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가족으로서 한 시기를 살았다는 것에 감사해

세상의 많은 이별 2

by teaterrace




아침에도 녀석은 아빠의 출근 밥상머리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며 먹을 것을 구걸하는 형편이었다. 기관지 협착증으로 숨쉬기 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어도 줄지 않는 식욕을 보면, 먹성은 본능인가 싶은 생각이 절로 다.


여느 때처럼 아빠는 출근을 하시고, 엄마와 단둘의 일상을 보내던 녀석은 오후 나절부터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부엌 근처에 펑하니 오줌을 싸놓기도 했고, 엄마의 품 안에서 쉬려 하지도 않았다. 진통제의 효과를 얻어 잠시 잠이 든 순간을 빼고는 가뿐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통에 편히 엎드려 쉬지도 못했다. 그런 아이를 품에 안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안절부절못하기는 엄마도 매한가지였다.


재롱아, 왜 그래...


자신을 품에 안으려는 엄마를 뿌리치고 배변판 쪽으로 걷던 녀석은 이내 참을 수 없었는지 똥을 몇 방울 떨구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엄마의 곁에 다가오지 않으려고 했다.


초조한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리고 저녁 8시쯤.


더울 때마다 찾아가 몸을 식히곤 했던 베란다 문 앞으로 가서는 있는 힘껏 숨을 토해내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재롱이는 그렇게 별이 되었다.



이별이란 것.


특히, 사별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도 견디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준비 없는 이별은 그보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당황스럽고 더 견디기 어렵다.


우리 가족이 그랬다. 이런 이별은 경험한 적도 없었고,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조금만 예측했더라도 어쩌면 아이가 보내오는 신호를 눈치채고, 그를 위해 무언가 하나라도 준비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로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밤만 되면 잠든 아이 곁을 빠져나와 미친 듯이 엉엉 울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제는 추억처럼 재롱이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날을 떠올리면 아프고, 미치도록 보고 싶다. 그저 재롱이와의 행복했던 순간들, 그리고 이별하며 겪었던 장면들을 내 기억의 퇴화로 잃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다른 이들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담담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는데, 그저 다시 또 보고 싶다.





2016년 4월 4일.


날짜조차도 기가 막힌 이날은 재롱이의 실제 모습을 보고 만질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일산 모처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재롱이를 보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이미 영혼이 되었을 재롱이 곁에서 밤을 지새우셨고, 장례식장으로 떠날 채비를 하던 엄마는 재롱이의 몸을 흔들고 두드리며 일어나라고 통곡을 하셨다.


동생이 운전을 맡았고 아빠평소 재롱이가 지내던 담요로 아이를 감싸 안았다. 40여분 동안 우리 가족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이윽고 한적한 교외가 나타나고 재롱이를 보낼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미 도착한 다른 가족들의 울음소리를 들려왔다. 더럭 겁이 났다. 동물 가족들의 영정사진이 놓여있고, 제각기 사연을 가진 동물 친구들의 시신도 보였다.


재롱이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재롱이에게 편지를 썼다. 이윽고 이별의 방에 재롱이를 뉘이고 이제 다시 보지 못할 그리고 더는 만질 수 없는 재롱이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고 손끝에 기억했다. 콧구멍에서 피 같은 것이 흘러내리기에 화장지로 닦아주기도 하고, 초점을 잃은 재롱이의 눈과 마주해보기도 했다.


장례지도사가 들어오더니 재롱이의 몸을 깨끗이 닦아주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고 했다. 이제 더는 만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서둘러 재롱이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재롱아.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재롱이는 우리 가족의 곁을 떠나 화장로로 들어갔다. 창문을 통해 누워있는 재롱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는 커튼을 닫았다. 엄마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나는 정신없이 울었다.


30분도 채 안되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재롱이의 유골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고운 분골이 된 재롱이가 도자기함에 담겨져 우리에게 건네 졌다. 재롱이를 감쌌던 담요를 끌어안고 비비다가 결국은 깨끗한 곳에 버려달라는 당부를 하고는 차에 올랐다. 유골함을 꼭 끌어안은 채 또다시 말없이 40분을 달렸다.


재롱이의 유골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제각각 달랐다. 아빠는 평소 재롱이가 산책하던 하천로에 뿌려주기를 원하셨고, 엄마는 가끔 찾아가 볼 수 있게 동네 동산에 있는 나무 아래 묻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나는 외국처럼 집안에 두고 언제든 재롱이가 곁에 있는 느낌을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한국사람의 정서상 나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인적이 드문 새벽녘, 재롱이가 즐겨 찾던 산책로에 자유로히 풀어주었다.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벚꽃이 흩날리는 그 계절에 재롱이도 벚꽃처럼 그렇게 공중을 유영하며 행복하게 날아갔을 거라고 믿는다.



재롱이와 한평생을 같이 한 집에서 이사를 나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재롱이와의 추억이 깃든 집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 괴로웠던 것이 크게 작용을 했다. 하지만, 그 반면 그곳이 있어야 재롱이도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재롱아. 우리 함께 한 곳에서 떠나도 슬프지 않겠니?


재롱이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서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도움이 필요했다. 동물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도 믿기 힘든데, 사자(死者)와의 대화라니. 평소의 나라면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또 어쩌면 '괜찮다'는 대답이 듣고 싶은 바람도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재롱이를 사랑하는 마음 이상으로 재롱이는 우리 가족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녀석과 가족으로서 한 시기를 살았다는 것이 고마울 정도로 말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재롱이는 우리 집에 처음 온 순간부터 평생을 함께 할 곳임을 알았다고 했다. 또다시 다른 집으로 보내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드는 순간도 이따금 있었지만, 행복한 시간들이었다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으며 익숙한 냄새가 코를 통해 들어왔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한없이 아쉽고 미안한 우리를 달래주기라도 하는 듯 재롱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1분 1초도 남김없이 다 쓰고 갔다고 했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족들이 힘들어질 것을 알기에, 또한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평소처럼 똑같은 하루를 보내다 예고 없이 떠난 것이라고.

더 놀라운 것은 재롱이와의 이별을 슬퍼하는 가족들을 보며 비록 추억이 깃든 집이지만 그곳을 떠나기를 재롱이 자신이 원했다고 했다. 떠나는 것이 아쉽긴 해도 가족과 함께 하는 새로운 집도 재롱이 자신의 집이라고 여길 거라고.


재롱이 생일인 12월 25일에 받은 선물 같은 이야기였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쩌면 커뮤니케이터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소 재롱이의 성품과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화를 보며 나는 그것이 정말 영혼이 된 재롱이가 보내는 메세지라는 것을 믿고 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믿기 힘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한 것은 다름 아닌 동물가족과의 이별로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과 행복했던 이상으로 그들도 행복했고, 설령 이별의 신호를 보내오지 않더라도 그것 역시 그들의 배려와 사랑이었으며, 그들과의 인연이 비록 길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이 다했기 때문이므로 못 다해준 사랑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프거나 노령기가 되어 언제 이별을 할지 모르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족들은 나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그들이 보내오는 이별의 신호에 귀를 기울여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기는 하지만 설령 그렇지 못한 이유로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동물 친구들은 우리를 더 크게 사랑하고 우리보다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으며 우리가 표현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이해해 준다는 것이다.


이 녀석과의 만남을 통해서 사람 간의 사랑과 정보다 더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베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베풂을 받았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인간에게 더 큰 사랑과 배려를 베푼 재롱이의 후생이 진심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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