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라면 서럽다'는 말이 있다. 둘째가다, 는 '최고에 버금가다'라는 뜻인데 풀어서 말하면, 최고는 아니지만 '으뜸의 바로 아래가 되다'라는 의미이다. 비록 '둘째 혹은 2위'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했을 뿐이지 최고가 아닌 이상에야 둘째이든 셋째이든 의미 없고 그저 '최고만 최고'인 것이다.
부모님에게 내가 '첫째 자녀'였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나는 2등을 해본 적도 그래서 아쉽게 1등을 놓친 적도 없다. 그래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이 말이 가진 서운함은 모르고 살아왔다. 그저 아이를 낳고서야 알게 되었다. 친정 부모님에게 있어서 내 아이는 '첫'손주이고, 시부모님에게는 '세 번째' 손주였다. 무슨 일이든 우리 아이가 하는 것이 첫 경험인 친정 부모님은 매사에 기특해하셨고 신기해하셨다. 이에 반해 시부모님은 '그랬구나, 너도 이제 고슴도치 엄마가 되어가나 보다'라며 아이의 일상을 전하는 내게 말씀하셨다. '그 녀석 기특하기도 하지, 어쩜 정말 그랬니?'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나는 친정부모님과 상반된 반응에 점점 서운한 마음이 쌓여갔다.
그에 반해 시조카들, 즉 시부모님의 첫 손주에게는 달랐다. 유치원 졸업식 때 대표로 고별사를 했다는 것에 '아휴, 우리 S 대단하네!'라며 칭찬해 주셨고, 스스로 이빨을 밀어 뽑았다는 말에 5만 원을 쾌척하기도 하셨다. 사실 나도 어렸을 적에 그 정도는 했었다. 그래서 그 정도는 나에게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도 시부모님은 굉장히 크게 반응하셨다. 어쩌면, 우리 아이에 대한 반응에 비해 첫 손주를 향한 무조건적 칭찬이 질투가 나서 어른으로서 충분히 칭찬을 해줄 만한 것임에도 깎아내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기준이 이 대목에서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고, 그저 우리 아이와 다르게 대하는 그분들의 태도에 서운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아이의 돌잔치에서도 그러셨다. 가족만 모인 조촐한 돌잔치였는데 아이가 돌잡이를 하는 동안, 큰 집 아이들은 그림자랑을 했고, 시부모님을 포함하여 큰집 내외는 그 아이들을 제지하기는커녕 잘했다며 목청 높여 칭찬을 해주는 바람에 사회자가 '저기, 아이 돌잡이를 하고 있으니 여기 집중해 주세요'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그날의 주인공이자, 일생에 단 한번 하는 돌잡이를 하는 와중에도 그분들의 눈에는 첫 손주 밖에 없으셨던 것일까. 그날 저녁,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 부모님과 내 동생 모두 그런 행동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도 그런 관행은 그치지 않았다.
이건 또 다른 이야기이지만, 20개월쯤 되었을 때 아이가 독감에 걸려 열이 40도가 넘게 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독감인 것을 몰랐고, 어지간히 아프기 전까지는 칭얼거리지 않고 잘 노는 아이의 기질을 모르시는 부모님은 잘 노니까 괜찮다고 하셨다. 열이 안 내려 온 신경이 아이에게 가 있는 나와는 달리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그다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때 어머님과 나는 부엌에 있었고, 거실에서는 우리 아이와 시조카를 비롯하여 아버님, 큰집 내외 그리고 우리 남편까지 있었다. 나는 아이가 염려되어 거실을 내다보았는데 아이가 기절해서 쓰러져 있는 것이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아이에게 달려가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아이는 축 늘어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는 대성통곡하며 아이를 계속 흔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차에 태워 응급실로 향했다.
"어떻게!
이렇게 어린애가 아픈데 단 한 명도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있어?"
라며, 남편에게 울며 소리를 질렀다. 물론 어머님도 그 말씀을 들으셨다. 어머님은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 이 사건에 대한 면죄부를 갖고 계셨었다. 하지만, 남편은 아무 말하지 못했다. 어차피 큰집 내외에게는 기대도 없었고, 말씀으로는 이 집안의 '장손'이라며 대단한 벼슬처럼 말씀하셨던 아버님 조차도 아이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음에 화가 났다. 사실 제일 잘못한 것은 아이의 아빠, 즉 남편이지만 돌잔치 이후로 배가된 서운함으로 인해 시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더 치사하게 이야기하면 형님이야 우리 아이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니까 관심 없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우리 남편이 조카들 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자기 자식만 더없이 예뻐하는 아주버니에게도 서운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남편이 미혼 때 갖게 된 '첫' 조카에게 느꼈을 '자식 대하는 듯한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었지만, 아주버님과는 다르게 남편이 조카들에게 잘하려고 할수록 '유난을 떤다'며 심술을 부렸다. 우리 아이는 당신 집안에서 이런 대접 못 받는다는 일종의 항의 같은 것이었다.
친정부모님은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플 때면 '애가 어지간해서는 아파도 칭얼거리지 않으니까 더 잘 돌봐라'라고 신신당부하신다. 뿐만 아니라, 남동생도 첫 조카인 우리 아이를 끔찍하게 예뻐했다. 이와는 반대로 나는 내 아이를 먼저 경험했기에 뒤늦게 태어난 조카가 비록 '첫'조카라고 해도 '자식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한 번은 사촌동생이 위로는 언니에게 아래로는 남동생에게 치여, 자기는 부모에게 인정도 못 받고 '끼인' 존재라고 한탄하는 것을 들었다. 물론 안타까운 말이지만,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부모가 돼보니까, '첫째'라는 것이 주는 의미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더라. 부모에게 '첫째 자식'은 자신들에게 처음으로 '부모'라는 타이틀을 만들어주고, '처음'으로 아이 키우는 일을 통해 얻는 기쁨과 슬픔 모두 '처음' 경험하게 돼. 그래서 첫째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제일 소중한 것 같아. 물론, 둘째도 셋째도 자식이라 모두 사랑스럽고 귀한 것은 맞는데, 첫째 때에 느꼈던 희열에 비하면 비교가 안 돼. 이미 한 번 경험했던 일이거든. 둘째나 막내는 그저 귀엽고 마냥 안쓰러운 존재일 뿐이지. 첫째에 비해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무조건 더 짧으니까 마냥 미안한 존재.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 그거 거짓말이야. 분명 더 아픈 손가락이 있어. 그걸 그냥 인정해. 나는 첫째가 아니라서 그렇다,라고.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 말을 건네면서, 나 역시 답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부모님에게 있어 우리 아이는 '첫'손주가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첫 손주에 대한 감정에 견줄 수가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서운하지만, 인간이라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자고.
그러고 나서 우리 부모님을 관찰해보니, 우리 부모님 역시 그랬다. 비록 친손주와 외손주를 구분하는 구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이지만, 그래서 우리 아이는 그분들에게 '외'손주이고 조카들은 '친'손주이지만, 부모님의 말투 속에서 '뭐든 겸이가 최고'라고 여기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매우 많다. '겸이는 18개월에 문장으로 말했는데 이 녀석은 말이 좀 느리네'라든지 조카가 어떤 성과를 냈을 때 '겸이도 그랬었는데'라고 말씀을 하신다. 나야 무조건 엄마 아빠가 우리 아이를 더 예뻐하시는 것을 알기에 굳이 그런 말씀 안 하셔도 되는데, 부모님은 자신들도 모르게 매사에 '첫'손주를 기준 삼아 말씀하신다. 이미 시부모님을 통해 서운함을 경험했던 나는 자주 '엄마, 그냥 칭찬해주고 예뻐해 줘요. 겸이 이야기하지 마시고'라며 나의 서운했던 기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나의 이런 노력에 부모님은 알았다며 의식적으로 그러지 않으시려고 노력하고 계시지만, 때때로 묻어나는 말투에 내가 되려 뜨끔하며, 동생네가 느꼈을 서운함에 되려 미안해지기도 한다.
이렇듯 '첫째', 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고 나니 '둘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우리 아이에게 그렇게 느꼈듯이, 우리 부모님도 첫 자식인 내가 끔찍했을 것이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누나와 자신을 차별한다는 투정을 자주 했다. 하지만, 동생 때문에 누나인 내가 혼나는 일이며, 사고뭉치였던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내가 칭찬받았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사를 가서도 큰 방은 누나 차지이고, 누나는 공부도 잘하고 자신은 공부를 못해서 인정도 못 받는다는 항의의 원천이 '둘째이기 때문에'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둘째를 아내로 맞이하여 둘째끼리 꾸린 가정에서 더도 없이 소중한 자신의 혈육이 '두 번째 손주'라는 이유로 덜 사랑받고 있음이 서운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늘 '수재'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던 자신의 형에 눌려 투정 없이 늘 착하기만 하던 둘째로 자라왔다. 둘째들은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 본능적으로 두 가지 노선 중에 하나를 정하는 것 같다. 착하고 얌전하고 많은 애교를 부림으로 귀여운 둘째가 되든지, 떼를 쓰고 말썽을 부려서 부모의 관심을 끄는 둘째가 되든지, 말이다. 남편은 그중 전자였던 것 같다. 천성이 착하기도 했지만, 착해야 칭찬받기에 '부모님이 인정해주는 것이 유일한 행복'인 사람으로 착하게 자라왔다. 그랬던 사람이 처음으로 부모에게 항의를 한 것은 사법고시를 준비해 보겠다고 말했을 때였다고 한다. 형의 실패를 경험한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만류를 했지만, "왜 형은 되고 나는 안되는데?"라며 자신에게 관심을 조금만 더 가져주었더라면, 자신의 성향에 맞지 않는 이과에 진학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고 했다. 남편 말대로 재수 4개월 만에 더 높은 점수의 문과대학에 진학했다. 아무튼 남편은 형을 이기려고 하지 않고, 형을 인정하는 것으로 집안에서 순둥이 막내 적응 기제(機制)를 발휘하며 버텨온 것이다. 순하기만 했던 둘째가 이런 항의를 해오니 부모님은 또 마냥 안쓰러우셨던 모양이다. 남편의 생일에 남편이 태어난 과정을 대서사시처럼 설명하시고 이야기의 끝을 "그래서, 너에겐 더 바랄 것이 없었어.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최고로 감사했지"로 장식하셨다. 남편의 첫 항의를 마음에 두고 계셨다는 증거이다.
익숙하게 듣던 말이다. 선천적 심장 기형으로 태어난 남동생에게 부모님이 늘상 바라던 것은 다름 아닌 건강이었다. 동생의 불만처럼,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건강하지 못하게 태어나서' 다른 기대가 없으셨던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늘 이야기한다. '아들에게 있어, 부모가 기대가 없다는 말은, 생존의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라고. 여자들도 그렇겠지만, 남자에게는 '인정'이라는 것은 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어쩌면 생존본능과 같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욕구일지도 모른다고. 아들 일 때도, 남편일 때도, 아빠일 때도.
그런데 그 본능과도 같은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던 것은 '둘째'였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첫째는 '최고의, 최초의 희열'이지만, 둘째는 마냥 안쓰럽기만 존재이니까. 그래서 둘째들은 매우 순하거나 또는 매우 거친 방법 중에 하나를 택해 부모들을 향해 항의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세상의 모든 둘째들에게(혹은 첫째가 아닌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