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 갬빗
퀸즈갬빗,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체스 용어가 주된 화제로 떠올랐다. 어벤져스의 엔드 게임처럼 우리나라에서 익숙하지 않은 용어가 자주 떠오르는 게 이상했다. 알고 보니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이야기였다. 그리 길지 않는 7화 분량의 짧은 단편극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과연, 왜 이 드라마가 그리도 인기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베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베스가 아니다.
내가 이 드라마에서 눈길이 갔던 건 켄터키 주 전 챔피언이었던 해리 벨릭이다.
그는 나와 달리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간이었다. 해리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좋게 말하면 그렇고... 자만하고 있었다. 그럴만했지 주 챔피언이지 않은가? 처음 베스를 만났을 때 일부러 경기 시간에 늦게 나타난다거나 경기 도중 하품을 하거나 대놓고 베스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오만한 인간인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해리는 처음으로 만난 벽 앞에서 현실을 부정하지만 이어지는 베스의 말에
이제 알겠어?
아니면 보드에서 끝낼까?
킹을 스스로 넘어트린다. 해리는 인정했다. 경기 전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곤 없던 그가 패배를 인정한 건 베스를 인정해서가 아닌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서 였으리라. 하지만 결국 이 선택은 이번 경기만이 아니라 체스 마스터란 목표 역시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
꾸준히 노력을 이어갔다면 그랜드 마스터는 아닐지라도 마스터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해리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포기하지 않고 여러 책을 섭렵하며 언젠가는 베스를 넘을 수 있지 않을까 고대한다. 보르고프에게 패배한 이후 베스에게 전화를 건 이유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자신의 노력이 그녀의 재능에 못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는... 결국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다.
그가 알려주려는 수는 그녀의 직관에 처참히 무너진다. 그녀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노력이란 무기가 고작 몇 초만에 박살난다. 해리에게 베스는 구체화된 현실의 벽이었다. 그녀는 그와 달리 직관이 뛰어났고, 그녀는 그와 달리 숨쉬듯 매순간 체스를 생각했으며, 그녀는 그와 달리 그가 보지 못한 너머의 수들을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그가 가지지 못한 재능의 현신이었다.
어쩌면 해리에게 베스는 체스 그 차체였는지 모른다. 그녀를 갖기 위해 차를 사고, 이를 교정하고,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대학에서 멀리 떨어진 호텔을 잡는다. 노력했지만 해리는 그녀 옆에 설 수 없었다.
너는 나에게 버거워.
그는 그을리고 말았다. 열정을 지필 연료가 다 떨어져버렸다. 좋아하지만 일생을 다 받치고 싶지 않단 걸 깨닫고 포기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는 그녀에게 말한다.
덕분에 깨달았어.
난 체스를 사랑하지 않아.
나는 내게 되물었다.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을까? 매순간 순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지금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또다시 나는 자맥질한다. 이 벗어날 길 없는 혐오의 늪을 허우적거리며 잠겨오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도 이제는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인제그만 나도 인정할 때가 온 걸지도 모른다.
처음 이 글은 꽤나 희망적인 글이었다. 포기할 수 없다는 자기 고백과 나와 같은 이들에게 같잖은 조언을 주저리 늘어놓았다.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나는 자의으로 해석한 해리란 캐릭터를 왜곡한 채로 그저 현실에 주저앉은 머저리라 생각했으리라.
'체스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같은 있지도 않은 대사까지 만들어서... 그를 패배자라 낙인 찍었다. 그래, 그가 옳았다. 그의 인생에 체스는 전부가 아니었고 체스 말고도 그에게 남은 것은 수없이 많았다. 그와 나를 동일시 했으나, 사실 그렇지 않았다. 문턱조차 넘지 못한 나와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해리는 결코 동등한 급이 아니었다. 그 사실조차 나는 부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보다 나은 사람이라 자위하고 있었다. 멍청하게도.
현실은 계속 나에게 다그친다. 이만 포기하라고, 그만 현실을 인정하라고. 나는 비루하고 내 글 또한 그러한 것이다. 쓰레기였다. 겨우 그깟 것이 전부인 나 역시 그러할지다. 자아도취에 빠진, 예술가 흉내내고픈 어리숙한 한량, 그것이 나의 현실이었다. 같잖게도.
그런 주제에 희망이 가득 담긴 이상한 글이나 싸지르고 있었다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오랜 옛날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말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영향력이 달라진다. 고작 나 같은 사람이 늘어놓는 허의한 위로, 조언이 그들에게 무슨 설득력을 지닐까? 나조차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 나는... 글을 사랑하지 않는다.
지금껏 글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그저 내가 사랑하고 있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비루한 인간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에 나는 그것을 선망했던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해리가 아니라 두 차례 잠깐 나온 그 의과대생이지 않았을까? 아니... 아니야, 그녀는 의과대생이잖아? 버젖히 스스로 서지도 못한 인간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그래... 그래... 써놓고 보니 알겠네. 이건 그냥 일방적인 짝사랑에 불과했다. 상대에게 한참 못 미치는 혼자만의 연정에 취해서 상사병에 걸린 아둔한 인간, 그게 나였구나. 나는 이 사랑을 지속해야 하는 걸까? 그저 아픔일 뿐이다. 이 미련하고도 보답 받을 수 없는... 그럼에도 나는 왜 놓지 못하는 걸까. 이건 미련일까, 집착일까. 모르겠다. 되물어도 항상 같은 답에 봉착한다.
그게 아니면 난 무엇으로 살아야 하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아는 건... 그만두고 싶지 않다는 마음 뿐이다. 그건 살고자 하는 용사의 의지일까, 죽는 것조차 두려운 겁쟁이의 변명일까. 이 또한 나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이 마음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는 것 뿐이다. 고작 그 뿐이다. 결연하거나 단호하다거나 뭐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닌 어쩌면 변명에 가까울 말이지만... 지금으로썬 이 답이 고작인 것 같아.
그러니... 너는 나에게 버겁고 현실은 깨닫으라 다그친데도 난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