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괜찮으시냐?”
바닷바람을 맞으며 동고동락했던 친구 녀석에게 걸려온 전화, 녀석의 물음에 나는 기가 찼다. 한창 사업이 번창할 적에도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은 녀석, 사업 실패 이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하는 녀석이 고맙기까지 했다.
차라리 돈 이야기였다면 당혹스럽지도 않았을 것이다. 보기 좋은 허울을 뒤집어쓸 필요가 없는 사이에 괜한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위독하시다며…”
“위독? 그 양반이? 그 나이까지 밭 매는 노인네가 뭣 때문에 골골댄다던?”
“병이 예고하고 찾아오냐? 지금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던데.”
“병? 왜 광화문이라도 갔다냐?”
“설마 그러셨겠냐, 그냥 운이 나빴던 거지.”
“하, 그러니까 코로나라고? 하긴 그 양반 하느님이라면 죽고 못 사는 인간이니 아마 눈 뒤집혀서 갔을 거다.”
“그런 거 아니래도 설마 서울까지 오셨는데… 아니다, 말해 뭐하냐. 너도 조심해. 그래도 늦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구태여 들을 필요 없는 군소리였다. 그건 녀석도 알고 있었으리라, 그런데도 굳이 수고를 감수했다는 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단 뜻이겠지.
“아들!”
대답이 없었다. 옆집 소리도 다 들리는 부실한 벽에 목소리가 막힐 리 없었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건 얄팍한 문 하나가 다였다. 본래 혼자 지낼 요량으로 얻은 두 칸 밖에 되지 않은 집이었다. 아들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아들은 갑작스레 열린 문에 흠칫 놀라며 나를 커다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저씨한테 전화했니?”
“…네.”
역시나.
“안 갈 거다. 너 혼자 가는 건 말리지 않으마.”
“그래도 아프시잖아요.”
“아프다고 모든 게 용서되는 건 아니야.”
“할머니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요?”
“그래, 할머니 잘못은 없지. 언제나 그놈의 신이 문제였어.”
“엄마 때문이 아니고요?”
쾅, 방문을 닫았다. 문고리를 움켜쥐고서 치고 올라오는 감정을 이로 짓눌렀다. 아이 엄마라는 여자는 교회에서 남자와 눈이 맞았다. 그것도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라는 인간과. 마냥 그 여자를 탓할 순 없으리라. 애초에 여지를 준 건 나였다. 우리 부부는 애정도, 하물며 법적으로도 이미 정리된 상태였다. 당시 이혼을 종요한 건 나였다. 제대로 된 뒷배 없이 시작한 사업, 그 업화가 가족에게까지 미칠까 두려워 최소한의 예방책으로 결행한 일이었다. 높으신 분들은 아둔한 개미의 속을 훤히 꿰고 있는지도 모르고. 나의 불찰이었다. 입적을 두지 않아도 사실혼 관계가 집행 대상에 속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이미 불행이 우리를 덮친 뒤였다. 그 여자와 내가 아직 우리였던 때, 우리 가족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구원을 바랐다. 그리고 그 여자 앞에 어머니는 자신의 신을 디밀었다. 그년은 곧 빠져들었다, 어머니가 그러했듯. 자기 앞에 신, 아니 그 새끼에게. 아직도 그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신이 나를 어둠 속에 잠기게 했던 건 다 그 사람을 만나게 하기 위한…’
그가 자신을 구원하리라, 그렇기에 그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인간은 간사하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실감하고도, 이를 간과했던 건 가족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애정에 환상을 품고 있지는 않았으나 혈육의 끈은 강하리라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천륜 따위 그다지 강한 유대도 아니란 걸 스스로 증명하고서도 왜 그런 알량한 믿음을 품었을까.
자부했던 탓일까,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란 단어조차 과분한 그 인간과… 아주 많이.
쓰레기, 다리 한 짝 없는 발병신인 걸 떠나 인간 구실도 못하는 저열한 짐승 새끼. 할 줄 아는 건 노름과 나발 불던 소주병으로 사람을 때리는 패악질이 전부였던 인간이었다. 어머니는 그 쓰레기를 불쌍하다 말했다. 그래도 너를 낳아준 아버지이지 않느냐고. 그가 짐승이 된 것도, 우리를 위해 공장 일을 하다 그리 된 것 아니었냐고. 아버지를… 너무 원망하지 말라하셨다. 술이 떡이 되어 노름판에서 행패를 부리다, 단칸방의 좁은 틈에서 끝내 풀지 못한 한을 나에게 푸는 짐승을… 천륜이란 이름으로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낳은 것도 먹이고 기른 것도 그 짐승이 저지른 모든 일을 감내하고 짊어진 것은, 당신이었다. 그가 한 일이라곤 쾌락에 충실한 것, 고작 그 뿐이지 않은가. 어머니는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신이 내린 가르침? 그렇다면 어머니가 신에게 배웠을 자비와 관용을, 나는 닮고 싶지 않았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당신이 짐승을 교정하기 위해 한 일은 고작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뿐이었다. 그 무용하고 무미한 짓을 당신은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당신은 그것도 인간이라 믿었기에. 그 믿음을 저버린 것은, 당신이 원하지는 않았으나 잉태된 새생명이 빛도 보지 못하고 스러진 탓인가, 의지할 곳 없는 당신을 품어준 목사의 연정 덕일까. 어찌 됐던 우리는 남들이 살기 위해 상경하여 떠나온 시골로 도망쳤다. 아무런 연고 없는 목사의 고향으로. 그건 누구의 바람이었을까?
‘이 쌍년들아! 내가 누구 때문에 병신이 됐는데? 쓰레기 버리듯 지아비를 내던지는 게 니들이 찾는 신의 가르침이냐! 같잖은 년, 쌀값 얻어와서 가만뒀더니 제 서방 구실 못한다고 서방질을 해? 내 니들을 가만 둘 줄 알았냐!’
외발 병신은 우리가 더부살이하는 목사의 친가를 덮쳤다.
‘내놔! 지아비를 버리는 버러지한테 무슨 어미 자격이 있다고!’
그것은 나의 손목을 잡아챘다. 나는 어머니를 매도하는 것의 손을 뿌리치며 외쳤다.
‘놔! 당신이 눈 돌아가게 했잖아! 이 버러지보다 못한 짐승 새끼야!’
그것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 위태로운 걸음으로 더듬더듬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그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신이 굽어 살피시는구나.’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신이 살폈다면 저 불구가 우리를 찾지 못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일이 있고 난 뒤 목사의 부모는 연민이 아닌 연정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거냐며 자신의 아들을 다그쳤다. 목사는 이를 부정했으나, 우리는 쫓겨났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신이 길을 비춰주실 게다.’
그건 당신의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어디로 도망쳐도 벗어날 수 없는 그림자가 우리를 뒤따르리라. 우리는 돌아가야 했다. 그 짐승이 있는 좁은 굴로. 차라리 굴다리 밑이 낫겠다는 투덜거림에 어머니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주께선 언제 빛을 보여주신데요?’
‘한낱 인간인 우리가 어찌 알겠느냐.’
누구보다 달아나고 싶었을 당신의 말에, 나는 체념했다.
돌아온 셋방에 싸늘한 시신, 며칠 새 그것은 술독에 빠져 요절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어머니 말대로 신이 우리에게 빛을 내리신 걸까? 허무했다. 그리도 두려웠건만, 그리도 불안했건만…. 해방감도, 후련함도 찾아오지 않고 맴도는 공허함은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나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누구라도 외면했을 수고를 어머니는 자처했다. 누구도 찾지 않을 빈소를 스스로 마련해 상복을 입었다. 당신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째서? 어머니는 당신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원망하듯 신을 찾지 않으셨다. 당신은 신의 뜻을 헤아릴 수 없다고 했으나 나는 한낱 인간인 당신의 뜻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한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목이 말랐다. 몸을 일으킨 나는 한 걸음 내디뎌 냉장고를 열었다.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빨간딱지가 붙어 넘어간 냉장고의 사분의 일정도 밖에 되지 않는 이 냉장고 안에는 김치통조차 없었다. 끼니를 집안에서 챙겨 먹은 게 언제였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뭐라도 남아있을까 싶어 열어본 냉장고에는 네가 먹었을 편의점 치킨과 김 빠진 콜라가…. 나는 페트병을 집어 들고 나발을 불었다. 김 빠진 그 시답잖은 것은 위로도 위안도 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알코올에 젖어들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아이의 방을 돌아보았다. 부엌과 거실을 겸한 좁은 공간에 화장실 하나 그리고 지금 아이가 쓰고 있는 방 하나가 전부인 이곳을, 아이 스스로 택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여자는 아이를 모른 채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건만, 어째서 나는 안도했을까? 스스로 양육권마저 양도한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잖은가. 그리하면 적어도 밥은 굶지 않을 테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스스로를 설득했다. 허나 아이의 바람이라곤 해도 그년은 짐을 떠넘기듯 아이를 내게 내맡기고 떠났다. 어찌 그럴 수 있냐는 책망에
‘차라리 잘 됐지. 난 네 핏줄을 행복하게 해 줄 자신 없거든’
‘네 자식이기도 해’
‘책임을 다 하라고 말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아니면 네가 잘해. 네놈처럼 살게 하고 싶니?’
‘하… 그래, 네가 그런데 애가 잠이나 편히 자겠냐?’
나는 아이의 방문을 두드렸다.
“자니?”
“아직요.”
야심한 시각, 고등학생인 너에게는 좀 늦은 시간이었지만, 내일은 주말이니 괜한 트집을 잡을 이유가 없었다. 네가 잠들지 못한 건 왜 일까? 그래서… 너는 녀석에게 전화한 걸까. 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너는 이부자리를 깔고 돌아누워 있었다. 네가 누울 침대마저 나에겐 과분한 것이었다.
“왜 안 자고?”
“그냥 잠이 안 와서요.”
침묵,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이 어색한 기류가 익숙했다. 서로의 유대에 혈육이란 기반을 제외하면 별다른 접점이 없는 가깝고도 먼 관계가, 우리의 현주소겠지. 너에게 나의 지난날을 답습시키고 싶지 않았다. 더 나은 삶을… 허나 너를 볼 때면 그 기준점에 조금도 미치지 못한 현실을 마주했다. 그렇기에 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달린 끝에 벌어진 거리였다.
그저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을 뿐, 현실은 이제 그만 인정하라 다그쳤다. 나는 너에게 묻고 싶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아들…”
왜 나한테 온 거니? 새아비가 불편해서? 그들의 위선을 견딜 수 없어서일까? 나와 있어도… 잠들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곱씹고 또 곱씹었던 질문들을 곰곰이 헤아려보다 선뜩 두려워졌다. 너의 입에서 나올… ‘아버지’라는 단어가.
“할머니 보러 가자.”
나는 스스로 던진 질문 대신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아이는 몸을 일으켰다. 불 꺼진 방은 어두웠고 너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어서 자,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진짜요?”
불안한 목소리에 얽힌 의구심의 정체를, 나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방문을 닫고 기대앉아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던 걸까.
살아있던 아버지를 감당하지 못했던 목사가 다시 손을 뻗었다. 어머니는 군말 없이 그 손을 잡았다. 당신이 그럴 수밖에 없단 걸 알면서도, 그 꼴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숨을 쉴 때마다 섞여 드는 물비린내로부터. 내가 벗어날 방법은 오로지 대학에 진학해 상경하길 뿐이었다. 나는 어찌할 수 없는 분노를 학업에 쏟았다. 그리고 결실이 눈앞에 있었던 그때, 가까운 신학대에 진학하라는 목사의 요구는, 부당했다.
비록 그들의 덕으로 학업과 생계를 이어갔다 한들 나의 미래까지 그들의 손에 쥐어지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믿지도 않을뿐더러 허령한 것인지 허의한 것인지 알 길 없는 것에 인생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를 거부하자 목사는 앞으로 학비는 물론 생계도 지원하지 않을 테니 집을 나가던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일갈했다.
요구가 강요를 넘어 강압이 되자 그들의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당신네들은 자신의 신앙심을 과시하고 위상을 높일 도구로 나를 이용할 뿐이잖은가. 어쩌면 어머니도… 목사와 같은 생각일까?
그날… 모든 걸 내던지고 싶었던, 코를 찌르던 비린내가 역겨워 견딜 수 없던, 그 바다를 마주한 의구심이 깊어 가던 나를 홀연 찾아온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뜻대로 하거라.’
다음날 아침, 한때 나의 자부심이었던 벤츠 앞에 섰다. 국산차 두 대 값을 주고 샀던 깡통 E350d, 회사를 정리하며 내게 남은 유일한 성공의 흔적이었다. 이깟게 뭐라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을까. 이까짓게 뭐라고 이것만이라도 지키려 했을까. 진정 지켜야 했던 건 처참히 망가져 버렸는데.
“아빠?”
“아, 그래… 출발해야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아들이 네비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경기도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지방 도시의 대학 병원이었다. 적어도 세 시간은 걸릴 멀고 먼 길, 고속도로에 올라타 지난하게 내리깔린 침묵을 견딜 수 없어 라디오를 틀었다. 주파수가 맞지 않아 지지직 소리가 요란했다. 손을 뻗을 필요 없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사라질 노이즈를 우리는 아무런 저항 없이 순응했다. 아니 우리가 아니었다. 아이는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차창을 열었다. 초겨울의 바람은 매서웠다. 조금은… 졸음도 잡생각도 떨쳐낼 수 있으리라.
“아빠.”
“응?”
“추워요.”
“…그래.”
창문을 닫았다. 먹통인 라디오를 끄고 찾아온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침묵, 길고 긴 고요가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익숙하지만 달갑지 않은 정적을 깨는 이어폰 너머 웃음소리가, 미동조차 없는 너의 입가가, 너와의 거리를 상기시켰다.
“당일 면회는 안 되세요.”
접수원은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국도 시국이거니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먼저 움직인 내 잘못이 컸다.
“할머니 연세가 좀 있으세요. 저희가 사정이 있어서 이제야 시간을 냈는데 잠깐 얼굴이라도 볼 수 없을까요? 방금 서울에서 왔는데…”
“규정상 안 되는데… 일단 알아봐 드릴게요.”
잠시간 기다림, 허나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아이도 더 고집을 부리진 않았다. 알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런다고 해결되지 않는단 걸. 이혼 사실을 말할 때도 담담했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돌아가자는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이 아쉬움이 아닌 안도로 오인할까. 병원을 빠져나와 너는 벤치에 주저앉았다. 아이는 한참을 땅만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각별했다. 맞벌이를 하던 나와 그 여자를 대신해 아이를 돌봐준 건 어머니셨다. 갓난아이 시절은 물론이요,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유년시절 대부분을 함께 했으니. 어쩔 수 없단 걸 알면서도 어머니를 향한 아이의 애정이 달갑지 않았다. 어쩌면 아이가 그 여자 대신 나를 선택한 건 전적으로 어머니 때문일까.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하고 갈래?”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서 시선을 땅에 고정한 채였다.
“아빠.”
“응?”
“중환자실은 어딜까요?”
나는 병원 안내판을 바라보았다. 중환자실은… 나는 다시 아이를 보았다. 너는 정말 그게 궁금한 걸까? 질문 대신 다시 안내판으로 살펴 중환자실 위치를 찾았다. 본관 2층, 나는 손가락으로 가장 높은 건물을 가리켰다.
“저 건물 2층에 있다는데.”
너의 시선이 본관 2층으로 향했다. 지금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너는 할 릴 없이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눈가에 어리는 것, 마스크를 써도 감출 수 없는 불룩 튀어나온 입에 담긴 뱉어내지 못한 감정들을, 나 또한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할머니, 저기 계실까요?”
부모의 빈자리를, 당신이 매웠을 그 자리를… 나는 빼앗긴 듯했다.
“모르겠구나.”
실없는 생각이었다. 이미 우리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벌어진 뒤였다. 부재한 시간만큼 벌어진 거리를 그만큼의 시간으로 다시 매꾼다한들… 그 시간은 같은 가치를 지니지 않을 터였다.
“아들….”
너는 나를, 돌아보았다. 괜찮을 거다. 말해줘야 했다. 빈말이라 할지라도, 그 빈 것이라도 붙잡고 싶은 간절함을 몇 번이나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좀처럼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도 그걸 바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봤다. 잠시 등 돌린 너의 모습을 지켜보다 그 시선을 따라 병원을 바라보다, 외면하고 싶어 하늘에 시선을 던졌다. 맑고 평온한 하늘, 우울함을 모르는 푸름이…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구름이 야속하기만 했다. 차라리 새까맣게 그늘진 하늘에 비라도 내렸으면… 초겨울, 쓸데없이 날씨가 좋았다.
문득 옛 생각이 떠올랐다. 날씨를 핑계로 한 두 해 미뤄두었던 약속이었다. 너에게 어른의 사정을 이야기할 순 없었기에 적당히 둘러 댔던,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너의 기대를 외면했던 그때… 기억이 뜬구름처럼 밀려들었다.
“아빠?”
“어?”
“이제 그만 돌아가요.”
“그래… 그래야지.”
뜬생각은 뭉치지 못하고 흩어졌다. 실없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냥 가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아들.”
“네?”
“캠핑 갈까?”
나는 네가 왜 그런 것에 로망을 품었는지 알지 못했다. 쓸데없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물론 우리가 아닌 나만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잠깐의 감성 때문에 수반되는 수고, 그 몫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기에, 감히 엄두를 아니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온갖 핑계로 너의 바람을 물리치지 않았던가. 너와 내건 새끼손가락은 거래처와 구두계약과 달리 어떤 제약도, 효력도 없는 막연한 빈말에 지나지 않았건만. 어린 너는 돌아오는 주말이면 몇 번이고 내게 물었다.
내일 캠핑 가는 거죠?
계절을 탓했다. 여름엔 너무 더워서 겨울엔 너무 추워서 그마저 통하지 않는 봄과 가을엔 너의 주위를 돌리기 위해 외식을 하거나 피곤하다며 못 들은 체했다. 주말이면 목이 빠지게 나를 기다리던 네가 더는 나를 반기지 않게 됐을 무렵, 나는 내가 저버린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버지에게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너를 나무란 후였다. 그리고 그 여자의 치부가 확신으로 바뀌던 시기이기도 했다. 주일이라며 교회로 향하는 그 여자가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믿음이 깨부수어지던 때.
“…….”
너는 말없이 눈을 꿈벅였다. 눈가 떠오른 감정을, 반이나 가린 마스크 탓에 나는 읽어내지 못했다. 네가 눈을 깜박일 때마다 그 눈빛에 감춰두고 있을지 모를 정이 가슴을 내리눌렀다. 할머니가 저런 데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당신은 자기 어머니가 어떤 지경인지 알고 있는 거냐… 네가 뱉지 않은 그 말들이, 스스로 억눌러 외면하던 정이… 눈이 내리감길 때마다 심장에 내리치는 듯했다.
“텐트도 없잖아요. 차도….”
‘우리 차는 작아서 안 돼’
캠핑은 큰 차가 있어야 한다는 나의 말에
‘아빠도 큰 차로 바꾸면 되잖아. 집으로도 쓸 수 있는 큰 차! 그걸로 바꾸면 되겠다! 그러면….’
‘안 돼, 우리는 차 못 바꿔’
나는 네게 단호하게 말했다. 차는 많은 걸 대변해준다. 보이지 않은 걸 그럴듯하게 포장해줄뿐더러 가족은 비록 지방의 임대 아파트에 살지언정… 고급 외제차는 그러한 진실마저.... 그런 중요한 것을 겨우 여흥을 즐기기 위해 바꾸자니 어불성설이었다. 너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우물거렸으나 이내 토라졌다. 너의 염원이 꺾인 이후 너는 내게 다시 캠핑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너는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걸까. 후련해야 할 터인데 어째서 더 갑갑하기만 한 걸까. 때문에 준비한 것은, 뒤늦은 것이었다.
“아니… 있어, 트렁크에.”
작디작은 것이었다, 성인 3명이 겨우 누울 만큼. 사춘기를 지나는 너에게 맞지 않은 선물, 굳이 텐트를 사지 않고 그냥 대여했다면…아니 결과는 마찬가지였으리라. 텐트를 장만한 그날, 그 여자에게 캠핑을 가자고 전하자
‘교회 가야 돼’
‘교회? 그딴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뭐 그딴 거? 지금 말 다 했어?’
‘그게 그렇게 중요해?’
‘하, 그게 당신이 할 소리야? 굳이? 지금? 애 다 크고 나서? 애한테 물어봐 가고 싶어 하나!’
그래, 철없던 바람이 지금껏 이어질 리 없었다. 하물며 자신도 그것과 함께 목욕탕에 가는 걸 염원하던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그것을 버리지 못해, 그 여자에 대한 의심과 함께 깊은 구석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달갑지 않으면서도 그 여자를 교회에 다니지 말라 할 수 없는 것 또한 어머니의 모습을 겹쳐봤기 때문일까? 너 또한, 나와 같지 않을까. 차마 너에게 묻지 못했다. 두려웠다. 쓰레기, 그것과 닮아 있을 자신이.
“그럼, 그렇게 해요.”
“어디 생각해둔데 있니?”
“아뇨, 그보다 캠핑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가까운 캠핑장에 전화를 돌렸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휴장 중이거나 장박은 괜찮지만 단박은 곤란하다, 답은 한결같았다.
“굳이 캠핑장에서 해야 할 필요 없지?”
너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당장 마트로 차를 몰았다. 캠핑에 필요한 물건을 하나 둘 카트에 실었다. 캠핑용 화로(2.8), 부탄가스(0.4), 캠핑용 버너(2), 종이냄비(0.5), 고기 1.5kg(3)과 라면(0.5), 즉석밥 1팩(1.1), 생수 2L 1팩(1), 음료수 1.5L 2병(0.5), 바닥 매트(1.7)와 돗자리(2), 차렵 이불(3)… 가격이 만만찮았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 시트 밑에 숨겨뒀던 비상금을 이런 걸로 써버릴 가치가 진정….
“기분도 안 날 텐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요?”
계산대로 향하는 내게 너는 물었다. 나는 멈춰 섰고, 너는 입술을 질근거리는 듯했다, 너의 눈 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미친 짓이었다. 이럴 필요가 있냐고? 이런 사치가 필요하냐고 물어보는 걸까? 지금 우리에게 여흥은 부차적인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답은 간단했다.
“그래.”
나는 카트를 밀어 계산대에서 멀어졌다.
“기왕 캠핑인데 느낌 있게 캠프파이어도 해야지?”
지금 우리에겐 아니 너에겐 이 같은 위로가 절실할 터. 장작을 카트에 싣는 나를 보며 한숨을 쉬는 너는
“그럼 휴대용 버너는 필요 없는 거 아니에요?”
“너 불 붙일 자신 있냐?”
고개를 저었다.
“만약 붙였어도 안 꺼트릴 자신은?”
도리도리
“그래, 그러니까 그건 보험이나 마찬가지야.”
너는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진짜 이래도 돼요?”
무얼 묻는 걸까.
“안 될 건 뭐냐?”
이 사치가 당장 우리 숨통을 조이지는 않으리라.
“그보다 가고 싶은 곳은 정했냐?”
“…… 바다요.”
바다, 그 지긋지긋한 곳.
“그래, 가자.”
삑, 삑, 바코드 소리가 침샘을 자극했다. 자격이 찍히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총 19만 2580원입니다.”
봉투 안에서 오만 원권 네 장을 꺼내 계산했다. 비상금을 전부 탕진하진 않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봉투는 가벼웠다. 사실 원래 무게와 별반 차이는 없었다. 비져 나오는 숨, 그 이유를 가늠하고 싶지 않았다. 막막하기 때문인지, 그저 안도한 탓인지… 나는 감정을 정리하지 않은 채로 과분한 짐과 막연한 낙관을 싣고 출발했다.
산 능선을 넘어서자 익숙한 풍광이 펼쳐졌다. 시커먼 뻘밭에 줄 그인 하늘빛이 어째서인지 누군가의 눈물길처럼 보였다. 그 길에서 시선을 돌리고서 새하얀 모래 시장을 찾아달렸다. 굳이 그 자욱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건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라 했던가.
그렇게 해안길을 따라 한동안 내달린 끝에, 썩 괜찮은 자리를 찾았다. 소나무가 군집을 이루고 그곳에서 조그만 발길을 옮기면 모래사장과 바다가 펼쳐진 곳이었다. 캠핑하기에 그만큼 알맞은 자리도 흔치 않을 듯싶었다. 근교에 간이 화장실이 거슬리기보다 반갑게 느껴졌다.
“여기 괜찮지?”
“그런데 좀 알아봐야 하지 않아요?”
“뭘?”
“여기도 캠핑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우리는 이미 캠핑 금지 구역을 수차례 지나쳐 온 길이었다.
“근처에 경고판이나 현수막 같은 건 없으니 괜찮겠지.”
너는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불안하면 그냥 갈까?”
너는 대답하지 않고 눈치를 살폈다. 불안한 너의 시선은 무엇 때문일까. 그걸 말하지 못하는 건 이미 뒷자리에 가득 실린 짐 때문일까, 하루 내내 대화도 제대로 하지 않는 우리 사이 거리 때문일까. 아니면 그 둘 모두인가, 어느 쪽이던…
“어떻게 그래요.”
나는 안도했다. 너는 차문을 열었다. 바다를 보고 싶다던 녀석은, 나를 돌아보지 않고 모래사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한 탓에, 차에서 내리지 않고 시트를 뒤로 눕혔다. 명절날 귀성길이 이처럼 힘겨울까? 고작 5시간이지 않은가, 한 때는 익숙했던 장거리 운전이 어찌 이리도 고단한 것인지.
눈을 붙여도 잠이 오지 않았다. 형용할 수 없는 이 불안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이렇게 있을 바에 텐트라도 설치해 두는 편히 낫지 않을까. 답을 내릴 수 없는 물음을 제쳐두고 몸을 일으켰다. 생각을 떨쳐내는데 몸을 움직이는 일만 한 것도 없었다.
텐트를 설치하려다 또다시 찾아온 회의, 날씨를 보아하니 텐트에서 숙박은 무리였다. 바닥의 냉기를 막는다 한들 오래된 싸구려 텐트의 천은 낚시꾼들이 바람을 피하기 위해 치는 천막 수준에 가까워 겨울바람을 견디기에 역부족이었다. 지금 우리에겐 덮을 거라곤 차렵이불 하나가 전부, 군 시절 침낭 안에서의 경험이 절대 무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젠장, 불안의 이유가 이거였나?
“뭐하고 계세요?”
“아, 그게… 조립 방법을 모르겠어서….”
“잠깐만요.”
녀석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나를 제치고 텐트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뼈대를 결합하고 천막에 두 개의 뼈대를 교차시켜 끼워 넣는, 거의 모든 조립을 혼자 끝마치고서 나를 돌아보았다.
“텐트 세우는 것 좀 도와주세요.”
텐트를 세우고 네게 뭘 하면 좋을지 물었다.
“모서리에 피크 박아서 고정시켜주세요. 저는 바닥재 깔게요.”
나는 저도 모르게 나온 웃음에 잠시 굳은 채로 너를 바라보았다. 텐트를 사던 당시 원터치 텐트를 두고 지금의 텐트를 샀던 이유가, 비단 가격이 아닌 지금 같은 일을 기대했던 때문이었단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기에.
말을 마친 너는 곧장 차로 향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의구심은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너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껴입을 여분의 옷도 없거니와 침낭이나 이불을 사기에도 늦었다. 역시… 그만두는 거 말곤 달리 방법이 없어 보였다.
어느 틈엔가 바닥재를 깔고 마무리하는 너, 스윽스윽, 정성 들여 이불을 정리하는 소리에 가슴이 쓰렸다. 그래, 저녁을 먹고 말해도 늦지 않으리라.
“아빠.”
바닥재를 다 깔고 밖으로 나온 너에게
“잠은 다른 데서 자요.”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래.”
그저 수긍할 밖에.
알면서도 너는 왜 그런 수고를 감수했을까.
“배고파요.”
“나도 그래.”
버너를 제쳐두고 화로를 꺼내 조립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바비큐는 하고 가야만 했다. 바비큐라 부르기엔 준비한 건 보잘것없었다. 그 보잘것없는 것에 다시 한번 처량해졌다. 어느 것 하나 마음처럼 되는 일이 없었다. 아이가 어릴 때라면 이런 시행착오조차 추억이 되지 않았을까, 낙관이었다, 그조차.
화로 조립을 마치고 장작을 꺼내려 상자를 열었다. 아, 젠장… 보자마자 잘못되었단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화로에 비해 장작이 너무 컸다. 원래 캠핑용 장작은 다 이 크기인가? 아니 애들 장난감만한 화로 밖에 살 수 없는 내 잘못인가.
“그냥 버너에….”
옆에서 지켜보던 너는 말을 하려다 삼켰다. 화로도 있겠다, 직화로 구워 먹을 생각에 불판을 따로 챙기지 않았으니 버너를 쓴다면 라면 말고는 먹을 게 없었다. 그래, 너도 알겠지. 우리는 항상 부족하기만 하구나.
“괜찮아요, 삼겹살 넣고 라면 끓여 먹어요.”
괜찮지 않았다. 고작 노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설픈 인간이지 않은가. 왜 굳이 이런 짓을 자처했을까. 차라리 이 돈으로 아이의 침대를 사거나 소고기를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차라리, 차라리….
“그래… 배고프지?”
화로와 장작을 그대로 두고 일어나 차 안에서 버너를 챙겼다. 라면 봉지를 뜯어 놓고 물이 끓어오르길 기다렸다. 사락, 사락 허망한 기망이 바스라지듯 파도가 모래알을 쓸어내렸다. 그 소리에, 바라본 저 먼 곳에… 아니 눈앞에 저우는 해가 붉은 깃을 흔들며 침몰한다. 너울거리는 기망의 손짓에, 나도 모르게 시울이 붉어졌다, 그 망에 데인듯 부글부글, 기포가 수면 위로 끓어오르자 참을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널브러트린 장작을 집어 들었다. 성큼 걸음을 내딛어 텐트로 향했다.
“아빠…?”
장작을 높이 치켜들었다. 거지 같은 치부를 박살 낼 생각이었다.
“아빠!”
나를 멈춰 세운 것에 고개를 돌렸다. 제 치부로 모든 걸 망쳐버린 그 인간을 바라보던 내가, 거기 그 자리에 네가 있었다.
“뭐 하려고요…?”
스스로 묻는다. 뭘 하려 했더라… 뭐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너무도 명백한 치부를 무엇으로 포장해야 한단 말인가. 고개를 떨구고 발치를 살피던 나는, 허리를 숙여 텐트를 고정해둔 피크에 손을 뻗었다. 그것을 움켜쥐고서 뽑아내려 비틀어봐도 그것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도와줄래?”
“…… 돌아가게요?”
“어떻게 하고 싶니?”
우리 사이에서, 또다시 기망이 장난을 친다.
“라면은… 먹고 가고 싶어요.”
“아니 그보다 더 좋은 걸 먹어야지.”
장작을 힘껏 움켜쥐고 피크를 후려쳤다. 턱, 단단히 박혀있던 피크의 몸체가 삐져나왔다. 턱! 턱! 턱! 수차례, 방망이질 치는 내게 너는 소리쳤다.
“아빠! 아빠가 오자고 했잖아… 아빠가!”
그래, 이 모든 게 나의 헛된 믿음 탓이었다.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것은 그저 망상에 지나지 않을 기망… 충분히 빼어낸 그것을 움켜쥐어 그대로 잡아당겼다.
“그래…”
나는 움켜쥔 피크를…
“내가 언제 집에 가자던?”
뒤집어 바닥에 세우고 장작을 내리쳤다. 피크가 박힌 장작에서 부스럼이 떨어졌다. 이렇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그 조그만 화로에도 충분한 크기가 되리라.
“아빠 좀 도와줄래?”
네가, 금방이라도 무언가 터져버릴 것만 같던 아이가, 미소 짓는다.
우리는 함께 장작을 팼다. 어느 부분을 노려야 알맞은 크기가 될지 서로 토론 아닌 토론과 논쟁 아닌 논쟁을 벌이며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분투했다. 그렇게 얼마즘 충분한 양이 쌓이자, 화로에 장작을 담았다. 버너에 장작을 올렸으나 좀처럼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너는 핸드폰을 뒤적였다.
“불씨를 만들어야 한데요.”
알고 있다. 아궁이로 감자를 굽고 낙엽을 그러모아 고구마를 먹었던 어린 시절을 보낸 나였다. 너는 솔선해서 불쏘시개를 찾기 시작했다.
“고기 구워 먹을 거니까, 비닐 같은 건 안 된다!”
“저도 알아요!”
주변을 살핀 들 쓸만한 게 있으려나… 낙엽이 있다한들 소나무 잎이라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 같았다. 너는 소나무 밭을 맴돌다 차 안을 뒤적거리더니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내게로 달려와 종이 냄비를 집어 들었다.
“이것도 일단 종이니까…”
“코팅되어 있는 거 아니야? 태우면…”
“그럼 여기에 음식 해 먹는 거부터 에러 아니에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우리는 라면과 즉석밥을 끓일 것만 남겨두고 종이 냄비를 장작 사이사이 넣어두어 불을 붙였다.
“위험한 것들 저리 치워라.”
불길을 일으키려 부채질을 했으나 소용없었다. 종이 냄비는 장작에 그을음만 남기고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너는 나를 돌아보았다.
“이제 어떻게 해요?”
너의 눈빛, 나를 향한 그 눈빛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고생 좀 하면 되지.”
텐트 근처에 두었던 피크를 다시 집어 너에게 건네고서 장작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사.”
“뭐라고요?”
피크를 쥔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다시 말했다.
“조사부리라고.”
“그게 무슨 뜻이에요?”
“잘게 쪼개라고, 영화 같은 데서 안 들어봤어?”
“들어는 봤는데… 아빠, 사투리도 해?”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아빠도… 여기 오래 살았거든.”
“아, 그건 몰랐네. 난 아빠가 할아버지랑 완전 남이라, 여기 안 산 줄 알았어.”
“남이지, 그 양반이랑은. 다른 양반은 남보다 못하고.”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헤집어트렸다.
“빨리 끝내자, 바비큐 해야지.”
쪼개 넣은 장작 부스러미로 불을 붙였다. 배를 채운 우리는 쓸데없이 큰 장작들로 해변가에 모닥불을 만들고서 고정되지 않은 텐트를 끌고 그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 안에서 우리는 가만히 멍 때린다.
너울거리는 불, 일렁거리는 검은 파도와 등불 하나 없이 떠오른 광원은 경계를 알 수 없는 어둠에 아스라이, 부스러지는 포말에 밀려 이지러지었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한이 쌓이던 때면 이렇게 바다를 보곤 했다. 그 비린내가 죽도록 싫었건만 나를 진정시키는 것 또한 그것에서 비롯된 푸름이었다. 경계를 알 수 없는 푸름과 귓가를 두드리는 일정한 리듬 속에 부글거리는 포말이 모래알에 흩어지듯 마음을 쓸어내렸다.
“뜻대로 하거라…”
목사와 날 선 말을 주고받은 그날에 찾았던 바다에서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듣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그 놈의 뜻대로, 뜻대로… 나는 누군가의 종노릇을 하고 싶은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지금 벗어나지 않는다면 평생 그런 삶을 살아야 하리라. 그렇기에 나는 어머니께 내 뜻대로 하겠다, 말하려 했다.
“네 뜻대로 하거라.”
“신의… 뜻이 아니고요?”
“그 사람이 신은 아니지 않느냐.”
“저는… 그런 줄 알았는데요.”
“그 사람은 신의 말씀을 전할 뿐이지. 어미가 인간의 말도 구분하지 못할까?”
나는 바다를 돌아보았다.
“진짜… 그래도 돼요?”
어머니는 나의 머리에 손을 올리시고 부드럽게 쓸어내리셨다.
“내 너를 믿고 있단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나는 원하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치졸한 인간은 어머니의 설득으로 생활비는 지원했으나 학비는 일체 주지 않았다. 그 치졸함에 나는 치를 떨었다. 인간이란 본디 돈 앞에서 옹졸 해지는 법이었다. 그 치졸함에, 옹졸 해지는 나 역시도….
타닥타닥, 불티가 터지는 소리와 타아타아, 포말이 부서지는 소리가 망각하고 싶은 기억과 감정을 밀어 넣었다. 나를 기망하던 것들이 새로운 기망을 불어넣고자… 하지만 이제는 그게 뭐라 해도 좋았다.
“아빠, 할머니 원망스럽죠?”
“아니 그렇지도 않아.”
“거짓말, 그럼 왜 그러는 건데요?”
긴 이야기였다, 굳이 들추고 싶지 않은 나의 옹졸함이었다.
“글쎄… 허영한 것을, 허령 하다고 믿어서일까. 그리고 그런 믿음을….”
“누굴 믿었는데요?”
나는 너를 돌아보았다. 모르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가 얼마나 독실한 신자인지를, 너 역시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건 너의 어미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의 눈빛은 모닥불 빛에 이지러져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떤 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이만… 가자.”
“…… 네.”
우리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풀어놓은 물건들을 정리하듯 마음을 다잡았다. 주변을 정리하고 짐을 차 안에 모두 싣자 너는 아쉬운 듯 바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 아직 무언가 남겨둔 것처럼. 나는 너를 재촉했다, 추스르고 정리할 시간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예전으로 돌아갈 때였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려는 순간, 너는 내게 말했다.
“아빠, 할머니… 너무 미워하지 마.”
“할머니가 아니라… 신이 싫은 거래도.”
“신이 왜 싫은데?”
왜냐니… 이유는 차고 넘치지 않은가.
“아빠가 왜 신을 싫어하는 거 같은데?”
“되게 애 같은 거 알아?”
“아빠가? 그런 걸 믿는 사람들이 아니고?”
“어쩔 수 없는 거 알잖아, 아빠도. 다 똑같아.”
“뭐가 같다는 거야?”
“아빠는 그냥 미워할 대상이 필요한 거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그래,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던 거야.”
“그 대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게 아니라…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잘못한 거지.”
나는 대답하지 않고서 시동을 걸었다. 더 말해봐야 입만 아팠다. 기어봉을 잡고 드라이브로 기어를 변경하기 무섭게 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이해해 할머니도… 엄마도.”
기어를 다시 파킹으로 변경하고 네게 쏘아붙였다.
“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너는 잠시 머뭇거렸다. 마치 오래전 해야 했던 이야기를 이제야 털어놓듯.
“갑자기 집에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여기저기 딱지 붙일 때… 엄마가 그 아저씨들한테 그러지 말라고 우는데, 나는 엄마한테 그러면 안된다고 말릴 수밖에 없었어. 그러니까 엄마는… 아빠가 참 많이 미웠을 거야.”
나는 고개를 돌렸다. 변명조차 할 수 없는… 나의 치부였다.
“그래도 엄마… 처음엔 교회에서 매일 아빠가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그랬을 거다. 그래야만 벗어날 수 있을 테니. 그건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한 기도였다.
“엄마가 돌아선 건… 아빠 때문이기도 해.”
“그래, 나 때문이겠지. 애초에 그런 일….”
“아니 아빠 한동안 연락 안 됐잖아.”
“……”
우리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서로… 아니 나에겐 이를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다. 알고 잇지 않은가? 그게 누구의 잘못인지, 그 모든 게 자신에게서 비롯된 걸 부정할 수 없었기에 그 책임으로부터…
“아빠는 도망간 거라고, 엄마가 그랬어. 우리 같은 건 버려두고 혼자 가버린 거라고.”
“그건….”
“괜찮아 이해할 수 있어, 아빠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너는 나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걸까. 어른인 그 여자도 하지 못한 걸 어찌 어린 네가 그럴 수 있었을까. 믿음의 근거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실패했고 여전히 실패한 채였다. 나는 누구도 구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못했다. 그렇기에 네가 나를 떠나는 건 당연하리라 생각했다, 내가 쓰레기를 뿌리쳤듯.
“그때 할머니한테 전화했어. 할머니가 그랬어. 믿으라고…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않느냐고.”
허탈한 숨이 삐져 나왔다. 그래, 당연한 일이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로 아이가 나를 선택했을 리 없었다. 비단 어머니, 당신 덕이었다. 하긴 과거의 실패조차 버거워하는 인간의 무엇을 의지한단 말인가. 나는….
떠나고 싶었다. 이 자리에서, 이 바다에서조차 멀리… 어디로든.
기어를 바꿔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엉기는 이 불편한 응어리 탓에, 나는 이를 참지 못했다.
“왜, 왜 아빠를 믿었는데?”
대답은 곧장 나오지 않았다. 그 잠시간 침묵 속에서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드라이브로 기어를 바꿨다. 굳이 들어야 할 필요 없었다.
“아빠니까.”
꾹, 브레이크를 밟고서, 너의 대답을 곱씹었다. 단지 혈육이란 이유 때문인가? 그렇다면 네가 어미를 택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허탈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어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나는 브레이크를 떼고 엑셀을 밟았다.
“할머니… 괜찮을까?”
어찌 그걸 알 수 있을까, 한낱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글쎄… 그렇게 되길 빌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