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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rliner Sep 11. 2019

"사랑해, 이 이상한 놈아."

티어라이너 싱글 앨범 <Love You, Stranger> 작업기

#1 리듬이 멜로디를 부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6월 밤이었다. 청량한 산바람이 논에 파도를 일으키고 열린 창으로 들어와 '게을러도 된다'고 귀에 속삭였다. 2월에 발표했던 싱글의 연작으로 6월 말 싱글 발매가 잡혀 있었지만, 드라마 음악작업을 마친 후라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보는 창밖 풍경. 이런 날, 이런 바람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뒹굴기만 한 건 아니었다. 서랍에 묵혀 뒀던 자작곡들 중에 작업할 곡을 정해 편곡 방향을 정하고 구성도 짰다. 그러나 곡이 뼈대를 갖춰 갈수록 작곡 당시의 감정과 멀어 희멀건해지고 맛이 없어졌다. 곡이 좋아져도 열정적으로 작업하지 않는 시큰둥한 한량에게 이런 부정적 흐름은 치명적이다. 나는 기타 가이드 녹음을 하다 말고 의자가 휘어지도록 젖히고 누워 기타를 안고 이런저런 멜로디를 튕기며 놀았다.

 

 특별할 것도 없는 코드였다. 보사노바로 알고 쳤지만, 나중에 음악 전문가인 베이시스트 이미영이 “됐고, 그 리듬은 삼바”라고 정정해줬다. 이런 리듬에 입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리듬을 타고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5분도 안 돼 멜로디를 작곡했고, 녹음하기 싫어 쳐다보지도 않던 기존 작업창은 닫아버리고 새로운 창을 열어 단번에 가이드를 녹음해 버렸다. 'Love You, Stranger'는 이 순간 탄생했다.

tearliner - Love You, Stranger [Single, 2019.09.10]

#2 멜로디가 이야기를 짓다.

 닫았던 작업창은 다시 열지 않았다. 유통사에는 적당한 이유를 둘러대며 6월 발매 일정을 취소했고, 연주를 도와줬던 멤버들에게 연락해 곡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발표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날 '이상한 곡'을 작곡해 가이드 녹음했는데, 어떤지 들어보라고 보냈다. 곡이 '이상'했는지 멤버들의 연락은 없었다.


 나는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삼바 리듬과 그 위를 통통 뛰어놀던 멜로디가 머릿속에 꽈리를 틀고 웅얼거려졌다. “아, 이건 아무래도 작업해야겠는데.” 우선 9월에 잡혔던 싱글곡을 예정에 없던 이 곡으로 변경해 버렸다. 최신 작곡을 그대로 작업하는 일은 묘한 설렘으로 다가왔다. 이는 내게 극히 드문 일인데, 드라마에 맞춰 작곡하지 않는 티어라이너 앨범은 대개 1년에서 10년 넘게 익힌 곡들 중에 양념이 잘 밴 곡을 골라서 작업하기 때문이다. 멜로디와 경쾌한 리듬 역시 티어라이너의 전형적 스타일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런 새로운 설렘은 곡에 대한 내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는 곡을 떠올리면 봄의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카페 내부의 연인이 떠올랐다. 공기 중에 부유하는 한가로운 먼지와 햇살에 빛나는 살결, 하얀 이를 보이며 웃는 미소 같은 것들. 멜로디는 이렇게 이야기를 짓게 했다.

 곡의 가제를 '봄카페'로 짓고 프로듀싱 방향을 구상했다. 이야기로 연주자들을 불러 모았다. 가사를 한글로 불러도 어울릴 것 같았지만, 영어로 중의적 모호함과 부드러움을 더하고 싶어 러브엑스테레오Love X Stereo에게 부탁했다. 티어라이너 사운드의 핵심을 담당하는 기타리스트 강지훈 옹에게 다시 한번 기타 녹음을 재촉하고, 억지로 보컬 녹음일을 잡고, 느린 마음을 다잡았다.

기타리스트 강지훈. 사진을 요청하자 늘어난 나시티에 농기구, 아니 기타를 든 사진을 보내왔더라. 차마 쓸 수 없어 드라마OST 녹음 당시 (최고 잘 나온)사진으로 대체했다.

#3 이야기가 나눠져 가지를 뻗다.

 삼바 리듬의 원곡과는 다른 편곡을 싱글 두 번째 트랙으로 함께 싣고 싶었다. 직전까지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에 참여했던 이미영과 전혜림에게 편곡을 부탁해서 받은 곡은 나쁘지 않았지만 의도했던 이미지와는 다소 달랐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재작업을 부탁해서 받았는데, 이번에는 곡의 매력은 여전히 살아있으면서 원곡과는 다른 뉘앙스가 마음에 들었다. 곡의 멜랑콜리한 부분을 극대화한 피아노 연주 편곡은 세 번째 트랙으로 싣기로 했다. 한 이야기가 서로 다른 변주로 편곡되어 제 각각의 가지를 뻗고 풍성한 잎을 피웠다.

편곡과 연주를 도운 전혜림, 이미영. 고마운 분들.

 전작의 카세트테이프 콘셉트를 유지해 촬영한 앨범 재킷은 좋게 말하자면 가내수공업의 변주였다. 볕이 잘 들어오는 거실 창가에 아끼는 83년 산 깁슨Gibson 커스텀 기타를 꺼내 놓고, 한 박스 분량의 카세트테이프를 바닥에 깔았다. 한 박스를 더 부을까 고민하다 대신 워크맨과 CD 플레이어, 헤드폰 등을 함께 두고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운 좋게 뮤지션이 된 20세기 록키드의 취향이나 잔재를 표현하고 싶었다. 사진은 다채로웠지만 가벼웠고, 볼거리가 많았지만 다소 난잡했다. 힘겹게 한 장을 골라 기능이 단출한 프로그램으로 재킷을 디자인하면서 톤을 조금 옅게 조절했고, 타이틀을 레트로하게 적어 넣었다.


 가지를 뻗은 나무는 가까이 서면 따가운 해를 가려주어 쉴 수 있었고, 멀리서 보면 제법 풍성하고 예뻐 보였다. 나무에 앉은 새가 노래에 화음을 더했다, 빠빠빠.

기타와 카세트테이프 등을 펼치고 20세기 록키드 콘셉트로 앨범 재킷을 촬영했다. 난잡하고 색이 가벼워 쓰기 힘들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한 장을 골랐다.

<Love You, Stranger> 티어라이너 인터뷰.

Q. 제목의 의미는?

A. 갑작스레 찾아온 설렘이나 떨림의 감정에 당황스럽지만 싫지 않은 순간을 곡을 통해 그리고 싶었습니다. 작곡 당시 상상했던 이미지는 김종관 감독의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과 흡사했습니다. 눈부신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카페 같은 실내에서 수줍은 두 사람의 감정을 사려 깊게 들여다보는 겁니다. 두 사람은 동성으로 상정했죠. 그렇기에 자신의 감정에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Love You, Stranger'라는 제목을 통해 이러한 이상한 타인에 대한, 이상한 감정에 대한 위트 있는 포옹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이런 햇살이 비치는 실내. 사진은 인천 소재 카페 '커피온기'.

Q. 세 곡이 한 멜로디의 편곡인데 느낌이 다양하다.

A. 같은 멜로디로 다양하게 편곡되어 들려지는 걸 좋아합니다. 많은 드라마 음악 작업을 하면서 가지게 된 취향이랄까, 방법이기도 합니다. 직접 하는 편곡도 나쁘지 않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의 편곡을 통해 내 멜로디가 다른 느낌을 가질 때의 매력과 보람은 큽니다. 2, 3번 트랙을 이전 드라마 음악을 함께 작업했던 편곡자가 편곡했는데, 원곡과 다르고 매력이 분명해 즐겁습니다.


Q. 기존의 음악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더 밝아졌다.

A. 티어라이너의 정서는 슬픔이나 외로움, 상실감, 회한, 공허함 같은 것들입니다. 희로애락이 있는 드라마를 위해 작곡한 밝은 곡들을 제외하면 제 곡들은 대체로 우울하고 허무하죠. 2005년 앨범을 홍보할 때 앨범사에서 '도시적 감수성'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제 음악과 잘 맞닿는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이번 싱글이 조금 밝은 이유는 곡의 이미지가 사랑 이후의 감정이 아닌 사랑 직전의 설렘에 있기 때문입니다. 러브엑스테레오 애니 님의 밝고 사랑스러운 보컬과 코러스 덕도 크고요. 그렇지만, 역시 노래 어딘가에 채 걷어내지 못한 서늘한 상실감 같은 기운이 들어있어요. 사운드의 경쾌함과는 이질적인 이런 가을 같은 서늘함에서 매력을 느끼실 분도 있을 게라 생각합니다.

발매된 앨범 재킷들이 음악의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이렇게나 어둡다.(왼쪽부터 '작은 방, 다이어리.', '잿빛정원', 'Embrace All')

Q. 러브엑스테레오를 언급해서 질문하고 싶은데, 자주 함께 하는 것 같다.

A. 러브엑스테레오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tvn드라마 '치즈인더트랩Cheese in the Trap'에 수록했던 'Hide and Seek'은 말할 것도 없고, 'Beauties Die Young' 같은 곡도 즐겨 들었죠. '치즈인더트랩'과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Love Alarm'에 이어 이번 싱글에도 부탁했는데 흔쾌히 함께 해줘 행복했습니다. 결과물 물론 120% 만족스럽고요.

이번 싱글곡의 작사와 노래, 코러스를 함께 한 러브엑스테레오 애니. 우리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보물 같은 목소리.

Q.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은 8월 22일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방송되고 있다. 어떤 드라마인가?

A. 천계영 작가의 유명 웹툰을 '쌈 마이웨이'를 연출했던 이나정 감독님이 연출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10미터 내에 있으면 알람이 울리는 놀라운 어플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매력적인 아이디어를 주제로 삼각관계가 펼쳐집니다. 주인공들은 각자의 트라우마와 가족사를 가지고 있으며, 관계는 학창 시절을 넘어 사회생활까지 이어지죠. 음악감독으로 참여했지만 시즌2가 제작되기를 바라는 시청자가 되었어요. 넷플릭스와의 작업은 처음이었는데 쉽지 않았지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넷플릭스NETFLIX Original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Love Alarm)'

Q. 앞으로의 계획은?

A. 두어 달 터울로 싱글을 이어서 낼 예정입니다. 그렇게 발표한 싱글과 추가곡을 잘 타작해서 내년 봄이나 늦어도 가을에는 정규앨범으로 발표해 수확하고 싶고요. 출판사와 글을 쓰기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음악 경험을 적은 책을 계획 중인데요, 역시 내년에 내기로 했습니다만, 적을 이야기는 많고 필력은 한심해 과연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러브엑스테레오 애니, 녹음과 믹싱을 전담한 702 스튜디오 김찬영 사장과 함께. 티어라이너와 12년을 넘게 함께 한 프로 엔지니어.

*곡을 들으며 함께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bit.ly/2m6yt4F

*이 작업기는 멜론 매거진 [아티스트 갤러리]를 통해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9334&startIndex=0&musicToda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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