언제든 공개할게.


엄마와 딸이기 이전에 우리는 그저 똑같은 사람이니까 말이야.

알았지?


아. 편지가 너무 길었다.

이 늦은 시간 (밤 12시 45분)에 아빠도 너도 모두 잠들어 버렸네.

엄마는 편지를 마무리 짓고 못다 읽은 책을 좀 더 읽다가 1시를 넘겨 잠들 예정이야.


네가 이미 충분히 침범한 네 옆자리에 조용히 누워 네 볼에 뽀뽀를 해 주는 것도 잊지 않을게.

언제나 너를 사랑해.


2023.8.14.(월)

- 연이를 사랑하는 감성쟁이 엄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