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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Aug 26. 2019

다시 또 주말부부.



자동차가 있어 참 다행이다. 

애써 울음을 참지 않아도 되고, 내 울음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떠나는 마음이 무거워질까 봐 눈물을 참았다. 배설되지 않은 슬픔이 다른 마음까지 괴롭힌다. 아이의 사소한 실수에 짜증을 내고야 만다. 눈물을 머금은 마음이 하루 종일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엊그제 시어머님이 가져오신 반찬을 꺼내 아침상을 차려주었다. 남편의 힐링 푸드 '고추 무름'에 아침식사 안 하는 남편 두 그릇 뚝딱 해치웠다. 이거라도 차려주어 다행이다. 안 그랬음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주말부부 3기다. 그치?"

"3기?"

"응. 처음 제주 가서 3개월 함께 살다 처음 주말부부 한 게 1기. 방학하고 다시 함께 지내다 또다시 맞이한 게 2기. 그리고 이번이 3기."


남편의 말이 귀에 잘 담기지도 않는데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또 잘해보자."


공항버스에 오르기 전에 마지막 포옹을 하는데 꾹꾹 참은 울음이 기어코 새어 나온다. 남편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술에 힘을 준다. 올라탄 버스에서 내려다보며 남편은 안쓰러운 듯한 시선을 보낸다. 버스가 출발하고 조금이라도 함께이고 싶은 마음으로 버스를 뒤쫓아 운전을 한다.


"나 버스 바로 뒤에 있어."

"정말? 당신이 울어서 마음이 안 좋다."


그럴까 봐 참으려고 했는데 미안하다. 그렇게 남편을 보내고 눈물바람으로 운전을 해서 가까스로 집에 왔다. 그리고서 이렇게 마음을 놓고 울고 있다. 엉엉, 하고 소리를 내며. 차 안이라 정말 다행이다.


이렇게 사는 거 정말 잘하는 걸까. 되묻고 되물어도 답은 없다. 그래도 소리 내어 운 것이 도움이 된 듯하다. 해결은 없지만 응어리를 토해낸 기분이다.


아이를 비롯해서 가족들에게 내 울음을 들키면 안 된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한숨을 들이켜본다. 꼬리도 올려 웃기도 해본다. 이제 됐다.


다시 이렇게 주말부부의 막이 올라갔다. 나는 개학을 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없는 것이 익숙한 삶으로.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돌아갔고 다시 아빠가 없는 아이가 되었다.



제주로 떠나며 무려 스물다섯 날을 함께 할 수 있어 든든했다. 익숙함에 보통의 부부처럼 사소한 일로 삐죽거리기도 하고 저녁이면 둘 다 지쳐 아이는 내팽개쳐두고 각자의 일에 몰두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모인 완전체로 지내는 것이 더 좋았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평일에는 아이와 함께 바다에 가기도 했고, 커피숍에서 비밀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으며, 출근 때는 못해주던 만들고 그리기를 하기도 했다. 이번 여름은 지난해보다 습도가 더했다. 공식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체감상으로는 그랬다. 4시 이후면 바다에 나가도 선선한 기운이 있었는데, 올해는 저녁이 다 되도록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바깥놀이는 주로 저녁이 지나야 시도했다. 닷새간의 손님치레 기간 동안 원 없이 물놀이를 했고 우리는 '까만 콩'이 되었다.


주말에는 남편과 함께 조금 더 먼 곳으로 갔다. 주로 김녕이나 세화 쪽이었지만, 남편 휴가기간에는 애월, 협재 쪽으로도 다녀왔다. 하지만, 서귀포는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제주인들이 느끼는 심리적 거리를 우리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귀포는 우선 멀다는 생각 때문에 가까운 곳에 좋은 곳을 두고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있냐는 것에 우리 부부는 동의했다.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곳을 피해 우리만의 프라이빗 스팟을 찾고 그곳을 아지트처럼 방문했다. 사실 관광객이라고 사람이 많은 곳을 선호하겠냐마는, 제주 여행이 처음이거나 짧은 기간 동안 방문하다 보니 이왕이면 남들도 가 본 그곳을 찾아가게 마련인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관광객 의문의 1패를 안겨주고, 우리는 괜한 승리 의식을 가졌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만족했다. 이렇게 좋은 곳을 여유롭게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냐며.


그래서 우리는 월정리 바다를 즐기지 않고, 세화 해변 카페를 가지 않는다. 사진은 기가 막힌데 그만큼 피곤하기 때문이다. 애월 해안도로는 드라이므로 만족하고 협재 바다는 해운대의 번잡함이 떠올라 여름 시즌에는 찾지 않는다.


대신 제주의 깊은 숨골 마을인 선흘을 드라이브하고 그곳의 기가 막힌 태국 음식을 맛본다. 듣자 하니 이효리가 이쪽 마을로 옮겨왔다는 풍도 있던데 그로 인해 다시 또 번잡해지기 전에 다음 제주집으로 삼고 싶은, 탐나는 동네다. 시내의 편안함은 분명 없겠지만, 바다가 아닌 산속 마을의 고요함을 가진 곳.


아무리 제주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여전히 나는 제주가 좋다.



제주로 가면서 결심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매일의 일상을 글로 쓸 것, 운동을 해서 건강해질 것.


글은 쓸수록 분명히 잘 써다. 물론 평가는 내 글을 읽는 독자의 몫이지만. 가끔씩 키보드에 손을 얹을 때 머리를 쥐어 짜내며 썼다면, 매일 글을 쓸 때는 확실히 술술 써지는 느낌을 받았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날에는 글감을 고르는 일이 어렵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이기에, 출근할 때와는 매일이 다르기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마음을 담아내어 글을 썼다.


이 때문에 아이와 교감할 시간이 줄고, 남편이 퇴근해서도  남편과 대화 대신에 글을 쓰는 밤이 되는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늘 응원해주는 남편 덕분에 매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글 쓰는 시간은 남편의 사랑을 느끼는 시간이며 동시에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본래의 의도는 글을 쓰고 이를 풍경사진과 함께 목소리로 낭독해서 올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글디오: 글로 읽는 라디오>라는 컨셉으로 시작을 했는데 막상 시작을 하니 매일 글을 쓰고 사진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여유롭지 못했다. 마감을 독촉받는 전업 작가들처럼 나 역시 내가 정해놓은 룰에 맞추기 위해 쫄리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글을 썼다. 그리고 스물 다섯 날의 기록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제 그 숙제를 다 마치고 나니 그야말로 시원섭섭하다. 그 마음을 메꾸기 위해 앞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그때의 기록을 읽으며 녹음을 해보아야지.




운동을 하겠다는 계획도 늦었지만 지켰다. 도착과 동시에 동생 가족이 와서 함께 지내느라 곧바로 시작을 못했지만, 남은 기간이라도 꼭 운동을 하리라는 열망을 품고 실행에 옮겼다.


필라테스와 PT 가운데 고민을 하다 결국은 운동할 체력을 기르기 위해 1:1 PT를 선택했다. 운동으로 생기는 통증은 나날이 줄었고 육지로 돌아온 지금 본래대로 기구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데 예전처럼 힘들지가 않다. 분명 내 체력은 성장한 것이다.


체중의 변화는 없지만, 눈바디 효과는 있었는지 부모님도 동료들도 핼쑥해졌다는 평가를 한다. 체력증진이 운동의 주목적이었지만, 탄탄한 체구를 얻을 수 있다면 더욱 감사한 일 아닌가.


또한 결혼 전 체중감량을 위해 시도한 각종 다이어트와는 마음가짐부터 달랐기에, '운동 고자'인 내가 운동에 관한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글감을 던져준다. 그런 측면에서 도전은 늘 긍정적 것 같다.



이제 다시 제주로 건너가기 전에 하나의 계획이 있다. 그토록 아름다운 제주를 사진으로만, 글로만 담기에는 무언가 늘 부족했다. 그림이었다. 다음에 방문할 '겨울 제주'는 글과 함께 그림을 그려서 넣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어반 드로잉.


꼭 해보고 싶은 것. 근처에 문화센터나 공방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다. 더 풍성해진 제주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


사진으로도 근사하지만,
이렇게 그릴 수 있다면
눈으로만 담기는 아쉬워 사진으로 찍은 풍경을
이렇게 남길 수 있다면.

꿈이 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몸이 늙는 것보다 무서운 것 마음이 늙는 것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마음의 노화'를 예방하는 일이지 싶다. 내 마음 세포가 늙지 않도록 매일 설레며 살아야지. 항산화가 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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