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만난 은인
지금도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 시조카가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제주에 놀러 왔다. 공항에서 조카를 픽업한 후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를 보여주기 위해 집에서 멀지 않은 함덕 서우봉 해수욕장으로 갔다. 거기에서 사촌누나에게 이끌려 바다 안쪽으로 들어가다 아이가 발을 헛디뎌 깊숙이 빠져버린 것이다.
말 안 듣기로 둘째가라면 서운한 시조카였지만, 엄마 아빠 없을 때는 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커다란 오산이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는 새지 않을 리 없다'는 말은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여지없이 증명해 보여주었다. 하지 말라는 모든 위험한 행동은 자처해서 했으며, 혼자도 아니고 꼭 우리 아이를 데리고 하려고 했다. 친조카였다면 따끔하게 혼이라도 내겠지만, 아무래도 시조카다 보니 어르는 게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위험수위를 넘는 행동은 계속되었고, 급기야는 엄마 말 듣고 눈치 보는 우리 아이를 쫄보 취급하며 자극하기도 해 가며 결국 손을 잡고 데리고 들어갔다. 5살짜리 아이는 엄마 아빠와만 하던 바다놀이를 오랜만에 만나는 누나와 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었겠는가.
하지만, 바다는 얕아 보인다고 해서 얕볼 것이 아닌 것이 계단식으로 깊어지기 때문에 자칫 발을 헛디디면 제 키보다 더 깊은 수위인 경우가 많아 위험하다. 나 역시 육안으로 보기엔 하얀 모래 바닥이 훤히 내다보이기에 깊은 줄 몰랐으니까. 게다가 목욕조에서 미끄러져도 허우적거리며 겁을 먹는 아이이기에 넘어졌을 초기에는 다시 혼자서 일어나리라고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몇 초가 지나도 계속 허우적거렸고 그제야 나는 조카에게 아이를 일으켜주라고 했다. 하지만, 조카는 오히려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아이는 허우적거릴수록 더 멀리로 가버렸다. 그제야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바로 뛰어들어갔다. 하지만, 나 역시 갑자기 깊어지는 수위에 깜짝 놀라 뒤돌아 나왔다. 무서워서라기보다는 수영을 전혀 할 수 없는 내가 도움이 될 게 전혀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그렇지만, 그때의 무력감과 패배감, 그리고 죄책감은 말로는 이루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물에서 돌아 나와 첫눈에 보이는 남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도 수영을 못하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가슴이 미치도록 방망이질을 해댔다. '아이와의 인연이 설마 여기까지인가' 하며 말도 안 되는 상상이 짧은 시간에 봇물처럼 솟아났다. 해변을 향해 미치듯이 소리를 질러가며 도와달라고 외쳤다. 그러자 저 멀리 가족과 함께 앉아있던 남성이 막 달려오기 시작했다.
수영하실 줄 아세요?
그는 내 말에 대답도 없이 그냥 물로 직진했다. 키가 커서 어느 정도는 걸어갔고 어느 정도는 수영을 해서 우리 아이에게 다가갔다.
실은 나 역시 어려서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이 있다. 가족과 함께 피서를 갔는데, 일대가 한창 공사 중이어서 포크레인으로 강바닥을 파놓은 터라 물살이 그곳을 지나면서 회오리를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동생이 급물살에 미끄러져 쓸려 내려가는 순간 동생을 잡으려던 나 역시 미끄러져 빠져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그곳을 지나던 군인에 의해 구조되었지만, 그 트라우마는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어쩌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영을 배웠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기억으로 인해 나는 배꼽 위를 넘어서는 물속에는 맨몸으로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푹 파인 강바닥을 훑고 올라온 진흙이 불투명하게 뒤섞여있던 물속 광경과 물 위로 다시 올라온 나를 보며 놀란 사람들의 표정이 번갈아가며 반복되었던 필름이 지금도 가끔씩 재생산된다.
그런 경험이 오버랩되면서 아이가 얼마나 무서울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도도 남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내 마음은 더욱더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파랗게 질려가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제정신 일리 만무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쉬지 않고 "괜찮아, 엄마 여기 있아" " 괜찮아, 아저씨가 가실 거야" "엄마 목소리 들리지?"하고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쳤다.
이윽고 그가 아이에게 도달하자, 아이는 그의 목을 바로 꽉 끌어안았다. '어둠 속의 빛 한 줄기'라는 표현은 딱 이때를 위한 말인 듯했다. 그때부터 안심이 되었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는 것만으로도 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안은 채 수영을 해서 나오는데 속도가 나는 것 같지 않았다. 그의 아내도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자기 괜찮아? 속도가 나는 거 같지가 않아"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헤엄쳐 나오다가 옆 쪽에 수위가 낮은 곳으로 가서 아이를 안고 쉬었다. 아이를 꼬옥 끌어안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안심시켜 주는 모습도 보였다.
드디어 아이를 품에 안은 순간.
아이는 다행히 정신을 잃지 않았고 추워서 그런지 놀라서 그런지 입술이 새파래져 있었다.
무서웠지 우리 강아지
아이가 터지도록 온몸을 꼬옥 끌어안고 있는데 나의 은인은 유유히 가족 곁으로 돌아갔다. 연락처라도 알려달라고 소리쳤는데 극구 사양을 하였다. 나는 조카를 시켜 전화번호를 받아오도록 했고 그러는 사이 어떤 청년이 다가와서 물었다.
"119 신고했는데 아이 괜찮으면 오지 말라고 할까요?"
정신이 없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구급대와 경찰은 이내 도착했다. 아이를 덮어주라고 모포를 건네주고는 체온을 재는데 저체온이라 체크가 안된다고 구급차로 옮겨 체온을 올리자고 했다. 아이가 구급차에서 몸을 녹이고 있는 동안 나는 짐을 챙기러 갔다. 그들에게 감사인사를 했고 아이를 젖지 않은 옷으로 갈아입혔으며 무슨 정신으로 운전했는지 모르게 집에 도착했다.
물 반 모래반으로 뒤범벅된 차로 남편이 마중을 나왔다. 남편 역시 내 전화를 받자마자 퇴근해서 목욕물을 받아두고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따뜻한 욕조에 뉘이고 한참을 안아주었다. 목이 마르다기에 따뜻한 물을 몇 모금 먹이니 갑자기 구토를 시작했다. 물에 빠졌을 때 마셨을 바닷물을 한참 동안 토해내었다.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나서 옷을 입히고 안정을 취했더니 이번엔 물설사가 시작됐다.
그날 저녁. 남편은 그 은인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인사를 했다. 찾아뵙고 싶다고 하니 극구 사양하며 전화준 걸로 충분하다고 했다고. 놀라운 것은 그도 아직 수영을 잘 못한다고 한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와준 것에 또 한 번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물결쳤다. 제주 현지인은 아니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우리 부부가 신혼집을 차렸던 곳이자 육지 우리 집과도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동네에 오게 되면 술 한잔 하자고 하셨단다. 혹여 우리를 만나는 시간이 길지 않은 여행 일정에 방해가 될까 싶어서 우선은 알겠다고 하고 통화를 마쳤다. 하지만, 너무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우리 부부 모두 그렇게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 보기로 했다.
이렇게 우리 아이는 죽을 뻔하다 살아났고 악몽과 같은 하루는 끝이 났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날의 악몽은 이날로써 끝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