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부터 그랬어.
이상하게 불길한 일이 생길 것 같을 때에는 촉이 좋은 편이었어. 유난히 그날따라 뭔가 기분이 이상하면 꼭 안 좋은 일이 생기곤 했지. 오해받는 것이 싫어 말하지 않았지만 그런 느낌이란 게 늘 따라다녔던 것 같아.
그리고, 우리 가장 행복하고 즐거울 연휴에,
이상하리만치 행복해서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그때에
아주 지긋지긋한 불청객- 엄마를 정말 미쳐버리게 만드는 두통이 찾아오고 만 거지.
조심하려고 했어. 한 번 시작되면 최소 3일은 지속되니까 미리 조심하자 싶어 대학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냉큼 먹었지. 처음엔 그 약이 잘 들었으니 이번에도 잘 듣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야. 대신에 혹시나 또 소화가 잘 안 될까 싶어서 같이 먹으려고 사온 엄마의 최애 빵들 (고로케와 소시지 페스츄리)은 모두 먹지 않았어. 가뜩이나 위가 약해 자주 더부룩한데 두통이 찾아온 날에 밀가루까지 먹으면 금방 체할 것만 같아서.
스멀스멀 찾아온 두통은 엄마의 머리를 서서히 잠식해 갔어. 맞아. "잠식했다"는 표현이 정말 적절해. 첫날엔 왼쪽 눈부분을, 둘째 날은 이마 부분을, 셋째, 넷째 날에는 오른쪽 눈 부분을 자극하며 괴롭혔거든.
그런데 이번엔 첫날부터 조금 괜찮더라고. 불쾌하긴 했지만 종일 누울 정도는 아니어서 우리 가을 소풍 도시락도 직접 쌌어. 보냉백을 챙기고 간식도 바리바리, 유부초밥도 바리바리, 커피도 바리바리 담았지. 신이 났어. 그래, 이 정도면 버틸만하다고. 제발 이렇게 적당히 아프다가 사라지라고. 약은 꾸준히 먹을 테니까. 제발.
그런데 삼일이 지나도 사라질 기미가 안 보여. 아니 오히려 심해져. 우리 연휴를 끼고 1박 2일 여행을 가는 날 아침엔 느낌이 왔어. 오늘 뭔가 사달이 나겠구나. 하는 느낌 말이야. 이상하게 속이 메슥거려 아침엔 간단하게 양배추 찐 것 몇 조각에 밥을 먹었는데 그만, 그것마저 토하고 말았어. 편두통의 끝- 가장 괴롭고 힘든 단계까지 온 거야. 구역과 구토감. 뭘 먹어도 토할 것 같고, 뭘 먹지 않아도 울렁울렁 어지러운 그 단계 말이야.
하루 종일 누워있어도 힘들고 움직여도 힘들 거라면 차라리 움직이다가 쓰러지는 게 낫겠다 싶었어. 얼마만의 여행이야. 그것도 운 좋게 좋은 숙소를 예약했는데 그걸 '두통' 때문에 버린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 같았거든. 늦은 아침 11시에 차에 몸을 실으며 생각했어. 내가 차에서 토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 두통에는 절대 지지 않겠다고!!
강한 결심이 괘씸했나 봐.
종일 힘들었어. 겨우 먹은 바지락 칼국수는 사실 국물을 먹는데 그쳤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선 그토록 먹고 싶었던 커피 대신에 사과유차자를 먹어야만 했지. 그래도 사실 그 정도의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했지만.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들른 수목원에선 사실 죽을 것 같았어. 서있을 힘도 없었는데 전망대까지 가는 길이 너무 험해서 후회가 밀려왔거든. 하산하고 싶다, 내려가서 그냥 앉아 있고 싶다, 그런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가득 채웠어.
그리고 결국.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엄마는 주저앉고 말았지. 물론 진짜 쓰러지거나, 의식을 잃은 건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
다만, 새벽 6시 20분에 일어나서 방 밖으로 나가 놀자는 너를 따라 억지로 나와서 네 옆에서 눈을 감고 계속 누워있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거야.
도저히 못하겠더라고. 너도 알잖아. 평소에 엄마가 너랑 아침부터 잘 놀아주는 편인 거. 아침형 인간인 편이라서 새벽 6시에 일어나도 10~30분 정도 충전하면 금방 활동을 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런데 그날은 안 돼. 안되더라고. 사실 엄마 아픈데도 그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는 네가 원망스럽기도 하더라.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니. 제발 조금만 더 누워있으면 안 돼? 하는 말이 툭툭 튀어나오더라고. (미안해.)
같이 놀자고는 했지만 놀 수는 없었어. 중간중간에 화장실을 가야 했고, 들려주고 싶지 않은 구역질 소리를 들려줘야 했거든. 가져간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보여주기엔 마음이 불편해서 Tv 프로그램을 뒤적이다 발견한 '다니유치원'. 평소라면 적당히 보게 했을 그 방송을, 너는 무려 4시간 동안 봐야만 했어.
왜냐고? 내가 눈을 아예 뜨질 못했거든. 세상이 빙빙 돌고 속은 울렁거리고 메슥거리며 눈은 뜰 수 없겠는데 뭘 할 수 있겠어. 그저 네 옆에서 산 송장처럼 누워있는 것 밖에. 그마저도 너무 힘들어지니까 아예 방에 들어가 이불 덮고 누워 버렸잖아. 이성을 놓았지. 살 수가 없었거든.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났을까. 조금씩 나아진 건 전~~~ 혀 아니었는데 이성이 돌아오긴 했어. '우리 딸, 저렇게 방치하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이 들어 억지로 몸을 일으켰어. 조금씩, 조금씩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씻고, 네 아침을 먹이고, 숙소에서 짐을 챙겼지. 놀자는 네 말을 들으며 같이 웃고, 맞장구도 치려고 노력했어. 네가 얼마나 많이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
결국 여행의 마지막은 이른 귀가와 동네 병원의 방문이었어. 엄마의 상태를 본 아빠가 계획을 급격히 변경해서 오후 일정을 다 취소해 버렸거든. 그리고 얼른 집 근처로 와서 가던 병원을 갔지. 의사 선생님 왈, "편두통이 구역감을 동반하는 거예요. 편두통 약은 심해지고 나서 먹으면 소용이 없어요. 심해지기 전에 드셔야 해요."라고.
약 먹었는데 말이지. 병원에서 탄 약 하루도 빼놓지 않고 먹었는데 말이야. 그런데도 이렇게 아프면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쩌겠어. 이렇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어버린 걸.
사실 말이야.
미치도록 아파서 죽을 것만 같을 때에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
너를 원망하는 건 절대 아니고, 도대체 왜 나는 이런 병(?)을 얻어서 이렇게 매 달 고생하나 싶은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해. 한 달에 일주일을 이렇게 힘들어 버리니까 속상하잖아. 아프면서 버린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잖아. 누구도 대신 주지 않잖아.
자주 아픈 엄마를 둔 탓에 유치원에서 "가장 속상한 순간은 언제야?"라는 질문에 "엄마가 아프면 속상해요."라고 적은 네 글을 보면 눈물이 나. 나는 왜 아파서, 이토록 자주 아파서 너를 속상하게 하나 싶어서. 왜 나는 이렇게 약하게 태어났고, 약하게 생겨 먹었나 싶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나, 둘 씩 쌓아가며 엄마 만의 깊은 굴을 만들기도 해. 그럴 때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누구와도 이야기하기 싫고 혼자 있고 싶어.
그런데 웃긴 건
어떻게 보면 너의 탄생과 함께 찾아온 아픔을 치유해 주는 건 결국 너라는 거야.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플 때면 넌 손수건을 이마에 올려주었고
도저히 놀아줄 수 없어 괴로울 때 너는 무척 심심하고 지루할 텐데도 Tv 프로그램을 4시간 동안이나 아무 말 없이 봐주었어. 그 마저도 지겨우면 혼자서 놀이를 하거나 그것도 지루해지면 내 옆에 와서 잠이 들곤 했지.
그리고 엄마가 아픈 게 속상하다면서 자주 마시는 커피는 몸에 안 좋으니 먹지 말라고 잔소리도 해주고. (물론 나는 말을 안 듣는 못된(?) 엄마지만.)
그 무엇보다 나를 치유한 것은 지쳐 쓰러져 잠들어 있는 엄마 춥지 말라고 이불을 가져다 덮어 주던 네 마음이야. 그때 덮어 준 건 단순한 이불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돌봄, 사랑, 표현이었다고 생각해.
그래서 매달 아팠고, 아프고, 아플 예정이지만
네가 내 딸이라서 감사해.
네가 태어난 후부터 생겨난 이 치료 못할 병이 무척 힘들고 괴로워서 어떨 때에는 걷잡을 수 없는 우울감이 엄마를 감싸지만 그 우울감 밖으로 나를 꺼내주는 것이 너라는 걸 알기에, 엄마는 이 병을 이겨내 보려고. 이기지 못하더라도 네 손 꼭 잡고 그냥 견디어 보려고.
왜냐면, 내 곁엔 네가 있으니까.
나를 사랑해 주고, 아껴주고, 걱정해 주며, 앞으로 커서 엄마와 결혼해서 엄마를 지켜주고 싶다고 말하는 네가,
있으니까 말이야.
폭풍 같은 두통이 지나간 지금, 누구보다 맑은 상태로 이렇게 글을 쓰니 새삼 그 지옥 같은 5일이 꿈만 같다.
하지만 네 마음은 엄마의 마음 깊은 곳에 아로새겨있지.
그러니까 엄마가 아팠던 5일의 기억을 너는 잊어줘.
엄마가 좋았던 기억만 잘 다듬어서 이렇게 간직하고 있을게.
먼 훗날 네가 내 나이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혹시 나와 비슷한 아픔을 느끼게 되었을 때, (정말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때 오늘의 편지를 보여줄게.
그리고 나도 다시 너의 이마에 수건을 덮어 주며 말할 거야.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걱정마, 아프지 않을 거야.
라고.
사진: Unsplash의Ajeet Me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