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의 명절은 이기적이다

by teaterrace



시가에서 명절음식 준비를 마치고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큰집으로 건너가셔서 음식준비를 하고 계신데 건너가기 전에 아빠와 말다툼을 하신 모양이다. 예견된 일이었다.


본래 우리 집안의 차례와 제사는 사촌 큰오빠네서 지내왔는데 큰언니가 더는 못하겠다고 반기를 들자 '홧김'에 큰어머니네로 모셔왔다고 들었다. 그래서 지난 추석부터 큰어머니댁에서 지내게 되었고 사촌오빠들과 조카들, 그리고 우리 부모님만 참석했다고 한다.


나는 사촌 새언니의 결정을 지지한다.

(물론 나의 지지는 '빌어먹을 출가외인'인지라 효력이 없지만...)


사촌 둘째오빠네가 별거중인데다 내 동생네까지 출산 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연속 불참한 것도 언니 입장에선 억울하게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분담해야 하는 일손들이 빠지면서 '독박'을 쓰는 상황은, 본래부터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보다 더 불합리하게 여겨지는 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남의 조상 제사(차례)에 동원되는 일이 썩 반갑지는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전의 나는 그 집안의 자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내가 그곳의 노동력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야 너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한국의 며느리는 으레 그래야 한다고 하니 의심없이 해왔거나, 싸우기 싫어서 참았을 뿐인 것이다.



결혼 전 나의 명절은 가기 싫어도 가야하는 큰집이 있었고, 그곳에서 나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일손을 보태야 하는 날들이었다.


딸이 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여자는 부엌의 일손이 되어야 한다는 통념상, 당신의 딸이 통념을 반하는, 그래서 부모의 얼굴에 먹칠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사촌 새언니들과 더불어 나는 부엌일의 일원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굳이 큰집까지 가서 나의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분쟁을 해서 얼굴 붉히느니 싫어도 참고 하는 쪽을 선택했다.


자식들이 그럴 정도이면, 남의 집 사람인 '을'의 며느리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엄마아빠의 말다툼은 명절음식준비가 큰어머니와 엄마에게 토스되어 온 이상 이제 더이상 차례를 지내지 말자는 엄마의 폭탄선언으로 시작된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그만 하자는 건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나이든 엄마들이 언제까지고 명절음식 준비를 할 수는 없다고 표명한 것이다. 아빠는 큰집에서 아무말도 없는데 왜 당신이 나서서 차례를 없애자고 하는지에 대해 핏대를 세우신 모양이다.


아빠 입장에서는 못다한 효도를 제사로나마 하고싶은 것인데 다짜고짜 없애자고 하는 것이 거슬리신가보다. 하지만, '내 부모와 조상'에 대한 효도는 '내가 해야하는 것'이지 다른 이에게 강요되어 유지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기껏해야 밤을 치고, 접시에 올려진 음식을 제사상에 세팅하고, 지방을 쓰고, 술따르는 게 자식이 하는 효도의 전부이고, 나머지 핵심적인 효도는 며느리들의 몫인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도 납득하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이 문제로 가족들이 불화를 겪는 상황에서 이미 돌아가신 분을 향한 효도와 전통만 앞세우는 것은 '이기적인 아버지의 자화상'이 아닐까.


전화통화를 하며 나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챙기려면 자기 조상 제사나 챙기던지 왜 남의 집에 가서 이러고들 살고 있는지 이해가 안가네. 살아있는 사람들이 행복해야지 명절도 의미가 있지 이렇게 가족간의 불화를 조장하는 명절이 무슨 필요가 있어. 차라리 원가족들끼리 모여서 맛있는 식사 한끼하고 돌아가신 분 추모하고 마치면 얼마나 간단해요."


시가사람들도 이런 나의 생각을 알아야 한다고 여기는 나의 소심한 발악이었다. 나 역시 '명절 시가우선행'으로 시가에서 일한 후였기 때문이다. 주말가족으로 부모를 자주 보지 못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별말없이 따라오긴 했지만 말이다.



할 수 있는 한 '사위는 만년손님'='며느리도 만년손님'모드로 있으려고 작정하고 왔다. 하지만, 천성 때문인지 관성 때문인지, 버티는 것이 외려 곤혹스럽기도 했다.


가족들 앞에 이번 명절 설거지는 자신이 전담하겠다고 선언한 남편이 가여웠지만 꾹 참았다. 친정에 가면 엄마의 만류에 물 한방울 못 묻히고 있는 남편이니까 나 역시 남편과 같은 것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물론 나는 누구의 만류도 없었지만 말이다. 남편의 희생으로 큰집 역시 설거지 면제되는 상황은 싫었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 여기며 버텼다.


대신 최대한 남편을 움직이게 했다. "어서 가서 어머님 서포트 해."라는 나의 말에 남편은 어느때보다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그럼에도 음식준비를 도운 것은 어머님이 안쓰러워서였다. 시키지 않으면 셀프로 움직이지 않는 아들 둘의 어머니라, 여기가 친정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고 기꺼이 도운 것이다. 나의 이 손은 어딜가나 '손이 빠르다'라는 말을 듣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ㅇㅇ가 도와 주니 역시 일이 빨리 된다'며 나를 치켜세우셨다. 하지만 일 잘한다는 칭찬은 그다지 반갑지는 않다. 칭찬의 기대치가 부담스럽기때문이다.



그렇게 버텨냈는데도 여전히 소화가 안되는 것은 시아버님이다. 이 집안의 아버지도 우리 아빠와 같이 이기적인 가장이다. 연세가 있으시니 일손에 보탬이 안되시는 것까지는 충분히 양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산에 가자면서 일손을 빼갈 때마다 정말 분통이 터진다. 안그래도 바쁜데 굳이 당신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을 만드시니 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산에 가고싶으면 혼자 가시거나, 오늘만 고집하지 않으면 된다. 왜 굳이 명절 전날이어야 하고, 명절음식 준비에 당신까지 챙기는 의무마저 만드는 것일까. "도울 며느리가 두 명이나 있다"라는 말씀에 "아들들도 둘이 있습니다"라고 반박했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결국 이번에도 희생이랍시고 아버지를 따라나선 시아주버님도 세트로 밉상이었다. "나도 전 부치고 싶은데..."라며 얄밉의 끝판왕 멘트까지 날리며 나가는 뒤꼭지를 보니 정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산행이 결코 쉬운 거라 말할 수 없지만, 노인과 더불어 말동무가 되어주며 사브작 걷는 것이 명절음식 준비보다 어려운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 전 부치세요. 아버님 포기하시게..."라고 말했지만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나가버리셨다. 그리고 산행 후 막걸리에 안주까지 대접 받은 후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셨다. 두 분 모두.


어머님을 기꺼이 도왔던 내가 싫어졌다.


동행


나는 합리적인 것보다 '함께 하기'를 더 가치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조금 더 고되고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하며 먼저 끝낸 이가 돕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


내가 설거지를 하면 남편은 쉬고 있다가 다음 차례의 설거지를 담당하는 것보다는, 내가 설거지할 때 남편은 청소를 하고 둘이 함께 쉬는 것이 더 좋다.


학교에서도 청소조를 나누어 한 조가 청소를 하는 동안 남은 한 조가 쉬게 하기보다는 조금씩이라도 자기역할이 부여가 되어 학급일에 기여하며 함께 하기를 강조한다. 비록 효율성은 떨어지는 방식일 수 있지만, 청소시간을 통해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은 효율성이 아니라 함께 하며 돕는 과정을 체득하게끔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정해진 분량의 집안일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것보단 조금씩이라도 함께하고 함께 쉬며 다독이는 것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식구란 '함께' 밥을 먹으며 사는 사람들이니 다른 어느 집단보다 '함께 가기'의 가치가 중요시되어야 하는것 아닐까.


일손에서 빠지는 것이 서로간의 합의와 양해가 있은 후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형님부부만의 협의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이기적인 생각의 산물이라는 것을 부부 모두 모르는 듯 하다. 4인이 할 분량을 3인이 하게 되면 개인당 배당되는 분량은 많아질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물론 가족이니까 매정하게 똑같은 양을 배분할 수는 없다. 다만, 매번 한 사람만 일에서 해방이 되고 나머지가 그일을 떠안게 만든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결과물이 된다는 것이다.


줄곧 노동에서 배제되지 못한 내 남편만 가여워졌다. 에잇.


며느리들이 손을 놓으면 고생하는 사람은 결국 당신 아내와 자신들의 어머니이다. 남자들은 그걸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라면 아버님같은, 아주버님같은 행동은 나올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나마 위안을 찾자면, 이번 산행에서는 아이들을 대동했던 터라 조용한 가운데 음식준비가 가능했던 명절이었단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쩌면 시부모님 두분 모두 둘째아들 혼자 설거지하게 둔 두 며느리를 괘씸하게 여기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또한 시아버님은 이번에도 마이웨이를 걸으며 가족에게 민폐의 아이콘이 되었단 것을 깨닫지 못한 이기적인 '어른이'이셨다.


우리 아빠 역시 여자들의 반란에 이해 의지라고는 전혀 없이 분노만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버지들의 명절은 참으로 이기적이다.


전통이란 것이 왜 요즘 세대들에게 외면받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이라는 짐을 졌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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