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통

by 겨우사리

“좀 어떤가요?”


휠체어의 노인은 찌푸린 인상을 온화한 미소로 바꾸어 대꾸했다.


“아무렴… 아무렇지 않다오, 임자. 참… 묘한 일이지 않소? 이게 사라진 것도 오래전인데 내 몸뚱이는 이눔이 사라졌단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오. 그래도… 다행이라고 느꼈다오. 배운 것 하나 없는 못난 인간이라, 내 의지할 건 몸뚱이뿐인데 밥줄인 팔이 그랬다면… 무엇으로 세상을 살아갈까. 그러니 다리를 가져간 건 크나큰 불행 중 그나마 신이 나를 온전히 버리지 않은 것 같았다오. 그렇지 않소? 덕칠이 녀석… 그 술 좋아하는 놈 말이오. 마셨다하면 집안을 들쑤셔 놓았던 놈은 얼마전에 풍으로 쓰러졌다는데… 누구 하나 오지 않는다고 하더이다. 황혼 이혼이라던가? 그 직후에 충격으로 그리 됐다는데… 술만 들어갔다하면 그리 패악질을 해댔으니 제 업보 아니겠냐만은…. 그래도 애비를 여기 맡긴 건 매정할 순 있어도 비정할 수 없는 게 혈육이서 아니겠소…. 그러니 다리 하나로 말년에 당신한테 기댈 수 있으니 남는 장사요, 안 그렇소? 이 놈이 멀쩡했으면… 아마 성정을 죽이지 못하구 덕칠이 꼬라지가 됐겠지. 그것들 내 얼굴은 안 봐도 임자 앓는 소리에 저 먼길도 마다 않고 한 걸음에 왔지 않소? 미국이고 캐나다고… 매번 그놈의 군소리 없이 달려온 놈들을 보며 어찌나 서럽던지. 아무리 임자라도 그날만큼은 눈꼴이시여 같이 있을 수가 있어야지. 나야… 이렇게 여기… 던져두고 가버려도 당신은 꼭 품어가지 않았소. 당신이 아니었으면… 여기 이 자리도 보전하지 못했을거요, 안 그렇소? 그런 걸 어찌 견디란 말이오. 그래서 나는… 여 있고 싶다 했다오. 나이를 먹으니, 그리도 뜨고 싶었던 곳인데 되도 않는 미련이 생긴다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렇게 사셨으니. 맞고 때리고 걷어차고… 그게 싫어 뛰쳐나온 집구석이… 무서웠다오. 그 불 같은 성정이 어딜 가지 않고 내 가슴 안에 있을 화산이 터져버려 어찌할 수 없이 번져버린 불길에 뒤늦게 후회하기보다… 멀리 하는 편이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오. 당신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가족이란 것도 사랑이란 것도… 믿지 않았을 거요. 다 덕분이라오. 그러니 미안해 할 필요 없다오. 그날로 되돌아간데도 나는 그리 할 테요. 당신을 보지 못하는 걸 어찌 견디겠소? 그저 미안할 뿐이라오. 좀더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좀더 빨리 말해주지 못해서…. 밤늦게까지 나무를 깎고 현을 조이는 일이 그렇게 수행하듯 나를 다스리는 일이 퍽… 이나 그렇지 않소 그래, 거짓말이라오. 임자는 못 속이겠어. 내 당신에게 어디까지 보여야 속이 시원하겠소? 날 부끄럽게 하지 마시구려. 당신에겐 고백하지 않았소, 바이올린을 켜고 싶었다고. 집을 나와 양복 입은 양반들 주머니를 슬쩍하던 시절에 우연히 들어간 극장에서…. 그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서, 나는 사랑에 빠졌다오. 그게 첫사랑이라고도 말하지 않았소? 그래도… 사람은 임자가 처음이라오. 그래, 웃으시오. 나는 천운을 타고 났으니 내 손길로 태어난 것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뛰게 하는 것이…. 모두 큰 행운이었다오. 그날 당신을 만났으니… 그 자리가 이렇게 아파올 때면 내… 당신이… 언제나… 있다… 느낀다오."


노인은 사라진 한쪽 자리를 움켜쥔 채로,


"이게 참 아프고 아프다네. 참으로… 말년에 주책이지 않소, 의사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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