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k Sep 27. 2021

#제주도 한 달 살기

3. 나를 만들어 가는 길, 다시 한 걸음을 내딛다

새벽 6시. 아직은 해가 뜨지 않은 시간. 거대한 배 안으로 크고 작은 차들이 하나 둘 들어가기 시작한다. 근무자들의 안내를 따라 주차를 하면 바퀴를 튼튼한 끈으로 고정시킨다. 그러면 준비는 끝난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각자의 객실로 이동하여 대기한다. 


곧 배는 닻을 끌어올리고 완도 항구에서 멀어진다. 시작되었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제주도 한 달 살기의 출발이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할 수 있을까? 다니던 회사를 떠나고 잠시 쉼표를 찍고 싶었다. 이때가 아니면 못할 것 같았다. 퇴사를 하기 전부터 배편과 숙소를 모두 준비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그리 짧지 않기에 캐리어 하나로 해결할 수 없고 렌트비를 생각하면 차를 가지고 가는 게 이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숙소는 어디로 할 지 고민을 하다가 제주도 하면 그래도 ‘바다’지라는 생각으로 에메랄드빛 바다 앞에 위치한 곳으로 예약을 했다. 


‘2020년 1월 29일부터 2월 27일까지 29박 30일, 정확히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시간을 보냈다. 난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었는지 돌아본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이런 시간이 과연 주어질 수 있었을까? 아마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난 7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마침표를 찍고 제주도로 떠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직을 할 때는 보통 재직 중에 다음 회사를 찾아놓고 쉼 없이 바로 넘어가는 게 현명하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측면을 생각하면 충분히 공감한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상태가 되면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자신의 눈높이에 맡지 않는 회사를 어쩔 수 없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말할 수 있겠지만 이때가 아니면 제주도에서 한 달간 살아보는 일이 언제 생길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재직 중에 몇 번의 면접을 통해 ‘내 경력으로 다른 회사를 못 찾을 정도는 아니겠구나’라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기에 휴식을 택하고 과감하게 사직서를 던졌다. 그리고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 한 달은 금세 시간이 흘러갔다. 평소에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보며 바쁘게 생활했지만 퇴사 후에는 알람을 끄고 살며 늦잠도 자고, 하고 싶었던 이것저것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한 달간은 제주도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제주도에서 보낸 한 달은 꿈만 같았던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으면 푸른 바다가 눈 앞에 펼쳐있었다. 제주도에서 협재와 금능의 바다는 에메랄드 빛을 띠고 있다. 그런 바다를 매일 감상했다. 숙소 앞에는 흔들의자가 있었는데 그 의자에 앉아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며 여러 생각에 잠기거나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릴 때가 좋았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전 직장 동료가 제주도에 와서 만났었는데 그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과장님, 인상이 아주 편하게 변하신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받으며 보냈던 직장 생활에서 탈출한 나는 그렇게 변해있었다. 사람의 마음과 성격은 얼굴에 나타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만큼 마음에 평온을 찾을 수 있던 시기였다. 


평소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11시쯤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보면 몇 시간은 흘러있었다. 그리고 17시쯤 돌아와 집 주위를 산책하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1주일에 한 번은 한라산을 다녀오려고 했었다. 예전에는 그리 시간을 머물지 않다 보니 한라산 정상에 있는 백록담만 보고 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보지 않았던 윗세오름, 사라오름, 어승생악도 가볼 수 있었다. 각각의 매력이 있었지만 정상에서 보는 제주도의 여러 오름들과 저 멀리 펼쳐있는 수평선의 풍경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또 여러 생각들을 보다 깊게 해 볼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것들을 해볼지, 나 스스로에 대해서, 여러 관계들에 대해서 등 평소보다 더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기에 이 시간을 통해 어느 정도의 방향은 잡았다고 생각한다. 읽었던 책에서 기억나는 구절이 있다. 자신을 알기 위해 혼자 여행을 해보라고 한다. 그러면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하는 상황을 겪어보면 내가 무엇을 잘하며 어떤 점이 부족하고 어떻게 극복하는 등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제주도에서의 시간이 나에게도 비슷하게 다가왔다. 관광을 하려 렌즈 안에 풍경을 담는 것이 우선이 아닌 나를 더 알기 위해 펜을 더 많이 들었었다. 


제주도에서의 한 달,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어줄 시간이라고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생각을 조심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