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씩 죽을 만큼 보고싶어
세상의 많은 이별 1
by teaterrace Jan 19. 2018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아아... 으으으윽....어떻게 해...."
영문을 모르는 전화였다. 곧이어 아빠에게도 전화가 왔다.
"얼른 엄마에게 가봐. 아무래도..."
시댁에 갔다가 오는 기차 안에서 엄마의 수고를 덜자며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고 했다. 그리고 용산역에서 내려 식사를 거의 마칠 즈음 이런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우리는 부랴부랴 택시에 올랐다. 집으로 향하면서 계속 엄마에게 전화를 시도했다. 이윽고 전화를 받은 엄마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고, 울음과 통곡에 묻혀서 어떤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의 통화를 들은 택시기사도 상황을 눈치챘는지 침묵을 유지하며 최선을 향해 엑셀레이터를 밟아주었다.
집앞에 도착했지만, 나 역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둘을 볼 자신이 없었고, 어떤 감정이 들지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다만, 엄마의 통곡을 아이에게 보여주면 안될 것 같았기에 남편과 아이는 근처 카페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눈앞의 모습을 참담했다. 엄마는 가슴을 쥐어짜고 계셨고, 나의 동생은 포대자루 같은 것에 덮인 채로 누워 있었다. 들춰볼 자신이 없었다. 엄마를 위로해야 했다.
"엄마 울지마... 엄마 미안해요... 내가 저녁밥을 먹지 않고 바로 왔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엄마 혼자 이런 고통 겪게 하지 않았을텐데....엄마...미안해...정말 미안해..."
그 사이 아빠가 도착했다. 격일로 밤 근무를 하시는 아빠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것이다. 아빠는 용기있게 포대자루를 걷어냈다. 거기에 나의 동생이 정말로 미동없이 누워있었다.
"아이고....아이고..."
아빠 역시 통곡을 하셨다. 그제서야 나는 나의 동생에게로 다가갔다.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다만, 처음 경험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리고 통곡하는 엄마 앞에서 나 역시 무너질 수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아빠도 함께이니 이제는 다가갈 수가 있다.
동생의 눈을 감기려는 아빠의 처연한 모습을 보니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재롱아. 이제 아저씨 왔으니 눈 감아도 돼.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나도 새어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동생의 몸은 구석구석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점점 차갑게 굳어가고 있었다.
재롱이가 우리집에 온 것은 그날로부터 13년 전의 일이다. 지인의 부탁으로 잠깐 임시보호를 하게 되었는데, 집 안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그 당시의 엄마아빠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잠깐'이라는 말에 우리는 생전 곁에 둬 본 적도 없는 작은 생명을 거두어 들였다. 밥 먹이는 것부터 씻기는 것, 그리고 용변보는 것까지 하나하나 인터넷을 뒤져가며 글로 배운 실력으로 고비를 넘겼다.
특히 알러지 비염과 천식이 있는 엄마는 강아지를 씻기는 일에 부득불 참여하게 되면서 고무장갑을 끼고서야 손 위에 올려 놓으셨다. 뿐만 아니라 임시거처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집도 없었는데 여기저기 다니면서 영역표시를 할까 두려워, 높이가 제법되는 종이상자에 신문지를 깔고 그 안에 넣어두었다. 밖이 궁금했던 강아지는 최대한 높이 뛰어 상자 밖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했다. 수시로 콩콩 하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에게 조금 익숙해진 우리 가족들은 녀석이 먹이에 환장하는 시츄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녀석의 바둥거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일부러 빨래판을 경사지게 해두고 그 꼭대기에 먹이를 올려두었다. 그러면 녀석은 그것을 먹기위해 경사를 올라가는데 아직 어린 녀석이라 미끄럼틀처럼 주욱 흘러내리기 일쑤였다. 그런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가족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며 점점 아이에게 마음을 내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녀석이 우리집을 떠나는 날. 엄마와 나는 한차례 눈물을 흘렸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너무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알았을까. 아마도 인연되려고 그랬던 것 같다.
꼬마 녀석은 정말 자기의 주인을 만났지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토록 먹이를 좋아하던 녀석이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오래되지 않았다. 집 안에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던 부모님도 눈에 아른거리는 녀석의 소식에 마음이 흔들리셨다.
일단 다시 데리고 와봐라
우리의 동거는 그 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처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녀석이 우리에게도 마음을 닫아버린 것이다. 얼마전까지 그리도 살갑던 녀석이 우리의 얼굴을 외면했다. 그리고 구석으로 가서 자리하고는 가져다주는 물과 먹이에도 고개를 돌려버렸다. 보송보송하고 진한 초코색의 윤기있는 털은 몸에 바짝 달라붙어 녀석의 작은 등치를 실감나게 해주었다. 며칠 째 앓아누워 떡진 사람의 머리카락을 보는 듯 했다.
전혀 먹지를 않으니 병원으로 데려갔다. 병원에서는 아이를 입원시키라 했고, 아이가 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부모님은 결국 가능성이 희박한 아이를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기로 했다. 대신, 가는 날까지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간호해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매일 밤을 돌아가며 아이의 곁에서 잠을 잤다. 아이가 부엌에서 자면 우리도 그 곁에 누워서 잠을 잤고, 아이가 거실에서 자면 자리를 거실로 옮겨왔다. 그러던 어느날 밤. 모두가 잠든 그 시각. 아이는 슬며시 일어나서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아이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시 마음을 열어주었다. 그렇다고해서 완전하게 활짝 연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손길을 굉장히 싫어했다. 쓰다듬으면 으르렁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엉덩이로 밀고 앉으며 곁에 꼭 붙어있었다. 무뚝뚝하지만 정많은 경상도 사나이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버림'받았다고 여겨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아이의 으르렁거림은 투정처럼 여겨졌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변화가 가장 컸다. 고무장갑을 껴야만 아이를 만졌던 엄마는 잠자리에서도 이불위를 허락하며 옆에 꼭 끼고 주무셨다. 퇴근할 때마다 자식들보다 당신을 더 반겨주는 아이를 위해 아빠는 외식때마다 아이 분의 먹거리를 꼭 챙겨돌아오셨다.
영특한 아이는 우리의 감정기류까지 알아차렸다. 때로 아빠가 화를 내고 방으로 들어가는 날이면 절대로 방에 따라들어가질 않았다. 엄마가 들어오라고 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이윽고 아빠가 못이기는 척 들어오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쫄레쫄레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뿐만 아니라 주말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그것을 밤새 기억하고는 다음날 아침 방문을 긁어서 나를 깨운다. 평소에는 내 방문이 닫혀있어도 절대 그러는 일이 없다는 부모님의 말씀만 들어도 기억력이 참 좋은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 재미었었던 것은 친구분들이나 형제들과의 모임자리에서 그 연세에서 줄곧 하는 손주자랑 대신에 '개 자랑'을 늘어놓는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재롱이가 저번에는..."
낯선 모습이었지만 귀여우셨고 그런모습이 보기 좋았다.
특히 아빠의 근무날이면 매번 혼자 주무시는 엄마가 걱정되었는데 겁이 많은 엄마는 재롱이 덕분에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하셨다. 엄마에게 든든한 존재가 한 명 생긴 것이다. 물론 끝내 '엄마, 아빠'라는 호칭은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자식 못지 않게 사랑을 하셨다.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고 하지 않던가. 가끔씩 보는 자식들보다 매일 곁에서 웃음주는 강아지에게 엄마아빠 모두 상당부분 의지를 하고 지내셨던 것 같다.
또한 신기한 것은 내 기억속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갖고 계신 지병이 어느샌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천식이나 알러지 비염 환자가 털 있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는 의사들의 조언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이 역시 우리는 재롱이의 덕이라고 믿고 있다. 적당한 먼지와 털이 오히려 엄마의 면역력을 높여주었다고 말이다.
그러던 중 아이가 태어났다. 강아지 말고 정말로 내가 낳은 사람의 아이 말이다. 나 뿐 아니라 부모님의 관심도 자연스레 아이에게로 옮아갔다. 집안의 막내로 온 사랑을 독차지하던 재롱이는 아이의 탄생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조금 크면서 재롱이를 귀찮게 하는 일이 잦아졌다. 만지는 것을 싫어하는 녀석인데 어린 꼬마는 겁없이 재롱이를 쓰다듬고 꼬리를 잡아당기니 얼마나 귀찮고 싫었을까. 참다가 가끔은 본능적으로 '앙!'하고 높은 소리를 내며 아이를 물 것처럼 홱 고개를 돌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온정신이 아이에게 기울어있는 나는 재롱이를 혼내곤 했다. 하지만, 재롱이'삼촌'이 신기하고 좋은 우리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재롱이에게 치대는 날들이 반복되었고 그럴수록 재롱이가 혼나는 횟수도 늘어났다. 모든 이들이 아이의 편을 들면서, 재롱이는 점점 외로워져 갔다.
한 번 피오줌을 싼 것을 빼고는 특별히 아팠던 적도 없었다. 다만 나이가 들다보니 기관지로 고생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자동차 조수석에 앉고 타서 에어컨 바람을 빵빵하게 씌워준 날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사람의 천식처럼 그렇게 힘들게 기침을 했다. 병원에서는 기관지 협착증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것이기 때문에 수술을 해도 수명을 3년 정도 연장하는 것에 그칠 것이며 비용도 비싸다고 했다.
기침으로 힘들어 할 때마다 황태를 끓여 그 국물을 주기도 하고, 네블라이저로 호흡을 도와주기도 했다.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면서 산책나가는 것도 싫어하기 시작했다. 병원 근처를 가는 것 이외에는 산책을 나가기만 하면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네 발로 버티던 녀석이 산책이 귀찮아질 정도로 병약하고 노쇠해진 것이다. 하지만, 곁에서 얻어먹은 사람음식으로 비만이 된 녀석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벚꽃이 예쁘게 흩날리던 봄.
산책의 텀이 점점 벌어지던 어느날 아빠가 재롱이를 데리고 나와서 집 둘레를 산책시켜 주셨다.
또 나올 수 있으려나.
어쩐지 오늘이 재롱이에게 마지막 산책이 될 것 같다.
아빠의 말씀에 멈칫했지만,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롱이를 혼자 두고 우리끼리 동네 벚꽃구경을 가기도 했다. 우리집에 놀러오셨다가도 재롱이때문에 집에 가야한다며 가는 것을 만류하는 딸을 뿌리치고 집으로 가시곤 했었다. 한치 밖을 알 수 없는 게 세상사라고 하던가.
하필 아빠가 출근하시고 엄마 혼자서 재롱이를 돌보던 그날.
남편, 아이와 함께 재롱이 약을 챙겨서 집으로 향하던 그날.
재롱이는 더이상 기다려주지 못하고 우리의 곁을 떠났다.
아침까지도 뭐 하나 얻어먹으려고 아빠의 식사를 곁에서 지켜보며 조르던 녀석이었기에 예고도 없는 갑작스런 이별에 우리 모두 망연자실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