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빠르게도 느리게도 또는 멈추게도 하는 존재
차로 여유를 찾기 시작하면서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도 하나 늘었다. 바로 차로 인해 돌아가는 시간에 대한 것인데, 그게 마치 나를 전지전능한 사람처럼 느끼게 해 준다. 왜냐하면 차를 마시다 보면 감히 내가 시간을 다룰 수 있다는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차를 우리는 시간 속에서는 시간을 느리게 흐를 수 있도록 할 수도 있고, 차를 우리면 죽은 것 같이만 보이던 찻잎을 다시 살아날 수 있게도 하고, 차를 우려 누군가와 함께 마시면 그 순간이 그 향과 맛으로 감싸 안겨져 영원할 것만 같은 그런 착각 말이다.
차를 우리는 그 몇 분의 시간이 생각보다 참 길다. 몇 분이 아니라 몇십 초를 우리는 차여도 마찬가지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참 길다는 생각을 차를 우리면서 느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쳐버린 시간들이 이렇게 차 한 잔을 낼 수 있는 시간이라니. 갑자기 반성을 하게 되기도 하고, 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신기하기도 하다.
더 신기한 것은 살아나는 찻잎들의 모습이다. 뜨거운 물을 만나 일정 시간을 우리면 퍼석퍼석 까칠까칠해 보이던 건잎들이 아가의 살결처럼 보들보들하고, 차나무에서 갓 딴 잎처럼 초록초록해지는데 그 때면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게 아닐까 싶다.
근데 또 시간을 멈추게도 한다. 혼차를 하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지만, 함께 하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근데 그 순간을 멈추게도 한다. 이제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들이 차가운 겨울 처음 만나는 내게 건네주신 맑은 녹차, 그래서 그 녹차를 마실 때면 그때의 겨울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꽃향 가득한 스리랑카의 홍차를 마실 때면 뜨거운 햇빛과 따뜻한 웃음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는 그 날의 스리랑카가 생각난다. 15년 만에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를 기다리며 마셨던 그 여름날의 아이스 히비스커스, 그 새콤한 맛에는 그 날의 설렘이 아직도 담겨 있다.
이 모든 게 착각이어도 좋다.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 좋지 아니한가. 아무것이나 아무 누구나 이런 기분을 들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아직까지 이 차가 시간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준 것으로 유일하다. 그래서 차를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맘도 한편에 있긴 하다. 그 존재가 내겐 벅차도록 크게 다가올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점들이 참 좋다. 이게 내가 차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