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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ul 15. 2019

서프라이즈 불금의 추억

복날은 별거 맞습니다.



초복이자 금요일인 오후.


남편에게 사진 한 장과 함께 메시지가 왔다.


<좌: 카페사진, 우: 카톡인증>


-바빠?


연애시절부터 남편과 나는 근무시간에 연락을 주고받는 일이 드물었다. 출근 인사 정도가 고작이었고 그 외에는 급하게 확인할 일이 있을 때나 연락을 했다.


결혼을 해서도 서로의 공적인 시간에 사담을 나누는 일은 별로 없다. 서로 어떤 약속을 한 것은 아니고 그저 서로 본래 그런 성을 사람 둘이 만난 것이다.


지금은 애가 있어서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해 책상 위에 핸드폰을 올려두지만 예전에는 출근과 동시에 서류함에 넣어놓고 그 길로 퇴근 때까지 한 번도 확인하지 않은 날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이전 남자 친구들은 연락이 뜸한 여자 친구 때문에 꽤나 답답해하곤 했다. 그런데, 현재 남편은 연애 초반부터 '낮에 연락하는 걸 못하니 이해해달라'라는 부탁을 먼저 했다. 내 습성을 알리 없는 남편이었으니 그 말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부탁이었음을 남편도 머잖아 깨달았다. 답답한 쪽은 내가 아니라 남편 쪽임을 말이다.


결혼을 하고 연락이 더 규칙적 패턴으로 변한 것도 남편 쪽이었다. 내가 임신 중 육아휴직으로 집에 있을 때는 출근 잘했다고 한 번, 점심식사 즈음 맛점 하라고 한 번, 저녁에 퇴근한다고 한 번 연락을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전화는 거의 내 생활의 무용지물이 될 만큼 바쁘고 피곤한 날들이어서 남편의 연락은 '부재중'으로 확인할 때가 더 많았다. 제발 전화 좀 받으라며 짜증 섞인 푸념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어린 아들과 홀로 남겨진 아내 걱정에 그러는 것은 알겠다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왜 갑자기 그러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댁이 애랑 둘이 있어보슈. 애 깰까 봐 무음은 기본이요, 폰 들여다볼 시간에 콩잠이라도 자야지. 당신은 너무 핸드폰 중독이야.


그랬던 나도 어느 정도 애를 키워놓고 나니 전화기를 들여다보는 일도 늘어났다. 물론 출근해서는 예외다. 대단한 근무 철칙이 있어서가 아니라 앞서 말했듯 그냥 습관이다. 그래도 전에 비하면 전화 수신율은 꽤 높다. 부재중이 찍히면 회신전화도 한다. 장족의 발전이다.


어쨌든 나나 남편이나 근무 중 연락 비율이 낮기 때문에 낮에 연락이 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일 확률이 높다.



설하고, 그런 남편에게 대낮에 연락이 왔다. 그것만으로 뭔 일인가 싶지만 내가 놀랐던 것은 남편이 보낸 사진이었다. 사진 속 배경은 분명 '우리 집 앞' 나의 최애 카페였기 때문이다. 한창 근무 중일 남편이 한낮 카페 사진이라니. 게다가 제주가 아닌 우리 집 앞에 있는.


- 00?

- 역시 바로 알아보네 ㅎㅎ


우리 부부는 주말부부이다. 남편은 늘 제주에서 금요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본가에 온다. 그런 남편이 금요일 대낮 우리 집 앞 카페에 있다니 이게 무슨 일이람?


응급상황이다.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충동적으로 연가를 쓰고 날아왔단다. 이 역시 남편답지 못하다.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충동 연가라니. 설명을 들어보니 일요일 당직을 서게 돼서  일찍 제주로 돌아가야 하기에 앞당겨 왔다고 한다.


금요일 밤이 되어야 겨우 만나는 남편을 퇴근해서 볼 수 있다니 꿈만 같다. 우리에게도 '불금'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초복이기까지 하니 든든한 한 끼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퇴근 후 쌩, 하니 집으로 달려왔다. 도토리처럼 짱뚱하게 머리를 자른 남편이 웃으며 다가온다. 그야말로 서프라이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갈만한 보신 음식을 찾았다. 삼계탕집은 대기가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장어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가본 적 없는 외길 비포장도로를 달리니 이름 그대로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나왔다.


곧이어 나온 장어는 실로 튼실했다. 1kg에 한 마리 정도 되는 꽤나 실한 녀석이었다. 배부터 먼저 숯불에 익히자 장어는 뜨거운 듯 몸통을 동그라니 말아 올린다. 뒤집으라는 신호이다. 훈연의 향이 배어들자 흙냄새가 사라졌다. 두툼한 녀석 한 점을 들어 상추에 올리고는 생강채와 생마늘, 매운 고추, 쌈장까지 곁들여 한쌈을 만든다. 입안 가득 숯불향과 장어 기름의 고소함이 채워졌고 뒤이어 생강과 마늘이 깔끔한 마무리를 도왔다. 아이도 쉼 없이 입에 넣는다.


맥주 한 잔까지 완벽하다. 주량이 약한 친정아빠도 기분이 좋으셨는지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또 한 잔을 비우신다.


완벽한 불금이다. 

좋은 음식을 남편과도 함께 먹을 수 있는 '좋은 날'이다.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오는데 아까는 보지 못했던 연꽃연못이 보인다. 주변으로 흰 공작, 산양, 거위, 오리 등이 보이고 물레방아와 장미터널도 있다. 연못 건너에는 버드나무와 흔들 그네도 있었는데 연못으로 늘어진 나무줄기를 보고 있자니 연이 낭자와 버들 도령이 나올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평소 금요일 이 시간쯤이면 남편이 비행기를 탄다고 전화가 올 시간인데,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좋은 풍경도 함께 보니 더없이 좋다.


"불금을 같이 보내니 좋긴 하다, 그치?"


나의 물음에 남편도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사업소는 벌써 유연근무제 시작했는데. 우리도 시작하게 되면 금요일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해도 저녁식사 같이 하는 건 아마 가능할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저녁이 있는 삶이 우리에게도 도래하나 보다. 비록 일주일에 단 두 번이지만. 그때까지는 '서프라이즈 불금의 추억'을 야금야금 씹으며 견뎌봐야겠다.




이튿날 아침 7시 10분. 어김없이 1등으로 눈뜬 아들이 내 볼에 뽀뽀를 하고는 귀에 대고 속삭인다.


"엄마~ 엄마는 좀 더 자요. 난 아빠랑 놀고 있을게요."


이런 게 주말의 맛이지! 아들아 고마워~ 남편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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