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당신은 몇 살인 거 같은데?”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비죽였다. 그의 말이 다시금 나의 가슴을 헤집어 놓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쓸데없이 이에 힘들어갔다. 영혼 따위 늙으면 어떻고 젊으면 어떻단 말인가.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창조적인 능력에 기원도 아니고 영원불멸의 대상 또한 아니었다. 이상 아니 그저 망상에 지나지 않는, 증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관념에 지나지 않았다. 하물며 단계도 아니고 나이라니… 그건 성숙도를 의미하는 건가, 그렇다면 육체의 나이와 다른 건 뭐지? 그 의미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관념에… 나는 왜 집착하고 있는 걸까.
그는 나의 대답을 듣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답조차 하지 못한 나는 비루하게 짝이 없었다. 엿 같은 기분이었다.
“이상한 새끼….”
누구를 향하는 지 모를 의미 없는 분노가 허무하게 흩어졌다.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를 자초한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가로지르는 공원은 한산했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산책을 나왔거나 연인의 손을 잡고 데이트를 온 커플이 섬처럼 거리를 벌리고 다들 필요가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마스크를 끼고 거닐고 있었다. 이전이라면 뛰노는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와 풍류를 즐기는 노인이 벤치를 지키고 있었겠지만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을 제외하고.
그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추리닝 차림에 양손을 찔러 넣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가끔 뭔가 생각난 듯 핸드폰으로 두드리거나 아이패드에 매직 키보드를 연결해 타자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적어도 누구처럼 현실을 이겨내지 못한 인간은 아닌 듯했다. 그 꼴이 묘하게 거슬렸다. 밥 먹듯 야근을 할 때 뿐만 아니라 어쩌다 정시 퇴근을 하는 날에도 그는 거기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야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지만, 글쎄… 남들이 어렵다고 내가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니까. 시국이 시국인지라 회사는 몸집을 줄였고 머릿수가 줄어든 대신 일은 늘어 야근이 일상이 되어버린 탓에 요즘은 해를 보며 퇴근하는 게 소원이 되어버렸다. 아니 적어도 주말만이라도 쉬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젠장… 나는 이런 삶을, 꿈을 포기하면서까지 붙잡아야 하는 걸까.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에 반해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근심도 걱정도 없어보이는 평온한 얼굴로 하늘만 우러 보고 있는 그. 나와 달리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유자적한 한량 생활을 즐기며 나 같은 인간을 바보 취급하고 있을까? 꿈 하나 갖지 못한 살아가는데만 급급한 인간이라고. 천만에 우리가 갖지 못한 건 꿈이 아니라 돈이야. 누군들, 저런 무위도식을 즐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건 나의 자의식 과잉인가, 피해 망상? 어느 쪽이든 그가 계속 눈에 밟혔다.
“뭘 보는 거예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 같은 건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걸까? 아니 그저 본인한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탓일지도.
“저기요?”
그는 일말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건 완벽한 무시였다. 짜증이 치솟았다. 한 마디 쏘아붙일까 싶다가 그의 입장에서는 이상한 놈이 괜한 시비를 거는 거나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미치자 나는 입맛을 다시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의 귓가를 살펴보았다. 이어폰은 끼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입을 축였다. 소리란, 듣고 싶지 않아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인생이 참 지랄 맞죠? 요즘 같은 시기에…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예요, 그렇잖아요? 누구나 그런 시기를 겪는 법이죠, 당신이나 나나. 나는 그저 운이 좋을 뿐이고 지금은 누구나 마찬가지니까요. 힘들고 어려운 시기죠. 세상이 정상이 아니니까. 그렇잖아요? 참… 이럴 일은 이제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냥 재수 없게 우리가 그 시기에 태어난 거죠.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잖아요? 이건 당신 책임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잖니까요. 그래도 한 편으론 부러워요. 저도 한 때는 당신처럼…”
나는 내뱉은 입발린 소리에 가슴이 무거워져 입술을 물었다. 꿈조차 포기한 보잘 것 없는 내가, 츄리닝을 입은 그를 백수라 단정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번듯한 대기업도 아닌 주제에, 그마저도 일개 계약직이 누구에게 훈계를 하고 있는 건지…. 이래서야 그토록 혐오하던 나이만 먹은 꼰대들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그가 꿰뚫어보는듯 했다. 그 눈빛에 나는 오래전 일이 생각났다. 누각에서 장기를 두던 노인 두 명은 세태를 논하다 청년들을 욕하며 운을 뗐다 ‘프랑스 청년은 취직을 못하면 시위에 뛰어들고 우리나라 청년은 옥상에서 뛰어내린다’고 농담을 듣던 노인은 코웃음을 치며 ‘젊은 것들이란’. 그 농담을 난 썩 좋아하지 않았다. 마지막 노인의 한마디는 더욱이. 그들도 한 때는 젊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가 마주한 현세태는 그들이 일구어 놓았을진데… 어째서 그게 온전히 우리 책임이 되는 걸까?
“당신, 늙었네.”
“네? 저 아직 서른도…”
“아니, 영혼 말이야.”
그 말을 남기고 그는 자리를 떠났다. 나는 잠시 굳은 채로 그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젊은 꼰대 라는 건가?’
묻지 못한 질문이 목소리는 목구멍에서 메아리쳤다.
질문이 흩어지지 않고 사무쳐 졸음은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 말이 의식의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결국 나는 잠자리를 물리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영혼의 나이’를 검색했다. 온통 이상한 이야기 뿐이었다. 환생이니 영혼의 단계이니… 그런 의미로 내게 한 말은 아닐텐데. 그가 말한 뉘앙스는 어느 모로 보나 부정적인 느낌이 강했다.
“하아….”
목이 탔다. 물을 마시려 몸을 일으켰다. 갈증은 물을 마셔도 해갈되지 않았다. 가슴께에 뒤엉킨 응어리만 가중될 뿐이었다. 소리치고 싶었다. 허나 지금은 새벽 3시, 이 시간에 소리 지르면… 민폐지. 나는 충동을 억눌렀다. 아무리 내쉬어도 쉬이 풀어지지 않는 이 뒤엉킴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어 책상 위에 올려둔 담배를 빼물었다. 잠들어 있던 노트북을 깨우고 워드 프로세서를 실행했다.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서 피어오르지 않은 새하얀 연기 대신 공백을 노려보았다. 그저, 노려볼 뿐이었다.
두려웠다. 대체 뭐가? 누구도 내게 글을 쓰라고 종용하는 이는 없었다. 되레 포기하라 말하는 이들은 넘쳤지만 누구도 내게 희망을 품으라 말하지 않았다. 웃기는 일이었다, 죽음을 종용하지 않으면서 희망을 꺾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니. 글은 아무것도 충족시킬 수 없다, 그것이 삶을 다채롭게할지라도 주린 배를 채워주진 않는다, 나 같은 어설픈 인간은….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글을 쓰는 그에게 나의 영혼이 늙지 않았단 걸 증명하기 위한 길은 명백했다.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나는 다시 자판을 노려보았다. 그게 무슨 해답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마냥. 그러나 키보드도 손가락도 모두 침묵할 뿐, 이 적막을 견딜 수 없어 손가락을 떠밀었다, 생각이 걸음을 내딛지 않았는데도. 억지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분주하던 걸음은 금새 리듬을 잃고 다시 침묵했다.
그래… 이게 현실이다. 포기해, 너는 늙은이야. 뚜둑, 입에 문 담배의 필터가 부러졌다. 담배를 쓰레기통에 내던지고 이부자리로 돌아가 이불을 휘감았다. 나를 휘감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현실의 무게든 짙은 패배감이든... 이것에서 벗어날 길은 없으리라.
눈을 감고 잠을 청해도 오지 않는 것에 화가 치밀었다. 어째서 내가 원하는 건 이토록 잡히지 않는 걸까. 감당하고 감내하겠다 하지 않았던가, 어찌할 수 없는 걸 온전히 받아들이겠다 하지 않았나. 그러면 적어도, 적어도 무언가는 채워줘야 하잖아. 그렇게 한참 스스로를 삭히다 나는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났다. 그 새끼가 글 쓰는 놈이라면… 이 시간에도 거기 있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당장 외투를 걸치고 그가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역시나 그는 거기 있었다. 나는 핸드폰에서 공모전에 출품 했던 글을 찾아 다짜고짜 그의 앞에 내밀었다. 그는 당황스러워 하는 기색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이게 뭐냐고 묻고 있는 것만 같아서
“늙지 않았어. 나는 아직…!”
그는 핸드폰과 내 눈을 번갈아 살피더니 눈을 흘기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당신은 몇 살인 거 같은데?”
나는 그가 떠난 벤치에 앉아 하얀 입김이 흩어지는 걸 무력하게 우러 보았다. 나는 무얼 증명받고 싶었던 걸까. 영혼이 젊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애초에 그에게 인정받았다 한들… 달라지는 건 뭐지? 하얀 김은 너무도 빨리 흩어져 자욱한 어둠만 그 자리에 남았다. 싸늘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스산한 가슴을 헤집었다.
춥다. 시리고 쓰렸다. 돌아가자, 집은… 따뜻할 테지. 걸음을 되밟았다. 다급하고 성급했던 발자국들이 어지러웠다. 과거의 자취를 더듬을수록 그것들을 전부 잊고 싶었다. 나는 편의점으로 걸음을 돌렸다.
편의점으로 들어서 곧장 냉장고로 향했다. 익숙한 향취가 눈에 밟혔다. 필라이트, 싸디싼 맥주의 대체품이 아닌 진짜가 먹고 싶었다. 냉장고 문을 닫고 수입 맥주가 있는 옆 칸을 살폈다. 네 개 묶음에 겨우 만 원, 종류별로 맥주를 골라집었다. 그조차… 맘처럼 먹을 수 없던 과거가 사무쳤다. 나는 지금 그보다 났다고 할 수 있을까.
카운터에 맥주를 올려놓았다. 삑, 삑, 기계적인 알바의 손놀림을 지켜보다 지갑을 꺼내들었다. 돈은 충분했다, 안주거리 몇개를 더 얹어도 될 만큼. 그러다 편의점 벽에 걸린 시계에 눈이 갔다.
“아, 죄송해요. 돈을 안 가져왔네요.”
나는 맥주를 제자리에 돌려놓고서 편의점을 나섰다. 다시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 반…. 이 시간에 술을 마시고 출근할 자신이 없었다. 걸음이 무거웠다. 입가에 번지는 씁쓸함을 게워낼 수 없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나의 상태와는 무관하게 하루는 시작됐다. 인파에 뒤섞이고 달아내지 못한 졸음이 묻어나는 걸음이 서로 뒤엉키는 세상은 나 따위에게 어떤 관심도 두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나는, 살아지기 위해 무의미한 일상을 반복하다 그저 흩어질 뿐이었다.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감내하고 견뎌야 했다, 의미없는 숨을 흩어내기 위해서. 그럼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나는, 흩어내지 못할 것들을 움켜쥔 채로 무의미에 무력하게 순응했다.
기나긴 하루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 홀로 남아 다른 이들이 떠넘긴 사소한 잡무를 처리했다. 규합되지 않은 자료와 정리 되지 않은 차트가 난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뭉텅이로 내몰린 이들의 몫이었을 무더기로 쌓인 일은 그들 대신 자리를 꿰찬 나의 몫이 되었다. 허나 업무량과 별개로 급여는 고작 1인분을 넘기지 못했고 당연하게도 이에 따른 추가 수당조차 여의치 않았다. 하긴 이런 시국에 일자리를 얻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지. 아쉬운 건 나였다. 남들의 불행에 기대야만 겨우 다른 이들과 비등해질 수 있는 게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를 선택한 건 나였다.
‘마실거라도 사올까….’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나는 또다시 냉장고 앞에 섰다.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가 한 냉장고에, 그 옆은 지난 새벽 내려 놓아야만 했던 맥주가 즐비해 있었다. 오늘 어느 정도 일을 마무리하면… 모레는 휴일이니까 여유가 생길지도 몰랐다. 참자 아니 참아야 돼.
계산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와 책상 위에 검은 봉지를 내려놓았다. 불쑥 든 생각, 그냥 다 쓸어버리고 싶었다. 의자에 나를 내던지며 쓸데없는 망상을 한숨에 흩어냈다. 봉지 안에서 에너지 드링크와 커피, 간식거리를 꺼내 책상 위에 늘어놓았다. 생각해보면 예전과 별반 달라진 건 없었다. 근심도 걱정도 뒷전에 열정 하나만으로 타올랐던 그때의 책상은 이처럼 가득 차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로 수북했던 책상엔 키보드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아무것도 필요치 않을 듯 했던 열정은 그것을 연료로 타올랐던 걸까. 펑, 과자 봉지를 뜯으며 괜한 상념을 터트렸다. 괜한 생각은 퇴근을 늦출 뿐이었다.
괜한 짓이 었을까.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생각을 하게 되듯, 상념은 상념을 불러왔고 목표로 잡았던 업무량을 끝낼 수 있었던 건 막차 시간이 지나고도 2시간이 지난 뒤였다. 젠장, 그냥 집에 가서 할 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어째서 그런 것들은 뒤늦게 몰려오는 걸까. 또다시 몰아낼 수 없는 회의가 머리를 휘감았다.
‘이러니까 늙었단 소리를 듣는 거야.’
우러보던 아버지가 작아지고 뒤따르기 버겁던 어머니가 느려진 지금 나도… 결국 그런 어른이 되었구나. 담배가 생각났다. 한대 태우고 나면 조금 후련해질까, 아버지처럼.
‘아빠, 담배 좀 끊어요. 난 담배 냄새 진짜 싫다니까.’
아버지는 내 말에 묘한 웃음을 보이시며 말씀하셨다.
‘그래도… 내가 어쩔 수 없는 걸 마주했을 때 이걸 한 대 태우면 조금은 편안해져….’
‘그게 다 그 담배에 화학 성분이 뇌를 마비시켜서 그런 거예요.’
아버지는 입꼬리를 비죽이며…
‘그래, 끊어야지…. 끊어야 하는데 이게 좀 위로가 되거든.’
자조적인 미소를 보이셨다. 나는 당신을 마주보며 손을 내밀었다.
‘한 대 펴봐도 되요?’
당신의 미소가 자취를 감추었다.
‘아서, 시작도 하지마.’
난 무안한 손을 거두며 투덜거렸다.
‘권하지도 못하면서 본인은 왜 그러고 있데요.’
‘시꺼, 너야 말로 좋지도 않은 걸 왜 달라고 하는데?’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입술을 축였다.
‘조금은… 위로가 된다면서요.’
아버지는 미간을 좁히며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셨다.
‘니 말대로 뭔가 마비시키지. 무감각해지는 게 좋지만은 않아.’
‘그걸 알면서도 왜 피시는 건데요?’
‘몰라, 낙… 이란 건 변명이지. 놓지 못하는 게 중독인지 집착인지… 그냥 눈을 돌리고 싶은 건지 나도 모르겠어.’
씁쓸함이 연기를 따라 우리 사이에 배어들었다.
‘너도 그런 거 아니냐?’
중독과 집착을 내려놓지 못한 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마지막 순간, 당신은 내게 미안하다 말씀하셨다. 네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자조적인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래요, 아버지 당신 덕에 저는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나는 담배를 빼물었다. 그건 어떤 위로도 되지 않았다. 왜일까, 불을 붙이지 않은 탓일까? 내 물음에 답을 주기 위한 것처럼 전화가 걸려왔다.
“응, 엄마… 응, 나야 잘 지내지. 그보다 이 시간에 왠일이야?”
어머니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마치 한동안 아버지가 담배 연기에 실어 흩어내셨을, 지금껏 외면했던 싶은 것들이 수화기를 넘어 내게로 배어들길… 묵묵히 기다렸다.
“아니야, 그런 일 있으면 전화해야지. 바로 돈 붙일게. 미안하긴 그러지마, 끊어요.”
그 연기는 독하고 역겨웠다. 그것이 심장에 뒤엉켜 울렁거리는 속을 삭이려 심호흡을 해봐도 조금씩 굳어가는 응어리를 숨은 조금도 흩어내지 못했다.
‘불을 붙여야 되나?’
담배를 피려면… 라이터가 있어야지. 아까 편의점에 갈 때 사올 걸. 사러 가야 할까? 아니 찾아보면 하나쯤은 사무실에 있을지도 몰랐다. 핸드폰에 후레시를 켜고 사무실 주변을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라이터를 찾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입사 초에 흡연실은 따로 없으니 무조건 옥상으로 올라가라고 당부 했던 부장님 책상이었다.
라이터는 액자 옆 필통에 한가득 모여있었다. 손을 뻗자, 액자 안에 내 또래로 보이는 사내는 언짢은 듯 구겨진 미간과 비틀린 입술이 ‘지금 뭐하는 거예요?’ 하고 쏘아붙이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잠깐 빌릴게요.”
뚱한 표정의 사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 뭐하고 있는 걸까. 대답없는 사내를 뒤로 하고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랐다. 흡연은 옥상에서, 비흡연자인 나는 당시에는 대충 흘려 들었던 말이었다. 그걸 난 왜 기억하고 있는 거지? 계단을 밟아 옥상으로 올라갔다. 출입문은 역시나 잠겨 있었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다.
‘이게 또 지랄이네.’
부장님은 짜증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손잡이를 잡아당기며 손을 최대한 돌려 꺾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몸통을 부딪히자
쾅!
문이 열렸다. 마구잡이로 헤집어 뒤엉킨 머리카락에 밤공기의 찬기운이 스며들었다. 새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입에 문 담배 탓일까, 그건 마치 연초의 긴 꼬리 같았다.
긴 꼬리를 피어올리던 부장님은 내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시며 물었다.
‘자네도 꼴초지? 괜히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펴.’
나는 부장님께 담배를 피지 않는다고 거절하자 굉장히 의외라는 듯한 제스처를 보냈다.
‘우리 아들은 심심하면 뻑뻑대던데. 예술 하는 사람도 사람 나름인가보네.’
부장님은 허허거리며 자기 아들을 까내려가며 나를 치켜 세우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하고 나면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예술을 하겠다며 알바도 하나 안하고 성과 하나 없이 몇년째 시간만 죽이고 있다며 한탄하기 시작했다.
‘그놈은 대체 언제 정신 차릴련지 모르겠어. 자네도 그거 가지고 있나? 애팬가 아팬가 하는 그거 말이야. 그거 사고 싶다고 유난을 그렇게 떨잖아. 그 뭐야, 거기 쓰는 연필도 따로 사야하던데. 삼성은 공짜로 주는 걸 십만원 씩이나 주고 따로 팔던데, 그거 꼭 필요한 거야? 내 아들놈이지만 꼴뵈기 싫어 죽겠어 아주 밥이나 축내는 식충이지….’
나는 말없이 그저 듣기만 했다. 차마 아들에게 쏟아낼 수 없었던 감정을 비슷한 처지였던 나에게 털어놓는 부장의 말은, 그동안 당신들이 삼켜왔을 말이리라. 씁쓸한 조소조차 짓지 못하는 나를 보던 부장은 혀를 차며 다시 담배를 물었다. 그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서 탄식을 뱉어내듯 짙게 묻은 누군가에 대한 회의를 뱉어내고서
‘아들놈이 그러더라… 나처럼은 살기 싫대. 그 자식이 뭐랬는 줄 알어? 돈의 노예가 되서 영혼까지 나이를 먹었다고 그러더라고. 젠장, 제 아버지를 뭘로 아는 건지….’
다시금 담배를 깊게 빨았다. 이내 당신의 입가에서 흩어지는 연기와 말이 내게 깊이 배어들었다.
‘자네도 그런가?’
네, 부장님… 저도 한 때 그렇게 생각했더랬죠. 그게 젊음의 치기어림이란 걸 여실히 깨닫는 중 입니다.
그때, 뱉어내지 못한 말이 가슴께에 엉겨붙었다. 나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서 물끄러미 담배를 바라보았다. 노래방 라이터일 줄 알았던 그것은 다 쓴 것처럼 보이는 일회용 라이터였다. 켜질까? 칙, 부싯돌을 돌려도 스파크만 번쩍일 뿐, 불꽃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연료가… 다 닳아 더는 불꽃을 피어낼 수 없는 몸이 된 듯했다. 이런 쓰레기를 왜 그리 간직하고 있던 걸까.
괜한 오기가 치밀었다. 불을 피우고 싶었다. 칙! 빈 껍데기만 남았을 리 없었다. 칙! 그런 쓸모없는 걸 그리 고이 모셔둘 리도 없었다. 칙! 이런 쓰레기를 아무 의미 없이…! 아, 불이 붙었다. 불이, 불이… 나는 멍하니 불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남아있던 연료마저 다 태워버릴 때까지. 생각해보니 이 녀석은 이걸로 제 의미를 다 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내 가치 없는 것이…. 쾅! 경비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금 거기서 뭐합니까?”
“아, 그냥 담배 좀 피우려고….”
경비원은 내 행색을 훑어보다가 손에 든 담배를 확인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까지 퇴근도 안 하신거요?”
“아, 예 뭐….”
“그쪽도 고생이 많네요. 그래도 이런 시간에 함부러 문을 따면 들어가면 내가 곤란해져요.”
“아예, 죄송합니다. 거기까진 생각 못했네요.”
“에휴, 피다 가요. 하여튼 이놈의 문짝이 문제야. 고쳐달라고 그렇게 말해도….”
돌아서 가려던 경비원을 불러 세웠다.
“저기, 라이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경비원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내가 불을 붙이려 하자
“잠깐, 나가 가면 피워요. 냄새 맡으면 피우 싶어져서… 그리고 이 문은 잘못 닫히면 바깥에선 안 열리니까 다음부턴 뭐라도 받쳐두고요.”
경비원은 돌아가며 문을 활짝 열고 닫히지 않게 문을 벽돌로 받쳐두고서 곧장 내려갔다. 나는 그가 사라지길 기다리고서 소리가 멀어져 들리지 않을 때즘 라이터를 들어올렸다. 공짜로 나눠주는 노래방 라이터였다. 칙, 불꽃은 단번에 솟아올랐다. 이놈은 아직 타오르는구나. 심지어 그저 손을 옮겨다니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를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건 연료가 다 타버려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나에겐 그 자체로는 무용할 뿐이었다.
칙, 다시금 피어올린 불을 담배에 붙였다. 좀처럼 불이 붙지 않았다. 뭐가 잘못된 거지? 그러고보니 사람들은 담배를 피울 때 한 모금 크게 빨았던 거 같은데. 흡, 호흡을 들이키기 무섭게 콜록, 매캐한 연기가 목에 걸려 기침이 튀어나왔다. 빈말로도 기분 좋다고 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이런 게 어떻게 위로가 된다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어 다시금 한 모금, 쿨럭쿨럭… 처음 술을 마실 때도 이렇게 당황스럽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아버지, 저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걸까요. 아니면… 그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걸까요. 불티가 찬바람에 조각나 산산이… 산산이…. 나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하찮다 생각한 위로조차 이해하지 못한 비루한 존재는, 하찮다 생각했던 이들이 짊어진 세월의 무게에도 버거워 밭은 호흡을 뱉어냈다. 입밖으로 내뱉은 것이… 다시금 깊숙이 폐부를 찔러온다. 부정할 수 없는 무능이 어깨를 짓눌렀다. 숨에 섞여 번지는 후회와 탄식에 지나지 않은 헛된 숨이 허무하게 흩어졌다. 허망하게, 허울조차 버젓이 세우지 못한 이상이 흩어지며 망상이란 흔적으로만 남았다. 나는 지금껏 무엇을 바라보았던가. 눈 앞이 흐릿해, 그냥 이대로 무너졌으면 했다. 그러면 편해질까? 모든 게 끝이 났으면 싶었다. 더이상 이 헛된 것을… 흩어내고 싶지 않았다. 호흡을 멈추고 가만히 하늘을 우러 보자 울음이 매달렸다. 치솟는 것은, 무엇에 대한 설움일까.
“!”
손가락 사이에 달아오른 것에 화들짝 놀라 그것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하찮지 않다고 항변하려던 걸까. 과한 망상이었다. 나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를 지려밟았다. 나에게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물끄러미 불에 댄 자리를 바라보았다. 어설프다, 한없이. 댄 자리를 입에 물자 매캐한 담배 냄새와 얼얼한 열감, 씁쓸한 담배의 맛이 뒤섞여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옥상에서 내려와 돌아가기 위해 짐을 정리했다. 잊어먹은 게 없나 생각해보았다. 가기 전에 경비원에게 라이터를… 아, 부장님한테 빌렸던 것도 돌려놓아야지. 어차피 다 쓴 라이터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럼에도 그토록 애지중지 모아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나는 부장님 자리로 가서 라이터를 대충 던져넣으려 했으나
“아… 젠장.”
라이터는 통에 들어가긴 커녕 되레 그걸 쓰러트리고 말았다. 나는 흩어진 라이터를 그러모았다. 그건 하나 같이… 연료가 밑바닥에서 자박거리는 애매한 것들이었다. 이런 걸 대체 왜…? 흡연자들은 다 이런 건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쓰러진 통을 다시 세우고 라이터를 그러모아 처박았다. 쓰레기통, 그런 걸 왜 아들 사진 옆에? 괜한 의문이었다.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 입사 이후 딱히 친분을 나눈 기억이 없었다. 자기 아들과 비슷한 또래라는 이유로 내게 향한 일방적인 관심은…. 그러고보니 그 이상한 새끼랑 좀 닮은 거 같은데. 아니 그럴 리 없었다.
“혹시 이것들… 당신 거예요?”
나는 쓰레기통을 흔들어보이며 사진 속 사내에게 물었으나 당연하게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은 몇 살인가요?”
탁, 책상 위에 내려놓은 쓰레기통을 밀어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다.
“나랑 비슷했다고요? 그건 알아요… 그거 말고 영혼의 나이 말이예요.”
실없는 소리에 헛웃음이 터졌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아니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걸까. 나는 아드님을 향해 목례를 건네고 사무실을 떠났다.
회사 로비에서 옥상에서 만난 경비원을 찾았다. 그의 라이터는 아직 가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찾아 아까는 감사했다고 말을 꺼내며 라이터를 돌려주려했다.
“가져요, 안 내키면 그냥 버리던지. 널린 게 그런 라이터예요.”
나는 무안해진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서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회사를 뒤로 했다. 날은 생각보다 추웠다. 새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몇 시간이나 잘 수 있으려나…. 막차도 끊긴 터라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려다 예상 요금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이 금액이라면 근처 모텔에서 하루밤을 보내는 게 훨씬 값이 싸게 먹힐 터였다. 조금 불편하긴 해도 잠도 조금은 더 잘 수 있겠지. 다시 핸드폰을 뒤적이며 택시비보다 싼 방을 찾았다. 회사 근처에서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지금은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피씨방이나 찜질방 보단 낫겠지. 피곤했다. 어서 씻고 잠들고 싶었다. 나는 돌려주지 못한 아무 의미 없는 라이터를 손에서 놀리다 길가의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모텔 아주머니에게 혹시 금연방이냐 물었으나 금연방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깨끗이 청소를 해뒀으니 냄새가 나진 않을 거란 아주머니의 장담과는 달리 방안에서는 퀴퀴한 담배 쩐내가 진동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편히 자긴 그른 모양이다.
대충 짐을 내려놓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침대는 딱딱했다. 킁킁, 냄새도… 엿 같았다. 고개를 돌리자 침대 맡 테이블에 놓인 재떨이와 라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어 라이터를 잡아챘다. 연료가 가득 찬, 노래방 라이터였다. 칙, 불꽃이 단번에 피어올랐다. 버튼에서 손을 떼자 불꽃도 자취를 감췄다. 이번엔 버튼만 눌러보았다. 소리 없이 줄어가는 연료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사라져가는 건 무엇일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졌다. 칙, 불꽃… 손을 가까이 가져다대자 손바닥을 두드리는 미열에 불꽃을 잡아채자 일렁이는 불꽃은 버튼을 때지 않았는데도 그대로 숨을 죽였다. 나는 다시 불을 지폈다. 무의미하게 사라지기보다 타오르는 편이 나으리라. 그렇게 타오르는 편이… 아니 이조차 무의미했다. 이 불꽃은 어떤 목적도 가지지 못했다. 후! 불꽃을 꺼트리고 딱딱한 침대에 손발을 뻗은 채로 눈을 감았다. 옷도 벗지 않고서 이불 속에 몸을 밀어넣었다. 춥다. 담뱃불에 댄 손가락이 아려왔다. 댄자리를 입에 물었다. 쿰쿰한 살냄새, 나는 숨을 내뱉었다.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생기가 허무해 손을 움켜쥐어보아도 손짓은 의미 없는 움직임에 지나지 않았다. 그 행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도 그건… 그저 버둥거림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눈을 감고 다시금 라이터를 움켜쥐었다. 이런 무가치한 것에... 우리는 왜 집착하고 있는 걸까.
다음날 그 의문은 생각보다 빨리 답을 얻게 되었다.
“자네, 오늘 나랑 술 한 잔 하지.”
그다지 원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오늘만큼은 빨리 집에 가고 싶었으나 부장은 막무가내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토록 바라던 칼퇴근을 할 수 있었다. 곧장 부장에게 끌려나가 별 의미 없긴하만… 그나마 내일이 주말이란 게 위로가 되어줄 뿐이었다.
술을 먹자던 부장은 나를 국밥집으로 데려왔다. 자기 멋대로 메뉴를 정하고 술 한 잔 시키지 않았다. 술을 먹자고 불러놓고… 영문을 알 수 없어 부장에게 말이라도 꺼내볼까 싶었지만 부장은 일단 들라는 말이 전부, 그의 말대로 숟가락을 들어올랐다. 우리 사이엔 둘이서만 마주한 식사 자리가 거북한 부자 같은 어색한 침묵을 지키며 식사를 마쳤다.
이제 집에 가면 되는 걸까… 싶었지만 부장은 나를 편의점으로 데려갔다. 선심 쓰듯 자신이 살테니 먹고 싶은대로 고르라 말하는 그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번듯한 이자카야까지는 아니어도… 아니 이런 시국에 이자카야도 좀 그런가.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젠장. 내가 마른 안주를 한 두개 집어들자 겨우 그거 가지고 되겠냐며 마구잡이로 음식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참치며 김, 스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건 컵밥까지 가리지 않고 한 가득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부장님, 술은… 안 드시나요?”
“술? 그래 먹어야지. 뭐 마실래?”
딱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저는 맥주로 하겠습니다.”
“맥주, 맥주라….”
부장은 이번에 맥주를 종류별로 들었으나 상식적인 기준에서 멈췄다. 수입 맥주 3만원 어치… 조그만 우리집 냉장고를 가득 채우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우리는 편의점 간이 테이블에 자리를 폈다. 군대에서처럼 냉동을 데우려고 봉지를 뒤적이자 부장은 육포 하나만을 꺼내고서 다른 건 필요없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럼 이 많은 걸… 집에 가져가겠단 소린가?
“이것만 마시고 가자고.”
“그럼 이건 다…”
“자네가 가져가.”
칙, 부장은 캔맥주를 따며 이번에도 나에게 들라고 권했다. 부장은 맥주를 들고서 건배를 제안했다. 툭, 유리잔이 아닌 알류미늄 캔의 둔탁한 울림이 회식 같지 않은 미적지근함처럼 묘하게 불편했다. 부장은 이번에도 별다른 말없이 맥주를 들이켰다. 캔 하나를 다 비울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부장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부장은 캔을 내려놓고 입을 축이며 해야할 말을 미뤄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네, 요즘 힘들지?”
“아, 네 뭐… 요즘 다들 그렇죠.”
“그렇다고 자네가 안 힘든 건 아니잖은가.”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맥주로 목을 축였다.
“왜 힘든지 말해줄 수 있겠나?”
이번에도… 나는 그냥 목을 축였다. 무언가가 목구멍을 막고 있어서 그걸 넘기기 위해 술을 넘기고 또 넘겨 보았지만 그 응어리는 좀처럼 녹아내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의미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난 부장님의 눈을 바라보았다.
“글쎄…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아들은 이상한 놈이야. 거의 다 쓴 라이터를 모으고 있더라고. 비싼 라이터도 아니야. 가스나 기름을 채워 다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편의점에서 잔돈 푼 주고 살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라이터를 버리지도 않고 무더기로 쌓아놓더라고. 우리 와이프는 당연히 그게 쓰레기인줄 알고 다 가져다버렸고 그날 아주 난리가 났어. 우리는 이해하지 못했지. 그래서 아들놈에게 물었어. 그게 대체 뭐길래 그러는 거냐고. 필요하면 그냥 다시 사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녀석이 그러더라 아직… 의미는 것들이라고, 불이 피워낼 수 있는…. 그것도 대체 뭔 소리가 싶더라고. 까짓거 그냥 다 써버리면 될 텐데. 자네는 알겠나? 왜 그걸 버리지 못하게 했는지?”
어렴풋이…. 허나 그 뜻을 나는 부장님에게 말할 수 없었다. 바보 같은 이야기였다.
“뭐… 아들놈 생각이 어떻든 이제는 내가 그러고 있으니. 참 웃기는 노릇이야, 그렇지 않은가?”
“아무것도 아닌 게 부장님께도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니까요.”
“그래, 자네한테도 그런 것들이 있지 않나?”
“네, 그랬죠. 그런데 이젠… 모르겠어요. 가치도 없는 걸… 뭐 그리 집착했는지. 그냥 세상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아요.”
“우리 모두 그 아무것도 아닌 걸 위해 살아가고 있다네.”
“그게 뭐죠?”
“나도 모르지. 그걸 찾기 위해 살고 있는 사람도, 그걸 증명하기 위해 사는 사람, 그걸 지키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겠지. 사실 나는 지금도 모르겠어. 그저 이 모든 게 지나가길 기다릴 뿐 그러고나면 알게 되겠지. 그 모든 게 무엇이었는지.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속단하지 말란 거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자네가 그리 좇지도 않았을테고… 그리고 그게 세상에 전부는 아니니까.”
“누군가에겐 그게 전부라면…”
“다른 사람에겐 그렇지 않단 사실도 받아들여야 할 거야…. 그리고 자네가 말한 그 사실 또한 우리는 받아들여야 할 거고.”
“모순이네요.”
“세상은 일이 다 그렇지 않겠나?”
나는 맥주를 털어넣었으나 캔에 맥주가 남아있지 않았다.
“저는… 잘 하고 있는 걸까요?”
“글쎄, 자라고는 있는 거 같은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부장님의 실없는 말장난에, 나는 잘하고 싶은 건지 자라고 싶은 건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미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럼 아직 성장기인가 보군. 다행이야, 성장이 끝났다면 늙기 밖에 더 하겠나.”
늙는다라… 나는 늙은 게 아니었나. 모르겠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조차도.
“들어가실거죠?”
“그래… 그래야지.”
나는 간이 테이블에 놓인 맥주캔들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아, 참 자네한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어.”
“제목이 뭔가요?”
“I won’t give up, 제이슨 므라즌 곡이라네. 아들 녀석에게도 들려주고 싶었지.”
“꽤 낯간지런 제목이네요.”
“방금 우리가 나눈 이야기만 하겠나? 그보다 옥상에 올라가지 말게.”
“예?”
“포기하지 말라고.”
부장님은 내 어깨를 두드리고서 팔뚝을 힘껏 움켜쥐셨다. 잡지 못했던 걸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마주한 부장님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적당한 말을 분별 해낼 수 없어, 멋쩍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 했다.
“그래, 가봐.”
부장님이 챙겨준 양식을 들어올렸다. 그것은 꽤 무거웠고 또한 따뜻했다.
“감사합니다.”
부장님은 내게 어서 가보라 손짓하면서도 먼저 자리를 뜨지 않으셨다. 나는 다시금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리고 먼저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이어폰을 꺼내 방금 부장님이 추천해주신 노래를 재생했다. 멍하니 기타 선율에, 감미로운 가사에 빠져드려는데 제이슨 므라즈가 내게 물어온다.
How old is your soul?
나는… 내딛지 못하고 멈춰 섰다. 청승 맞게 눈물이 차올랐다. 대답을 해야 할 것만 같은데… 사실 모르겠어요. 몇살인지, 몇살이고 싶은지… 내가. 답을 찾아 주저앉자, 그가 다시 내게 말한다.
God knows we’re worth it
그의 말을… 무신론자인 나는, 믿고 싶었다. 그것이 증명할 수 없는 존재인지, 증명해야 할 바람인지… 그 어떤 답도 알지 못한 채로 멈췄던 걸음을 내딛으며 이어지는 노랫말을 읊조렸다. 아무런 보증 없이….
“Know, I won’t give up…”
그저 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