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보고 말해야지요.
"엄마, 눈을 보고 말해야지요."
아이의 문제를 의식하기 전에도 우리아이가 자주 했던 말이다. 누가 교사의 자녀가 아니랄까봐 이렇게 엄마행동에도 지적을 하나 생각하며 피식 웃고 넘어갔다. 물론 그 당시에도 전혀 각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음속으로 '아차!'하면서 겉으로는 "아! 그래야지. 그래, 엄마가 얼굴보고 이야기할게."라고 대답을 했었다. 그런데 아이의 문제를 의식하고 나니, 아이는 생활의 면면에서 나에게 SOS하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업무에 열중하다가도 학생들이 와서 말을 걸면 하던 일을 멈추고 의자를 돌려서 학생들을 맞이했다. 물론 의식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다른 선생님들이 나의 장점에 대해 말해주어서 알게 되었다. 의식해서 했던 행동이 아니기에 그렇게 애써 노력할 것도 없었다.
휴직 중에 아이를 키우면서도 아이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아이 앞에서 핸드폰을 사용하고 때때로 TV프로그램도 보면서 다른곳에 몰입하는 시간이 생기면서부터였을까. 아니면, 복직하고 나서 오직 아이에게만 향하던 에너지가 이곳저곳으로 분산되었기 때문일까.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내가 아이의 눈을 보고 말하지 않는 순간이 늘어났고, 그에 대해 아이가 부드럽게 항의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른들간의 대화를 상상해보면 답이 나온다.
이야기를 듣는 상대가 자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던지, 표정없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가정하면, 계속 나의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아이와의 대화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모가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는 것을 과연 아이라고 눈치채지 못할까. 말 조차도 공감해주는 힘이 부족했던 부모인데, 이야기를 들어주는 태도에도 부족함이 많았다는 것을 몰랐다. 오죽했으면, 눈을 보고 말해야 한다고 일러주었을까.
38개월간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는 생각보다 어리지 않았다. 덩치가 작다고 생각과 감정까지 작은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