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달빛과 별빛 그리고 곶자왈 이야기

밤의 곶자왈에서

by teaterrace


곶자왈이란 숲을 의미하는 ‘곶’과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이라는 의미의 ‘자왈’이라는 말이 합쳐진 고유 제주어이다. 표준어로 '숲 덤불'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막상 가보면 이런 명칭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제주의 천연 원시림이다. 어느 특정 구역의 고유명사라고 생각했던 곶자왈은 구좌-성산, 조천, 교래-한남, 애월 그리고 한경-안덕에 걸쳐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전에 한달살이를 하면서 다니던 곳 중에 유독 마음을 잡는 장소가 몇 있었다. 유리의 성 숲길. 나뭇가지마다 매달린 유리풍경의 소리가 맑게 울려대어 눈을 감고 있어도 바람이 눈에 보이는 듯한 곳이었다. 화산송이 붉은 흙이 깔려있던 폭신하고 고요했던 에코랜드의 치유의 숲길도 마찬가지다. 마치 숲 속 친구들에게 한마디 건네기라도 하면 대답이 돌아올 것 같은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더랬다. 모두 고요하고 평화로웠으며 신비로운 기분마저 들었던 기억 때문인데, 공교롭게도 그곳 모두 '곶자왈의 일부'였다는 것을 최근에 와서 알게 되었다. 이는 지리에 약한 나의 특성 때문인데, 당시에는 그곳들이 커다란 산의 여기저기에 자리 잡은 관광지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곶자왈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방대했고 더 원시적인 곳이었다.


[좌] 유리의 성 '마법의 숲', [우] 에코랜드 '에코로드'


때때로 인적이 드문 곶자왈을 걷노라면 온몸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허공을 울리는 까마귀 울음소리에 더럭 겁을 먹기도 했고, 때로는 혹시 만나게 될지 모를 야생동물의 대처법을 떠올리며 걸을때도 있었다. 이토록 원초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요즘같이 시끌벅적한 세상에 이토록 혼자가 되어 느끼는 공포가 어찌 쉬이 얻을 수 있는 기회이겠는가 싶어 내심 좋기도 했다.


교래 자연휴양림


이런 곶자왈을, 밤에 걸을 기회가 생겼다. 아무리 잘 다져놓은 길이라지만 날것의 돌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숲길을 걷게 되기까지는 많은 확인과 결심이 필요했다. 하물며 5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말해 무엇하랴.
어려움은 그뿐만이 아니. 저녁 8시부터 입장이 가능한데 입장권 발매시간이 오후 2시부터라 표를 구매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집이 근처라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우리 집에서 한경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이고 퇴근시간에는 그보다 더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겠다는 결심을 내린 것은 오로지 반딧불이 때문이었다.


어릴 적 기억을 되돌려보면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을 무렵이면 곳곳에 반딧불이가 날아다녔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너무 당연했던 장면인데, 지금에 와서는 이토록 진귀하고 신비로운 것이 될 줄은 몰랐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요즘의 어린이들은 이런 추억조차도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른인 부모는 추억을 회상케 해주고, 아이에게는 추억을 만들어주는 좋은 기회가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턱대고 전화를 걸어서는 사정을 이야기하며 전화예매가 가능한지를 물었는데, 예상외로 흔쾌히 받아주었다. 이제 남편이 퇴근하고 지체 없이 출발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둘 일만 남았다. 밤의 숲길을 걷게 되니 추위를 대비한 얇은 긴팔 옷을 챙겼고, 물 한병도 넣었다. 그리고는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출발했다.


애월읍에 다다르자 누운 엄마의 가슴처럼 봉긋 오른 오름들이 곳곳에 나타났다. 그리고 붉은 태양이 얇은 이불처럼 이들을 덮고 있었다. 가로등은 점점 줄어들었고 어둠도 점점 짙어졌다. 다만, 그곳에 가기 위한 길고 붉은 차량행렬만이 줄을 잇고 있을 뿐이었다.


황혼의 이불을 덮은 애월의 오름들


입장까지는 아직 2시간 남짓 남았는데 그곳은 웃뜨르 빛센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산중이어서 근처를 벗어나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시내를 제외하고는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연 식당이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도 재료가 소진되어 일찍 닫거나 애초에 영업시간이 3~4시간밖에 안 되는 곳도 많다. 그러니 인터넷으로 조회를 하고 간들 이미 닫아있는 어두컴컴한 식당의 문패를 보고 낙담하기 일쑤였다. 다행히 편의점이 있어 삼각김밥과 컵라면 등으로 허기를 달랬다. 그러고 돌아오니 적당한 시간이 되었다.


코스는 총 2가지인데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대에 따라 주최 측에서 적절하게 배분하여 놓은대로 따라야 한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5분 정도 이동한 후 출발하는 코스로 정해졌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반딧불이에 대한 대략적인 안내를 들었는데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흥분은 점점 더 고조되었다.


한 팀은 약 40명 정도 되는데 행렬 앞뒤로 안내자가 있다. 어린이와 노약자를 동반한 가족들은 앞쪽에 세워주는 배려가 있어 다행스러웠다. 빛과 소음에 취약한 특성상 이에 대한 주의사항이 가장 많았다. 우리도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윽고 탐방이 시작되었다. 초입길에서 100여 미터나 들어갔을까. '칠흑 같은 어둠'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금세 깨닫게 해주는 어둠이 시작되었다. 그저 의지할 것이라고는 우리 가족끼리 잡은 손과 안내자 손에 들린 지휘봉뿐이었다. 그마저도 낚싯대 끝에 달린 미미한 불빛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자그락자그락 자갈 밟히는 소리만 숲 속 밤길의 적막을 깨우고 있었다.


몇 걸음 더 걸어가니 이제는 사람들의 윤곽 정도는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둠에 익숙해졌다. 그 순간 누가 외쳤다.


어? 저기 있다!


동화 속에 들어간다면 이런 기분일까. 어디에 시선을 두고 바라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점(點)과 멸(滅)을 반복하는 반딧불이 무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렇게 아름다운 구애 장면이 세상에 또 있을까. 우리 아이도 그 모습이 꽤나 신비로운지 연신 내 팔을 잡아끌며 한껏 소리를 낮춘 가운데 자신의 흥분감을 전해왔다. 당장이라도 핸드폰을 꺼내어 찍고 싶은 욕구가 간절했다. 눈과 마음속에만 간직하기엔 나는 내 기억력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도구로는 촬영이 불가하기도 하거니와 그들은 빛과 소음에 매우 취약하므로 촬영은 절대 금지한다는 유의사항을 반복해서 들었기에, 눈으로 찍어두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사실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와 자신들의 생태를 유지하며 살겠다는데 굳이 인간이 그곳까지 찾아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방해가 될 일이었다.


신기하게도 그곳엔 모기가 없었다. 산속 숲길을 걷게 되니 당연히 모기에게 뜯길 각오를 해야 했다. 하지만, 곶자왈은 워낙 배수가 잘 되는 지형이기 때문에 모기가 알을 낳고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출구에 다다르자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만 귀가 따갑도록 들려왔을 뿐이다. 개구리들이 서식하려면 파리나 모기들이 있어야 할 터. 하지만, 곶자왈은 물이 고이지 않기 때문에 벌레들이 번식하기에 부적합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개구리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근처에 축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축사에 들끓는 파리로 인해 자연스럽게 그들의 포식자인 개구리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준비해 온 물로 간간이 목을 축이면서 1시간가량 되는 길을 걸었다. 어둠에 익숙해졌다손 쳐도 워낙 어두운 길이다 보니 가끔씩 나무 사이로 비쳐 드는 달빛이 그렇게 밝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불 따위가 휘황하게 켜 있어 밤에도 대낮같이 밝은 곳을 이르는 말인 '불야성(不夜城)'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달빛은 그저 그 모양을 제외하고는 빛으로서의 역할은 잊혀진 지 오래다. 별빛은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이곳 '밤의 곶자왈'은 달빛과 별빛이 얼마나 밝고 또렷한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과연 옛 선인들은 밤이 되면 마당에 나와 이런 달빛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연인을 떠올리기도 했으며 저절로 시 몇 구절이 술술 나왔을 법도 하겠다, 싶은 밤이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마주친 가로등 불빛과 버스 안 불빛이 그렇게 피로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이 피로함 속에 살면서 우리는 피로감을 느끼지조차 못하고 얼마나 무디게 살아온 것인가. 천연의 자연을 체험하고 나니 내 몸이 얼마나 자연적이지 않은 것들에 길들여져 혹사당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눈을 감았다. 버스 안 불빛이 주는 피로감을 회피하고 싶어서이기도 했고, 눈 속에 담아둔 반딧불이의 향연을 다시 재생시켜 보고픈 마음이기도 했다. 그 사이 5살짜리 아이는 어른도 힘든 길을 잘 버텨준 대가로 잠을 선물 받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나는 침묵을 즐겼다. 마음속으로 각자의 감상문을 작성하고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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