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웃기지만 사실이다. 어찌어찌 내 책을 알게 된 제자들, 그리고 내가 슬쩍 알려준 제자들이 책을 읽고서는 글을 보내오고 있다.
특히 책 속의 주인공이 된 아이들에게는 꼭 이야기를 전해주었는데 (네가 내 책의 주인공이야,라고.) 그 말이 신기하고 좋은 녀석들이 나 몰래 책을 사서 읽었나 보다. (어쩐지 제자들이 책을 사주는 게 약간은 미안하고 민망해서.)
오늘, 눈을 떠 휴대폰을 보니 메일 한 통, 그리고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해 있다. 둘 다 내 제자였던 녀석들로 책을 읽고 난 후 감정을 글로 적어 보내준 것.
이렇게 글을 길게 쓸 수 있는 애들이었나 싶을 정도로 감동, 또 감동이다. 진짜 기대하지 않았는데 매일 같이 장문의 편지, 메일이 오니 이거 완전, 매일이 감동의 연속이다.
보통 인터넷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서평, 댓글, 100자 평을 실시간으로 받아보는 꼴인데 그 경험이 무척 값지다. 내 살다가 이런 경험을 언제 해 보겠는가. 다, 책을 써서 일어난 일이다.
녀석들의 후기와 감상을 다 옮길 수 없음이 아쉽다. 몇 가지를 요약해서 표현하자면
마치 디렉터스 컷을 본 것 같다고 표현한 진호는 제 이야기를 읽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고 표현했으며, 책에 미처 싣지 못한 나의 첫 제자 민영이는 이제는 선생님 나이가 되었는데, 지나고 보니 선생님은 언제나 자신들을 어른답게 다독여 주셨다는 것을 느꼈다고 표현해 주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내게 큰 힘이 된다.
사실, 힘들고 지친 요새, 아이들에게 오는 감상문(?)이 내게는 삶의 이유가 되고 있다.
내가 힘들어서 쓰기 시작한 글이다.
그 글이 모여 책으로 엮었을 때에는 스스로 만족한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글 속의 주인공들이 다시금 나에게 힘을 주고 있다.
그 힘은 맥주 한 잔으로 얻을 수 있는 위안과는 분명, 다르다.
이건 그러니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소통이며 존재의 재정립이랄까.
(괜히 어려운듯한 말 한 번 써봤다.)
이쯤 되면 책을 써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뭐, 언급할 필요가 없어진다.
학기가 마무리되고 방학이라는 게 찾아오면
지금 쓰고 있는 이 연재 브런치북에 이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그래서 내 주변에서 살아 숨 쉬는,
그저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제자들의 삶을
기록해 줄 것이다.
그 기록이 내 삶의 이유가 되었으니.
사진: Unsplash의Zoltan Ta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