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재입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창문 안에서 지난 계절에는 만발한 벚꽃을 보았더랬다. 연분홍빛 벚꽃나무 아래에서 저 멀리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보았고 봄비에 속절없이 떨어진 꽃잎도 보았다. 우수형제가 태어나 처음 맞이하는 봄이라는 계절에는 당연하게도 함께 벚꽃을 볼 줄 알았다. 흩날리는 벚꽃잎들 아래에서 우수형제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올해 가장 찬란했던 봄날은 수와 함께 병원 안에서 사진 속 풍경을 바라보듯 지나가버렸고 계절이 바뀌어 또다시 수와 함께 병원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푸릇한 여름이다.
수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수는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120일을 보냈다. 태어나서 수를 처음 안아보기까지 두 달 넘게 걸렸고 젖병수유를 하기까지 세 달 넘게 걸렸다. 수를 살게 만든 이곳에서 나는 수와 함께 입원을 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입원을 해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 제법 와봤다고 입원 전 날밤은 캐리어에 더 이상 불필요한 짐을 실지 않을 수 있었고 다인실을 이용했을 때의 긴장감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번에도 운 좋게 창가자리를 배정받았는데 이곳 창 밖의 풍경은 서울에서 살아도 쉽게 볼 수 없는 경치라 병실 비용이 아깝지 않았다. 낮에는 막힘없이 시원하게 펼쳐진 한강을 볼 수 있고 밤에도 역시 한강과 어우러진 도심의 화려한 불빛을 볼 수 있다. 때론 입원이 집보다 편할 때가 있는데 그 이유는 쌍둥이 중에 한 아이만 케어하고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무엇보다 삼시세끼 남이 해주는 밥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들 정도로 집에서의 생활이 고되었다니 웃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보호자로서의 생활이다.
배정받은 병실 안에서는 수가 가장 어리다. 모두 어떠한 이유로 병상에 누워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아이를 포함하여 다른 아이들의 울음소리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저려온다. 자신만한 인형을 끌어안고 무해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이 아이들이 왜 아파야 하는가. 병원 밖이나 sns 속에서 보이는 아이들은 너무나도 멀쩡하고 너무나도 곱디곱게 크고 있지만 병원 안에서의 아이들은 다르다. 수처럼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도 있지만 속을 열어보면 부모들의 눈물로 가득 차 있다.
창 밖의 한강은 지난 봄날에도 오늘의 여름날에도 늘 변함없이 그대로였고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푸르른 잎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그 사이 우리 수도 부쩍 커있었다. 지난날 병상 위에 배를 대고 엎드려있던 수는 이제 장난감을 잡고 서 있게 되었고 좋고 싫고의
감정표현이 더욱 명확해졌다. 그런 아기의
팔과 발에 혈관을 찾아서 정맥주사를 놓는 일이란 간호사들에게 고역이었다. 자지러지는 수의 울음소리를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나는 여전히 아들의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않게 붙잡는 수밖에 없었다.
짧은 시술이었지만 수의 목에 스텐스를 넣었다 뺀지라 그르렁그르렁 하는 소리와 콧물이 더 심해졌고 새벽에는 마른기침을 해댔다. 그래도 조금 컸다고 이전 시술 때보다 회복이 빨라진 것을 보며 수가 잘 크고 있구나 싶어 대견하기도 하다. 목이 제법 불편할 텐데도 양손으로 장난감을 잡고 소리 내며 노는 수의 모습에 안정감과 무한한 감사함을 느낀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라고 하지만 결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닐 테다. 그 순간의 고통에는 어른과 같은 아픔을 느끼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음을 지어 보이는 이제 10개월 된 네 앞에서 나는 오늘도 겸손해진다. 수는 내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그동안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을 선사하고 마음을 일깨워주는 나의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