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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양 Nov 17. 2019

이 세상 시간이 아닌 차의 시간

시간을 빠르게도 느리게도 또는 멈추게도 하는 존재

차로 여유를 찾기 시작하면서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도 하나 늘었다. 바로 차로 인해 돌아가는 시간에 대한 것인데, 그게 마치 나를 전지전능한 사람처럼 느끼게 해 준다. 왜냐하면 차를 마시다 보면 감히 내가 시간을 다룰 수 있다는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차를 우리는 시간 속에서는 시간을 느리게 흐를 수 있도록 할 수도 있고, 차를 우리면 죽은 것 같이만 보이던 찻잎을 다시 살아날 수 있게도 하고, 차를 우려 누군가와 함께 마시면 그 순간이 그 향과 맛으로 감싸 안겨져 영원할 것만 같은 그런 착각 말이다.


차를 우리는 그 몇 분의 시간이 생각보다 참 길다. 몇 분이 아니라 몇십 초를 우리는 차여도 마찬가지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참 길다는 생각을 차를 우리면서 느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쳐버린 시간들이 이렇게 차 한 잔을 낼 수 있는 시간이라니. 갑자기 반성을 하게 되기도 하고, 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신기하기도 하다. 


더 신기한 것은 살아나는 찻잎들의 모습이다. 뜨거운 물을 만나 일정 시간을 우리면 퍼석퍼석 까칠까칠해 보이던 건잎들이 아가의 살결처럼 보들보들하고, 차나무에서 갓 딴 잎처럼 초록초록해지는데 그 때면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게 아닐까 싶다.  


근데 또 시간을 멈추게도 한다. 혼차를 하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지만, 함께 하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근데 그 순간을 멈추게도 한다. 이제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들이 차가운 겨울 처음 만나는 내게 건네주신 맑은 녹차, 그래서 그 녹차를 마실 때면 그때의 겨울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꽃향 가득한 스리랑카의 홍차를 마실 때면 뜨거운 햇빛과 따뜻한 웃음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는 그 날의 스리랑카가 생각난다. 15년 만에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를 기다리며 마셨던 그 여름날의 아이스 히비스커스, 그 새콤한 맛에는 그 날의 설렘이 아직도 담겨 있다. 


이 모든 게 착각이어도 좋다.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 좋지 아니한가. 아무것이나 아무 누구나 이런 기분을 들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아직까지 이 차가 시간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준 것으로 유일하다. 그래서 차를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맘도 한편에 있긴 하다. 그 존재가 내겐 벅차도록 크게 다가올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점들이 참 좋다. 이게 내가 차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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