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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 Apr 28. 2023

넌 이미 로또에 당첨됐어

남편의 취미생활

             

 남편의 꾸준한 취미는 로또다. 로또를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남편의 취미이자 습관이다. 이것은 곧 나의 남은 평생도 로또와 함께 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취미의 사전적인 의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좋아서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다. 남편은 매주 로또구매를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으며 결혼 후에는 함께 타협한 금액선을 지키며 구매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로또는 남편을 즐겁게 한다. 지나가고 다가오는 일주일의 접합 지점인 토요일 오후에 로또를 구매하여 당일 저녁 9시 이후 당첨번호를 대조하기 전까지 반나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남편은 원대한 상상을 펼치면서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한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꽤 한심해 보였다.     



 

 연애 초반에는 정기적으로 구매한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고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갈 무렵에는 로또가 그의 루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적지 않게 실망했다. 나에게 ‘돈’이란 시간을 투자하고 땀을 흘려 일해서 벌어야 정당한 것이라는 지나치게 정직한 신념과,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는 미신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올해 마흔 살이 된 나는 지금까지 땀은 말할 것도 없이 피까지 고루고루 섞어 잦은 잔병치레를 거쳐 스스로 번 돈으로만 내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삶에 크게 불만은 없으니 나는 내 가치관에 딱 맞게 살고 있는 셈이다.

 

 결혼 후 남편은 로또를 구매할 때마다 항상 내게 한 장의 로또를 선물해 주었고 자연스럽게 나는 남편의 상상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으며 어느덧 나는 머릿속에 남편에 버금가는 미래를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한두 번 상상을 해보니 한심해 보였던 남편의 표정과 말이 왠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고 상상의 순간에 거울로 나의 얼굴을 본다면 나는 과연 남편의 표정과 무엇이 다를까 싶었다.     


  부부는 눈, 코, 입은 달라도 인상이 닮아가는 것처럼 문득 상대방의 행동이나 습관까지도 자신의 일부와 뒤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느 날 로또 추천번호를 알려주겠다는 광고문자가 왔다. 나는 귀신에 홀린 듯이 안내받은 웹사이트로 접속하여 가입을 했고 즉시 추천번호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번호를 받으려면 반드시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했으며 그뿐만이 아니라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제공되었다. 심지어 가입을 유지했던 2주 동안은 매주 상담원이 일정한 요일에 전화를 걸어 추천번호를 받으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속으로는 내가 남편보다 더 큰돈 욕심을 품고 있던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스스로의 욕심과 부끄러움을 인정하면서 사이트를 탈퇴했고 로또는 예상대로 나에게는 즐거운 습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가끔씩 1등에 당첨이 된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를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했는데 정당한 노동을 중요시했던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부동산을 사겠다고 말했고 로또보다 자동차를 더 좋아하는 남편은 자동차와 함께 작년에 일로 인하여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내가 더 이상 힘들지 않도록 지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남편의 눈동자는 진심이었다.  



 

 배움에 대한 욕구가 크고 다양한 취미를 가진 나는, 로또가 사소하지만 남편이 느끼는 행복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고 남편이 소비적인 것이 아닌 생산적인 취미를 갖길 원했었다. 나는 취미에 마치 등급을 매기듯 나의 오만함으로 한 이불을 덮는 가장 가까운 사이를 내 멋대로 평가해 버렸다.


  남편은 왜 그토록 로또에 진심이고 행복함을 느끼는 것일까. 남편의 대답은 남편의 성격처럼 단순했다. 자신은 지금까지 당첨운이 있는 편이었고 만약 당첨이 되면 월급으로는 벌 수 없는 돈을 가질 수 있으며 진지함보다는 재미에 가깝다고 했다. 이것보다 로또의 목적에 들어맞는 대답이 있을 수 있을까. 단순하지 못한 나는 남편이 로또에 흥미를 가지게 된 또 다른 계기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남편의 대답을 들은 후 로또는 단지 로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시절에는 알 수 없었던 상황을 결혼 후에는 원하지 않아도 매일 마주하게 된다. 남편은 엉덩이가 뭉개질 정도로 수십 킬로미터를 달려야만 하는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음식물 쓰레기처럼 수시로 쏟아내는 사람들의 요구와 비난을 모두 수거한 후 처리해야만 완전히 퇴근할 수 있었고 덕분에 저녁이 있는 삶은 포기해야 했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이 패턴은 매일 반복된다.


 남편의 퇴근길 발걸음은 늘 무거워서 3층 계단을 지나칠 때 즈음이면 나는 남편임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보고 웃어주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지친 얼굴임을 알 수 있을 때, 침대에 눕자마자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진 모습을 볼 때, 결국 나는 항상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고 가끔씩 내가 주는 행복도 당신에게는 완벽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서야 나는 단순하게 로또를 남편의 즐거운 취미로 인정했고 기꺼이 동참했으며 내가 주지 못하는 행복의 대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미술품을 관람하고 기타를 치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행위가 내 삶에 숨구멍이 되어 주듯이 남편에게는 로또가 그러했을 것이다.      




 나는 종종 남편에게 가스라이팅을 한다.

“자기는 이미 로또 1등에 당첨돼서 평생 받을 대운은 끝났고 앞으로는 소소한 운들만 남았어. 내가 로또 1등이거든. 근데 로또 1등 당첨이 좋아? 나랑 결혼한 게 좋아?”

  마흔 살에도 신혼은 신혼이었고 마음껏 유치할 수 있었다. 남편은 재미있어하면서도 다소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어넘겼고 나는 그런 그의 반응이 밉지 않다.


 나는 여전히 1등 당첨보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확률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당첨자보다 부부가 더 많은 사실의 이유는 여기에서 차마 설명하기 어렵다. 그건 그렇고 그런 의미에서 나도 이미 로또 1등에 당첨되었음을 공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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