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제목 : 공허한 십자가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
책소개
<용의자 X의 헌신>, <몽환화>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장편소설. 출간 즉시 일본 베스트셀러 2위, 일본 독자들의 찬사가 줄 잇는 <공허한 십자가>는 딸을 잃은 주인공 나카하라가 형사로부터 전부인의 사망 소식을 들으며 시작된다.
20년 전, 두 부부가 잠시 잡을 비운 사이 침입한 강도로부터 딸 마나미가 죽고, 더 이상 부부로서의 삶을 살 수 없어 각자의 길로 간다. 나카하라는 5년 전 회사를 관두고 반려동물 장례사로 생활하고 있으며, 그의 전부인 사요코는 최근까지 도벽증 환자들에 대해 취재하고 있었다. 최근 5년 동안 둘 사이엔 큰 왕래가 없었기 때문에 나카하라는 그녀의 장례식에 조문차 다녀간다.
사요코를 죽인 범인은 곧바로 자백했다. 일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백발이 무성하고 야윈 노인이었다. 사요코의 가족들도, 물론 나카하라도 본 적 없는 남자였다. 범행 동기는 우발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범인의 가족들로부터 '장인의 범행을 용서해달라'는 편지가 도착한다.
나카하라의 딸과 아내는 모두 살해당했다. 마치 같은 사람인 것처럼, 두 범인은 모두 우발적이라 진술했고 감형받었다. 그들에게 내려진 사형이 수감형으로 줄었고, 범죄 사실에 대한 진술이 형을 결정했다. 가족들은 울분을 삼켰고, 나카하라는 단념했다.
[출처 : 알라딘]
기억에 남은 한 문장
사람을 죽인 사람은 계획적이든 아니든, 충동적이든 아니든, 또 사람을 죽일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을 사형에 처하지 않고 유기형을 내리는 일이 적지 않다.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산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징역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은 재범률이 높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갱생했느냐 안 했느냐를 완벽하게 판단할 방법이 없다면, 갱생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형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p. 213
감상평
‘사형 폐지론자의 눈에는 범죄 피해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위의 문장은 사형제도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끝나지 않을 사형제도의 찬반 논쟁, 무엇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법은 가해자와 피해자 중에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는 걸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저런 사유와 반성을 했다며 감형을 하는 게 옳은 것인가? 사람인 판사는 범죄자의 마음을 어떻게 알고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본인의 가족이나 지인이어도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이 완벽한 심판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초점을 더 맞추는 법과 제도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