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플 때 (1)

by 안녕

언제부터였더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19년, 그러니까 네가 태어나고 네 달 정도 지났을 때였던 것 같아. 애 낳고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매일 아침 컵라면으로 때우고 어떨 때에는 그 라면조차 끓이기 싫어서 믹스커피로 한두 잔 때우다 보니 위에 경련이 오더라고. 정말 쥐어짜는 듯한 통증 때문에 미칠 것 같아서 데굴데굴 구르는데 이상하게 머리도 아프더라? 난생처음 느끼는 아주 불쾌한 두통이었지.


그때는 뭐 약 한 번 먹고 따뜻한 차 한 번 마시면 그만이긴 했어.

증상이 심하긴 했지만 처음이었거든.

아빠도 놀라고 나도 놀랐는데 당장에 병원을 갈 수가 있나. 네가 너무 어리니 그저 발만 동동 구르다가 그렇게 서서히 나았던 것 같아. (사실 너무 오래돼서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아.)


그런데 그때는 몰랐지.

그때의 그 '아픔'이 무려 6년째 이어질 것이라는 걸. 만약, 그때 알았다면- 이렇게 오래도록 길게 아플 걸 알았다면 엄마는 당장에 산부인과에 찾아갔을 거야. 제가 앞으로 6년 정도 꾸준히 아플 예정이니 미리 약 좀 처방해 달라고.


그 후부터 엄마의 일상이 달라졌어.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거나 속이 부대끼면 어김없이 두통이 찾아와. 글로도 몇 번 쓰긴 했는데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어. 겉으로는 드러나는 증상이 없으니 꾀병 같은데 속에선 미치겠거든. 두통이 이틀 정도 지속되고 난 끝엔 꼭 구역감이 올라와. 뭘 먹어도 토할 것 같고 울컥울컥하다가 결국 변기를 부여잡고 구토를 하기도 했어.


그게 일 년에 한 번이어도 힘든 건데 엄마는 거의 매달 그렇게 아팠어. 19년엔 우는 널 옆에 두고 쓰러진 적도 있었고 참을 수 없는 두통에 눈을 뜨지도 못하고 그저 누워 시간을 죽인 적도 있었지. 복직하고 난 20,21년은 직장이 너무 멀어서 (왕복 5시간) 토할 것 같은 상태에도 셔틀버스를 겨우 타고 올라오는 구역질을 억누르며 그렇게 일을 했어. 그저 내가 워낙 위가 약해서 그런 줄만 알았어. 아니, 커피를 자주 먹어서 그래, 라면을 좋아해서 그래, 하면서 스스로를 엄청 자책했어.


그렇게 6년. 시간이 흐르니 미치겠더라.

적당히 아파야지. 6년 동안 거의 매달 아파봐. 그러면 벌써 딱- 두통의 신호가 오는 순간 (정확히 말하면 왼쪽 눈꺼풀부터 불편감이 느껴지는 순간)부터 미칠 것 같아. 불안해서. 이번엔 또 얼마나 심하게, 얼마나 오래 아플까, 하면서 말이야.


별짓을 다 해봤어. 두통에 좋은 차, 카페인 없는 차는 다 사서 먹어보고 위에 좋다는 양배추즙, 양배추 찜 등은 뭐 빠지지 않고 먹었고. 몸이 허해서 그런가 한약도 한 재, 흑염소도 먹어보고, 수액도 맞아 보고 한의원 가서 맥도 보고 그랬지. 그런데도 변화는 없더라. 한 달에 한 번은 꼭 예측할 수 없는 두통이 찾아와 나를 괴롭혔어. 그럴 때면 눈 감고 누워있는 수밖엔 없거든. 그럼 너도 안 보여. 보이지가 않아. 그저 눈 감고 가만히 조용히 있고 싶어. 그럴 때마다 너에게 티브이만 틀어주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마음 속엔 눈물이 흘러. 미안하고 속상해서. 그렇게 매년 12번씩, 6년이 반복된 거야.


못 참겠더라고. 너는 날이 갈수록 커 가는데 이제는 더 이상 누워서 너만 보고 있을 수 없고, 눈 감고서 티브이만 틀어줄 수 없잖아. 너는 나랑 놀고 싶고, 나가서 뛰고 싶은데 엄마가 한 달에 한 번씩 그것도 일주일 가까이 매일 아플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래서 마음을 먹고 병원을 다 다녀봤어.


목디스크 때문일까 정형외과에 가서 도수치료도 받아보고 이비인후과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어봤어. 혹시 만성 부비동염 때문일까 싶어서. 내과는 단골이라 말 안 해도 알 거고(같이 갔었지?). 산부인과에 가서 상담을 받기도 했지. 결국 큰 대학병원의 신경과에 가서야 이 지긋지긋한 두통과 구역감의 원인을 알아냈어. 바로,


PMS의 하나로 산후에 찾아오는 일종의 후유증, 편두통이었지.

사실 출산 전에는, 임신 전에는 이런 증상이 하나도 없었거든. 생리전 증후군이 뭔지도 몰랐어. 허리가 아프거나 배가 아픈 정도였지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거든. 왜 이런 병이 제게 온 거냐고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더라. 출산 후 많은 사람들이 겪는 후유증 중 하나일 뿐이라고. 아마 30년 정도는 계속 이런 증상이 있을 거라고.


솔직히 30년이란 시간이 막막하게 느껴지기보다는 개운했어. 아, 이 원인 모를 두통의 원인은 결국 출산 후 호르몬 변화구나! 그러면 호르몬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약을 먹거나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는 약을 먹으면 되겠구나! 잘 관리하면 되겠구나! 하면서 말이야.


그렇게 6월부터 9월까지- 엄마는 아주 무사히 세 달을 보내는 줄 알았어.

그러는 줄 알았어.


그런데 말이야.

하늘도 무심하시지.

10월, 푸르른 하늘이 마음을 절로 두둥실하게 만드는 10월 초,

야속한 두통이 찾아오고 말았어.

그것도 우리 가족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그 주에 말이야.


여행 전날, 저녁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탁-

신호가 왔어. 두통을 암시하는 그 찌릿함.

아주 불쾌하면서도 괴로운 그 느낌.

한 번 시작되면 최소 3일은 나를 괴롭히는 그 느낌이 말이야.


아빠는 너와 먹겠다고 빵을 잔뜩 사 왔고, 엄마는 라테를 만들기로 하고 주방에 있는데 말이야.

넌 당장 내일 떠날 소풍에 신나 거실 곳곳을 방방 거리면서 뛰어다니고 있는데 말이야.


두통이, 기어코 오고 만 거야.


사진: Unsplash의 Anthony T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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