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행복' 리뷰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아마도 정유정 작가는 이 문장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듯하다. 이보다 완전하게 책을 설명해주는 문구는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사는 간단하다. 나르시시스트인 유나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인생의 결점을 제거하나, 종극에 파멸을 맞는다.
정유정 작가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빈틈없는 정교한 서사와 치밀한 배경 설정에 있다. ‘7년의 밤’과 ‘종의 기원’이 그랬고 '28’ 또한 그런 점에서 작가의 장점을 잘 나타난 책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완전한 행복’은 어떠한가. 해답은 작가의 말에 있었다. ‘한 인간이 타인의 행복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타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으므로.’ 즉, 이 소설의 중점은 압도적 ‘서사 위에 긴장감’이 아니라 나르시시스트의 행복을 위해 파괴된 ‘피해자의 행복’에 있다.
이야기의 화자는 총 세 명으로 재혼한 그녀의 딸 지유와 남편인 차은호, 언니 재인이다. 그들은 모두 가스라이팅으로 유나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 너무 가까이 있어 교묘하게 유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들은 유나가 자신을 갉아먹는데도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유나가 자신에게 너무 소중한 엄마이기에, 자신이 너무도 사랑하는 여자이기에, 안쓰러운 동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유나가 정말 살인을 했는가?’가 아니라 ‘유나는 어떻게 타인의 행복을 망가트렸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이야기는 ‘유나가 살인을 저질렀는가?’를 중심으로 이 피해자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작가는 이야기의 중심을 ‘유나가 피해자들을 어떻게 조종하는가’에 맞췄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 명의 나르시시스트이자 사이코패스인 유나의 결점 없는 인생이자 완벽한 행복을 위해 자신들의 행복을 파괴당한 이들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일까? 적어도 이들에겐 ‘가족’에 있을 것이다. 지유는 아버지와 관계가, 재인은 부모와 관계가, 은호는 아들과 관계가 파괴되었다. 행복의 근간이 되는 가정이 완전히 파괴된 것이다. 이들은 ‘평범’할 수조차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이는 무엇 때문인가? ‘특별한 존재’인 유나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무시한 결과였다. 유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도 아닌 ‘자신의 행복’이었기에.
그렇기에 이번 작품은 초점은 ‘악인’이 아닌 ‘피해자’에게 있다. 이러한 점은 ‘7년의 밤’과 비슷하나 ‘완전한 행복’과의 차이는 ‘악한에 대한 탐구’보다 ‘피해자에 대한 이해’가 앞섰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희생된 것은 서사다. 유나로 통하나 각각의 다른 인물이 주요한 이야기이기에 긴박하게 조여 오는 긴장감을 기대하긴 힘들다. 물론 어디까지나 정유정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은 작가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니 이를 기대하던 사람들도 만족할 수 있으리라.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너무도 명징하게 ‘작가의 말’로 시사하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읽기 전 ‘작가의 말’을 먼저 읽고 독서하길 추천드린다.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보다 그들이 겪은 교묘한 가스라이팅이 이 책의 주요 골자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이다.
행복은 무엇일까? 더하는 삶일까, 유나의 말처럼 불행의 가능성을 제거해버리는 걸까. 우리는 행복이 단순한 불행의 부재로 느끼지 않는다. 만약 그런 것이 행복이라면 해피밀 세트의 조잡한 장난감을 들고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우리는 웃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하는 삶인가? 택배 상자가 집 앞에 도착하면 웃는 걸 보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집안 구석에 쌓여있는 택배 상자를 보고 미소를 짓는 사람은 흔치 않으리라.
결국 행복은 더하는 것도, 빼는 것도 아닌 ‘긍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어떤 상황’이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모호한 정의는 사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명확하게 정립할 순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행복한 일이 누구에겐 불행하기 그지없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독서 또한 누군가에겐 괴롭기만 한 일이지 않은가.
누군가는 ‘행복’이랑 ‘즐거운 것’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모든 종류의 독서를 즐기지 않듯. 행위 자체가 그저 즐거움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즐거움은 어떻게 얻어지는 걸까. 좋아하는 일을 행할 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유나는 ‘제거하는 일’을 즐겼던 건 아닐까? 어쩌면 마지막에 완전하지 못할 자신을 제거하는 것으로 ‘완전한 행복’에 이른 것은 아니었을까.
허나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완전히 파괴된 은호의 삶을, 한국에 남고 싶지 않았던 유나와 재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