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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 Apr 20. 2023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일렉기타를 든 신부

    

 

 당신은 전혀 모를 것이다. 비록 순간의 음 이탈로 인하여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됐을지도 모르는 나의 축가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첫 만남에 닭백숙을 먹으러 간 당신은 두 손으로 닭을 뜯었고 나는 죽을 먹었다. 둘 다 삼십 대 후반에 만나 굳이 내숭 떨 필요도 없었지만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내숭이 없는 날 것의 모습이 나는 좋았다. 그날의 당신은 닭을 참 맛있게도 먹었고 지금도 밥상 앞에 앉은 당신의 모습은 한결같다. 우리는 밥집에서 나와 전망 좋은 카페에 갔고 그곳에서 바라본 노을에 휩싸인 아득한 빛깔의 서울을 나는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신의 애프터 신청은 첫 만남의 분위기를 떠올렸을 때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당신의 연락은 핸드폰의 알람처럼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거르지 않았고 나는 점점 그 알람을 기다리게 되었다. 퇴근 후 집 옥상을 한 바퀴, 두 바퀴 거닐 때 문득 걸려오는 당신의 전화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자 하루의 완벽한 마무리였다. 외근이 많은 당신은 가끔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나는 무언가에 집중을 하고 있거나 특히 일을 하고 있을 때 특별한 용건 없이 걸려오는 시시콜콜한 전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일을 마무리한 후 내가 다시 전화를 거는 방법이 가장 깔끔할 수도 있지만 혼자서 일을 하다 보니 걸려오는 전화 벨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보통은 전화를 받은 후 상대방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빨리 끊는 편인데 당신의 전화는 빨리 끊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내 일의 속도는 느려지기 일쑤였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당신은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느렸다. 고백의 시기, 처음 손을 잡은 시기, 그리고 첫 키스까지도.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느린 것이 아니라 당신은 나에 비해 느긋한 사람일 뿐이었다. 나와 지인들의 경험을 모두 종합해 보면 소개팅 후 가장 빈도가 높은 고백의 타이밍은 세 번째 만나는 날인데 당신은 무슨 생각인지 세 번째 만남에서는 고백의 ‘고’ 자도 보이질 않았다. 그냥 즐겁게 놀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을 뿐.


 지금까지 살면서 축적한 나의 경험치는 살아가는데 분명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했다. 연락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스킨십도 하는데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의 데이터, 거의 일 년을 드문드문 연락하다 결국 사귀었던 사람의 데이터 등 과거의 경험들이 불쑥 떠올라 나를 헤집어놓기도 했지만 당신은 믿을 수 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그리고 다섯 번째의 만남에서 드디어 고백을 받았다.


 당신은 고백도 참 잘했다. 약간의 떨림은 느껴졌으나 중간중간 쉼표와 문장의 마침표까지 찍어가며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당신은 꼭 오늘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나에게 생각할 시간까지 주는 느긋함을 보여주었다. 나는 결국 당신의 여유에 지고 말았다. 나는 한참을 뜸 들이다 결국 집 앞까지 데려다준 차 안에서 결판을 지었고 그 이후 처음 손을 잡을 때에도 손을 꽉 잡지 못하는 미적거리는 모습에 답답했던 내가 당신의 손을 꼭 잡아 버렸다. 이후 첫 키스는 손을 잡은 날로부터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당신이 좋았다.


 세 번 만났으니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해서 사귀자고 말하는 뻔한 사람이 아니라서, 사귀지도 않으면서 손부터 잡는 사람이 아니라서, 손을 잡았으니 그다음 만남에 급하게 진도를 빼지 않는 사람이어서, 이 모든 행동들이 모태솔로가 아니었던 서른여덟의 남자가 한 행동이어서. 그러고 보면 나는 과거에 꽤 무례한 기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그 무례함 들은 오늘날 재탄생하여 내게 이렇게 뜻밖의 능력을 주었다. 당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지하는 안구 너머 능력을 말이다.     




 당신은 얼굴에 늘 미소를 장착하고 있었고 연락 트라우마를 가진 내게 트라우마를 건드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으며 거짓말을 하는 법도 없었다. 수면 위에 떠오른 당신의 모습부터 수면 아래의 모습들도 하나둘씩 알게 되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당신의 이면을 발견한 후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 부분까지 완벽했다면 당신은 아마도 이미 오래전에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부족함을 군데군데 장착한 사람이었기에 결국 당신을 내 인생에 초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당신을 위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4년 넘게 기타를 배웠지만 기타 실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그 형편없음이 인생의 중요한 장면에 쓰이게 될 줄을 미처 몰랐다. 살다 보면 희미하게라도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일들이 언젠가는 쓰임이 되기도 한다. 마치 축가를 위해 기타를 배워 왔던 것처럼. 당신은 혼자 있음을, 외로움을 싫어하는,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만큼 내게 넘치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에서 공개적으로 당신에게 사랑의 답장을 주기 위해 축가를 부르기로 했다. 흔히 결혼식은 신부의 날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나의 날과 동시에 당신의 날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나와 덩치가 비슷한 기타를 어깨에 메고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연습실에서 매주 1회씩 레슨을 받았다. 하필 결혼식이 8월이라 나는 기타와 함께 시원하게 땀을 빼야 했지만 연습을 마치고 나면 운동을 하고 난 후처럼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당신을 만나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30분 이상 축가를 연습했다. 사람들이 듣게 될 내 목소리는 어떨까, 표정이 어색하진 않을까 궁금해서 핸드폰으로 녹화를 해가며 수시로 모니터링을 했고 집에 방음이 잘 되지 않은 탓에 모든 창문을 닫아놓고 땀을 흘리며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노래가 끝난 후 혹시라도 이웃에게 민원이 들어오진 않을까 가슴을 졸였다.


 다행히도 연습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이어졌고 결혼식 날이 다가올 때 즈음 나는 기타 선생님에게 좀처럼 듣지 못한 칭찬을 듣기도 했다. 이대로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좀처럼 평소에 노래를 부를 일이 없는 내가 갑자기 매일 노래를 부르는 일은 상당히 무리였나 보다. 나의 목소리는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잠수를 타기 시작했다. 결국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도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혼식을 앞둔 일주일은 할 일이 넘쳐서 낙담하고 있을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결혼식 전 날 당신이 우리 집에 온 이후로 나는 기타를 손에 잡지도 못했고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결혼식 당일 날 아침 나는 미리 주문해 둔 바 의자와 기타를 당신의 차에 실었다. 당신은 그 순간 까지도 기타 선생님이 축가를 해준다고 알고 있었다. 결혼식장과 사회자, 기타 선생님과 나는 모두 한패였다. 축가시간이 되자 사회자는 기타 선생님을 호명했고 선생님은 피아노로 가서 반주를 시작했다. 나의 심장은 드레스를 뚫고 나올 정도로 쿵쾅거리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에도 사회적인 미소를 유지해야 함은 잊지 않았다. 반주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사회자의 멘트에 따라 나는 당신에게 눈인사를 건넨 후 바 의자에 앉아 기타를 손에 들었다. 홀로 서게 된 당신의 실루엣만이 나의 시야에 안착했고 그 외의 풍경들은 지우개로 지우다 만 것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당신은 처음에는 놀란 듯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물까지 맺히는 듯했다. 나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느낄 찰나 분위기를 고조시켜야 할 고음 부분에서 나는 심각한 음 이탈을 내고야 말았다. 덕분에 촉촉했던 당신의 눈가는 빠르게 원상복구 되었다. 자신감을 잃은 나는 기타 소리도 점점 작아지고 목소리에 긴장이 가득 서리게 되자 기타 선생님은 대번에 알아차리고 피아노를 부술 듯이 힘차게 치기 시작하셨다. 하객 석에서는 낯익은 목소리와 함께 응원하는 박수소리도 들려왔다. 도대체 손가락이 몇 번째 줄을 잡고 있는지 가사는 맞게 부르고 있는 건지 모든 것이 진정 내가 하고 있는 행동으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나는 긴장을 풀기 위해 당신을 더욱 또렷하게 쳐다보았다. 나의 시선과 당신의 시선이 맞닿는 순간 나는 마법처럼 점점 긴장이 풀렸다.


 다행히 노래라는 것은 끝이 있었고 당신을 울리지는 못했지만 친구들은 격려와 같은 환호를 해주었다. 나는 드디어 끝이 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다시 당신의 옆자리로 갔다. 기다리던 고백을 해주었던 당신, 땀을 뻘뻘 흘리며 프러포즈를 했던 당신을 위해 가족과 지인 앞에서 이제 너는 내 남편이라고 공표하며 누구보다 멋진 신부가 되고 싶었고 당신을 결혼식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음이탈로 인해 결국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인 내가 되었다.      




 처음 만난 날, 당신과 결혼할 것 같은 종소리는 전혀 울리지 않았지만 나는 당신에게서 계속 눈을 뗄 수 없었고 당신도 나에게서 계속 눈을 뗄 수 없었기에 당신과 나는 마침내 우리가 되었다.    

  

You're just too good to be true

Can't take my eyes off you

You'd be like heaven to touch

I wanna hold you so much     

At long last, love has arrived

And I thank God I'm alive

You're just too good to be true


Can't take my eyes off you      

I loved you, baby, and if it's quite alright

I need you, baby, to warm the lonely nights

I love you, baby, trust in me when I say     


Oh, pretty baby Don't bring me down, I pray

Oh, pretty baby Now that I've found you, stay

And let me love you, baby Let me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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