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는 식도폐쇄라는 선천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병명이었다. 수가 내 뱃속에 온전하게 자리 잡기 전까지 사람이 음식을 먹는 행위는 당연한 것이어서 음식을 삼킬 수 없게 태어난다는 것이 엄마로서 죄가 없는 죄인이 된 마음이었다.
쌍둥이 우에게 밤낮으로 젖을 물리는 동안 수는 한 번도 물려볼 수 없었고 젖병수유도 백일을 훨씬 넘겨 시작했다. 수가 처음으로 젖병을 빤 날 녀석의 신기해하면서도 반짝이는 눈빛을 잊지 못한다. 자그마한 플라스틱 상자 안에 누워서 늘 공갈젖꼭지로만 빨기 욕구를 채웠던 수는 드디어 젖꼭지로 흘러나오는 분유를 접한 후 하루가 다르게 수유량이 늘었다. 침조차도 삼킬 수 없었던 수에게 일어난 첫 기적이었다. 그때에는 그래, 이렇게만 크면 될 거야라는 안도감이 밀려왔었고 마치 이것이 끝인 것처럼 느껴졌지만 끝은 또 다른 시작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쌍둥이 우는 현재 후기 이유식을 거뜬히 먹지만 수는 여전히 곱게 간 미음 수준의 초기 이유식을 먹는다. 우는 사물을 잡고 일어서는 것이 쉽지만 수는 네발기기조차 어려워 울음을 터트리는 일이 허다하다. 수가 우처럼 어서 입자가 굵은 이유식도 먹을 수 있기를, 우처럼 잡고 일어서는 것이 쉬워지기를, 우처럼 내가 하는 말을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기를, 우처럼 물건을 잡는 손가락 힘이 길러지기를, 우처럼, 우처럼, 우처럼… 수가 개월 수에 맞게 크고 있는 우처럼 크길 바라는 마음에 조급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수가 종종 이유식이나 분유를 넘기지 못해 구토를 할 때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만다. 맞아, 수는 태어나기 전부터 양수도 제대로 삼키지 못했던 아이였다. 날이 갈수록 내 배는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고무풍선처럼 늘어났고 두 차례의 양수감압술을 통해 1.5리터 페트병 두세 개가 가득 찬 양수를 빼게 만든 아이였다.
다행히 지금은 삼킬 순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하고는 나의 조바심을 저 멀리 내려놓게 된다. 베이비가드로 둘러진 작은 공간에서 둘을 가둬놓고 같이 키우다 보니 늘 비교가 되었다. 수가 분유를 꿀떡꿀떡 삼키는 일도, 이유식을 먹게 된 일도, 오랜 병동생활로 사시가 된 줄 알았는데 정상으로 돌아온 일도, 장난감 없이 혼자 놀던 기간이 길어 자신의 손만 바라보다 어느 날 다른 사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날도, 여러 번의 수술과 아픈 처치로 인하여 공포에 차 있던 눈빛이 차츰 안정된 것도, 낯설어하던 나에게 이제 미소를 지어주는 일도, 뒤집기를 했던 날도, 옹알이를 시작했던 날도, 양손에 장난감을 들고 소리치며 좋아했던 날도, 돌이켜보니 수의 모든 순간들이 느렸지만 기적이었다. 수는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어느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었다. 그런 수에게 더 빨리, 더 멀리 달리라고 채찍질하는 것은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었을 테다.
수가 수 십 개월을 지나 어른이 되어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지금 뒤처진 몇 개월의 시간이 인생 전체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까. 사람마다 각자의 속도가 있고 그 속도는 모두 다를 것이다. 남들처럼, 남들과 같이, 남들만큼만 하길 바라는 세상에서 오늘도 수는 내게 조금 늦어도, 조금 달라도 괜찮다고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