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aterrace Jul 30. 2019

그녀가 집을 떠날 때



처음도 아닌데 유달리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다. 방학을 했고, 늘 그렇듯 제주 남편에게 간다. 나는 아이와 가야 하므로 짐이 많으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래서 이럴 때면 으레 한 주전 남편이 우리의 짐을 챙겨간다. 최대한 잘 챙겨 보내긴 해도 늘 빠진 것이 있다. 그래서 남편을 보내고 남은 일주일 동안 생각날 때마다 모아두었다가 챙겨다.

 

짐을 챙기는 것이 마음을 가볍지 않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번에는 하나하나 돌아볼 것이 많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그저 마음이 가는 것들이 늘어났다. 분명 지난 방학만 해도 제주에서 지낼 것에 대한 설렘만 있었는데 말이다.

 


발코니를 보니 화분들이 보인다. 선인장 화분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생명을 키우는 일에 관심이 없던 나이다. 그런 내가 발코니에 잔뜩 화분들을 늘어놓은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다. 나의 학교 아이들과 우리 집 나의 아이.


최초에 화분을 사게 된 것은 아이들의 생일선물을 놓고 고민하던 때였다. 예전처럼 쿠키 같은 먹을 것을 사줄까 고민을 했는데, 지금 아이들에게는 어쩐지 단순히 먹을 것보다는 책임감을 길러줄 무언가를 안겨주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봄이었고, 미세먼지도 심한 날들이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식물화분이었다. 공기청정에 탁월한 녀석들을 인터넷으로 왕창 주문했다. 인터넷으로는 식물도 주문하다니 좋은 세상이다. 큰 박스 가득 담겨온 화분들을 발코니에 하나하나 내려두었다.  중에는 우리 아이를 위한 것도 있다.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주라고 하고 그 이름을 적은 이름표도 꽂아주었다.


이제 너도 하나의 생명을 책임저야 한단다, 아가.


아이는 기뻐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노랑이'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분무기로 물을 주며 자신이 없는 하루 동안 잘 지내라고 격려도 보낸다.


학교의 아이들에게 줄 화분은 특별히 예쁘게 꾸며본다. 그래 봤자 카페에서 받아온 아이스컵에 식물을 옮기고, 축하의 말이 담긴 작은 피켓을 꽂아주고 마끈으로 묶어주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카페 테이블 위 화분들처럼 꽤나 근사해 보인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에게 전해지기 전까지 내가 보살펴야 하는 생명들이 많아졌다. 마치 정원사처럼 나는 나의 작은 화원을 책임지는 관리사가 된다.


생명에 책임감을 가지니 애정이 샘솟는다. 선인장도 말려 죽였던 내가 식물을 키우다니, 친정부모님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신다. 키우다 보니, 규칙적으로 물을 줘야 하는 생명들보다 아주 간헐적으로 물이 필요한 선인장이 더 쉽게 잊혀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람처럼. 자주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말도 그래서 생겨난 듯하다. 식물을 키우다 인생사를 깨닫게 되다니 법정스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한 달 가까이 집을 비우게 된 상황에 내가 식물들에게 마음이 갔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로구나. 정성 들인 식물에 대한 집착. 주무시고 가시라는 나의 만류에 혼자 있을 강아지 걱정에 자꾸 집에 돌아가시겠다고 하던 친정부모님처럼 나도 꼭 그 모양이다. 나는 이 애정을 그냥 "책임감"이라고 부르겠다. 생명에 대한 책임감.


엄마 아빠, 이 아이들 잘 부탁해요.



그다음에 눈이 간 것은 냉장고 안팎의 음식물들이다. 한 달 가까이 집을 비울 때에는 신선식품들이 멀쩡할 리가 없다. 우선 시부모님이 주신 토실한 양파와 감자들을 챙긴다. 이미 대부분을 드렸지만, 평일에 거의 요리를 하지 않는 우리 집은 많은 양을 드리고도 남아있다. 그것들을 부모님께 챙겨드리고, 우유와 계란 같은 것들도 넘긴다. 반찬들은 어떻게 하지?


엄마 아빠, 가끔씩 우리 집 오셔서  식사하시고 가세요.


이런 것도 해결책이라고. 하하

 


침실을 들여다본다. 자다가 몸만 쏙 빠져나온 것 같은 이불 동굴이 보인다. 낮은 층이라 모기가 간혹 있기에 모기장 쳐놓았는데 평소에는 괜찮더니 오늘따라 유달리 거추장스럽다. 모두 걷어내고, 이불과 배겟잎은 세탁을 한다. 건조기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순간이다. 보송보송 마른 아이들을 잘 개켜서 침대 위에 쌓아두니 제법 깔끔해졌다.



또 챙겨야 할 것들이 남았던가. 두고 갈 것과 챙겨갈 것을 얼추 나눈 것 같은데, 여전히 마음이 쓰인다. 도대체 뭐지?


"엄마, 가끔씩 우리 집에 오셔서 주무시고 가세요. 여행 온 것처럼."


"그래, 알았어. 겸이 없는 동안 나도 이제 마음껏 돌아다녀야지."


아이 때문에 시간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부모님이다. 나의 방학이 곧 부모님의 방학이 되는 시간이다. 죄송함이 떠밀려온다. 나를 위해 직장에서 가까운 곳을 두고 곁으로 오신 부모님. 낮동안 아이를 돌봐 주시고, 저녁엔 식사까지 함께 해주신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고 나면 방학이라 아이와 내가 홀연 사라지는데 그 기분이 홀가분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노인 두 분을 남겨두고 오는 기분이 나 역시 영 편치가 않다. 이거였구나.


우리가 떠나는 것이 부모님께 휴식을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필요할 때 찾아 쓰고 불필요할 때 넣어두는 휴대품처럼 나는 부모님을 그렇게 쓰고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처음 며칠은 굉장히 한가하게 잘 지나가는데 조금만 지나면 보고 싶어, 이 녀석."


그도 그럴 것이 첫 손주로 낳자마자 집안의 보물 1호가 된 아이이다. 조리원에 머물 때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셨고, 조리가 끝나고 우리 집으로 갔을 때도 최소 1주일에 한 번은 얼굴을 보러 오셨다. 그것도 모자라 주말 가족이 된 나와 아이를 위해 곁으로 이사를 오셔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는 얼굴이 되었으니 '습관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부모님도 이제 한분은  환갑이 지났고 한분은 칠순을 바라보는 연세이시니 체력이 아니라 에너지로 버티고 계심을 삶의 곳곳에서 목도하였다. 그 에너지의 근원이 우리 아이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몸살감기로 시달리는 엄마도 끙끙 앓고 누워계시다가도 우리 아이가 방문하면, 평소의 하이톤으로 어디서 기력이 나오는지 평소처럼 놀아주신다. 그래서 어떤 한의사 선생님께서는 손주가 계속 귀찮게 해야 안 늙으신다고까지 말씀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에너지 근원으로서 손주의 역할을 일러주셨던 것 같다.


"엄마 아빠, 나 제주에 있는 동안 꼭 놀러 오세요. 시간만 알려주시면 내가 표 끊어 드릴 테니. 사실 계절로서는 봄가을이 좋은데 그때는 내가 방학도 아니라서 시간상으로 어려우니 여름 겨울이라도 오셔야지."


알았 알았어, 로 대답하시는 걸 들으니 벌로 듣고 계신 게 분명하다.(*벌로 듣다: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의 방언)

 

집에서 공항버스터미널까지는 차로 5분이면 충분하다. 내 차로 터미널까지 왔고, 돌아갈 때는 아빠가 우리 집에 파킹을 해주실 것이다. 끝까지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힘들다니 키워놔도 다 키워놓은 게 아니다.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엄마 아빠는 틈틈이 우리 집을 드나드실 것이다.


가끔씩 환기도 시키고, 먼지도 털어내고, 화분에 물도 주시고, 겨울이면 보일러도 한 번씩 돌리시고, 몇 안 되는 옷가지들도 세탁하시고, TV도 켜보시고 잠시 머물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실 것이다.


자주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말을 비단 식물에 대한 애정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다. 실은 내 주변에도, 내 가까이에도 나를 그리고 나의 혈육을 자주 보며 그리워하고 사랑해주시는 부모님이 있음을 생각하니 공항으로 향하는 마음에 울컥함이 더해진다.


부러 환하게 웃어 보인다. 내가 울면 엄마도 울 것이라서.


대학생 때 어학연수를 떠나던 날, 엄마랑 나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더랬다. 오죽하면 검색대 직원이 나를 달래며 괜찮을 거라고 했을까. 너를 위해 떠나는 연수이니 너만 생각하며 떠나는 딸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했어, 라는 엄마의 말이 짐짓 이해가 다.

  

그래서 곁에 앉은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며 부모님께 보여드린다. 두 손을 크게 흔들면서 웃는다.


그녀가 집을 떠날 때.


 


작가의 이전글 서프라이즈 불금의 추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