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좋은 어느 주말. 남편이 지인가족과 함께 스노클링을 하러 가자고 했다. 아이와 함께 몇 번 만났던 사이라 아이도 나도 흔쾌히 OK했다.
스노클링은 신혼여행 때 처음 해보고 5년간 그것이 마지막 추억이 되었다. 물을 무서워하는 나도 쉽게 물에 몸을 맡길 수 있고, 코로 숨을 참고 입으로 쉬는 것만 익숙해지면 어렵지 않은 레저활동이었다. 아! 귀에 물이 들어가는 것도 잠깐은 참아야 한다. 조금만 지나면 주황색 귀마개를 귀에 밀어넣은 것보다 더 완벽한 무소음 상태가 된다.
스노클링을 하려면 물의 깊이가 어느정도는 되어줘야 물 속의 예쁜 모습을 관찰할 수가 있다. 얕은 물은 몸을 띄우기도 어렵거니와 아무래도 발걸음에 의해 바닥의 모래나 진흙이 일어나 쉽게 관찰할 수도 없고 예쁘지도 않은 것 같다. 지난 번 아이가 빠졌던 함덕 바다도 실은 스노클링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번에는 구명조끼도 모두 착용했다. 뿐만아니라, 숨을 참지 않아도 되는 풀 페이스 마스크도 준비했다.
아이와 늘 차를 타고 지나던 곳에 차를 세웠다. 우리 뿐 아니라 다른 차들도 줄지어 서 있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튜브를 타고 놀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효리네 민박으로 더 핫해진 패들보드 무리, 그리고 스노클링 무리들이 각각의 재미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폈다. 볕은 강한데 바람은 많이 불어 돌을 괴어 텐트를 고정시켰다. 텐트 안에 짐을 넣고, 아이 옷을 갈아입혔다.
우리가 그러고 있는 동안, 우리 뒷편에는 먼 바다를 내다보고 있는 한 무리가 있었다. 카약을 타고 있는 부부를 보는 것일까, 먼 바다 쪽 스노클링 팀을 보는 것일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얼른 들어가자는 아이의 성화에 관심을 끄고 다시 바다로 갈 준비를 이어갔다.
먼저 남편과 남편의 지인이 입수했다. 남편은 그간 봤던 곳보다 확실히 물이 깊고 볼거리가 많다고 했다. 얼마전 물에 빠져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아이는 우려와는 달리, 안전장비를 갖추고 엄마아빠의 도움을 받아 입수하는 것은 괜찮다고 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돌에 발을 내딪었다.
그 순간, 뒤편에서 싸이렌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해양경찰과 소방대가 연이어 도착했다. 스피커폰으로 소리를 지르는 경찰 뒤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다를 내다보는 무리가 보였다. 아까 그 사람들이었다.
남편과 지인은 상황을 모르고 계속 스노클링을 이어갔다. 그 사이 우람한 체격의 해양경찰 몇 명이 웃옷을 벗고 입수를 준비했다. 그제서야 상황을 눈치챈 남편이 물 밖으로 나왔고, 경찰이 남편에게 무슨 말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남편은 스노클 호스를 경찰에게 건넸고 경찰은 그 호스를 받아물고 물 속으로 입수했다.
바다로 향하던 우리의 발걸음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남편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고, 우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고요한 수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옆에서는 예의 그 경찰이 스피커 폰으로 목이 터져라 지시를 했고, 구두를 신고 등장한 몇명 경찰은 멀뚱하니 수색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요!
반대편에서 소리가 났다. 방금 물 속에서 올라와 온몸이 흠뻑 젖은 여성이 소리치고 있었다. 아마 저지 소재의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다. 물에 젖은 옷이 물과 함께 흘러내리고 있었던 기억만 난다. 다만, 경찰은 드넓은 바다에서 그녀의 목소리에 얼른 집중을 하지 못했다.
"저기서 여자분이 소리치시는데요?"
내 말에 경찰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여자의 외침에도 경찰들은 아직 눈치를 못챈 듯 했다.
"여기요! 여기 있어요. 여기 와보시라구요!"
그제서야 스피커 폰을 든 경찰이 외쳤다.
"저 쪽으로 가봐! 야야! 저쪽이라구. 저쪽!"
아까 남편에게 스노클 호스를 빌렸던 경찰이 물에서 나와서는 지시하는 경찰이 가리키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경찰은 하얀 래시가드를 입은 한 남자를 물 속에서 들어올렸다. 예상대로 익수사고였다. 물 속에서 기절한 사람을 찾기 전까지만해도 설마 사람이 익수된 것은 아닐거라고 여겼다. 아니기를 바랬다.
기절한 남자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멀리서 봐도 꽤 건장한 남자였다. 들것으로 옮기는데 성인 남자 4명이 필요했다. 들것에 옮겨지니 남자는 두 팔을 들것 바깥으로 축 늘어뜨렸다. 그러자 구급대원은 이를 한데 모으고 무슨 장치를 매달았다. 남자의 가슴 부근이 들썩거렸다. 피부는 밀가루같이 하얬다. 나는 재빨리 아이의 눈을 가리고 품에 안았다.
"저 남자 깨어난 건 아니지?"
"응. 제세동기 때문인 것 같아."
호흡기를 달고 가슴을 들썩거리던 남자는 그대로 구급차에 실렸다. 구급차와 경찰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곳을 떠났다. 남은 자리엔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한참동안 우리는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무말도 잇지 못했다. 바다에 발을 담그는 것 조차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무거운 숨을 내쉬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텐트를 걷고, 짐을 차에 싣고, 아이도 차에 태웠다. 그 때 카약을 타던 부부가 바다에서 올라와 짐을 챙겼다.
"스노클 하다가 그런 건가봐요."
"일행 없이 혼자서 멀리로 가더니 한참을 안보이더라구요."
제주 바다의 여기저기를 다니며 카약을 탄다는 부부는 제주바다가 바람이 많아 유속이 빠르기 때문에 자칫하면 사고가 나기 쉽다는 말을 했다. 화순에서 배가 출출해서 삼각김밥을 뜯어먹는 사이 마라도까지 흘러간 적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리를 잘 몰라서 감은 오지 않았지만, 꽤 먼거리도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가진 바다라는 이야기였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떠나고, 가족들과 물놀이를 하는 일행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자기들의 놀이로 돌아갔다. 사고현장을 너무 가까이서 지켜본 우리는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남편의 스노클을 빌려갔던 경찰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서 남편의 스노클 호스를 찾았지만, 남편의 것이 아닌 낯선 호스만 있었다. 그 호스를 들고와서 멀뚱하니 서 있던 남편은 아무래도 '그 사람'의 것 같다며 다시 주웠던 자리에 두고 왔다.
그 때 자동차 하나가 도착했다. 차 안에서 내린 두 명의 청년은 언뜻 보아도 20대 청년들로 보였다. 바다를 여기저기 살피더니 현장에 남아있는 유일한 무리인 우리들에게 물었다.
"여기 혹시 젊은 남자 한 명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바다에 빠지셨던 분이요?"
"네, 맞아요. 친구인데 물에 빠져서 신고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어요."
"아까 경찰이랑 구급대원들이 와서 구조됐고, H병원으로 이송한다는 이야기만 들었어요."
아주 위급한, 또는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차마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들 중 한 명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맞습니다. 네, H병원이요... 혹시 어떻게 되었나요?"
우리가 듣고 싶은 대답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전화통화에 귀를 기울였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릴 리 없었지만, 그 다음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악, 어떻게...."라며 말을 잇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일면식도 없는 그였지만, 우리 모두의 소망은 같았었다. 말로 하지 않았지만. 주저앉아 흐느끼는 모습에 우리도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차에 올랐다. 급히 병원으로 향하는 차를 바라보며 우리는 또다시 그곳에 남은 유일한 무리가 되었다.
이번에는 물에 빠진 남자를 찾아냈던 여성이 나타났다.
"어떻게 되었대요?"
"아.... 방금 지인들이 통화하는 것을 들었는데,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아요."
"아........"
그녀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지인은 아닌 걸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색대가 오기 전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수색을 했던 여인이었다. 누구보다 더 절실하게 그가 살아있기를 바랬을 터였다. 탄식과 함께 고개를 떨군 그녀도 그곳을 떠났다.
본래 계획으로는 스노클링을 하고나서 일행과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었다. 하지만, 우리의 식욕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그 길로 무거운 안녕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재잘거림 덕분에 잠시 그 현장을 잊기는 했지만, 잠이 들 때까지 그 생각은 우리를 떠나지 못했다. 솔직히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흰 피부색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밤, 남편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기사를 검색했다. 잠시의 순간이었지만 우리 곁을 스친 짧은 인연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이었다. 기사에는 휴가 차 제주도를 방문한 27세 현역 중사라며 그를 소개했다. 아... 역시 젊은 청년이었다. 목숨 값이 나이에 따라 다르지 않겠지만, 젊은이의 익사사고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지인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휴가를 온 듯 한데 친구들과 잠시 헤어진 사이 변을 당한 모양이다.
우리는, 바다에 빠진 우리 아이를 구한 분을 떠올렸다. 그 분도 이런 위험을 감수하였을 것이다. 물에서 건져진 그가 안전장구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을 보면 수영에 꽤 자신이 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보았다. 하물며 갓 수영을 배웠던 우리의 은인은 얼마나 더한 위험을 감수하였던 것일까, 생각을 하니 마음이 쿵쾅거렸다.
자연은 우리에게 풍요로운 혜택을 주지만, 호락호락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려는 순간, 큰 위기로 인간들을 일깨워 준다. 자연을 가벼이 여기는 자에게 가끔씩 무서운 방법으로 알려기도 한다. 젊음을 순식간에 삼켜버린 바다는 이렇게 나에게 또 한 번의 경고를 한다. 너희 역시 이 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제주를 먹여살려 온 감사의 바다이지만, 자연의 큰 손길 앞에 인간은 항상 겸손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