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by teaterrace




그를 만나게 된 것은 분명 우리의 복(福)이었다.


함덕 바다에서 아이가 익수 되어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기도 했지만, 나의 부모 인생에서도 가장 놀랐던 사건이었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얕아 보이는 바다라고 해서 안심할 것은 아니라는 사실과 모래놀이만 할 것이 아니라면 꼭 구명조끼를 입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그날의 유일한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이런 일이 다른 가정에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온라인에 글을 올렸고, 많은 이들의 걱정과 위로, 그리고 격려를 받았다. 무엇보다 나처럼 아이를 가지고 있는 부모들은 함께 눈물을 흘려주기도 했다. 한 분 한 분 감사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은 되지 못해서 그 후 아이와 은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우선 아이 이야기를 해보면, 익수 당일 설사와 구토가 끝나자 평온해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의 이야기를 읽고 폐렴 진행될지 모르니 병원에 가보라고 했던 이의 조언을, 아이 컨디션이 너무 좋은 관계로 가벼이 여겼는데, 이틀 후 갑자기 해열제도 안 듣는 고열이 시작되었다.


동네 소아과에선 폐소리랑 기침소리가 모두 괜찮다며, 다만 장에 바닷물과 가스가 많이 찼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당일에 응급실 가지 않았냐며,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물에 빠지면 쉽게 흡인성 폐렴에 걸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은 사고 당일 출동한 경찰은 응급처치 후 바로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라고 했었다. 하지만, 응급처치를 했던 구급대원이 경찰의 말을 막아서며 "판단은 저희가 합니다"라고 카리스마 있는 말투로 이야기를 해서 철석같이 믿었던 부분이 있다. 체온만 돌아오면 된다고 했는데 아마 예후까지는 짐작하지 못한 듯하다. 어쨌든 판단은 부모인 내가 했어야 하는 부분이기에 구급대원에 대한 원망의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소아과에서도 열이 안 내려 제주에서 나름 큰 병원인 H병원으로 갔다. 소아과에서 성심껏 써준 진료의뢰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우선 X-ray를 찍으라고 했다. 그리곤 폐에 물이 찼다가 빠진 흔적이 군데군데 보인다며 폐렴이라고 당장 입원시켜야 하는데 입원실이 없다고 J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진료시간 이후였다. 응급실로 가서 거기에서 또 X-ray 찍었다. 하루에 이렇게 3군데 병원을 갔다.


최종적으로 폐렴은 아닌 걸로 결론 내려졌는데, 그 시간까지 어찌나 애가 타던지 '사고 당일 바로 병원 갔으면 이 고민은 덜했을 텐데', '우리 아이 고생 덜 시켰을 텐데' 하면서 계속 자책을 하게 됐다.


아이가 바다에 익수 되는 사고를 당하면 컨디션이 괜찮더라도 반드시 큰 병원에 가서 의사의 소견과 예후까지 알고 있어야 마음고생이 덜 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악몽 같은 경험이었다.


이번엔 도와주신 은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당일에 감사인사를 하고 아이가 아픈 이후로는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다시 정상 컨디션을 되찾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것이 그분에게 아이 안부를 전해드리는 일이었다.


아이가 조금 아파서 정신없이 보내다가 이제야 소식을 알려드린다고 연락을 드렸다. 그분께서는 안부를 알려주어 너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저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인지라 꼭 기억하겠다"는 답장이 왔다. 아이에 대한 축복의 인사도 함께.


정말 좋은 분께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과 함께 이런 분을 사회가 기억하고 칭찬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방면으로 표창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처음에는 '바다의 의인상'을 표창하는 기관이 해양경찰청이라 그쪽에 문의를 했다. 본청에서는 제주지방청에 문의하라고 했고, 제주지방청에선 도와주고 싶지만 신고 내역이 없기 때문에 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소방서에 신고가 되었다면 그쪽에도 표창할 수 있는 것이 있을 테니 알아보라고 일러주었다. 우선 제주소방본부에 전화를 했고 그쪽에서는 동부소방서 관할지역에서 발생하였으므로 동부소방서 수색 구조계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다시 받았다. 평소 같았으면 핑퐁처럼 넘겨지는 상황에 짜증이 났을 법도 한데, 이번 경우는 나의 마음가짐도 달랐다.


결국은 동부소방서에 사건 경위와 관련된 장문의 글을 보냈고 서장님 표창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제주 현지인이 아니라 표창을 받으러 오기 어려우니 택배로 보낼 예정이라는 대답까지 듣고, 어찌나 감사하고 기쁘던지 마치 내가 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 후로 육지에 가게 되면 이것저것 챙겨서 뵙고 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명절마다 감사 인사 또는 선물을 보내드리고, 아이가 스무 살이 넘으면 아이 혼자서 찾아뵙게 하면서 인연을 이어가려고 한다.


이제 아이는 조금씩 바다와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은인과의 만남>

나에게만 큰 경험이 아니라 은인, 그리고 그 가족 모두 밤잠을 설치는 일이었다고 한다. 밤새 계속 뒤척이며, 긴장되고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했다고. 수영에 자신이 있던 때가 아니었기에 발이 닫지 않는 물속에서 점점 지쳐갔다고, 그리고 아내가 되는 분께서는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남편을 붙잡았을 거라고 하시면 그날의 긴장감과 공포를 말씀해주셨다. 그 정도로 그분들은 우리만큼이나 놀라고 무서운 경험이었다는 사실에 우리 부부는 마음이 무거웠다. 어린 생명을 구해냈다는 만족감과 뿌듯한 마음만 예상을 했지, 그분들 자신의 생명에도 위협을 느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여러 본보기가 될 법한 이야기를 듣고 격려도 받았다. 분명 좋은 분들과 인연이 닿았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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