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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양 Nov 17. 2019

차가 주는 여유가 이런 것일까

나를 내려놓고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내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친구가 있다. 함께 학교 다닐 때는 그 친구를 나의 소울메이트로 생각했을 만큼 정말 많은 것들이 통하는 친구였다. 하지만 때론 이 친구가 이 세상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예술가 같으면서도 도인 같은 그런 친구다. 이렇게 평범하지는 않지만, 날 항상 깨우치게 하는, 만나고 오면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그런 여운을 남기는 친구. 그 친구의 집에 갔었을 때이다.


내가 그 친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내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 그렇다. 난 사실 겉으로 보면 사람들이 차분해 보이는 성격과 이미지라고 하는데... 난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에, 마음이 얼마나 부산했는지... 그건 나만 알 것이다.


그날도 일 때문에 정신없던 일정을 쪼개어 만나러 간 그 날이었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나를 알아챈 내 친구는 나를 자기 책상 앞에 앉히고는 말했다. 


"미정아, 지금부터 아무것도 하지 말아 봐. 물도 내가 떠다 줄게. 말만 해."

"그래!"


라고 대답하기가 무섭게 난 귀가 심심한 것 같아서 컴퓨터를 만지작거렸다. 


"야아~~ 가만히 있으라니까. 그냥 나한테 시켜~ 뭐 듣고 싶어? 내가 틀어줄게."


음악을 듣다 보니 괜히 핸드폰도 만지작 거리고 싶고, 그러다 보니 깜빡하고 보내지 않은 카톡도 생각이 나고, 있다가 집에 돌아갈 때 어떤 버스를 타고 가야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결국 멈추어 있는 걸 5분도 채 하지 못했다.


난 그런 사람이었다. 뭔가를 기다리지도 가만히도 있지 못하는 사람. 음악을 들으면서도 뭔가를 해야 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시간에도 영어공부한다고 영어방송을 틀어 놓고, 화장실에도 뭔가를 꼭 가져가서 봐야 하는, 멀티에 능하지도 못하면서 몰티를 추구하던... 


회사에 다닐 때는 무릇 그래야 했다. 동시에 뭔가를 하지 않으면 시간이 항상 모자랐고, 그 와중에 자기 계발도 해야 하니 모자라던 시간은 더 쪼그라들기 마련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 같았고, 그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전화를 하면서도 이메일을 만지작 거리고(말 그대로 만지작 거리고.. 사실 제대로 쓰려면 메일에만 집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외근 때문에 운전 중이라 해도 전화는 필수였다.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고, 일분일초도 헛되이 게 보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생각해보니, 그런 나에게 하나에 집중하는 법을 알려 준 것은 바로 차이다. 이상하게 차를 내릴 때는 마음이 차분해지면서도, 차에만 오롯이 집중을 하게 된다. 물이 끓어오르는 것도 잘 봐야 하고, 내가 원하는 양만큼의 찻잎이 담기는지, 조심히 찻주전자에 그 찻잎을 넣어 끓인 물을 넣고 우릴 때도 그 시간에 온전히 집중한다. 차를 마실 때도 차의 맛과 향만을 생각하고, 차를 마시고 나서도 젖을 잎을 보며 그 모양만을 생각한다. 


물론 매번 그럴 수는 없지만, 보통은 그렇다. 그래서 가끔 이 차를 비교하긴 생뚱맞긴 하지만 운동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잡생각이 들다가도 몸을 열심히 쓰다 보면 순간 생각이 없어지는 운동처럼, 차는 내게 잡생각을 없애주기도 하고, 하나에 집중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가만히 있지 못하던 나였기에 처음엔 딴짓을 하기 일쑤였다. 찻물을 끓일 때도 딴 일을 보다가 물이 식어버린다거나, 차를 우리는 2분 30초가 생각보다 너무 길어 손가락을 식탁 위에 두고 까딱까딱거리면서 찻주전자를 째려보다 삐빅삐빅거리는 알람에 순간의 기쁨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은 편안해졌다. 아니 좀 더 자연스러워졌다고 해도 될까. 차를 우리고 마시는데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는 중이다. 잠시 나를 내려놓고 차, 그 자체만을 바라볼 수 있는 상태, 나에겐 아주 큰 발전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오늘도 차를 마시면서 참 고맙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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