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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ul 01. 2019

남편의 집에 갔다.





낮부터 무척 바빴다. 때문에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나서야 핸드폰 충전기며 감기약 등을 놓고 온 것을 깨달았다. 출발 전날부터 콧속이 시큰거리는 통에, 약을 먹고 약발에 취해 잠만 잤더니 결과가 이렇다.



돌이킬 수 없다. 그래도 연휴의 시작을 체감케 하는 교통정체 속에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도 아빠를 만나러 간다는 기대감에 며칠 전부터 '그날이 오늘인지'를 확인했다. 아이에게 아빠를 봬 줄 수 있으니, 그리고 남편에게 아이를 봬 줄 수 있으니 다행인 것이다.


늘 그렇듯 이럴 때마다 우리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곱씹는다. 어른들의 이기적인 선택이, 발달에 맞춰 이뤄야 하는 아이의 과업에 결핍을 초래한 것은 아닌가 수없이 반하게 된다. 특히 아들이어서 더욱 그렇다. 엄마가 해줄 수 없는 아빠의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주말 가족이다.





공항버스에 오르자마자 금세 잠이 들었던 아이는 비행기를 타자 재잘재잘 떠든다. 내 귀에야 한없이 귀여운 아이의 목소리이지만, 타인에게도 그러리라고 보장할 수 없기에 긴장이 된다. 아이를 낳고부터 '비행기를 타는 일'은 '눈치 보는 일'과 동의어가 되었다. 보딩하는 순간부터 옆자리에 그리고 앞뒤에 예민한 사람이 타지 않기를 기도하기도 한다. 그래야 그나마 한숨과 눈초리 레이저 확률이 낮으므로.

 

아이도 한껏 낮춘 목소리로 이야기하지만, 흥분을 감추지 못한 한순간 저도 모르게 깔깔깔 소리를 내버려 결국 앞자리 아주머니의 눈총 레이저를 받고야 만다. 순간 아이의 표정이 얼어버렸는데 그 모습을 보니 아주머니가 야속하다. 그 정도까지 모멸하는 눈총을 보낼 것까진 없었는데 말이다. 그녀의 예민한 삶을 가엾이 여기는 것으로 자위를 해본다.


제주공항에는 긴 연휴를 위해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떠나는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얼른 아빠에게 뛰어가 안기고 싶다는 아이의 손을 잡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남편을 찾았다.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두리번. 여전히 없다. 전화를 걸었더니 스피커폰으로 받는 듯한 울림이 섞여 들려왔다.


"벌써 왔어? 나 방금 주차했는데 금방 거기로 갈게."


순간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아이처럼 나도.


있는 힘을 다해 아빠에게 뛰어가는 아이와 아들이 반가워 어쩔 줄 몰라 볼마저 상기된 아빠의 모습을 떠올렸었다. 5분도 채 기다리지 않았지만, 내가 기대한 건 이런 부자상봉이 아니다. 금세 나타난 제 아빠에게 꼭 안겨서는 아빠의 등을 있는 힘껏 내리치는 달걀만 한 아이의 주먹에 원망이 담겨있다.


"아빠 미워. 아빠 빵점!"


아빠를 향해 외치는 아이의 원성에 나도 덩달아 뾰로통해진다. 남편은 오랜만에 방문한 모자를 위해 휴가를 내느라 오늘 출근 내내 바빴을 것이다. 퇴근시간이 지났어도, 마중까지 남은 시간마저 다 채워 일을 했을 것이다. 예측은 가지만, 이해도 되지만, 그래도, 나와 아이만큼 우리의 만남을 기대한 것이 아닌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다.


드디어 남편의 집이다.


치웠다고 했는데, 더럽다. 나는 깨끗한 인간이 아닌데, 더한 인간을 만났다.



아침이 되자 남편은 우리를 위해 장을 봐다 놨다며 아침상을 준비했다. 나를 위해서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 아이위해서는 불맛 소시지이다. 평소 냉동음식만 데워 먹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남편이 '오랜만에 뜨스운 밥'이라며 아래턱을 내리고 허어 허어, 소리를 낸다. 내일은 아보카도 비빔밥을 해줄 예정이라고 말하면서.


오후부터 제주에 비가 찾아온다고 다. 서둘러 출발하지 않으면 제주에서 비 구경만 하다 갈지도 모른다. 집 근처에 새로 생겼다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들고 차에 올랐다. 바람은 불지만 하늘이 맑다.


오늘처럼 맑은 날은 바다 빛깔이 근사하다. 오늘 보고 싶은 바다 빛깔은 김녕이다. 텐트가 깔린, 관광객은 없는 잔디마당에 우리도 자리를 잡는다. 계단만 내려가면 프라이빗 해변이다. 아무도 없는 우리만의 바다 말이다.



물도 제법 빠졌고 햇살에 이미 데워져 조금도 춥지가 않다. 아빠를 따라 물에 들어서더니 앉아서 놀고 싶단다. 이미 감기로 코찔찔이였지만, 지금이 아니면 비만 보다가 갈지도 모른다. 에라 모르겠다.

아빠와 신나게 다슬기를 잡는다. 아이는 한참을 놀고서야 이제 춥다고 한다. 데워진 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팔을 뒤로 괴고는 다리까지 꼬고 누웠다. 세상 편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엄마 미소가 절로 피어오른다.




배가 고파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제비가 낮게 날며 제 처마를 부지런히 오간다. 어김없이 우두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이에게 잠시 차 안에서 기다리도록 당부하고는 얼른 텐트를 걷는다. 하지만, 우리의 움직임은 비의 하강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옷이 흠뻑 젖는다.


하늘은 금세 검은 구름으로 가득하고, 비바람은 자동차 앞유리에 정신없이 부딪힌다. 좀 전의 화창함은 마치 꿈이었노라,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머지않은 곳에 집이 있다. 좁고 지저분하지만, 안락하고 따뜻한.


내일 아침에는 오늘 주운 다슬기로 죽을 끓여 봐야지. 아보카도 비빔밥, 안녕.



밤새 강한 바람이 불었다. 제주사람들은 작은 태풍이 다녀갔다고 말다. 우리에게 태풍이란 자고로 뉴스에서 독특한 이름 하나쯤 붙여주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태풍이 지나갔으니 흐리긴 해도 비는 없다.


종전 밤에 삶아서 까놓은 다슬기살로 죽을 끓였다. 보말처럼 구수한 맛은 덜하다. 정직한 입맛인 아이도 몇 술 뜨더니 배가 부르단다. 맛이 없다는 말이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나는 그동안 미뤄뒀던 머리를 하기로. 다음에 남편 집에 올 때쯤이면  다시 머리 하기에 적당한 텀이 된다. 늘은 여행이 아닌 일상의 삶을 산다.



반딧불이를 보기로 한 날이다.


아침을 먹는데 문득 아이가 반딧불이가 보고 싶다고, 그 여행집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맘 때다.


서둘러 출발을 했고 가는 길에 항몽유적지에 들렀다. 기대 없이 찾았던 그곳은 예쁜 해바라기 꽃이 만발한 작은 밭이 있었고 근처에서는 마을행사로 플리마켓과 먹거리 등이 차려져 있었다. 투호, 굴렁쇠 굴리기 등 전통놀이를 해볼 수 있었고, 쑥개떡을 만들어 쪄주기도 했다. 이런 횡재라니. 다시금 제주가 좋아지는 대목이다.



근처 녹차밭 구경을 하고 초원에 앉아 가족사진도 찍어본다. 민들레 씨앗을 후후 부는 아이의 천진한 미소가, 깔깔 웃음소리가 맑게 드높다. 행복이 여기 이곳에 있다.



그런데, 아차차.

이번 소형 태풍으로 반딧불이 행사가 며칠간 진행이 어렵다는 공지를 그제야 보게 되었다.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아쉽지만. 


차선으로 근처 곶자왈을 택했다.


날씨가 흐릴수록 숲은 더욱 원시적으로 변한다. 숲해설까지 곁들인 근사한 곶자왈을 만나게 되다니 횡재가 아닌가.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뜻밖의 일이 된다'더니 과연 그러하다.


가시나무, 콩짜개 덩굴, 칡나무와 등나무, 키 큰 소나무, 숨골. 근사한 단어들이 곶자왈을 수놓고 있다.


갈등이 있어야 숲이 풍요로워진다


갈등이 있어야 숲이 풍요로워진다니 이 역시 얼마나 풍요로운 사고인가. 등은 나무와 등나무가 서로 얽혀있는데서 비롯한 말인데, 서로 얽히고 올라가며 풍성한 숲을 이루는데 기여한다. 우리네 갈등도 풍요로운 삶을 위한 불가결 요소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일정은 엇나갔지만 예고되지 않은 곳에서의 만남은 더욱 신선하고 반갑다. 오늘도 좋은 하루다.



제주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이다. 멀지 않은 바다에서 여유롭게 지내고 싶다.


남편은 아이를 위해 낚싯대를 챙긴다. 낚시 초보인 남편이 유일하게 자랑할 출구이다. 아이도 기대감으로 한껏 들떠 있다. 바람이 부는 것만 빼면 화창하니 날도 괜찮다. 바람 때문에 낚시는 금세 접어야 했어도.



오랜만에 보말잡기도 재미가 난다. 저녁엔 보말라면을 끓여 먹어야겠다. 그날 채취한 것들로 식사를 할 수 있단 것은 제주살이의 최장점이다.


일전의 프라이빗 해변을 찾았다. 캠핑의자에 앉아 바위에 다리를 걸치고 책을 읽고 있는 여인이 있다.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서. 그림 같다. 그 모습이. 그 고요를 깨야하는 것이 우리 일가족임이 미안할 정도로.



모래놀이와 물놀이를 반복한다. 태풍으로 밀려온 해조류가 둥둥 떠다닌다. 태양이 작렬하고 다리와 뒷목이 따가워온다. 선크림도 바르지 않았는데. 제주 살 자격이 없는 것 같다.



마지막 하루가 그렇게 저물고 있다.




제주는 사계절 꽃이 있다. 6월의 테마는 수국이다. 가로수 대신 곳곳이 수국이다. 토양의 성질에 따라 보라와 빨강 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꽃이 핀다. 탐스럽기 그지없다.



서둘러 공항으로 출발했다. 올 때처럼 짐은 단출하다. 남편이 미리 챙겨갔고 나중에 챙겨 올 것이므로.


며칠간 손님으로 살았다. 너저분한 집을 보며 잔소리를 시작할라치면 "살러온 거 아니고 여행 온 거니까 그냥 못 본 채 하고 쉬어"라는 게 남편의 해결책이다. 그래서 정말 손님처럼 지내다 왔다. 해주는 밥 얻어먹으며 말이다.


남편의 집이니까.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남편도 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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