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는 동물로 태어나지 말기를.

by teaterrace



시가에 새로운 강아지가 왔다. 이름은 구름이. 녀석은 낯을 전혀 가리지 않고 오는 사람마다 반갑다고 연신 꼬리를 휘두른다. 마당에서 집안을 기웃거리다가 창가에 사람이 다가오면 앞발로 하이파이브를 시도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살가워서 첫 만남에 마음을 뺏겨 버렸다.


사실 이 녀석을 데려온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만 해도 야속한 마음이 더 앞섰다. 본래 데리고 계시던 진도견 하양이를 다른 집으로 보낸 이유가 자유롭기 위해서 라고 하셨었다. 약국을 정리하시고 집을 비우실재면 아무래도 마음이 쓰이시기에 같은 동네 소 키우는 집에 보내셔야 할 것 같다고 했는데 얼마 안 가 새로운 강아지를 들이신다는 게 너무 서운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양이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왔다. 그 당시 키우던 보도콜리 서동이가 기생충에 감염되어 하늘나라로 가, 녀석을 대신할 멍멍이를 찾고 계셨다. 분양받지 말고 입양하란 말에 여기저기 찾아보다 유기견 어플을 알게 되었고 운명처럼 안락사 하루 전의 하양이를 입양했다. 본래 입양하려던 아이와 입양자 가족이 뒤바뀌어 다른 아이로 입양하게 된 것도 우리를 인연으로 묶어주었다.


남편과 함께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데려가 건강검진을 받고 깨끗하게 목욕도 시켰다. 누렁개가 하양이도 탈바꿈한 순간이었다. 사정 이야기를 들으신 의사 선생님은 검진료도 할인해 주셨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갔고 마당이 있는 너른 집에서 자라게 되었다.


상처가 있는 녀석들의 특징은 대개 둘 중 하나인 듯하다. 인간에 대한 경계심으로 똘똘 뭉쳐 분노의 이빨을 드러내거나, 다시 버림받기 싫어서 간과 쓸개 다 내어서 인간의 사랑을 받으려고 하거나.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시츄 재롱이는 전자였고, 새로운 가족이 된 하양이는 후자였던 것 같다.


혹시 벙어리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짖지 않았다. 대신 엉덩이가 찰싹거릴 정도로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곳 생활에 익숙해지자 의젓하게 멍멍 짖기도 했고 살도 제법 붙어서 정말로 하양이가 되었다. 이제 내 땅이다, 싶은 모양이었다.


시골 양반들이니만큼 고급사료 같은 건 없었다. 다만, 먹고 남은 음식들과 생선들을 모아 특식처럼 주셨고 가끔씩 아주버님이 보내주시는 고급 간식을 먹이기도 하셨다.


특히 우리 가족이 갈 때면 그렇게 반갑게 맞이할 수가 없다. 나도 내가 구한 생명이라 각별히 애정이 가는 듯했다.


"당신이었죠? 나를 구한 사람이..."

"그래, 나야. 잘 적응하고 살아줘서 고맙구나."


우리는 볼 때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눴다. 이런 대사가 항상 전해져 왔으니 녀석이 보낸 것이 틀림없다.



그랬던 하양이를 다른 집으로 보내신다고 들었을 때는 정말 너무너무 서운했다. 내 필요에 의해 데려왔다가 필요 없으니 보내버리는 것이, 만약 사람이었다면 가능했을까? 집안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는 녀석들과 마당을 지키는 녀석들과의 친밀도는 아무래도 다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의 마음대로 처분되는 그들의 운명은 너무 가혹한 것 같다. 사람의 말은 못 해도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공유하는 동물이니까 말이다.


부모님이 강아지 때문에 삶에 얽매임이 생긴다면 그 또한 고려해야 할 일이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인간에게 두 번이나 버림을 받은 하양이가 남은 여생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을까 염려도 되었다. 책임지지 못할 생명이라면 거두지 말아야 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개장수한테 팔지 않을 사람이면 돼요."


부모님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남편이 말했다. 소들과 함께 심심치 않은 삶을 살게 된다면 좋겠는데, 나는 아무래도 마음에 상처 하나를 더 추가한 듯싶어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하다.


"원치 않는 죽음에서는 너를 구했지만,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이렇게 어렵게 보냈는데 새로운 멍멍이라니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았다. 지인이 하도 부탁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맡게 되셨다고는 하는데 하양이를 생각하면 영 탐탁지 않은 설명이셨다. 하양이를 향한 미안함이 어느새 새로운 멍멍이에 대한 미움으로 바뀐 듯하다.


"흥! 니가 아무리 귀여워 봐라. 내가 눈길 한 번 주나."


이런 마음으로 시가를 찾았던 것이다. 분명 사진 속에서는 뺀질하게 생긴 스피츠였는데 녀석은 다른 실물을 하고서 이름처럼 몽글몽글하게 나에게 왔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녀석의 행동이 너무 살갑다. 쌀쌀맞은 재롱이에게 못 느껴본 살가움이었다.


하양이가 소에게 밟혀 죽으면 어떡하냐던 아들 녀석도 어느새 구름이에게 푹 빠져있었다. 사람의 말에 온순하게 귀를 기울이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도 거처를 바꾸면서, 살아남고자 저리도 살갑게 구는 거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개들의 삶이란 어찌 이리도 슬픈지. 어떤 인간과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 그들의 희로애락이 정해진다니 전생에 도대체 어떤 업보가 있었기에 이리도 잔인한 현생을 살게 되었을까 참으로 안타깝다.


환불을 거부당하자 3개월 된 강아지를 던져 사망하게 했다는 기사에서처럼 동물보다 못한, 동물을 자신의 장난감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 인간들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동물이라는 이유로 말 못 할 고통과 슬픔을 이고 살아내야 하는 삶이 너무도 슬프다.


<언더독>의 뭉치와 밤이처럼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인간과 동물이 종속관계가 아닌 공존의 주체로 각자의 삶을 사는 세상 말이다. 그런 세상이 오기 전에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는 꼭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재롱이에게

너를 보낸 지 오늘로 딱 2년이 되었네. 너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무얼 하며 지내고 있니? 너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슬퍼하는 시간보다 문득 떠올랐을 때 때론 벅차고 때론 저릿한 시간들이 더 많다는 것이 미안하네. 하지만 기쁨으로 너를 떠올리며 앞으로의 날들을 행복으로 지내도록 하는 것 역시 너로 인한 것임을 알기에 앞으로도 역시 가끔씩만 너를 떠올리도록 할게.

이제 제법 자란 겸이가 가끔 너를 떠올리며 눈물지어. 그래도 아직은 아기라서 때로는 새로운 친구를 들이고 싶어 하기도 해. 그럴 때마다 '혹시 그렇게 하면 네가 다시 우리 집에 올까' 싶다가도 너는 반드시 사람으로 환생하기를 바라기에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지우곤 해.

난 지금 제주에 와 있어. 이곳 제주는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도시야. 그들을 추념하는 날이 올 때면 난 동시에 너를 떠올린단다. 벚꽃비가 내리는 장면 속을 걸을 때에도 역시 너와의 산책을 떠올린단다. 때로는 슬픔 속에서 너를 찾고 때로는 행복 속에서 너를 생각하고 있어. 이 정도라면 다시 너를 만났을 때 원망의 소리를 듣지는 않겠지?

제주에는 고사리 장마라는 것이 있대. 육지에선 겪은 일 없는 그 장마철이 요즘인가 봐. 습하기도 하고 흐리고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아서 추억에 잠기는 일이 많아지는 요즘이야.

우리의 손길에 늘 귀찮은 듯 반응하는 너였지만 그래도 우리 곁을 좋아했단 걸 나는 알아. 오늘은 추억 속의 네가 아니라 진짜 너를 곁에 두고 쓰다듬고 싶다.

보고 싶어, 재롱아.

2018년 4월 3일

-아픈 과거를 안고 있는 도시에서 너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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