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그 귀하고 숭고한 이름.
빛바랜 양푼에 밥 숟가락으로 푹푹 떠낸 미숫가루와 설탕을 넣고 물과 함께 뭉침 없이 젓는다. 그 위에 얼음을 동동 띄워 후루룩 마시면 에어컨 없는 시골 마루에서도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목이 메일 정도로 걸쭉하지도 않으며, 달달하며 고소한 그 맛이 내 손에서는 쉬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좀 더 맛있게 내려고 물이 아닌 우유를, 그리고 더 많은 곡류가 들어간 가루를 써보지만, 할머니의 그 맛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아침부터 두려운 거다. 할머니가 새벽에 위독하셔서 아빠랑 삼촌이 할머니 댁으로 가셨고, 엄마는 우리 아이 등원 때문에 남아계셨다는 말을 출근길에 듣긴 했지만 당장 오늘은 아닐 거라고 하셨다.
엄마의 엄마.
어릴 적 나의 추억을 회상하려면 할머니를 빼놓고는 말할 수가 없다. 맞벌이인 엄마 아빠를 대신하여 할머니가 우리 남매를 돌보셨다. 지금 나의 엄마도 손주를 돌보느라, 당신 엄마가 위급하다는데도 오늘은 아닐 거라며 아빠와 동행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할머니는 자신의 마음과 시간을 떼내어 우리를 위해 쓰셨다.
혹시라도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못하게 하는 원인이 내가(또는 우리 아이가) 될까 봐 두려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해 들어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쉬는 시간에 우연히 브런치 글을 보는데, 하필 이월 작가님의 "큰 할매, 안녕"이라는 글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갔고 읽으며 내내 두려웠다. 또한 나도 우리 할머니를 얼른 보러 가야 한다는 마음에 조급함도 들었다.
본능적으로 내 마음이 알아차렸나 보다. 분명 내 머리는 '내일모레 토요일에 꼭 할머니를 찾아뵈어야지'하는 다짐을 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기다려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 마음은 어쩌면 할머니와의 이별을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나 보다.
10년 정도 숙환으로 고생하시던 할머니는 막내 이모집에서 계시다 오늘 아침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그리고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삼촌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자손들이 눈앞에 아무도 없을 때 그렇게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요 며칠 통 식사를 못하시고 변도 못 보신다 하더니 오늘 아침 검은 변도 보시고 미음도 조금 받아 드셨다고 했다. 엄마는 가시기 전에 마지막 변을 비우신 것 아닌가 싶다면서도 당장 오늘은 아닐 거라고 하셨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습관처럼 말씀하시면서도 정작 엄마도 눈앞에 닥친 당신 엄마와의 이별이 생각만큼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수한 아이의 오줌을 닦다가 갑자기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본능적으로, 할머니와 관련된 전화임을 알았다. 하지만, 아니기를 바라면서 슬픈 예감이 빗나가기를 바라면서 전화를 받았다. 쥐어든 걸레를 더 옥죈 채, 아이 앞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필 남편도 출장으로 없고, 아빠도 출근하신 그 날. 남편과 아빠가 오기를 기다리며, 난 엄마에게 전화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보다 더 아플 것이다. 내가 정신을 다잡고 엄마를 위로해야 한다.
"엄마... 엄마.... 어떻게 해... 엄마... 미안해.... 너무 미안해요... 나 때문에 할머니 마지막 모습도 못 보고... 엄마 너무 미안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엄마를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나의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었다. 나의 정신없는 사과에 엄마는
"니가 왜 미안해... 울지 마... 할머니 가실 때 돼서 가신 거야. 울지 마..."
라며 나를 위로하는 엄마. 내 마음이 이리도 아픈데 우리 엄마는 오죽할까. 마냥 못되게 굴 수 있는 유일한 내편이 이 세상에서 소멸해 버린다는 기분이 과연 어떤 것일까. 마음 놓고 목놓아 울 수 있는 나의 안식처가 사라진다는 느낌은 절망과도 같겠지. 그런 마음이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작아졌겠는가.
하루키는 '죽음은 삶의 대극(對極)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고 했던가. 평소 좋아하던 그의 문장이 내 개인적 상황이 되니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죽음도 삶의 연장선에 있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철학적 메시지가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내 눈앞에 그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마냥 슬프기만 하다.
두 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차에 올랐다. 아이가 어리고, 첫날은 가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날이 밝으면 그때 오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이번 주말에 가겠다고 했는데, 결국 할머니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하지 않아 후회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뒤로감기를 반복하여 스스로를 파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여러 번 깨달았다. 최근 여러 번의 주말을 넘기면서 입으로는 가서 뵈어야 함을 끊임없이 말하면서도, 결국 나는 그 주말을 그렇게 보내버렸다. 하기에 이번에는 결코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미 숨이 떨어져 버린 할머니지만, 살아계실 때와 가장 가까운 시간에 할머니를 뵙고 싶었다.
차 없는 한밤의 도로를 고속으로 달렸지만, 그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소 두엄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그곳에 할머니가 있었다. 아직 영정사진도 놓이지 않은 빈소에 이르러서야 할머니가 정말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할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 날 입관식이 되어야 볼 수 있다고. 엄마의 오열을 바라보며, 나는 빈소의 구석에 앉아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짧은 조문기간에 몰리는 문상객들을 접대하는 것으로 시간은 바쁘게 흘러갔다. 큰 손주로서 동생들을 인솔하여, 그리고 엄마를 비롯한 이모 삼촌을 대신하여 해야 할 일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그분들도 으레 나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느끼며 '나도 이제 그만큼의 나이가 되었구나' 실감하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는 많은 사람의 손에 오고 가며 즐거이 제 몫을 다하며 놀아주었다.
할머니와 마주해야 할 시간이다. 설레이고도 두려웠다. 설레임은 그간 못 뵈었던 얼굴을 드디어 뵐 수 있다는 기대감이고, 두려움은 할머니가 정녕 이 곳에 함께 하고 있지 않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인정해야 함에서 오는 절망감이었다.
입관실의 큰 유리를 통해, 수의를 입고 얼굴은 하얀 천으로 덮여 있는 할머니와 마주했다.
참으로 작다, 이 노인네.
우리 할머니는 키도 작고 왜소하시다. 초등 저학년 내의를 입으셔도 헐렁할 정도였으니 작기도 참 작았다. 어릴 적 엄마가 없을 때, 할머니 곁에 누워 할머니의 빈 젖을 빨고 만지며, 할머니는 참으로 작고 말랐구나 생각했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토록 왜소했던 할머니는 그 몸으로도 억척스럽게 농사일을 해내셨다. 병상에 눕기 전 여든이 다 되도록 땀을 뻘뻘 빼며 농사를 하시고도 지침이 없이 그렇게 억척스러웠다.
그랬던 할머니가 차가운 철제 병상에서 미동도 없이 누워있다. 하도 작아서 입혀놓은 수의 밑으로 발끝도 안 보인다. 투병기간 동안 쪼그리고 누운 그대로 굳어있던 할머니의 다리는 잘 펴졌을까. 염사(殮師)의 손끝만 주시하며 할머니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렸다.
드디어 할머니 곁으로 갈 수가 있다. 내 발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바닥에 붙어버린 것 같았다. 가장 늦게 할머니 곁으로 갔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 우리 할머니 얼굴이 이렇게 하얬던가. 손등을 가져다 대니 차갑다. 염습을 하기 전에 혹시라도 남아있을 할머니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 서둘러 온 건데, 할머니의 식은 체온만 손끝에 전해졌다.
가족들의 오열과 후회 어린 말들이 오갔다. 나는 할머니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할머니... 할머니... 늦게 와서 정말 미안해요. 어릴 적 할머니는 나의 엄마였는데, 머리가 커버린 할머니의 큰 손주는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도 보러 안 갔어요. 할머니... 할머니... 정말 미안해요. 왜 안 기다려줬냐고 할머니에게 원망도 할 수 없을 만큼 할머니는 나에게 많은 시간을 줬는데... 할머니. 우리 겸이 얼굴 한 번 밖에 못 보여드렸네. 할머니... 미안해요..."
할머니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편안해 보이셨다. 오랜 통증과 이별을 해서인지, 당신이 세상에 뿌려놓은 자손들이 당신 곁에 모두 모여있음에 느끼는 행복감인지 모르겠지만, 생전 처음 보는 하얀 얼굴이 그리도 편히 보였다.
"할머니... 참.... 곱다... 우리 할머니.... 이렇게 고운 모습 처음 보네... 맨날 볕에 나가서 까맣게 그을린 쪼글쪼글한 할머니만 봤는데, 우리 할머니도 이렇게 곱네... 할머니... 예쁘다.... 우리 할머니... 정말 예쁘다..."
할머니는 말이 없다. 살아계셔서 이런 말을 들으셨다면 분명, "이런, 육시랄 놈. 호호호"하셨을 거다. 육시랄 놈은 정말 무서운 저주의 말이지만, 옛날 어른들은 자손들 곱게 키우면 금방 저세상 사람이 될까 봐, 부러 못난 별명과 저주의 말을 하셨더랬다. 요즘 사람들이었다면, "이런, 궁디팡팡할 녀석." 정도라고 받아들이면 되려나.
"할머니. 이제 아프지 않지? 편안하지? 우리들 보고 있지? 이제 더 아프지 말고, 고생도 그만하고, 할머니 가는 그곳에서 할머니 만나고 싶은 남편으로 골라서 만나. 할머니 고생시킨 남편 미우면 인사도 하지 말고. 할머니... 행복해야 돼요... 맨날 웃으며 살고 있어야 해요... 나중에 할머니 다시 만나면 내가 진짜 후회도 안 할 만큼 잘할게. 할머니... 미안해요... 사랑해... 할머니"
할머니도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며 울고 계신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정 많고 눈물 많은 우리 할머니는 우리가 다녀갔다 돌아오는 길목에서 항상 우셨다. 꼬깃꼬깃한 꽁짓돈을 고쟁이 주머니 안에서 꺼내, 극구 거부하는 손주들의 손에 쥐어주시며 어여 가라고 손을 흔드셨다. 그러면서도 정작 당신은 그칠 줄 모르는 눈물로 우리를 배웅하셨다. 어떨 땐 그 우는 모습이 견디기 힘들어서 할머니를 뵈러 가는 것을 미루기도 했다. 그런 여리디 여린 우리 할머니, 혹시 당신을 보내기 힘들어 오열하는 자손들을 보고 따라 울고 계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이어서 가족들을 밖으로 내보내고는 할머니의 얼굴을 삼베로 덮고, 관에 안치한다. 이제는 할머니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할머니는 차가운 냉동고 안으로 들어가며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각인시켜 주었다.
몇 번의 혼절을 거듭한 엄마는 계속 흐느끼는 내게, 아이 보는 앞에서 울지 말라며 다독이신다. 그런데도 울음이 그쳐 지지 않는다. 빈소 옆 가족 휴게실 어두운 방에서 계속 흐느끼다 급기야 구토까지 했다. 화장실에서 꽥꽥 거리며 나올 게 없는 빈 위를 쥐어짜며, 그렇게 흐느꼈다.
발인제가 있는 아침. 제사상이 차려지기를 기다리며, 가족들은 아이의 재롱으로 비록 잠시지만, 마음의 휴식을 얻었다.
'걱정했는데, 이번에 증손주로서 역할을 잘 해주는구나.'
떼 부리지 않고 잘 놀고, 때론 마음이 부치는 어른들을 미소 짓게 만들며 긴 시간을 잘 견뎌주었다.
하지만, 다시 마주한 현실 속 할머니. 가족들은 또다시 한차례 오열했다.
"쉿! 지금부터 조용히 말해야 해. 할머니가 잠들어 계시거든. 큰 소리로 떠들면 할머니가 깨실지도 몰라."라고 아이에게 말해주었는데, 큰 울음소리가 아이는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다.
"할머니가 깰지도 모르는데, 왜 사람들이 저렇게 큰 목소리로 울어요?"
할머니가 시끄럽다고 벌떡 일어나실 수 있다면 엄마도 정말 좋겠다. 그럴 수만 있다면 엄마는 목이 터져도 좋을 만큼 큰 소리로 할머니를 부르짖으며 울 수 있을 것 같다.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기 위해 할머니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할머니가 누워계신 관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이마를 맞댄 후 마지막으로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영구차 안으로 들어가는 할머니를 향해, 허리를 굽혀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할머니를 실은 영구차는 할머니가 남은 인생을 사시던 집으로 왔다. 이제는 영정사진이 된 할머니는 장손과 함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당신이 일궈놓은 집의 둘레를 한 바퀴 돌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할머니를 싣고 떠나는 차를 향해 떨어진 고개가 다시 올라오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남편의 품에 기대어 울며 또다시 떠난 할머니를 붙잡고 있었다.
화장터와 장지까지는 함께 가지 못했다. 실은, 발인하는 아침부터 아이가 고열로 힘들어했다. 그래서 나 스스로 물러났다. 할머니를 추모하는 사람들을 내 힘으로 만족할 만큼 잘 모셨다는 안도감이 있어서, 할머니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나의 모습을 보며 기특한 마음으로 웃고 계시는 모습도 보았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히는 화장로 안으로 들어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서였다. 비록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평안하고 고왔을지언정, '더는 만질 수 없는 사람'이 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엄마! 왜 이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요?"
아이가 묻는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엄마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셔서 엄마가 마음이 아파."
"서울 할머니 엄마도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는데?"
"응. 서울 할머니네 엄마가 엄마네 할머니야. 그래서 서울 할머니도 슬프고 엄마도 슬퍼."
"엄마가 슬퍼하면 나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하늘나라에 간 할머니도 좋고, 하늘나라에 가지 않은 할머니도 좋아요."
그래. 맞다.
할머니는 살아계셔도, 돌아가셔도 참 좋은 분이지. 할머니의 사랑은 밤하늘의 별빛과 같이 비록 멀리 있어도, 늘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준다는 사실을 세 돌도 안된 아이가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다.
내리사랑.
나는 이 말이 싫고도 귀하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던가. 우리 엄마가 당신의 손자를 이유로 당신 엄마의 마지막을 보는 것도 마다했던 것처럼, 우리 할머니도 나에게 누구보다 더할 수 없는 희생과 사랑을 주셨을 것이다.
거역할 수 없는 밀지(密旨)를 받은 것처럼, 그것이 마치 자신들의 숙명인냥 내어주는 내리사랑의 마음은, 비록 주는 이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당연하고 진실되고 절실하지만, 받기만 하고 때론 받은 만큼의 절반도 돌려주지 못하는 이로 하여금 평생의 한으로 이고 살 게 만든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무게의 억울함이 싫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당신네들의 삶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네들의 숭고함은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가 없다.
연일 메마른 가뭄도 모자라, 폭염경보까지 내린 그 날. 할머니는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를 내려 주셨다. 자손들이 당신의 마지막을 환송하는 동안에 더위로 지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셨을 거다. 또한 평생 농사꾼으로 사셨던 할머니는 해갈을 바라는 농부들의 마음도 헤아리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할머니의 삼우(三虞)를 마친 오늘.
할머니를 떠올리며 슥슥 젓는 미숫가루 속으로 눈물이 '똑'하고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