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공감, 아이의 공감 8

칭찬에 길들이지 않기

by teaterrace




모든 아이들이 그렇겠지만, 우리 아이는 유독 엄마를 향한 인정욕구가 강하다. 사소한 것이라도 엄마에게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이 못하는 걸 엄마에게 보여주거나 실망케 하는것을 싫어한다.


남편의 말로는 아이가 갓 태어나서는 엄마와 자신을 한몸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열 달을 한몸으로 함께 숨쉬고 함께 먹고 자고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엄마가 자신과 한몸이 아닌 또다른 생명체임을 조금씩 자각하고, 더 커서는 개별의 인격체임를 깨닫게 되는데, 우리 아이의 경우 아직 완전한 분리가 안 된 상태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엄마는 여전히 자신의 전부인 것인데 부족한 면모를 보이고 싶을리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의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것의 긍정적 효과로 어딜 가든 '의젓하고 반듯한 아이'라는 칭찬을 받는 것이라고 여겼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다르다. 칭찬이 샘솟는 환경에서도 아이가 항상 칭찬에 목마른 것은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해졌던 우리의 '부드러운 제제'는 아이를 억압 속에서 살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혹시 아이가 칭찬을 받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제제를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일례로 아이는 사촌동생이 놀러 올때면 질투 대신 챙김과 양보로 칭찬을 받았다. "엄마! 내가 동생한테 장난감 줬어요!", "삼촌! 내가 동생 쭈쭈 먹이고 있어요!"라며 자신의 행동을 과시하고 칭찬을 기대했다. 때로는 너무 사소해서 어른들이 칭찬을 빼먹을 때면 칭찬을 해줄 때까지 그 대사를 반복해서 말한다.


보통의 아이라면 동생에게 쏠리는 관심이 질투가 나서 동생을 때리거나 어른 몰래 해코지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 아이는 오히려 나에게 "엄마가 동생을 좀 돌봐줘요."라고 말한다. 가끔은 너무 철이 들어서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의젓함이 죄악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고작 20개월 밖에 안된 아이가 칭찬을 받고 싶어서 질투의 본능을 억누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그저 미안하다.


'행동을 교정하거나, 목적하는 행위를 유도해내기 위한' 칭찬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자발성을 제한하고 스스로를 억압하게 만든다.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칭찬하는 행위에는 '능력있는 사람이 능력없는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라는 측면이 있고, 그 목적은 상대를 '조종'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칭찬의 말 속에는 칭찬받는 이를 '자신의 지휘 하에 두고자 하는 욕망'도 내재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결코 순수한 행위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윗사람이나 전문가에게 칭찬을 하는 행위는 뭔가 주제를 넘는 듯한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칭찬의 방법을 바꾸고 칭찬의 조건도 달리 해보려고 한다. 목적을 가진 칭찬은 최대한 지양할 것이다. 이를테면, "동생한테 양보해주니 참 기특하네"라는 칭찬보다는 "여기를 빨간 색으로 칠했구나. 참 예쁘다"로 말이다.


'칭찬받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이 모이면 그 공동체에는 '경쟁'이 일어난다고 한다.


'참음'이 내성이 된 이 아이가 얼른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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