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놀러오세요.

손님을 초대하기 전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하여

by teaterrace


제주에서 지내면서 좋았던 일을 꼽자면 끝이 없지만, 사랑하는 부모님들에게 제주 구경을 마음껏 시켜드릴 수 있는 것이다. 복직과 동시에 아이를 건사하는 것이 어쩌다 보니 부모님의 몫이 되어서 가슴 한켠에 항상 빚진 마음을 지니고 지내던 터였다. 갖은 수를 내어 부모님을 제주로 오시게 했다. 남편은 딸 내외가 제주에 있을 때나 이렇게 자주 오시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지만, 친정부모들은 으레 '딸 집이 아닌 사위 집'에 온다는 생각으로 불편하고 미안해하신다. 처음에는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제주에 가는 게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했고, 내 생일에 미국으로 출장 간 남편을 대신해서 미역국을 끓여 달라고 했고, 남편이 받아놓은 말고기 정식 코스 유효기한이 다 되어 간다면서 오시게 했다. 아무튼 갖은 꾀를 내어 모셔와서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드리고 육지에선 못 드셔 봤을 법한 음식을 대접하고 바다가 훤히 보이는 해먹 카페에 누워서 휴식하실 수 있게도 해드렸다. 미안해하면서도 즐거워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와는 상반되게 시부모님은 단 한 번도 제주에 오지 못하셨다. 아직도 생업에 종사하시며 기약도 없는 데다 책임지고 있는 생명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데, 그 사정을 이해를 하면서도 '남편도 나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싶을 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부모님이 못 오시면 형제라도 오면 좋으련만 그 역시 올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다. 내가 괜히 남편에게 빚진 기분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을 꼬시듯 틈틈이 전화로 의향을 물었지만, 고맙지만 그럴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어쩌면 의무감일지도 모르는 마음으로 큰집 조카라도 보내라는 말을 했고(이 말은 진심에서 나온 말이다), 정말로 조카 혼자 오는 일이 발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나 역시 기쁜 일임을 느끼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제주 구경 못해 본 어린 시조카에게 보여주고 체험하게 해 줄 계획으로, 가슴 한켠이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남의 아이를 돌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나름 아이들 케어하는 것에 자신감이 있는 나였지만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우리 아이에게 처럼 마음 놓고 채근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어른처럼 알아서 그리고 눈치껏 해주지 않는 손님에게 난 대책 없이 당하기만 했다.


도착하는 날 공항으로 배웅 가서 힘찬 모습으로 인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의젓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 아이를 데리러 가는 차 안에서 1분을 텀으로 시간을 물어보는 장난부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바다에 가서는 앞서 말한 사건이 발생하게 한 당사자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 사건을 계기로 하여 미운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남편과 나 둘 모두 그 아이가 비록 나이는 우리 아이와 4살 차이지만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바다에 빠져 저체온증 상태에 있는 아이를 차에 태우고 정신없이 집으로 운전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계속 말을 걸었다. "겸아, 무서웠지. 엄마가 금세 운전해서 갈 테니까 춥더라도 조금만 참아." 아이를 진정시키는 나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나도 수영장에서 빠진 적 있었는데 뭘."이라는 말을 쏟아내는 아이였다. 자신 때문에 바다에서 빠진 아이 앞에서 미안함은 커녕, 안전요원 등 누구라도 구조해줄 수 있는 수영장에서 빠진 상황과 견주어 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


이뿐 만이 아니다. 정신없는 대화 속에 힘겹게 도착했는데, 우리 아이 옆에 앉아 있던 그 아이는 잠이 들어있었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임에도 걱정 따위는커녕, 속 편하게 잠이 들어있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이 정도도 약과이다. 아이가 열이 40도 이상 올라서 축 늘어져 얼음주머니를 이마에 얹고 응급실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그 아이가 계속해서 던진 말은, "아... 겸이가 계속 누워만 있으니까 너무 심심해"였다. 눈치가 없는 것일까, 배려심이 없는 것일까. 어느 쪽이어도 애타는 부모 마음에서는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열이 내리고 설사도 멈추고 정상 컨디션을 찾았을 무렵, 꽃이 한창 예쁘다는 공원을 찾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 더워요. 가기 싫어요. 수영장이나 가요"였다. 5살짜리 우리 아이도 그런 말은 하지 않는데 9살이 부모도 아닌 대상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던지자 '욱'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달래어서 공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선 아이들의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기부의 명목으로 큰돈을 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유료행사였다. 글을 모르지 않는 그 아이는 "숙모, 저 이거 할래요"라며 나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 자리에 앉아버렸다. 어떤 물건을 사든 부모의 허락과 동의를 구하는 5살짜리 우리 아이와는 매우 상반된 모습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자기 부모에게조차 해도 되는지를 확인하는 우리 아이는, 남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우리 아이가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운 사고를 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9살짜리 누나보다 더 나은 사고를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눈 앞의 상황은 둘의 모습이 정반대였다. 숙모와 삼촌이 봉이라도 되는 냥, 마치 맡겨둔 돈을 찾아 쓰는 사람처럼 너무도 당당히 요구하는 모습은 눈치 없고 배려심 없음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더라도 '9살의 나'는 부모님은 물론이고, 절대로 남들에게 당당한 요구를 하지 못했다. 그것이 무리한 요구이든 철없는 아이로서는 당연한 것이든. 그렇기에 어려서 그럴 거라는 이해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제 부모가 있었다면 절대 보이지 않았을 행동들이었기에 더 교활하고 영악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잘 돌봐주는 누나와 편안한 날들을 보낼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자신의 지난 행동들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자기의 별사탕을 우리아이가 다 먹었다고 제 엄마에게 이르는 한 없이 철없는 5세 여아였던 것이다.


그 아이가 돌아가기까지 5일의 시간 동안 난 지독히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를 이렇게 미워할 수도 있구나 싶은 놀라움. 미워 죽겠는데 그런 티를 낼 수가 없는 것. 내 발등을 내 스스로 찍었구나 하는 류의 자책감. 여러 가지 상념들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보통은 내 돈과 내 시간을 쓰더라도, 밀려오는 보람찬 기분은 그것들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돈과 시간은 차치하고서라도 사람이 미운 마음까지 생겨난 시간이 되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가족이라면 끔찍하게 여기는 남편조차도 조카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고생 많았어, '남의 조카' 돌봐주느라"라는 말을 건넸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남편에게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차마 올라오지 않았다. 괜찮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다만, 오로지 당신을 기분 좋게 해주려다가 보니 뜻하지 않게 이런 경험을 하게 되네. 앞으로는 누군가를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 함부로 다른 사람을 초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들어." 이번 일이 결국은 남편을 위로하느라 기획되어진 것인데 '식구'가 아닌 사람과 지내는 것은 아무래도 진지한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제주에서 본거지로 돌아올 날이 가까워오던 어느 날. 그간의 시간들을 갈무리하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손님들로 내 생활을 제대로 못 누린 것 같기도 해."

"그러게. 특히 S는 괜히 오라고 한 것 같아. 형과 형수에게는 잘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겸이는 걱정될 정도로 남의 기분을 살펴서 문제이긴 해도, 이런 성격은 남한테 피해는 안 주는데, 그 아이는..."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제주가 아니면야 그렇게까지 놀러 오라 권유할 일도 없다. 따라서 객식구를 우리 집에 재울 일이 인생에 얼마나 많이 있겠느냐마는, 짧은 시간이라도 식구 같이 함께 식사하고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는 일은 어지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을 재차 고민하지 않고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나는 호의를 베푼 것이 아니다. 호의라는 것은 선하고 좋은 의도를 가지고 상황이나 상대를 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베풂에 대해서 서운한 마음이 생겨났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기브 앤 테이크'의 마인드가 깔려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완전한 호의라고는 볼 수 없다. 이번 경험으로 보았을 때, '진정한 호의'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베풀어야 한다. 나의 좋은 의도는 남편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일 뿐, 그들에 대한 진정한 호의는 없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또한, 진정한 호의 없이 함부로 손님을 초대하거나 부탁에 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도 말이다.


이후에도 남편의 가족 중에는 사촌동생이 놀러 왔다. 나와는 아주 가깝다고 할 수는 없는 사이였지만,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으로 놀러 오라는 형수의 초대에 오게 되었다는 시동생에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 나도 제주를 떠날 날이 며칠 남지 않아, 그가 머무는 동안 어느 때보다 아주 잘 먹고 잘 놀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을 썼지만 보람이 있는 시간이었다. 여행이라고는 일절 가지 않았던 사람이 나의 부름(?)에 선뜻 움직여주었다는 사실과 진심으로 호의를 베푼 나의 마음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진심으로 시부모님이 제주에 오시면 좋겠다. 바쁘셔서 누리지 못한 것들을 제주에서나마 맛있는 음식과 훌륭한 경치로 위로를 건네드리고 싶다. 당신들은 이런 마음에서 우러난 말들을 인사치레라고 여기실지 몰라도 어쨌든 나는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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