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의 그녀.

by teaterrace



내가 학교에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아마 30대 초반 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 내 나이는 스물일곱. 2년 차 초짜 교사였고, 그는 당당한 여성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선배 교사였다. 그로부터 2년 후인가 나는 처음으로 담임 보직을 맡았고, 나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게 되어 많은 담임업무를 전수받았다. 학교라는 곳이 학생이나 교사나 옆자리가 매우 중요한데, 일 년을 나와 함께 할 짝꿍이면서 평생의 동반자가 탄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당찬 그녀는 나의 선배이자 더없이 좋은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우리는 함께 여행도 했으며, 지치거나 짜증 날 때 또는 관리자의 어이없는 처사를 헐뜯으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연말이나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뜻이 맞는 동료들을 포함하여 파티를 하기도 하고, 쇼핑을 즐기기도 했다. 서로의 연애상담을 해주기도 하며, 그 가운데 울고 웃고 치유됨을 서로 공유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매우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다. 나처럼 필요할 때만 찾고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어느 부분에서는 범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했다. 이를테면, 모든 것을 신앙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다보니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할 때는 나에게 큰 힘이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녀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에 열성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방학마다 캄보디아 선교를 떠났고, 이를 학생들 그리고 교사들과 공유했다. 그래서 그녀는 특히 아이들에게 봉사심이 투철한 교사로 통했다. 뿐만 아니라, 먼 길 여행을 떠나는 동료들에게 노잣돈을 쥐어주며 축복해주기도 하고, 생일 때면 꼼꼼하게 선물과 함께 축하를 해주었다. 새로운 교사가 들어오면 반드시 한 번은 밖에서 밥 한 끼라도 사주는 훈훈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 학교의 남교사들에게 평판이 그리 훌륭하지 못하다는 아이러니가 있었다. 아무래도 학교가 보수집단이다 보니, 유연한 사고를 한다는 남교사들조차도 자기 할 말 똑부러지게 하는 여교사는 부담스러운 존재인가 보다 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선배교사들을 각별하게 챙기는 그녀에게 선배 남교사들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물론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늘 그들의 뒷담화의 대상이 되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 여자와의 말싸움은 피하려면서도 여자가 잘난 것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남자들인가 보다,라고 여겼다. 물론, 나의 친한 여자 동료 중에도 그녀를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가까이서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좋은 면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립이란 곳이 고인물이기 때문에, 나와 잘 맞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당연히 싫어하는 무리도 있는 법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롭고 당당한 그녀의 모습은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했던 것 같다. 학교의 인사위원으로 선출되기 시작한 것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었다. 인사위원이란, 차기 연도의 인사배정을 위해 교사의 투표로 선출한 교사들인데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보니 어느새 우리 학교에서는 강력한 인사 배정자로서의 지위가 생겨버리고 말았다. 남교사들은 싫으니 좋으니 해도 그녀에게 밉보여야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더욱 그녀를 멀고도 살갑게 대했다. 물론 표면적으로만. 인사 발표가 나면 그렇게 그녀를 갈기갈기 물고 뜯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참 찌질한 남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라고 그녀가 모든 면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함께 다녀온 여행길의 마지막에 스튜어디스를 향해 내뱉는 푸념이나 자신이 원하는 교감이 선출되지 않았다고 짜증을 풀어내는 것을 들었을 때, 그녀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구나 생각했었다. 그리고, 때로 미혼자로서 상대적으로 누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푸념이 있기도 했다. 이를테면, '나같이 나이 먹고 결혼 안 한 여교사들은 학교에서 챙겨주지도 않으니 서럽지 뭐.'라는 말을 일삼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처럼 벌고 그녀처럼 자신을 위해 쓰는 여자가 결혼 안 한 것이 뭐 그리 큰 대수인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소하게 서운한 것들도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녀에게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 아닌, 그녀의 온 생각과 마음을 집어삼키는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안 것은 내가 복직하면서부터이다.



결혼을 하기까지 개인적으로 많은 복닥거림이 있었고, 우울증이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차차 그녀에게 의지하는 일이 적어졌고, 오히려 내 연애의 희로애락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다른 선배교사와의 교류가 늘어났다. 하필 그녀의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대립구도를 크게 개의치 않았던 사람이라 고인물 집단에 존재한다는 그 LINE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대로 새로운 선배는 선배대로 좋은 점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나는 충분히 그들과 좋은 점을 누리고 공유했다. 그리고, 나는 결혼을 했고 임신을 했고 육아휴직을 했다.


아이를 낳고 직접 문안을 오지는 못했지만, 그보다 더 감동적인 '직접 만든 턱받이' 몇 개를 선물로 보내주기도 하고, 스승의 날에 아이들이 써준 편지를 택배로 부쳐주기도 했다. 학교에서 꽤 먼 거리에 있는 우리 집까지 친히 찾아와서 주었고, 우리는 여느 때처럼 수다를 떨었다. 그녀가 한 마디 던졌다.


결혼하니까, 좋냐?


결혼이야 좋은 점도 싫은 점도 있지만, 미혼의 그녀가, 그리고 나보다 언니인 그녀가 묻는 그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냥 그저 그렇다'며 웃음으로 그 대답을 대신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 질문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제 너는 나와 다른 자'라는 어떤 선 같은 것.


그 후로 복직하기까지 때때로 안부를 주고받았고, 복직이 결정된 해에도 어김없이 새해 덕담과 격려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학교에서 인사 발표가 났고, 나는 학생과에 배정받았다. 우리 학교는 질병이나 육아로 인한 휴직 후 복직하는 교사에게는 특별히 어려운 업무를 배정하지 않는다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었다. 우선 담임은 배제하고 주로 행정부서의 계로 배정해왔다. 그렇기에 나의 인사 희망원도 그런 내용이었고 당연히 그런 보직이 배정되리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학생과라니. 아무리 예전의 학생과가 아니라지만, 기존 교사들도 기피하는 부서에 배정이 된 것이다. 잠시 머리가 아찔했다.


친한 동료이자 동갑내기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00야, 우리 같은 부서야. 올해 잘해 보자."

"어... 그렇긴 한데.... 복직자한테 너무 한 처사인 거 같아... 휴..."

친구인 선생님은 나의 마음에 동감하며 위로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에 내 귀를 의심했다.


"00야, 휴직자들 때문에 남아 있는 우리도 힘들었어."


나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설움이 복받쳐 올라왔다.


어느 회사보다도 대체인력이 잘 갖춰진 곳이 학교이다. 기간제 교사들이 넘쳐나고 그분들이 있기에 우리의 휴직이 다른 기업보다 용이하다. 게다가 '휴직'이란 절차는 합당한 사유를 가졌다고 보는 사안에 한해 인정받은 것이고, 육아휴직 역시 국가와 기관이 인정한 공식적이고 정당한 휴직이다. 사기업처럼 휴직자로 인해 남은 인력이 그 사람의 해당 업무를 떠맡아야 하는 구조도 아니다. 휴직을 함으로써 내 역할은 기간제 교사가 대체한다. 그렇기에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내가 해야 할 보직이나 담임업무를 떠맡게 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휴직자들 때문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힘들었다는 말은 도대체 어떤 논리인가. 그것도 친구라는 사람이, 그것도 휴직 당사자에게.


전화를 끊고 한참을 울었다. 안 그래도 돌아가는 것이 두려운 복직인데, 내가 피해를 주고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니. 게다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집단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돌아가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서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화도 났다.


우선 급한 것은 업무 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기하는 일이었다. 바로 다음 날 학교를 찾았다. 그리고 그 친구 선생님과도 쌩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 후에 내 귀에 전해지는 소식이 심상치 않았다.


내가 인사에 대한 불만으로 교감실에 가서 울고 불고 하면서 생떼를 썼다느니, 육아휴직자들에게 학교가 억울한 처사를 했다느니, 하는 류의 이상한 소문들 말이다. 학교는 특히 '고인물 집단'은 워낙 말이 많은 곳이라지만, 어떻게 따지면 감정 학대의 피해자인 내가 오히려 가해자로 둔갑되어 있고, 심지어는 육아 우울증 환자로 만들어 놓기까지 했다. 자신만 학생과에서 유일한 여교사로 남았다고 위로를 받아가며, '오죽하면' 휴직자들 때문에 힘들다는 말까지 했겠냐면서 복직자들이 특권을 누리려고 한다는 류의 말을 하고 다닌 듯했다. 자신의 부끄러운 말실수를 인지하고 떠드는 일종의 '사전 쉴드'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소문 진원지는 다름 아닌, 그녀였다.


친구 선생님과 절친인 그녀는 자기의 논리대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지나가는 이들을 붙잡고 틈만 나면 나를 헐뜯었던 것이다. 복직 인사를 하러 들렀던 학교 분위기는 그야말로 냉랭했다. 차가운 눈초리 가운데 몇몇 반가운 인사가 그렇게도 고맙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카더라, 가 카더라로 끝날 수 있었다면, 나는 그녀와 화해하고 예전과 같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편의식의 이야기를 했다는 증언이 속속 들려왔다.


며칠이 지나고 트러블의 당사자인 친구 선생님을 찾았다. 결혼 못한 사람은 인사배정받은 대로 따라야 하고 결혼한 사람만 이의제기를 할 수 있냐며 서러워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사에 불복하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며, 기혼자들이 그것을 막은 것이 아니다. 게다가 결혼과 육아, 그리고 질병만큼 인사 이의신청에 합당한 사유 또는 핑계거리가 큰 것이 없기 때문이지 결코 미혼이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프레임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건 누가 봐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논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왜 너는 되고 나는 안되는데, 나는 참아왔는데 참고 있는 나에게 너의 푸념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는 이야기였다. 여기에 논리는 없다. 그저 스스로 선택한 비혼과 그 선택으로 인해 스스로 느꼈던 설움이 폭발한 것이다. 심지어 내가 만들어 준 설움이 아닌, 스스로 만든 설움이 말이다.


개학을 하고 드디어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실 그녀에게도 이유를 묻고 싶었다. 나의 이의신청 소식과 정정된 인사발령에 인사위원에게 당장 달려가 따진 이유가 무엇인지. 나의 이의신청이 그녀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발 벗고 나서서 반대를 했는지. 특히나 나와 얼마 전까지도 새해 덕담을 나누던 그녀의 그런 행동은 배신감마저 들게 했다. 그런데, 그녀는 전혀 모르는 척 나에게 인사를 건네다니 철면피 같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그 후로 그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를 공격했다. 내 업무에 비합리적인 사유를 들이밀며 사사건건 불만을 터트렸다. 나 역시 지지 않고 공개적으로 그녀를 반박했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녀를 잘 알고, 그녀는 나를 잘 안다. 그렇기에 서로에 대한 공격이 누구보다도 더 치밀하고 치졸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싫어했던 것인지. 그들이 했던 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매우 독실한 크리스찬이지만 하나님을 부르짖는 혀로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일을 일삼는다. 그러면서도 정작 상대 앞에서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는다, 캄보디아 선교가 면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사건건 참견하여 지적하기를 즐기고, 매사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로남불의 처사를 한다, 신입교사가 들어오면 군기반장 역할을 하고, 상대 LINE의 후배 교사의 인사는 받지도 않는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류의 경험을 하면서 그녀에게 치를 떨어왔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가까이서 겪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의 좋은 점을 알지 못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수업은 외국어이다 보니 아무래도 수업 중에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강의식 수업에 비해 더 크다. 게다가 팀별 프로젝트 수업을 하다 보면 팀별로 핸드폰을 사용하여 각종 과제를 완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대해 그녀는 다른 선생님을 붙들고 시끄러워서 신관으로 보내버리면 좋겠다는 둥, 애들이 죄다 핸드폰만 하고 있어서 관리가 안된다는 둥 여러 가지 이유로 나를 헐뜯었다. 휴직 전에도 해왔던 수업이 복직하고 나서 유독 그녀의 헐뜯김을 당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내가 기혼자이기 때문에. 더 나아가 '자신은 못하는' 육아휴직을 했고, 미혼들은 못했던 '인사 불복'이 통했기 때문에.


'나는 육아휴직을 못하기 때문에 나한테 주어진 연가나 병가라도 최대한 많이 써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한 적이 있다. 사실 학교에서는 연가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허락을 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연가를 쓰기 위해서는 수업 교체가 필수라서 학생들에게나 다른 교사에게 민폐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병가는 다른 교사가 그를 대신하여 들어가야 하는 구조라 어지간히 아프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 가운데 이 말은 정말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으로 들렸다. 물론 휴직과 매한가지로 개인에게 주어진 권리이기 때문에 자신이 쓰고자 하면 얼마든지 쓸 수는 있다. 다만, 전제조건이 '나는 육아휴직을 못하기 때문에'라며 육아휴직자들을 적군의 프레임으로 만들어 놓는 것은 정말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학교라는 곳에서도 기혼자에 대한 시선이 이러한데, 기업에서는 어떨까 싶다. 대체인력이 어느 곳보다 풍부한 곳임에도, 아이를 길러내 사회로 내보내는 곳임에도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리는 것에 대한 질투는 여느 집단 못지않게 높은 것 같다. 물론, 그것은 그녀의 문제이지 결코 학교 전체가, 교사 집단 전체가, 크리스찬 전체가 그런 것이라고 확대시켜 생각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학교라는 것이, 그녀가 교사라는 것이, 그녀가 독실한 크리스찬이라는 것이 참으로 씁쓸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녀는 미혼이다. 정확히는, 비혼이다. 그녀의 여동생은 기혼이지만, 아이가 나면서부터 큰 수술을 받는 등 원만하지 못했다. 그것을 제외하면 그녀의 눈에 기혼자들은 모두 행복에 겨운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겠다.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분명 그녀의 선택이었지만, 결혼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문제는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를 그렇게 비뚤어지게 만든 것은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그런 불편한 감정을 느끼도록 만든 것이 기혼자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가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 그녀는 악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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